오늘 정기 검진을 위해 오신 산모분은 출산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인데 자연주의 분만법도 원하시면서 르바이에 분만도 원하시는 분이라 그 두 분만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분만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지 설명을 드리다 보니 자연주의 분만에 대하여서도 장시간 설교 아닌 설교를 늘어 놓게 되었습니다. "르바이에는 아기를 낳자 마자 바로 양수와 같은 환경이 되도록 따스한 욕조에 넣어야 하는 것이고 자연주의 분만법은 아기를 낳자마자 산모와의 교감을 위해 산모의 배 위에 상당 시간 올려 놓는 방법이기 때문에 동시에 양쪽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이라 어느 한쪽으로 전적으로 해야 하거나 아니면 그 양쪽을 절충해서 하는 식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다른 분들도 자신이 출산을 하게 될 병원의 분만 환경은 어떤지 또 분만에 함께 해줄 담당 의사의 분만 철학은 무엇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병원에서 출산을 할 예정이신 분들께 참고가 되도록, 또 그렇지 않은 분들께는 분만 방법에 관하여 생각해 볼 기회를 드리는 목적으로 조금 길게 다시 설명을 드립니다.
이전 글에서 밝히기도 했지만 저희 병원의 의료진이 분만에 임하면서 가지는 자세 혹은 철학은 정확히 말하자면 자유 분만 (제가 자의적으로 만든 용어이며 실제 의료 현장에서 그런 용어가 사용되거나 산부인과 교과서에 그런 용어가 올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 분만은 요즘 유행하는 자연주의 분만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인권 분만이라고 알려진 르바이에 분만과도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며 일부 병원에서 맞춤 분만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수중분만이나 그네분만에 대하여는 그런 시설을 만들어두어 선택의 기회를 주면 좋겠지만 그런 여유 공간이 없기도 하여 현재까지는 그런 분만 환경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연주의 분만에 대하여는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철학으로 운영하는 곳들을 지지하며 그런 것을 원하는 산모들은 도와주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저는 단순히 회음 절개를 하지 않고 촉진제를 사용하지 않고 관장과 삭모를 하지 않는 것이 자연적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비자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 석기시대에는 인류가 거의 벌거벗고 살았지만 지금은 대다수 사회에서는 옷을 입은 채 생활을 합니다. 옷을 입게 된 것은 추위를 가리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이목으로부터 수치스럽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한 수단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옷을 입기 위해서는 화학 섬유든 목화나 비단처럼 가공되지 않은 섬유이든 섬유 재질로 쓸 무언가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벌거벗고 다니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비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세상에 옷을 벗고 돌아다니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분만에 있어 어떤 의료 행위를 하고 안하고를 기준으로 자연적이다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연주의 분만법을 택해서 오시는 분들에게 최대한 그런 요구를 반영해서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분만에 있어서는 의학적 안전성 못지 않게 출산하는 산모 본인의 편안함을 배려하는 것이나 산모들의 의견과 바램을 반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병원에서는 소위 자연주의적 분만법(제가 보기에 더 적당한 말은 중세 시대의 분만법)으로 출산하게 되시는 분도 있고 르바이에 방식으로 출산하시는 분도 있고 요즘 산모들이 비자연적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현대 의학적 분만법으로 출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분만 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산모나 가족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하여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기록적으로 낮은 제왕절개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왕절개가 자연적인 방법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제왕절개를 원하지 않는 분들께 현재 산모와 아기 상태를 말씀드리고 수술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 양쪽 상황의 장단점을 말하고 최대한 자유롭게 본인의 의견을 듣고 반영해서 분만 방법을 결정해서 도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의사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 특별한 의학적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수술율이 적었던 것이 아니며 제왕절개가 해롭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자연주의자라서도 아닙니다.
회음 절개에 관한한 자연주의 분만법을 고수하는 곳에서는 회음절개는 나쁜 것이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되는 행위라서 모든 산모가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겉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강요 받게 될 수 있고 반대로 현대적 방법 또는 의료적 방법만이 최선이라고 고집하는 곳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모든 경우에 관행처럼 회음 절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회음절개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회음 절개를 하지 않고 싶지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하고 싶지만 하지 않게 되는 경우(그런 경우는 별로 없겠지만)도 있을 것입니다. 자유 분만 철학 하에서는 회음 절개에 대하여 거부감이 거의 없는 분들께는 회음 절개를 하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애쓰다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설명을 드리고 동의를 받아서 적절히 회음 절개를 시행하며 회음 절개에 대하여 거부감이 큰 분들께는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방적 회음 절개가 더 나았다고 생각이 들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가급적 안하는 쪽으로 최대한 노력을 합니다.
한마디로 자유 분만은 산모의 의사를 최대한 자유롭게 허용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다보면 제왕절개를 포함하여 여러가지 수술적 의료 행위들을 줄이게 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겉으로는 요즘 부각되고 있는 자연주의 분만법과 비슷해 보일 것입니다. 아기의 엉덩이를 때려가면서 거칠게 다루는 것을 원하는 분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자제하다 보니 인권 분만이라고 알려진 방법과 비슷하게 되기도 합니다.
여하튼 제가 그동안 오랜 기간 해왔고 앞으로도 지켜 나갈 철학은 그런 것입니다. 저는 의사로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드리고 최종 결정은 산모와 가족이 내리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분만 환경과 분만 방법을 결정하는 것. 물론 의학적 안정성이 침해받지 않고 그 현장의 시설과 장비가 허락하는 한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래서 저와 저희 병원의 의료진은 자유 분만 신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연주의든 인권분만이든 분만에 있어 어떤 틀을 만들어 그것이 모든 경우에 최선인 것처럼 고집하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며 자유 분만도 또 하나의 틀과 고집이 되는 식으로 비쳐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던 출산의 주체적 당사자인 산모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그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순산도 하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 분만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 용어의 선택이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은 인권 분만이지만 인권의 탈을 쓴 속박은 아닌지 말은 자연주의이지만 그저 홍보를 위한 한 수단일 뿐 오히려 산모들에게 부담을 주고 근심과 불만만 갖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정말 주장대로 그렇게 잘 실천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가진 철학인 자유 분만도 예외는 아닐 것이고 그러한 철학을 밑바탕으로 최대한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뿐이지만 분만을 하고 나서 산모가 자신의 의견이 얼마나 존중 받았는지로 얼마든지 그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회음 절개를 했는가 삭모를 했는가 또는 제왕절개를 하거나 흡입 분만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런 모든 결정의 과정이 자유롭게 본인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의사의 양심적이고 진심 어린 조언 하에 이루어졌는지 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분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의사도 아니고 조산사도 아니며 남편도 아닌 산모 당사자이니까요. 여하튼 모든 산모들께서 본인의 주체적 결정으로 편안하고 안전한 출산을 하게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