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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출산
작가: 장 뒤비페
소장: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

브룩 바스티안이라는 영국의 심리학자가 얼마 전  “행복의 반대편 (The other side of happiness)”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살면서 어느 정도의 고통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출산 시 무슨 방법으로든지 통증을 없애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현재의 산부인과 의료 경향에 대하여 답답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어 나와 있지는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번 읽어 보고 싶다. 대신 그 책에 대하여 BBC 사이언스 기자가 저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BBC 사이언스 잡지의 글 일부를 옮겨 본다.  

기자 질문: 고통이 주는 이점은 무엇인가?
저자 답변: 육체적 이점이 있다. 고통은 우리에게 뜨거운 난로에서 손을 떼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심리적 이점이 더 많다. 예를 들면 사회의 결합에 도움을 준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 자동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손을 내민다.  2011년에 이 주제를 연구할 때 브리즈번에 엄청난 홍수가 났는데 그때도 복구 작업을 도우려고 55,000명이 자원했다.

기자 질문: 고통이 우리를 너그럽게 만든다는 뜻인가?
저자 답변: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2014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12개월 전에 발표된 논문이 한 편이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방금 얼음물에 손을 담갔던 사람은 자선 단체에 돈을 더 기부할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고통을 느끼는 과정에서 나눔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얼음물 대신 색종이를 끼얹는 행사였다면 그처럼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살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힘든 일에 잘 대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자 질문: 살면서 어느 정도의 고통은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책의 주제인가?
저자 답변: 고통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부정적인 경험을 무조건 약물로 치료하거나 퇴치하는 대신에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고통은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인 것이 아니며 보람찬 삶을 살기 위한 비결이 고통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난생이 아닌 모든 동물은 새끼를 낳는다. 따라서 모든 인간 아니 임신부는 출산의 숙명을 진다. 따라서 출산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동일하게 아주 오래되었다.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던 인간이 돌을 깨거나 갈아서 도끼를 손도끼를 만들었고, 돌도끼는 어느 날부터 쇠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단단했지만 무거웠던 쇠는 지금은 플라스틱이나 탄소에 그 역할을 내주고 있다.
이렇듯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도록 변화가 되었다. 머리는 커졌고 턱은 작아졌다. 손은 커지고 골반은 좁아졌다. 그러나 변화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중 하나는 출산 시의 통증이다. 출산 시의 통증이 여전한 것은 좁아진 골반으로 머리가 커진 태아가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몸에는 통증을 없애기 위해 자연적인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있다. 극심한 통증에서는 엔도르핀이 나와서 통증을 줄여준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느낀 사람이 많겠지만 달리기를 어느 단계에 올라 고통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이 호르몬이 나와 통증이 없어지면서 행복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 온다. 소위 러너스 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출산 때의 통증도 마라톤 때의 고통에 비하여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러너스 하이처럼 고통이 없어지는 순간은 출산 진통 중에는 오지 않는다.

출산 과정도 진화를 거쳐 변화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기간을 거쳤다.  지금도 약간은 그런 점이 없지 않지만 아마도 오래전에도 출산 진통을 강하게 느끼는 산모와 덜 느끼는 산모가 있었을 것이다. 출산 진통을 덜 느끼는 산모가 생존에 더 유리하고, 사회의 유지에 더 도움이 되고 2세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점점 더 출산 진통이 없는 쪽의 산모가 생존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살면서 거의 겪어 보지 못한 심한 진통을 출산하면서 겪는 산모들뿐이다. 자연이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출산 진통이 인류의 생존과 사회의 유지와 2세의 양육에, 그리고 나아가 산모 자신의 자존감의 상승에 더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있어 통증이건 다른 것이건 살아남는 데 있어 불리한 것은 없어지게 된다. 심지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한때는 개복할 기회만 있으면 제거하던 맹장조차 현재는 면역 계통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래전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 어느 병원에 당직의사로 아르바이트를 나갔을 때 일이다. 10시간가량 진통하던 초산모가 출산이 임박하여 분만대에 누웠다. 아기 머리가  appearing(질구 끝까지 아기 머리가 내려와서 힘을 주면 머리가 조금씩 보이는 상태) 단계를 지나서 거의 crowning(힘을 주면 아기 머리가 질 입구에서 빠져나오기 직전으로 질이 왕관을 쓴 형상처럼 되어 걸려 있는 상태) 단계가 되어 회음부 절개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출산을 돕던 간호사가  무통 분만을 할 것인지를 산모께 급하게 질문을 했다. 무통 분만이란 진통 단계에서 통증을 줄여주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말하는데  현재는 산모의 허리에 바늘을 꽂아 마취제를 투여하는 경막외 마취법이 주로 쓰인다. 그러나 당시는 경막외 마취법의 무통 분만은 쓰이지 않던 때였다. 대신 회음부 절개할 때 수면 마취제를 투여하여 잠시 수면 상태에 들게 하는 것을 그때는 무통 마취라고 말하는 병원들이 있었다. 사실 크라우닝 상태에서는 곧 아기가 나오니까 자궁 수축으로 인한 심한 통증은 곧 없어질 상황이다. 또한 회음부 절개 시에는 국소 마취를 하기 때문에 진통을 할 때처럼 많이 아프지 않다. 다만 산모 입장에서는 현재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니까 그렇게 질문을 하면 무통 마취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간호사: "무통 분만하시겠어요?"
산모:  (진통으로 신음을 하면서 가까스로 대답하며) "얼마인데요?"
간호사: "5만 원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산모: (역시 신음 소리 내며) "아악. 바깥에 있는 남편한테 아악 물어봐 주세요."
간호사: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분만실 밖으로 나가면서) "과장님 잠깐 물어보고 올게요."
간호사: (남편에게 묻는 소리가 멀리서 들림) "무통 분만을 하실지 남편분께 물어보라고 하는데 무통 분만하실 거예요?"
남편: "얼마인데요?"
간호사: "5만 원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남편: "(잠시 생각하는지 대답이 없다가) "다른 분들은 보통 어떻게 하나요?"
간호사: "대부분 많이 하세요. 빨리 말씀해 주세요."
남편: "그럼 아내한테 물어봐서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세요."
간호사: "예 알았어요."
간호사: (다시 들어와서는) "남편분 말로는 산모 분 원하시는 대로 하라고 하세요. 무통 하시겠어요?"
산모: (신음 소리의 강도는 점점 세지며) "효과는 아악 좋나요? 아악"
간호사: "통증 모르고 자는 거예요."
산모: "아아악. 그럼 해주세요."

마취제 투여 후 아기는 바로 만출되었고 산모는 수면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회음부를 봉합하는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수면 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  당시 옆에서 그 상황을 보면서 내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전공의 수련 중에 아르바이트로 당직을 서기 위해 간 것이라 분만을 돕는 외 나머지는 권한이 없었다. 당시에도 그랬고 기억을 떠올려보는 지금도 여러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아픈 출산의 순간에 조차 비용을 걱정하고 남편에게 물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출산 산모의 입장이 많이 나아져서 그렇게 묻는 산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은 무통 분만을 하는 병원에서는 무통 마취를 할지 말지를 출산 순간이 아니라 미리 신청을 해서 파악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아마 그 당시 병원은 미리 물어보면 안 하는 분들이 많아서 아픈 순간에 묻는 것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또한 진통을 하면서 이미 고통은 고통대로 다 겪었고 이젠 회음부 절개와 봉합만 남게 되는 상황인데 그때의 통증이야 산통에 비하면 아주 작아서 진통이랄 것도 없는데 무슨 무통 시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내 판단일 뿐이다.

나는 출산을 해 본 적이 없는 남자 의사라서 진통과 출산에 따르는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진통 산모를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어렴풋이나마 대충 어떨 것이다 하고 짐작은 한다. 아마도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보다 몇 배 또는 몇 백배 더 아플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만났던 그 산모처럼 돈에 대한 고민으로 그 아픈 순간에도 밖에 있는 남편에게 물어야 하는 상황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칙에 맞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무통 마취해서 아내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 남편이 말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모습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그것이 무통 마취든 촉진제든 의료적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자연스러운 출산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의사로서는 얼굴이 좀 부끄럽고 진통하는 산모에 대하여는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때 산모가 설사 무통 마취를 하지 않아서 진통이나 회음부 봉합 시에 통증을 심하게 느꼈다고 해도 그 통증이 산모에게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을 얻는 과정에서 잠시 동반되는 고통이  트라우마든 다른 것이든 나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장 뒤뷔페는 프랑스의 화가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피카소를 잇는 현대 미술의 대가로 여겨지는 화가다. 와인 사업을 하다 41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서 40년 동안 5000 여점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그림은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허물어 트린다. 대신 거칠 것이 없고 원시적인 모습으로 대상을 표현했다. 그래서 그를 아르 브뤼의 화가로 부른다. 브뤼는 프랑스어로 날 것이라는 의미로 아르 브뤼는 우리말로는 원생 미술이라고 번역해서 쓴다. 그는 전통적 미술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고도로 훈련된 전문 화가들의 그림보다 훨씬 창조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날 것의 거친 그림이라기보다는 때 묻지 않은 그림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듯싶다.
물론 그의 그림들은 현대 미술답게 우리에게 낯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부감이 드는 낯섦은 아니다. 대상이 아이들인 그림이 많기도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비슷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이나 눈 코 입은 비례도 맞지 않고  세밀한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아이들과 같은 그림은 장 미셀 바스키아도 비슷했지만 바스키아의 그림이 좀 무서운 분위기인 것에 반하여 뒤뷔페의 그림은 실소가 머금어진다.  그의 그림에는 벌거벗은 여자도 많이 나오는데 역시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에곤 실레처럼 기괴한 모습도 아니다.  여기 올린 그림 출산도 전혀 무섭거나 끔찍해 보이지 않는다. 산모는 누워서 끙하고 힘을 주니 아기가 나온다. 그런데 옆에선 두 사람은 의사와 간호사가 아닐까 싶은데 서있는 사람임에도 산모처럼 누워 있는 형태로 그렸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석할 테니 말이다. 말년에는 다소 그림이 어두워져서  의미 없는 선들로 연결된 그림들이 많아졌다. 실존주의에 심취한 탓일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도 삶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주의이니 장식과 꾸밈이 없는 그림을 추구한 그가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삶은 낭만주의 시대의 그림들처럼 항상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허무주의 시대의 그림처럼 언제나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삶은 종종 우습고 가끔 슬프며 어쩌다 아플 때도 있다. 뒤뷔페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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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ts [2020-06-07 00:25]  peterpan84 [2020-04-30 08:26]  daphne [2020-04-2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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