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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낙태죄를 없애는 문제로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몇년전 낙태 근절 운동에 나섰던 사람의 한명으로써 낙태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것은 어찌되었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낙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낙태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와 임신 중절이라는 용어는 거의 비슷한 의미지만 낙태는 태아를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그룹에서 주로 쓰고, 임신 중절은 부정적인 어감이 덜하다고 하여 낙태를 옹호하는 그룹에서 주로 쓴다. 나는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 정확히는 낙태라는 것을 근절하여 없애자는 낙태 근절 주의자이므로 낙태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겠다. 살인을  "타의에 의한 비가역적 인간 생명 중단 조치"라고 부른다고 해서 살인이 가진 끔찍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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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낙태 근절 운동에 열심일 때도 들었던 생각이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낙태 문제는 참 쉽지 않은 문제인 듯 싶다. 단순히 낙태를 찬성하면 진보주의자이거나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낙태를 반대하면 보수주의자이고 여성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것이고 따라서 지향하는 바도 다를 것이다. 다만 운동을 적극 펼치던 당시 여성단체와 설전을 벌이면서 내가 꾸준히 주장했던 것은 단 한가지이다.
낙태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개인과 단체와 사회와 국가가 함께 온 힘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낙태죄의 폐지나 낙태 약물의 허용 여부는 부차적인 것이고 그것이 사용이 지금 적절한가는 논의를 거쳐서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어떤 것이 낙태를 줄이거나 없애는데 있어 좋은 방법이냐는 하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현재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고민 중인 여성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현재 임신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낙태를 고민하게 될 엄청나게 더 많은 여성 측면에서의 고려는 거의 전무하다.

낙태죄는 살인죄와는 분명히 다르다. 태아는 아직 인간으로서의 법적으로 완전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않다. 생물학적으로도 태아는 일정 시기전까지는 모체의 도움없이 자발적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낙태가 살인과 같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낙태 시술은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과도 분명히 다르다. 얼마전 거리를 지나다 낙태를 옹호하는 여성 단체의 시위를 보았다. 태아는 세포일 뿐인데 세포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면 악성 종양도 세포이니 존중해 줄 것이냐고 주장을 하였다. 즉 태아는 세포이나 종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원하면 언제든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의학자의 입장에서 태아가 완전한 인간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세포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유전적으로 모체와 완전히 다르며 자라서 암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태아는 세포와 인간 사이의 어디쯤이거나 혹은 그 둘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것이다. 이 존재를 임신한 여성 혹은 남성 혹은 사회 또는 국가가 원치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가 문제이다. 한때 국가적 차원에서 한센병 임신부의 낙태와 단임 수술이 공공연히 행해진 때도 있고 인구 억제 정책으로 전 인구를 대상으로 낙태를 조장한 적도 있지만 모두 문제가 적지 않았다.

태아는 혹은 출생은 국가가 나서서 해라 말아라 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낙태 조장도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 저출산을 이유로 출산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고려해야 할 대상은 단지 셋이다. 태아, 임신 여성, 임신을 시킨 남성이다.  그 중 누구의 권리를 우선 반영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정답이 사실없다. 시대에 따라서도 바뀔 것이다. 지금도 여성 단체와 종교 단체간에 첨예하게 의견이 갈려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함께 관심을 두고 노력하자고 한 것은 낙태의 가능성이 있는 현재 비임신인 여성과 남성에게 초점을 맞추자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낙태가 죄이든 아니든 낙태를 하기 위해 일부러 임신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죄로 규정하든 아니든 법적으로 문제가 없든,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던, 받지 않던 낙태는 살면서 겪고 싶지 않은 사건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성 혹은 남성들이 낙태를 고민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에서 낙태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나은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처벌하는 것이 낙태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줄여줄 것이다. 여성 단체들에서는 반대로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법적 처벌이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살인죄를 처벌하는 것이나 안전벨트 미착용을 처벌하는 것 모두 그런 이유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안전 벨트를 매지 않았을 경우의 처벌은 벌금 얼마인 것에 비하여 낙태죄의 처벌은 그 이상 상당한 정도의 불이익이 여성에게 가해진다. 남성에게도 가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은데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살인의 경우 징역 몇년이라는 벌이 가해지지만 대체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살인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며 나도 언제 살인자의 피해자가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살인자가 될 가능성보다는 살인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한에서는 살인죄는 아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낙태의 경우 내가 낙태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 난 이미 태어났기 때문이다. 대신 낙태의 당사자가 될 수는 있다. 따라서 사회적 입장에서 보면 낙태의 경우 피해자를 태아의 입장에 두면 폐지가 마땅하다. 물론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겠지만. 낙태의 피해자를 여성에게 두면 어떻게 될까? 낙태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여성이라면 낙태를 하지 않거나 못하도록 혹은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낙태의 위험으로 여성 혹은 남성들이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1. 낙태가 가진 위험성을 정확히 알려 피해가도록 할 것--윤리 교육이나 성교육이나 피임교육이 될 것이다. 윤리를 강조할 지 피임을 강조할 지는 사회가 공감대를 모아 정하면 될 일이다.
2.  낙태 수술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어야 한다.--우리나라는 현재 지금은 불법임에도 낙태를 하기 어렵지 않은 나라에 속해있다. 종교국가인 동남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낙태가 일부 합법화된 미국보다도 낙태하기가 쉽다. 낙태하는 병원을 찾기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3.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사회적으로 비혼모들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하고 임신 출산으로 인한 여성들의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낳거나 육아하는 것이 힘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위의 모두가 중요하지만 특히 3번째 항목은 사회와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을 태아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  현재 태어나서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와서 왜 낙태죄의 폐지가 이슈가 된 것일까?
한마디로 낙태죄가 폐지되면 뭐가 바뀌는 것일까?
1. 법적인 처벌의 위험이 없다.
2. 경제적인 부담이 덜하다.
3. 도덕적 비난도 줄어들 것이다.

현재 1번 법적인 처벌은 거의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니 그걸 기대하여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2번은 낙태죄가 폐지되고 보험으로 수술을 받게 된다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다만 낙태하는 것까지 보험에서 지출하도록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미래에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내가 아닌 일이십년 뒤의 혜택을 위해서 나서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죄의 폐지로 얻고자 하는 일차적인 것은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이유일 것이다. 시대가 지나면 낙태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정도는 많이 덜해질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비난이 덜해지고 법적인 처벌의 위험이 없고 경제적 부담이 덜해져도 낙태가 여성에게 주는 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여성들이 낙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낙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했으면 좋겠다. 안전한 낙태를 하지 말고 아예 낙태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성윤리를 강화해서든 피임을 강화해서든 제도를 바꾸어서든 말이다. 사회가 국가가 혹은 어떤 단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든 자신의 생명과 건강의 일차적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낙태를 마음대로 하게 해 주기를 바라기보다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하기를 바란다. 낙태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올바른 낙태 정보와 피임 정보를 달라고 주장하기를 바란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낙태가 죄든 아니든, 낙태를 위해 수술을 받는 것이든 약을 먹는 일이든 여성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낙태를 피하기 위해 자신 스스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국가와 사회에도 그런 것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독약은 아무리 안전하게 복용한다 해도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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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 [2019-11-01 12:04]  시온맘 [2018-01-22 20:31]  satieeun [2018-01-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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