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31. 내가 집에 못 가는 이유 [프린트] 글쓴이: 심상덕 시간: 2020-05-06 01:10 제목: #31. 내가 집에 못 가는 이유 [attach]17799[/attach]
제목: 선한 사마리아인
작가: 에메 모로
소장: 프랑스 파리 프티 팔레 미술관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답은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정답은 글의 맨 마지막에 알려드린다.
1. 아내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2.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3. 집이 없어서
4. 새가슴이라서
렘브란트, 들라크루와, 고흐 등 많은 화가들이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그림을 그렸지만 나는 에메 모로의 선한 사마리아인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든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사마리아인을 부축하는 사람이 건장해 보였지만 이 그림에서는 아픈 사람을 부축한 노인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허약해 보이는 데 그 점이 내 마음에 들었다. 에메 모로는 프랑스의 화가로 우리나라에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다. 사냥을 좋아해서 말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점, 화가이자 조각가로 "배심원 앞에 선 프리네"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장레옹 제롬의 사위라는 것, 몇몇의 상을 받았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영어로 베드 딜리버리라는 말을 우리나라 말로는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침대 분만이라는 의미다. 모르는 보통 사람이 들으면 방바닥에서 낳거나 좌식 분만 의자에 앉아서 낳는 것이 아닌 분만을 말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 듯하다. 그러나 베드 딜러버리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진통 산모가 미처 분만 침대로 옮겨 의사의 관찰과 도움 하에 출산하지 못하고 입원실 침대에서 분만하는 것을 말한다. 넓게는 119와 같은 차를 타고 오다가 의료진의 입회 없이 출산하는 것도 베드 딜리버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는 산모의 상태를 면밀히 판단하여 진행 과정을 파악하고 필요한 개입이 없을지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관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출산 시 예방적 회음부 절개를 포함하여 회음부 파열을 최소화하는 조치나 출산 직후 아기의 기도 확보 등의 조치를 못 했다는 의미다. 한 마디로 산모가 집에서 혼자 출산한 것과 다름없이 아기와 산모 둘 다에게 위험한 상황으로 방치되었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베드 딜러버리를 하게 되면 담당 주치의는 문책을 받는다. 병원 마다 문책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하든 병원은 한 달간의 벌 당직이 주어졌다. 보통 이틀이나 삼일에 한번 당직으로 벗어나 퇴근하여 집에 갈 수 있는데 30일 벌 당직으로 받으면 30일 내내 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가정이 있는 기혼 의사라면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의사에게도 끔찍한 악몽이다.
몇 년 전에 학교 동창이면서 같이 산부인과 전공의 수련을 했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경기도에 개원하고 있어 아직 대도시처럼 사람들이 때 묻지 않고 순수해서 지방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곳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자신에게 산전 진찰을 받던 경산모가 진통이 심하여 다급하게 산부인과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초산모는 진통이 시작되어도 출산까지 평균 시간은 9시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경산모는 초산모의 반 정도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간혹 진통이 시작되고 1시간 내에 출산되는 급속 분만도 경산모에서 주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산모의 경우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의 병원을 출산 병원으로 정해두면 위험할 수 있다. 내 친구는 1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집이 있었는데 직원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산모는 이미 출산을 한 상태였다고 한다.
내 친구는 개업하고 벌어진 일이니 윗년차나 교수님으로부터 벌 당직으로 받을 일은 없다. 다만 이런 경우 산모나 보호자의 반응은 여러 가지다. 아기나 산모가 다행히 별 후유증 없이 회복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회음부 파열로 인한 항문 누공과 같은 후유증이 생기거나 딱히 후유증이 생기지 않더라도 의사가 직접 분만을 받아 주지 않았다는 사실로 하여 의료 분쟁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산모의 말은 의외였다.
"원장님 제가 좀 더 참았어야 하는 데 미처 참지를 못하고 원장님이 오시기 전에 아이를 그냥 낳아 버렸으니 죄송해서 어째요?"
친구로서는 굉장히 미안하기도 하고 항의라도 할까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산모가 그렇게 말해 주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경산모가 나오는 아기를 참을 필요도 없는 것은 당연하며 그 순간 담당 의사가 분만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러지 못했다고 하여 의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의외였는데 아마 흔한 반응은 아닐 것이다. 그 산모가 워낙 순박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산전 진찰을 받는 동안에 산모와 의사 간에 쌓인 신뢰의 힘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뢰가 부족하면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방어적 진료도 늘어난다. 내 개인적 경험이라 실제 통계는 없지만 산전 진료를 하다 임신 말기가 되어서 지방으로 가시거나 대학병원으로 가서 출산을 한 분들을 나중에 다시 뵐 기회가 있어 물어보니 10명 중 8, 9명은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을 했다.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 산모들만 골라서 간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제왕절개율이 45% 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렇게 수술한 분 중에는 태아의 탯줄이 목에 한번 감긴 경부 제대륜 때문이라고 한 경우도 있었고 아기가 떠있어서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골반이 통뼈라고 해서 수술하였다고 듣기도 했다. 신뢰가 부족하다 보면 의료 분쟁에 휩싸일 가능성은 훨씬 높으며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의사가 방어적 진료를 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래서 환자와 의료진 간에 신뢰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신뢰는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진찰이라는 이름의 비교적 긴 기간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다. 그래서 나는 예정일을 한두 달 정도밖에 남겨 두지 않고 출산을 위해 옮겨 오시는 임신부들께 그렇게 말한다.
"출산을 도와줄 의사를 정하는 것은 비중은 다르지만 남편을 고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선을 보고 한두 번 밖에 만나 보지도 않고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산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진료를 맡아줄 의사가 의사가 자신을 위해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줄 사람인지, 의사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쪽으로 나오면 산모가 의료 분쟁으로 문제를 삼지는 않을지 알기는 어렵다. 그런 경우 여러 차례의 만남을 통해 남편감을 정하는 것처럼 의사나 산모 모두 그렇게 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두 번의 진찰만으로 출산에 임하게 된다는 것은 피차 위험한 일이다. 내가 자연분만을 하는 방법 중에 첫 번째로 드는 것도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든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간혹 그런 신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의료 행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길거리를 가다가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보게 되는 경우라든가 비행기 속에서 응급조치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생기는 경우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다급하게 의사를 찾게 되는데 의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나서기를 꺼려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의료 행위란 항상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충분한 시설과 장비도 없고 환자에 대한 병력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의료 행위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행위로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경우 의료 분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전에 어떤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다가 쇼크를 일으킨 환자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한의사는 다급한 채로 아래층에 임대해 있던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가정의학과 의사는 한의원에 가서 기도 삽관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의료 처치를 하였지만 결국 환자는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후 환자의 보호자는 한의사와 가정의학과 의사 둘다를 의료 사고로 고소를 하였다고 들었다. 그 소송의 결말은 모르지만 선한 마음으로 가서 도와준 가정 의학과 의사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법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다. 성경에서 예수가 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따온 법 개념이다.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다가 의도하지 않은 불의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상 참작 또는 면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지 않을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우리나라도 법률로 정해두고 있지만 두 번째 경우는 아직 우리나라 법에는 없다. 우리나라의 응급 의료법 중 해당 내용을 아래에 실었다.
응급 의료법 제5조의 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개정 2011년 3월 8일, 2011년 8월 4일)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한 응급처치
가. 응급의료종사자
나. 「선원법」 제86조에 따른 선박의 응급처치 담당자,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제10조에 따른 구급대 등 다른 법령에 따라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
2.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에서 한 응급의료
3. 제1호 나목에 따른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에 한 응급처치
그러나 이런 법률이 있다고 해서 의사들이 선뜻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를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법 조항에도 있다시피 민형사상의 감면을 받으려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라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고의가 없다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 없는지 입증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설사 과실이 없더라도 환자가 사망한 경우에 대해서는 면책이 아니라 책임의 감면일 뿐이다. 또 하나 감면 혹은 면책은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로 한정하고 있는데 생명이 위급한지 아닌지 하는 판단도 간단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끝난 후 실제로는 생명이 위독한 경우가 아니었다고 판명이 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 상당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일정 정도의 희생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한 사회가 건강하려면 그런 선한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것이 환자든 산모든 의사든 마찬가지다. 물론 의사의 경우는 선한 마음뿐 아니라 합당한 수준의 실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후배 산부인과 의사들 그리고 동료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베드 딜리버리 (Bed Delivery)는 정말 배드 딜러버리 (Bad Delivery)라는 말이다. 나쁘다는 의미의 Bad말이다. 출산 산모 옆에 의사가 없다는 것은 산과 의사의 존재 이유를 없애는 일이다. 출산을 돕는 의사든 조산사든 아니면 하다못해 산파도 없이 산모 혼자 출산하는 것처럼 위험한 분만은 없다. 내 친구 의사는 다행히 순박한 마음씨의 산모를 만나서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런 순박한 산모만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은 산모와 의사 모두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내가 혼자 병원을 운영하면서 3년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므로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4번째 새가슴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머지도 가장 큰 이유는 아니지만 내가 집에 못 가는 이유들이다. 그러므로 정답은 1,2,3,4번이다. 뒤로 갈수록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