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이가 태어나고 어느덧 100일이 된 오늘에야 출산일기를 올린다.
어떻게 지나간 100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태명처럼 튼튼하게 잘
자라준 튼튼이에게 감사할 뿐이다.

산부인과를 진오비로 선택하게 된 것은 오로지 아내의 의지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회사선배의 추천으로 진오비를 알게 되었다는 아내는
심원장님의 출산에 대한 철학에 깊이 동의했고 진오비를 선택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때는 바야흐로 약 34주쯤이었던 2월 중순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는 어떤 모임에 갔다가 먼 거리를 걸어서 집에 왔는데
그날 밤 배가 심상치 않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보니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쇼파에 누워만 있었는데
다소 규칙적인 자궁수축이 있다고 했다.

밤 9시반경부터 수축의 간격을 체크해보니
6~7분 간격으로 수축이 느껴졌고, 바로 진오비에 전화를 했다.

심원장님은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말씀하셨고
별일 아니겠지 하며 병원으로 가서 태동검사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세브란스로 전원이 되었고,
그날 밤 아내는 세브란스 가족분만실에서 총 3번의 태동검사를 하였다.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으며 하루, 이틀, 사흘째 되던날
다행히 수축이 가라앉았고 퇴원을 했다.
대신 세브란스에서는 수축이 또 시작되면 이제는 분만을 해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집에서 시작된 와식 생활
튼튼이가 생각보다 빨리 나올 수 있겠다라고 걱정하며,
매일매일을 기다렸던 것 같다.
아내는 이 시점 넷플릭스로 ‘사랑의 불시착’을 섭렵했고(?)
리정혁동무에 푹 빠져..자꾸 북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40주가 될 때까지 튼튼이는 소식이 없었다. ㅎㅎ

그렇게 40주 하고도 3일이 된 3월 23일 월요일
나는 출근을 했고, 출근과 동시에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오빠 양수가 좀 흐른거 같아”

걱정을 하며 진오비에서 만난 아내와 심원장님
원장님은 양수 부분 파열로 진단해주셨고, 일단은 하루 기다려보고
유도분만을 할지 결정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다시 진오비를 찾았지만 튼튼이는 나올 기미가 없었다.
원장님은 다시 하루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진통이 없으면
내일 아침엔 유도분만을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 밤
드디어 기다리던 진통이 시작되었다.
밤 8시 반 경부터 집에서 시작된 진통은
점점 간격이 빨라졌고,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새벽 1시경 우리는 진오비에 도착했다.

원장님 내진 결과 2~3센치 정도 자궁문이 열렸으니
아침에는 분만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로부터 시작된 진통의 시간
생각보다 아내는 진통을 잘 버텼고(?) 무통 주사가 아닌 진통제로
그날 새벽을 꼬박 버텼다.
평소 같이 유투브를 통해 본 호흡법은 꽤나 유용했다

그리고 오전 6시 40분
자궁문이 5센치 정도 열렸다고 하셨고,
오전 7시 10분 자궁문이 7센치 열리면서 점점 출산이 임박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8시경 우리는 분만실로 이동했다.
심원장님과 분만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왔다갔다하시면서 상황을 계속 체크했고,
이미 자궁문은 완전히 열린 상태..

이제 분만이 시작될 순간 이었다.
아내는 나와 원장님, 간호사 선생님들과 합을 맞춰 힘을 주기 시작했는데
이미 장시간의 진통으로 힘이 많이 빠진 상태여서인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힘을 줬을까..
결국 흡입기를 사용하기로 하고 다시 한번 흡입기의 도움을 받아 힘을 주자
드디어 오전 9시 20분 3.4kg의 튼튼이가 우리앞에 마주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분만은 물론이고 진통의 순간까지 남편이 옆에 있지 못하는
병원들이 있지만, 나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주변 친구들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어땠어 ? 울었어 ?”라고 물어보지만
솔직히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만실에서 분만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은 마치 전쟁터 같았고,
여기저기 흐트러진 피와 이미 지친 아내의 모습에 튼튼이가 태어났다는
감격보다는 전쟁이 끝났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작된 2박 3일간의 모자동실
3일 후에는 아내와 튼튼이는 조리원으로 나는 집으로 생이별의 2주를 겪어야 했기에
이 3일간의 모자동실의 시간은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튼튼이의 반응하나하나, 울음하나하나에 간호사 선생님을
괴롭히며 어찌 어찌 2박 3일을 버틴 것 같다.

하필 우리가 출산한 날은 총 3건의 분만이 있어서
원장님도, 간호사 선생님들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셨던 것 같다.
가끔 무언가 필요하거나 조언을 구하러 간호사실을 방문해도
선생님이 안 계실 때도 있었지만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속싸개 하는법, 기저귀 가는법, 아이의 울음에 따른 대처요령, 트림시키는 방법 등등

많은 것들을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알려주셨다.
아마 아무것도 모르고 바로 조리원으로 갔다면
아내는 조리원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했겠지만
이런 코로나 시국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빠가 되었을 것 같다

이 2박3일의 모자동실의 경험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지금도 우리 가족 세명이 이렇게까지 연속적으로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적이 없었던 듯 하니 말이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예비 부모님들께서는
조금 힘들겠지만 진오비에서의 모자동실의 시간들을 오롯이 즐기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100일간의 육아를 겪으면서
여성이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출산보다 몇 배는 어렵고 힘든 모유수유를 꿋꿋이 이어가고 있는
아내와 우리 튼튼이에게 너무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진오비 병원에 대한 생각들
무엇보다 진오비 산부인과는 “착한”병원이다.
주변 친구들의 여러 출산을 지켜보면서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진오비 산부인과에서의 출산은 비용적인 부담은 거의 없었다.
또한, 심원장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보면서 우선 산모와 뱃속에 있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시는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다소 무뚝뚝한 심원장님이시지만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산모와 아이를 배려하고 항상 마음으로 생각해주신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장님,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 !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우리 튼튼이는 자연분만으로 이렇게 튼튼하게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조기 수축 등으로 제왕절개를 하지 않았을까요 ?
끝까지 저희 아내와 튼튼이를 믿고 기다려주신 원장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정말 무한 감사드리고, 내년에 꼭 돌떡 들고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댓글

맞아요! 모자동실 정말 소중하고 반짝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원장님과 간호사님들께 얼마나 감사한지 소중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등록시간 2020-07-1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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