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오비 산부인과

제목: #04. 출산 영상을 찍어드립니다 [프린트]

글쓴이: 심상덕    시간: 2020-03-19 02:23
제목: #04. 출산 영상을 찍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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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 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소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가 처음 만난 카메라는 의과 대학교를 다닐 때 장롱에서 발견한 아사히 펜탁스라는 카메라였다. 일안 리플렉스라고 하는 것으로 나름대로는 고급 모델이었다. 그 카메라가 언제부터 장롱 속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버지께서 사고 나서 거의 쓰지 않으셨던지 외관이 깨끗해 보였다. 그러나 그때의 카메라는 필름을 이용하는 아날로그 카메라인 탓에 사용하기가 아주 불편해서 자주 써보지는 못했다. 그런 종류의 카메라는 아니지만 병원 업무와 관련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가 있다. 병원에서 쓰는 의료 장비 중 하나가 현미경이다. 현미경은 질 분비물을 채취해 염증이 있는지 보는 목적으로 또는 자궁암 검사를 위한 세포진 검사를 위하여 산부인과에서도 종종 쓰이는 장비다. 분비물을 채취하고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과정이 번거로워서 지금은 일선 개원가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나도 지금은 자주 현미경을 들여다보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는 종종 현미경으로 냉 검사를 하여 진단을 하곤 했다. 이때 카메라가 사용되는데 현미경으로 본 영상을 모니터를 통해 환자들께 보여주기 위하여 현미경에 부착하여 쓸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 냉검사의 염증 세포나 움직이는 냉벌래, 혹은 칸디다 균을 직접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면 치료 순응도가 훨씬 높다. 치료 순응도란 어떤 치료를 의사가 권했을 때 환자가 잘 따라서 치료를 받는 정도를 말한다. 치료 순응도가 높아야 치료 효과가 높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현미경에 쓰이는 카메라는 화질은 별로지만 비용이 상당히 비싼 편이다.

현미경에 쓰이던 아날로그 카메라는 요즘은 디지털카메라로 바뀌어서 해상도가 훨씬 좋아졌다. 물론 가격은 더 많이 비싸졌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 카메라가 달린 현미경을 가지고 있다. 현미경 같은 의료 장비에 이어서 일반인이 사용하는 카메라도 디지털로 된 장비가  나오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관심이 많던 나는 디지털카메라가 부러웠지만 수백만 원도 넘는 고가품이라 선뜻 욕심을 내기 어려웠다. 몇 년이 지나니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가격이 내려갔다. 내가 본격적으로 카메라 장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아마 개원하고 몇 년 정도 지난 때일 것이다. 그때도 디지털카메라는 컴퓨터와 더불어 아주 비쌌지만  거금을 들여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기쁜 날이라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팠던 날로서 기억하고 있다.  

대기하는 진통 산모가 없어 한가한 어느 여름 저녁이었다. 낮에 퇴원한 산모가 낸 입원비와 외래의 현금 수입으로 들어온 돈을 모두 편지 봉투에 담아서  남대문 카메라 상가에 갔다. 당시 내 마음에 든 카메라는 리코라는 회사의 제품으로 100만 화소였다. 1000만 화소도 넘쳐나는 지금 보면  화질이 엉망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고급 기종이었다. 당시 돈으로 80만 원인가 주고 샀던 기억이 난다. 아내는 그때는 병원의 접수일도 보고 수납도 챙기고 출산 산모의 수술 때는 손이 바쁘면 수술도 돕기도 했다. 따라서 모든 지출은 아내가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그날도 아내가 편지 봉투에 여유 있게 100만 원쯤의 돈을 가지고 갔었다. 나는 카메라를 고르고 아내에게 계산을 맡기고 나가려 하는데 아내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뭐해? 돈 내. 이걸로 사기로 했어."
"......"
"이거 산다니까."
"......"

아내의 반응이 없어 돌아보니 아내가 선채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다른 사람도 있는데 눈물이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정은 나중에 들어 보기로 하고 아내를 채근했다.

"왜 그래? 창피하게. 빨리 내고 가자."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빨리 찍어 보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급했다. 아내는 잠시 그렇게 서 있더니 나에게 봉투를 던지듯이 주고는 나가 버렸다. 할 수 없이 내가 카메라 값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왔다. 내가 비싼 것을 사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화가 났지만 참기로 했다. 평소에도 아내는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해서 백화점에도 잘 가지 않았지만 가도 누워 있는 옷만 사고 서 있는 옷은 사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의 말로는 서 있는 옷은 매장에 폼나게 걸려 있는 옷들로 대체로 비싼 옷이고 누워 있는 옷은 기획 상품으로 가격이 저렴한 것들이었다. 자기도 언제 서있는 옷 한번 입어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서 있는 옷을 사줄 형편은 못되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 준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사라고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왜 거기서 그렇게 사람 무안하게 그랬냐고 하면서 내가 화를 내니 아내는 그냥 눈물이 나서 그랬다고 한다. 내가 비싼 물건 사는 게 못 마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날 분만으로 잠도 못 자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힘들게  고생해서 번 돈을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한 순간에  허망하게  써 버리는 것이 너무 속상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내의 눈에는 비싼 디지털카메라도 그저 플라스틱 장난감이거나 아내의 말마따나 예쁜 쓰레기로 보였을 것이다. 아내도 남편이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도 찍고 하기를 바라서 간 것이었는데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것이다. 무안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내게 말했던 것 같은데 오래되어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그때는 그렇게 여리디 여린 감성을 가진 아내였는데 종 변환이 된 건지 능력이 없는 남편과 살다 보니 변한 것인지 지금은 어지간한 일에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짠한 드라마를 보고 가슴 먹먹해하곤 한다.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소녀 같은 아내가 그립다.

지금도 나는 카메라와 항상 가까이 지낸다.  퇴원하는 날, 아기와 산모, 남편 등 가족을 함께 찍어서 병원 홈페이지에 올려 드린다. 병원 홈페이지는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글도 새 글도 거의 없고 안부 인사를 나누는 토막글도 이용하는 분들이 드물지만 아기 사진 메뉴란은 조회수가 꽤 높다. 아마 출산 산모 가족 말고도 다른 분들도 많이 보는 모양이다. 유튜브에서 실패하지 않는 주제가 아기와 동물, 그리고 먹방이라고 하는데 그것들이 아마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대상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진통하고 출산하는 모습도 한 20분 정도의 길이의 동영상으로 퇴원하기 전날 USB에 담아 드리고 있다.  이 영상은 카메라로 찍을 때도 있지만 휴대폰도 성능이 좋아서 거의 대부분 휴대폰으로 찍는다.  원본 출산 영상은 USB에 담아 드리면 따로 보관하지 않고 폐기하기 때문에 퇴원하기 전에 잘 찍혔는지를 여쭈어 본다. 어떤 분들은 잘 보인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시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무서워서 아직 못 봤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지 싶어 열심히 저장해서 드린다. 잘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아이가 속을 썩이면 약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힘들게 자신을 낳았다는 것을 알면 아이도  비뚤어지려던 순간에 한 번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살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 때 출산 영상을 보면 이렇게 힘들던 때도 잘 이겨냈는데 무언들 못 이겨낼까 하는 자신감이 생길 수도 있다.  

카메라는 지금은 이렇게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저장할 목적으로 쓰이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은판이 개발되기 전이라 기억과 기념의 수단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초창기의 카메라는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렀는데 미술가들이  초상화나 풍경을 그리는데 도움을 주는 보조 도구로  사용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영상을 보고 화폭에 그대로 옮겨 그리면  구도나 비율을 실제와 큰 차이 없이 그릴 수 있다. 후에 등장한 인상파의 거목 세잔이 그린  "빨간 조끼를 입은 소년"에서는 소년의 오른팔이 지나치게 길지만 그것은 화면의 구도를 고려해서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이다. 물론 고흐의 초기 작품 중에 하나인 "해변의 어부"처럼 아직 초보 화가인 탓에 비율과 모양이 이상한 작품도 있기는 하다. 지금도 화가들 중에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고 화폭에 옮겨 담기도 하는데 그 당시도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서 그린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진주 귀걸이 소녀"로 유명한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서 "물 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이라는 작품에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모습이 주전자에 비친 채로 그려져 있다. 그 점은 베르메르가 사실에 충실한 화가이기도 하지만 화가들도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한다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처음 나올 때는 그림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카메라는 그림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서로 영역이 다르고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자판이 나오면서 누군가는 종이와 연필은 없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살아남았고 TV가 나오면서 라디오는 더 이상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하였지만 아직도 일정한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아날로그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로 대체되어 거의 보기 어렵게 되었다. 남대문 카메라 시장에 가면 중고의  아날로그 카메라들이 초라하게 진열되어 기약 없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날로그 카메라가 사라지면서 아날로그 카메라에 쓰이는 필름도 사라졌다. 코닥이나 후지 필름 같은 한때 유명했던 회사들이 지금은 존재조차 희미하다. 대신 캐논이나 소니 혹은 라이카 등 디지털카메라 회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은 같은 기능을 하면서 편리하고 빠르고 싼 디지털카메라에게 밀려났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읽지 못하고 시대의 변화에서 동떨어지면 사라지질 수밖에 없다. 제일 먼저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회사는 코닥이지만 그 코닥 회사가 디지털에 밀려서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카메라 때문은 아니지만 미술 시장도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유명 화가의 작품은 비싸서 실물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렵고 현대 미술 작품들은 너무 어려워서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어렵다. 마르셀 뒤샹이 "샘"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한  화장실 변기가 어떻게 작품이 되는지  미술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뒤샹이 샘이라는 작품을 화가의 본명이 아닌 머트라는 가명으로 전시회에  출품한 이유도 나는 잘 모른다. 다만 내가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싶을 만큼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어떤 일을 할 때는 굳이 가명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무엇이 예술인가 하는 논쟁은 지금도 뜨겁다. 기존의 통념을 깨는 것, 다수의 생각과 다른 어떤 것이 나왔을 때는 그렇게 논쟁이 일어난다. 논쟁의 결과 뒤샹의 샘처럼  예술이라는 것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있다. 나는 여성이 출산을 한다는 것, 그것도 가급적 자연적 방법으로 출산을 한다는 것이 논쟁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때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논쟁의 영역에 있기보다 존중의 영역, 선망의 영역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참고로 뒤샹의 샘은 전시회가 끝난 후 누군가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다고 하여 지금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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