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오비 산부인과

제목: 2016. 5. 18. 그녀를 만난 날 [프린트]

글쓴이: byitself    시간: 2016-07-08 22:17
제목: 2016. 5. 18. 그녀를 만난 날
♡개인적인 글쓰기 습관으로 인해 부득이 반말체로 쓰겠습니다♡

[서설]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하며 본격적으로 아기를 기다리며 조금은 초조해했던 지난 여름...그리고 무작정 떠났던 제주행 휴가...
그런 시절들이 꿈결처럼 지나간다.

호영(아기의 태명)이를 품고 직장에 지각할까 시속 120까지 밟았던 그 날부터가 긴 히스토리의 본격적 시작이 되겠다.
후일 호영이의 건강이 걱정될 때면 그 날 아침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이 아이는 무척 강한 아이다.ㅎㅎ'

무심히 테스트기를 에 담갔다가 2줄을 보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원포, 적십자, 일동 등등 여러 가지 테스트기를 해 보고서도 믿겨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테스트기 진하기를 비교하며 연구하기를 일주일 정도..


[입덧]

병원에 가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부터 입덧이 시작되었다.
그 입덧이란 녀석은 나를 단숨에 쓰러 뜨렸다.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고,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는 것같았으며, 극심한 두통과 울렁거림의 시작.
누운 채로 직장에 휴직을 내었고 난생 처음 겪는 고통에 놓여지게 되었지만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더욱 서러웠다.

' 음...이 영혼은 존재감이 아주 확실하구나.'

그렇게 울부 짖으며 누워서 몇 달을 보냈다.
지극 정성으로 나를 보살피며 함께 입덧까지 한 신랑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기 태교는...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도 심적으로는 늘 아가를 생각했다.

20주가 지나자 술에서 깬 듯...어느 날 아침 정신이 명료해지며 입덧이 지나갔음을 느낄 수있었다.
미음부터 시작해 이런 저런 음식을 먹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식욕은 돌지 않았다.
그래도 물이라도 충분히 마실 수있음에 감사하는 시기였다.


[진오비와 만남]


입덧이 지나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무렵 우연히 -정말 우연히-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후배와 점심 식사를 했는데,
후배(시온맘)의 강력한 추천으로 진오비 산부인과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단순히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곳이 아닌, 과잉 진료 배제, 낙태 금지 운동, 산모들과의 다양한 소통..을 하는 병원.
후배의 소개에서 평범한 병원이 아닌 소신과 철학을 지키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첫 방문에서도 시크하신 심원장님을 뵙고, 직감적으로 "뭔가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왕복 3시간 거리의 진오비로 전원하게 된다.


[임신 중후반]

5~6개월 즘이 신체 컨디션은 가장 좋았다.
집안의 여러 행사도 챙기고 가벼운 수영을 하거나 요가 강습도 받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팔목이 조금씩 아프다고 느껴졌고 무리해서 요리한 날은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

이때즘이 겨울이라 코/기침감기 1회, 열감기 1회를 앓았다.
서울 기온이 이례적으로 영하 20도씨로 떨어졌다는 그 시기였다. 지독한 감기였다.
약 없이 버텼는데 코감기 때는 코로 숨을 못쉬니 입이 찢어져서 잠을 잘 못자는 일주일 정도가 지나갔다.
그래도 입덧에 비해서는 수월했다.

일주일 후 열감기가 왔는데 체온이 38도씨가 넘을까봐 나의 모든 신경을 회복에 집중했다.
병원에서는 약복용을 권했으나 내키지 않았다. 자기 최면이라는 것의 효과였을까...이틀만에 약 없이 감기가 나았다.
이 때 신체가 정신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체험했다.

감기가 지나자 운동과 식사, 수면 등 건강 관리와 태교에 더욱 집중했다. 그러나 이 시기 허리를 삐게 되며 다시 몸져 누웠다.
열감기 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최대한 몸에게 굽실대며 낫기를 간구했다. 그리고 하느님과 그 분이 주신 내 몸을 믿는 연습을 반복했다.

다행히 열찜질로 근육통이 완화되었고 조금은 살살 체력 관리에 힘썼다.

[순산체조]

"심원장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2종류의 산모가 있으니, 순산체조를 한 산모와 그렇지 않은 산모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평소 우리집 (임시)가훈도 "운동만이 살 길이다!"이었다.
살면서 운동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순산체조를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임신이라는 낯선 상황이 두렵고 조심스럽기도 했고, 극심한 입덧으로 인해 체력은 바닥에 바닥을 친 상태였다.
그래도 5개월 경부터는 유튜브에서 임산부 요가를 몇 번 따라하다가 근처 체육센터에서 임산부 요가를 시작했다.
또한 평소 즐겨하던 수영을 종종 다녔다.
임산부 요가는 의외로 과감한(?) 동작들이 많았다. 다리 찢기, 기마 자세 등등!
임산부 요가는 2달 다니다 중지했는데, 허리 통증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요가를 열심히 하다 보니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신이라는 몸 상태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역시 무리는 금물이기에...
이 후로는 걷기를 하루에 2~3시간 정도 하였고,
틈 나는 대로 호흡법(평소 요가로 단전호흡을 배운 적이 있었고, 히프노버딩을 통해 더 신뢰하게 된...)과 스트레칭을 했다.
짐볼도 꾸준히 했다. 위아래 통통보다는 동그랗게 허리를 돌리는 운동을 많이 했다.
막달에는 거의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아기가 나올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출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혼란이 왔다.
그럴 때는 막연히 걷거나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이완했다. 히프노버딩에서 배운 방법을 적극 활용했다.

[진통과 출산]

예정일은 5. 15.
5월이 되자 근처 공원에 연두빛이 흐드러졌다. 운동하기 좋은 날씨였다.
막달 시작부터는 애기가 미리 나올까봐 걷기만 했다. 혹시나 하여 수영도 참았다.
다만, 걷는 시간은 실외에서 의도적인 걷기로만 하루 4시간 이상이었다. 발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쪼그려 앉기는 공식적인 순산 체조 중 하나였지만, 임신 기간 내내 쪼그려 앉은 적은 단 1번이었다.
예정일 3~5일 전부터는 이슬을 기다리며 쪼그려 앉기를 시작했다.
공원에 마련된 의자를 잡고 조금은 과감하게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기마자세로도 오래 버텼다.
완전히 쪼그려 앉았다가 손을 이용하지 않고 일어나는 자세를 아주 천천히 3~5번씩 반복했다.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갔지만 골반이 열리라고 의도적으로 과감하게 시도했고 허벅지가 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천천히 했다.
주말 부부라 자주 혼자 있었는데, 불안한 밤에는 나가서 운동을 했다. 운 좋게도 날씨가 좋았다.
호흡에 맞추어 검은 잎들 사이로 하얀 달이 보였다, 숨었다 했다.

그 날은 신랑이 귀가한 날이었다.
나는 평소 고기를 즐기지 않았고 임신 후에는 더욱 당기지 않았지만 그날은 신랑이 좋아하는 한우를 넉넉히 구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산책을 나갔다. 저녁을 준비할 때부터 약간의 통증이 왔다.
하지만 그것이 평소처럼 있었던 통증인지, 진통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산책을 멀리 나가지 않은 것은 신랑이 피곤해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럽다.
집 앞 놀이터에서 체조를 하는데, 그 날도 달님이 나뭇잎들 사이로 보였다, 숨었다 했다.
가로등 빛이 눈에 거슬렸고, 통증이 점점 강해졌다.
골반이 약간 열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출산 후기들에서 1cm 정도 열리고 며칠 후 진통이 올 수도 있다고 했기에 크게 염두에 두진 않았다.

산책 후 화장실에서 기다리던 이슬을 보았다. (5. 17. pm 8:00)
직감적으로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슬이 있고, 며칠이 지난 후 진통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이 이슬이 바로 진통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단발성 비명을 지르며 신랑을 찾았는데, 신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자 내가 침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언니가 진통이 오면 일단 씻으라고 조언해줬었기에...
자궁이 수축되는 듯한 가진통은 두어달 전부터 살금살금 왔었다.
진진통이 오고도 참을 수 있는 만큼 참고 병원에 가라는 주위의 조언대로 하고자 이것저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 아침 출발하면 되려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열어 두었던 출산가방을 닫았고, 병원에 입고 갈 옷을 골라 두었다.

신랑은 일단 좀 자두라고 하였다.(5. 17. pm 10:00)
어플을 사용하진 않았고 시계를 보며 대략적으로 감을 잡았는데, 11시가 되자 자궁이 수축되는 고통, 즉 진통이 5분 이하로 느껴졌다.
진진통인 것같았다.
인터넷 까페에 질문을 올렸더니,  "아침에 가기에는 너무 늦다. 일단 병원으로 가라."는 댓글이 삽시간에 10개 이상 달렸다.
그리고 "잠이 온다면 진진통이 아니다."라는 댓글도 많았다.
일단 준비해 둔 옷을 입고 신랑을 깨웠다.
출발 전에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간호사님께 "진진통이 왔다고 보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멀쩡하다...지금 느껴지는 고통이 3시간 이상 지속된 후 병원으로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ㅎ
좀 김이 새서 다시 잠옷으로 갈아 입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왔다. 그래서 '진진통이 아닌가보다...'하고 호흡을 하며 계속 견뎠다.
진통이 올 때는 잠깐 깼다가, 갔을 때는 까무룩...잠이 들었다를 반복했다.

"우욱~"
이것은 입덧이 가장 심했을 때의 그것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화장실로 달려가 5개월만에 토덧을 했다. 이 익숙한 느낌...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체된다면, 내가 차를 타고 병원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신랑은 내가 토덧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래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부인, 이제 병원으로 출발합시다."(5. 18. am 3:00)
(저희 신랑은 약간 고지식한 어투를 사용합니다. ㅋ)
'아...병원까지 어떻게 가지..괜찮을까...'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는 1시간이 넘는 거리였기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골라 두었던 옷이 아닌 그냥 평소 입던 가장 편한 옷을 입었다.
차에서도 계속 호흡을 했다. 올림픽대로변에 보이던 주홍색 가로등, 그리고 그 아래 넘실대던 한강...

"여보, 저 먼저 들어 갈께요. 안전한 곳에 차 세우고 오세요."
그 와중에도 주차를 걱정하다니 '아직은 때가 아닌갑다...' 싶었다.(5. 18. am 4:00)
  '이런 고통이 진통의 시작이라면, 도대체 어디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만실.
옷을 갈아 입고 분만 침대 위에서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정자세로는 견디기 힘들었다.
자주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참기 힘들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간호사님이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안된다고 어서 나오라고 하셨다.
그 때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그냥 복도 바닥에 고양이 자세로 엎드려 버렸다.
이 때부터는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키기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호사님이 뭐라고 하시는데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고 그 말이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미 반 이상 진행되셨네요. 신랑분 동의서 쓰러 나오시고요, 조금 더 진행되면 심원장님께 전화 드릴께요."
맙소사, 많이 아픈 거였구나.
파도를 탄다라는 말이 이해되는 고통들이 왔다, 갔다 했다.
파도가 올 때는 정자세로 있지 못하고 엎드려서 허리 돌리기를 했다.
진통을 올 때 자세를 여러 가지 공부했었는데, 딱히 뭘 선택할 수가 없었고, 그냥 본능적인 자세였는데,
나에겐 그 자세가 도움이 되었다.
사실 그 자세가 도움이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가만히 누워 있는 것보다는 살살 움직이면서 그 움직임에 집중하는 편이 고통을 경감하는 듯했다.
내가 자세를 자주 뒤틀어서 태동검사기를 설치하지 못하고 청진기가 달린 작은 기계로 아기 심장을 체크해 주셨다.
이 때 태동검사기 설치를 고수하여 나에게 정자세를 강요하였다면 나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후에 간호사님도 내가 자세를 많이 바꾸었기에 태동검사기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셨다.

분만침대에서 누워서 보니 작은 창문이 보였다.
'내가 살아 나가서 저 창 밖의 풍경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깜깜했던 창문이 조금씩 밝아올 무렵,
"7~8cm 정도 열리셨어요. 원장님께 전화 드릴께요."

심원장님이 오셨다.
"한 3시간 정도 있으면 다 열리겠네요. 어디 불편하신 데 있으세요?"(5. 18. 6:00)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심원장님이 이런저런 체크를 하시고 나가셨다.
'흠... 3시간이라...' 진통은 한 편의 교향곡처럼 전주곡을 지나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금도 나에겐 맥시멈인데, 3시간 동안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공부했던 바에 의하면 신랑이 맛사지도 해주고 한다는데, 나는 신랑이 내 몸을 건드리게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파도가 오면 파도를 탔다가, 파도가 가면 까무룩 잠들었다가...
새벽 진통이라 잠을 이기지 못해 살짝살짝 잠이 든 것은 행운이었다.

"다 열렸어요. 도저히 못참겠으면 호출하세요."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들이었는데, 직감적으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기가 골반을 통과하는 때였다.
그러면서 아기가 허리를 눌렀던 것같다. 간헐적이었지만 허리쪽으로 강한 통증이 왔다 갔다 했다.
'내가 무식해서 용감했어!! 무통주사는 신이 내린 선물이었던 것이야...'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같다.
그리고 뭔가 나오려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런 느낌이라 간호사님을 호출했다.
간호사님이 내진을 하며 힘을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얼굴로 주면 아기 못나온다고 힘을 아래로 주라!"고 강조하셨는데, 어떻게 하는 건 지 몰라서 울고 싶었다.
뭔가 넉다운이 된 것같았다.

심원장님이 오시고 녹색 수술복으로 갈아 입으셨다.
하얀 조명도 켜졌다.
이 때 심원장님이 들어 오시며 음악을 틀어 주셨는데, 의도하신 건 지 모르겠지만 무척 웅장한 그런 교향곡이었다.
'아기가 나오려고 하는구나. 축하곡같다.'
약간 정신이 드는 듯했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힘 주세요. 계속 이러면 아기가 힘들어합니다. 지금 아기가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지체되고 있었요!"
후기를 보면 남들은 아기가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는데,
나는 자포자기하려는 심정으로...
'어쩌지? 어떻게 하는 거지? 흡입기라도 써서 도와주셨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힘! 지금 힘!"
심원장님의 목소리에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뭔가 나오려는 느낌이 들 때에 맞춰 분만침대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줬다.
이 때 힘 준 것때문에 어깨가 아직도 아프다...(분만 7주 넘었는데도...)
이 때 나는 거의 비몽사몽했던 것같다. 호흡하는 것도 잊어서..신랑이 옆에서
"부인! 호흡해! 습습후~습습후~" 하고 연습했던 것을 해줬다.
"하느님 도와 주세요. 저 혼자는 못할 것같아요."
간절했던 기도가 터져 나왔다.
젖 먹던 힘까지 낸다는...그 말이 실감날 정도가 지났을까...


"신랑, 동영상 준비하세요. 아기 나옵니다!"
아기가 나오는 순간은 생각보다 스무스했다.
힘을 빼고 호흡을 하는 동안 아기가 완전히 빠져 나왔다.(am 9:15)
(나중에 심원장님께서 잊고 있었던 이 동영상을 가져다 주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동영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동영상 보면 내가 정말 못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

"응애~ 응애~"
지금은 너무 들어서 약간은 싫은...그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던 순간.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얼굴.
초보 엄마 아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태교 때 들려 주었던 동요를 메들리로 5곡 정도 들려 주었다.
아기는 너무너무 귀여웠는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울지도 않고 나와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후처치가 있었는데, 후처치는 하는지 마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아기에게 몰입했다.
그렇게 시니컬한 늦깍이 엄마는 삽시간에 아기의 팬이 되었다....

"괜찮으세요? 지금부터 2시간이 가장 위험한 시간입니다."
심원장님의 체크도 잘 안들렸다.
목욕을 하고 온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아기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지인들에게 출산 소식을 알렸다.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영향이었을까?
나는 완전히 각성되어 있었고, 졸리지도 피곤하지도...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척 즐거웠다...

그리고 수액을 맞고 아기와 함께 입원실로 갔다.
여기 저기가 아팠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비문은 실로 사실이다.)
아기 얼굴을 쳐다 보느라 내 존재를 잊었다.
진오비 산부인과에서는 내가 잊은 내 존재를 끊임없이 챙겨 주셨다.
시간마다 체킹을 해주셨고, 체온을 재거나 이런 저런 검사를 해주시고 약과 밥을 주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를 잘 챙기는 것이 나 자신뿐 아니라 아기를 위한 일이기도 한데,
나는 내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회복했음에 또 감사드린다.


[마무리]

오랜 시간 나의 삶, 특히 일에만 몰두하며 살다가 3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엄마가 되어,
약간의 노파심...그리고 아기에 대한 죄책감마저 있지 않았나 싶다.
혹은 자기애(自己愛)의 확장이었을 수도...
임신과 출산에 집중했던 10여개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이제 육아를 고민한다.
이 소중한 존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리고 다짐한다.
내가 늘 해 왔던 비판을 나에게 한다.
"네 아이에 대한 사랑이 타인에게 확장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대단히 경이로운 경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라고.
종종 내 아이만 이쁘고, 내 아이만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 온 입바른 소리를 다시 되뇌어 본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 주신
진오비 산부인과 심원장님과 간호사님들, 그리고 여러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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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현희    시간: 2016-07-10 12:14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저도 그녀를 만났던 그날이 떠올라 눈물이 찔금 나왔네요.  예쁜아가랑 홀몬작용 느끼시며 즐건육아하셔용.  웰컴 투 육아부대!!!
글쓴이: 시온맘    시간: 2016-07-14 01:56
언니~~!! 호영이는 518 생일이군요~~ 역사적인날에 ㅎㅎ 안잊어버리겠어요 ^.^ 호영이 얼굴 처음보네요 아고 이뻐라 정말 너무 신기하죠.. 사전트한테 감사해야할듯해요 ㅎㅎ 언니랑 만났던 날들과 언니랑 나눴던 이야기들이 떠올라 더 감동적인 후기예요~ 정말 아가는 점점 더 예뻐지고... 몸이 힘든 건 점점 더 나아질거예요! 행복한 나날 보내고 계시길... (아직은 힘들때이긴 하지만 ㅠㅠ ㅋㅋ) 또 연락드릴게요 >ㅁ<
글쓴이: byitself    시간: 2016-07-26 13:39
시온맘님이 2016-07-14 01:56에 등록
언니~~!! 호영이는 518 생일이군요~~ 역사적인날에 ㅎㅎ 안잊어버리겠어요 ^.^ 호영이 얼굴 처음보네요 아

ㅎㅎ 순간 서전트가 누구인가 했다는..ㅋㅋ
언니가 호영이 사진 안보내줬었나보넹..ㅎ^^ㅎ
시온맘도 하던 일 잘 진행되는지 궁금하넹...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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