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오비 산부인과

제목: #09. 나 이전에 만 세대의 어머니가 있었다 [프린트]

글쓴이: 심상덕    시간: 2020-04-03 00:42
제목: #09. 나 이전에 만 세대의 어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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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작가: 폴 고갱
소장: 미국 보스턴 미술관

이 그림은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작품이다. 길이가 무려 4m에 이를 정도로 대작이다.
고갱은 문명에 물들고 않은 원시적인 곳을 그리워해 폴리네시아의 주도인 타히티에 들어가 살았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보다 30살이나 어린 13살 소녀를 프랑스에 있는 부인과 별개로 현지의 아내로 삼았으며 그녀 외에도 수많은 소녀를 정부로 두었다.  때문에 그가 남긴 걸작들과는 별개로 지금도 그를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화가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그림은 그가 죽기 얼마 전 사랑하는 딸 알린느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그린 것이다. 작품을 완성한 후 자살을 기도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는 지병과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다가 55세의 나이로 타히티에서 사망했다.  
그림에는 오른쪽 끝에 아기가 누워 있고 가운데는 젊은이가 손을 높이 들어 사과를 따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왼쪽 끝에는 머리를 감 싸 쥐고 있는 노인이 그려져 있다.  미술평론가 모리스 드니는 인류 3대의 사과로  성경에 나오는 이브의 사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인상주의 화가인 폴 세잔이 자주 그린 사과를 꼽았다. 세 사과는 각각 그 의미가 다르다. 이브의 사과는 인간이 가진 원죄의 상징물로, 뉴턴의 사과는 위대한 업적을 이끌어낸  매개체로, 세잔의 사과는 사물을 보는 시각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갱이  이 그림에서 사과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브의 사과와 같은 의미, 부질없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고갱이 친구에게 남긴 편지에는  "자신의 작품을 판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을 초월하는 것으로, 나는 이와 같거나 이보다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네. 죽기 전에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나의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다 쏟으려고 하네."라고 썼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그의  그림이 남긴 질문, 우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것은 철학자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질문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이기도 하다.

고갱은 자신이 태어난 프랑스를 떠나서 그가 살고 싶어 했던 타히티에서 젊은 여성들과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그리 행복한 모습으로 살지도 못했으며 행복한 모습으로 죽지도 못했다. 행복을 찾아 떠난 고갱보다는 그저 불행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진 우리나라의 어느 만화가가 솔직히 훨씬 행복해 보인다.  만화가이자 수필가인  김보통은 자신의 책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의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나와 관계가 없다.  안타깝게도 내 뜻대로 되는 일도 별로 없다. 나는 그저 한 마리 크릴새우가 해류를 따라 흘러가듯 거대한 혼란 속에서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고래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새우로 살아간다. 싫은 것들을 피하며 가능한 한 즐겁게, 다른 새우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운이  좋다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행복할 수 있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지 않다."

나는 요즘 책을 잘 읽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읽을 책이 없어서 답답한 적도 많았고 몇 년 전까지도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래서 의사들이 보는 "의사 신문"의 책 읽는 의사들이라는 연속 시리즈 칼럼에 나에 대해서도 한번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물론 정말 책을 많이 읽는 의사들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은 읽은 책 보다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아서 문제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을 사 주는 사람이 있어야 책을 쓰는 저자들도 버틸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책을 많이 읽던 시절 딱히 좋아하는 부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드는 작가의 책은 모두 찾아서 읽는 편이었다. 그런 것을 전작주의라고 한다. 그렇게 읽은 책의 저자들로는 파올로 코엘료, 아멜리 노통브 등이 있지만 나는 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좋아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책은 저자의 고향인 프랑스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더 인기를 끌어서 베르나르는 우리나라도 여러 번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쓴 책 중에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책이 있다. 과학적 추리 소설을 주로 쓰는 베르나르의 스타일답게 이 책도 인류가 어디서 왔는지 하는 것을 찾다가 살해된 교수의 행로를 뒤쫓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최초의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하는 기원에 대하여는 외계의 질병 때문에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화했다는 가설,  유전자의 우연한 결합에서 인간이 생겨났다는 가설,  원숭이가 기후 변화에 적절하게 적응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가설 등이 등장하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리고 살해된 교수가 주장했던 것처럼 돼지와 원숭이의 교배에 의해 최초의 인간이 탄생했다는 가설도 있다. 그에 대하여도 역시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베르나르는 그런 가설 쪽에 무게 중심을 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오래전 삼성 의료원에 잠시 근무했을 때 병원에서 준비해준 복강경 시술 연습도 대상 동물이 돼지였을 만큼 돼지는 여러 면에서 인간과 비슷하다. 장기 이식의 경우  인간 사이의 동종 이식이 제일 바람직하지만 장기 부족 현상 때문에 이종 이식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도 연구자들이 매달리고 있는 분야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심장이든 간이든 돼지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 가장 기능적으로 적합하다고  한다. 베르나르는 소설에서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래 전의 인간들은 나약한 힘 때문에 항상 천적을 두려워하며 살았고 여러모로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였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것, 우리들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하는 것은 호기심 충족의 차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런 호기심은 불안과 두려움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모든 불안이나 두려움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크다. 그리고 그런 무지를 해소하고 싶은 욕망이 호기심과 학구열로 나타난다. 밤길이 무서운 것은 어둠에 가려 나에게 위험한 어떤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나 불안 혹은 고통은 사람에게 심적 부담을 준다. 그렇게 느끼는 스트레스를 종류별로 분석해 놓은 연구자가 있다.

아래는 워싱턴 의과 대학의 Thomas Holmes 박사팀이 개발한 생활 스트레스 순위표 중 20위까지만 발췌한 것이다.  

1. 배우자의 죽음 (100점)
2. 이혼 (73점)
3. 배우자와의 별거 (65점)
4. 교도소 또는 다른 보호시설에 수감 (63 점)
5. 가까운 친척의 죽음 (63점)
6. 심한 부상이나 질환 (53점)
7. 결혼 (50 점)
8. 해고 (47 점)
9. 부부의 화해 (45 점)
10. 퇴직, 사직 (45 점)
11. 가족의 건강과 행동의 변화 (44 점)
12. 임신 (40 점)
13. 생활의 장애 (39 점)
14. 새로운 가족이 생김(출생, 입양, 노부모의 이사 등) (39 점)
15. 중요 사업조정 등 직무상의 변화(합병, 재편성, 도산 등) (38 점)
16. 가계 상의 커다란 변화(평상시보다 더 나빠지거나 더 좋아질 때) (37 점)
17. 가까운 친구의 죽음 (36 점)
18. 전근 (36 점)
19. 부부싸움의 횟수가 크게 변할 때 (자녀교육, 개인 습관 등에 대해서 더 싸우거나 덜 싸울 때) (35 점)
20. 1000만 원 이상의 저당권 설정(집의 구매) (31 점)

이혼이 2위, 결혼이 7위, 임신이 12위, 출생이 14위다. 임신과 출산이 10위 밖으로 밀려나 높은 순위가 아닌 것은 예상 밖이기는 하다. "당신이 할 줄 아는 게 망치질밖에 없다면,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일 것이다."라는  매슬로우의 말처럼 내가 출산을 돕는 것 밖에는 할 줄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은 그런 일로 인해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출산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은  기쁨, 감동, 두려움, 고통 등 다양하겠지만 출산을 앞둔 당사자라면 출산에 동반되는 통증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안전한 출산이 되어 무사히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출산에 대하여는 많은 부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데다가 첫 출산인 경우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통이나 출산과 관련하여 과장되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도 그런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데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어두운 밤길을 갈 때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 중 제일 좋은 것은 어둠을 밝혀줄 등불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다. 출산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과 수년간의 경험을 가진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등불이라면 등불이다.  그러나 어떤 등불도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 주지 못하며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럴 경우 두 번째로 좋은 방법은 함께 갈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도와줄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려움 쪽으로 가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다. 배우자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런 밤길을 나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잘 이겨내고 밤길 여행을 무사히 마친 사람들이 숱하게 만다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베르베르가 소설 속에서 결론 내리지 못한 기원은 과학이 찾아 주었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찾지 못했지만 어머니들의 어머니인 이브를 찾았다.  일명 루시라고 이름 붙여진 여성이다.  인간을 만드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도에 해당하는 DNA이며 이 DNA는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다. 특히 생식 세포 안에 들어 있는 DNA는 다음 세대로 유전되어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끝없이 계속 이어진다. 수정 시에는 난자에 있는 DNA와 정자에 있는 DNA가 만나서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수정란에는 정자와 난자의 DNA가 똑같이 반반씩을 차지한다. 일반적인 세포와는 다르게 인체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다른 기관들과 다르게 핵은 없으면서 DNA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정 시에는 난자에는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정자는 세포질은 다 떨어져 나가고 핵만 난자로 들어가기 때문에 정자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생명체인 수정란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어머니로부터 온 난자의 것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윌슨 교수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이 된다는 이런 사실과 또 돌연변이는 일정 한 횟수로만 반복될 것이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1987년에  과학 잡지인 네이처 지를 통해 주목할만한 연구 보고를 발표하였다. 그는 전 세계 다섯 개 대륙을 대표하는 200여 명 여성의 태반에서 얻은 조직을 통하여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 서열을 상호 비교하여 가계도를 작성하였다. 그 결과 그는 인류의 어머니인 이브는 14만 년 전에서 28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여성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브의 자손들은 약 12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 나가 각 지역에 적응하면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백인과 황인 또 흑인으로 갈라졌으며 기존에 그곳에 있던 원시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어 멸종되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인류의 어머니가 20만 년 전의 아프리카의 어느 한 여성일 것이라는 윌슨의 주장은 DNA의 일정한 돌연변이를 가정하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디어 자체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으며 수백에서 수만 년의 오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인류의 조상인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20만 년 전부터 인류는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출산을 해왔다. 출산의 순간은 여성에게 매우 위험하고 힘든 과정이었으며 그 와중에 희생된 산모나 아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런 힘든 과정을 거의 대부분 완벽히 잘 해냈다. 지구 상에 넘쳐 나는 이 많은 인간들이 그 증거다. 그러므로 출산을 하는 임신부들은 본인들의 그 일이 2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되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한 세대를 30년쯤으로 본다면 28만 년은 대략 만 세대에 가까운 기간이다. 즉 내가 이 세상에 있기까지 만 번쯤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중 단 한 명이라도 출산에 실패하였다면 나는 태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만 번에 더하여 만 한 번째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다. 이전에 숱한 어머니들의 성공의 역사가 DNA에 남아 있다. 이 이야기가  출산을 앞둔 임신부들에게 두려움을 줄여 주는데 기여하면 좋겠다.

출산에 임해서 두렵기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비록 경험이 많은 의사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어두운 밤길을 많이 걸어 본 사람은 갑자기 닥치는 상황에 대하여 좀 더 잘 대처할 수는 있겠지만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을수록 두려움의 강도가 덜 할 수 있고 갑자기 닥치는 위급 상황에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는 있다. 출산에 임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강도는 물론 의사마다 다르다. 상대적으로 덜 긴장하는 의사가 있고 그렇지 못한 의사가 있다. 전자가 강심장이라면 후자는 약 심장 (이런 말은 없다. 역시 내가 방금 만들어낸 말이다. 새가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이다. 나는 다른 모든 것에서는 강심장이지만 출산에 대하여서만은 약 심장이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는다고 무섭지 않으며 무섭게 생긴 사람이 나를 협박한다고 해도 별로 겁날 것 같지 않다.  다만 출산 순간에 접어들면 갑자기 약 심장이 된다.  나와 산부인과 수련을 함께 하고 친한 어떤 선생님이 출산을 도왔던 아기의 상태가 안 좋게 되어 의료 분쟁에 휘말렸던 사례를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아기의 아빠가 요구한 합의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여 합의에 응하지 않고 법정에 해결을 맡기자고 하였더니 아기 아빠가 신문지에 둘둘 싼 길쭉한 어떤 것(아마 칼일 것이라고 하였다.)을 들고 진료실로 불쑥 들어와서는 배에 그것을 갖다 대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 새끼야, 여기서 같이 죽던지 아니면  제대로 보상금을 지불해!"  
그러나 내 친구 의사의 대응은 보호자가 기대한 방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배를 칼 쪽으로 쑥 내밀면서 말했다.  
"그래 찔러라 찔러. 나는 줄 돈도 없지만 그만큼 큰돈을 줄만큼 잘못한 것도 없으니 여기서 찌르고 끝내자."  
아기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니 어쩌면 감정에 못 이겨 정말 끔찍한 칼부림이 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섭지 않았냐고 내가 물으니 그런 사람들은 막상 강하게 나가면 오히려 꼬리를 내린다고 조언해 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친구가 그렇게 나가니 보호자는 칼을 뒤로 빼면서 오히려 부탁을 했다고 한다.
"왜 이러세요? 원장님. 위험하게. ㅠㅠ. 저희 집이 가난하고 아기 치료할 병원비도 없어요.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그 친구 의사가 한 말에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큰 과장은 없을 것이다. 나 같으면 도저히 그렇게 강하게 응대할 자신이 없다. 나라면  굳이 칼을 들이밀지 않아도 "원하시는 대로 다 해드리겠습니다. 진정하시고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것이 뻔하다. 그처럼 타고난 강심장이 아니면 산부인과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타고나기를 그런 강심장으로 타고 나는 사람도 있고 세월이 지나면서 단단해지는 사람도 있다. 세월과 노력의 힘으로 단단해지는 건 근육뿐만은 아닌 듯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심장도 주된 조직은 근육이다.  

나는 앞으로도 밤새 진통하는 산모의 옆방에  쪼그려 누워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진통 때문에  내지르는 비명 소리에 수시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출산 후 출혈이 다른 산모들보다 조금이라도 많다 싶으면 산모의 옆을 잠시도 떠나 있기가 불안해서 수시로 내진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동안은 약 심장은 불치병이다. 출산에 임해 산부인과 의사가 느끼는 두려움은 아기의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방식으로 보상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새로운 한 생명을 무사히 인도했다는 보람은 다른 것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기쁨이다. 기쁨의 강도는 두려움이 클수록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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