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을 때 홈페이지에 올라온 출산후기를 많이 읽고, 나도 출산하면 꼭 올려야지 했는데 아기 키우면서 글쓰기가 쉽지 않아 미루다 결국 아기 백일에 올리게 되었어요.
더 적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기억력이 좋지 않고 글솜씨가 없어 생생하게 적지 못해서 아쉬워요..
남몰래 진오비에 정이 많이 들었는데 더 이상 갈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유튜브에 올려주시는 병원 근황을 통해 달래고 있어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의 백일까지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과 간호사선생님들 모두 건강하세요!



----------

*
임신테스트기에서 처음 두 줄이 나왔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낭성이고 배란이 잘 되지 않아 생리도 불규칙적이라 임신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난임병원에 가야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스레 임신이 빨리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서 멀지 않은 출산병원을 알아보던 중,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진오비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그 안에 있는 원장님의 뚜렷하고 위트있는 철학이 담긴 여러 글과 산모들의 흔적에 홀린듯 매료되어 출산병원으로 진오비산부인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자연주의 출산이 뭔지도 몰랐을 때였다.


**
“이 시기에는 아기집이 보여야 하는데 보이질 않아요. 이 경우에는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인터넷에서 보고 갔던 여러 사람들의 말마따나 원장님의 첫 인상은 건조했다. 마지막 생리일자 기준 7주차에 병원을 방문했는데, 아직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경우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면서 착상이 지연되었거나 화학적 유산 또는 자궁외 임신 가능성을 얘기해주셨다.
사실은 내심 ‘화학적 유산이나 자궁외 임신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보통은 착상 지연일 가능성이 높아요’라는 위안의 말을 기대했지만, 원장님은 세 가지 중 어느 가능성에도 무게를 더 두지 않았다. 그리고 2주 뒤에 다시 내원하라고 하셨다.

2주간의 시간은 정말로 천천히 흘렀다. 직장인이 되고는 매일매일의 삶이 너무 똑같아서 (비록 삶 자체는 지루하지만) 날짜는 빨리 갔는데,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커서인지 하루하루가 낙타처럼 느릿느릿 흘러갔다. 그리고 2주 뒤, 다행스레 작지만 힘차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임신을 확인하게 되면 원장님이 손수 제작한 산모수첩을 받을 수 있는데, 처음 내원할때 바로 받을수 없어서였을까.  왜인지 모르게 상을 받는 것처럼 설렜다.
산모수첩 안에는 임신기간 중 알아야 할 많은 정보들과 산모를 위해 필요한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수첩이 마치 아기인마냥 너무 소중해서 임신기간 내내 깨끗하게 아끼고 들여다보았다(나중에 유튜브를 통해 알게되었는데 원장님은 수첩을 지저분하게 쓰는 산모가 좋다고 하셨다..).
매 진료마다 개성있는 손글씨로 써주신 아기의 발달정보와 손수 잘라서 붙여주시는 초음파 사진이 담긴 산모수첩은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수첩이라, 고이고이 간직해서 아기에게 그대로 주고 싶다.

진오비의 진료 시스템은 매우 사용자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진료내용이 녹음된 초음파 영상과 사진을 드롭박스를 통해서 즉각적으로 공유해주셔서 아기가 보고싶을 때마다 진료영상을 언제든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남편과 나는 영상을 하도 많이 봐서 나중에 원장님 말투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ㅋㅋ) 그리고 진료의 끝에는 항상 궁금한게 있는지 물어보신다. 왜인지 모르게 괜히 긴장해서 많이 물어보진 못했지만..


****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병원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직장인이 되고서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는데, 임신하고 나서는 금요일도 주말도 아닌 목요일을 가장 기다리게 되었다. 목요일이 바로 임신 주수가 바뀌는 요일로, 진오비에 가서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에 한번 배가 크게 아픈 적이 있었다. 17주 정도 였던것 같은데, 출근길에 만원버스에서 장시간 서서 가면서 너무 힘들었는지 식은땀이 나고 아랫배가 너무 아팠다. 혹시 아기가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과 통증이 겹쳐, 회사 앞에 내리자마자 엉엉 울었다. 그리고 병원에 전화해서 곧장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날 진료에서 만난 원장님은 평소의 무뚝뚝한 모습과는 묘하게 조금 달랐다. 무뚝뚝함 속에 산모와 아기를 걱정해주시는 원장님의 다정한 진심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기는 무사히 잘 있었다. 절제된 말과 행동 속에서도 사람의 진심은 통하기 마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임신 전보다 크게 많이 먹지도 않았고 운동도 매주 열심히 했는데 이상하게도 체중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아기의 체중도 나를 따라서 같이 쑥쑥 늘었다. 원장님은 순산체조를 매번 강조하셨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변호하고 싶었으나 차마 진료시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통 초산이면 아기가 늦게 나온다고 하는데, 예정일을 넘기면 아기가 너무 클까봐 조바심이 났다. 인터넷에서 수없이 찾아본 유도분만의 실패후기도 공포스러워, 성격이 급한 나는 38주가 되자마자 하루에 2시간 걷고 짐볼을 타고 막달요가를 하며 아기가 빨리 나오길 기다렸다.

아기도 내 마음을 알았을까, 치킨을 시키고 기다리며 짐볼을 타던 저녁 8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흘러나온 것 같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양수인건가 걱정되어 찾아보다 늦은 밤 9시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은 상세히 증상을 물어보시곤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방문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밤에 괜찮은지 한 차례 더 전화를 주셨다. 분명 첫 통화에서 다 말씀드렸는데.. 늦은 밤에도 휴식할 시간을 쪼개어 한번 더 챙겨주시는 정성이 참 감사했다.

******
이번에는 진짜로 양수가 터진 것 같았다. 밤 11시부터 조금씩 배가 아파왔다. 진오비 유튜브에서 새벽에는 삼신할매도 파업했으면 좋겠다는 원장님의 바람을 듣고 새벽에는 진통이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진통은 참을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새벽 3시 반에 병원에 전화하고 출발했다.

자궁이 3cm밖에 열리지 않았는데도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너무 괴로울 때는 간호사 선생님께 두세차례 정도 진통주사(?)를 맞을수 있는지 애원하듯이 여쭤봤는데ㅜㅜ 타이밍이 안 맞아서 그런지 결국 맞을수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다섯시간 반의 진통 끝에 분만실로 이동하게 되었다.

출산은 진통보다 훨씬 더 괴로웠다. 경험해보니 순산을 위해서는 호흡과 힘주기가 조화롭게 잘 되어야 하는것 같은데, 나는 힘을 잘 주지 못하는 산모였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힘이 딸려서 끝까지 아기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두세번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그 때 원장님이 흡입기 사용을 말씀하시면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이번에 실패하면 제왕절개 해야되는데 진통한게 너무 아깝잖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맞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쥐어짜냈고 따끈한 느낌이 들더니 아기가 나왔다. 나중에 보니 힘을 얼굴에 준 탓에 얼굴 실핏줄이 다 터졌다. 힘을 잘 못 주었는데도 원장님의 노련한 경험 덕에 자연분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갓 태어난 아기를 초록색 천에 감싸 가슴 위에 올려주셨는데.. 그때 처음 보고 들은 아기의 얼굴과 울음소리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그리고 2박 3일의 모자동실이 시작되었다.
몸도 다 회복되지 않고 초보 엄마아빠라 모든게 무서웠지만.. 아기의 첫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첫 식사인 설탕물 한 모금, 첫 트림, 처음 가는 기저귀.

몸은 힘들었지만 온전히 세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나중에 조리원에 들어갔을 때에는 진오비에서 보낸 3일이 그립고 이산가족이 된 것 같아 남편과 나 모두 전화통화 하면서 울었다ㅜㅜ).

입원 중 원장님은 수시로 병실에 들르셔서 산모와 아기의 상태가 괜찮은지 체크해주셨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시도해볼 것을 계속 권장해주셨는데, 사실 아무 생각 없다가 출산 이틀 차에 원장님의 계속된 권유를 듣고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직수를 시도해보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텐데,  작고 작은 아기가 힘껏 크게 입을 벌리고 고개를 흔들며 젖을 찾고 무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 첫 순간에 매료되어 모유수유를 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비슷한 시기에 큰 병원에서 출산한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코로나 때문에 모자동실도 안되고 직접수유도 불가했다고 한다. 만약 내가 진오비가 아니고 큰 병원에서 출산했다면 과연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을까? 조리원에서는 산모의 회복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수유콜을 받지 않고 유축해서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진통주사 하나 없이 분만한 덕일까, 회복도 빨랐던 것 같다. 낳을 때는 정말 자연주의 출산을 택한 나 자신을 원망했지만 오히려 낳고 나서 좋은 점이 많았다.

간호사 선생님들께도 정말 많이 감사드린다. 어흥미호샘(ㅋㅋ)이 올바른 직수자세를 알려주셔서 조리원에서 열심히 연습해서 아기가 백일이 된 지금까지도 목과 어깨에 크게 불편함 없이 수유하고 있다.


조그마한 방에서 남편과 아기와 나, 오롯이 함께 보낸 3일의 시간. 소박하고 맛있었던 병원의 밥, 정말 따뜻한 속마음을 가지고 계신 원장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우리 가족의 보물인 아기를 건강하게 만나게 해주시고, 280일의 긴 기간 동안 부부에게 설렘과 행복을 안겨주신 진오비 의료진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런 좋은 병원이 오래도록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7642BEE4-D05B-42EC-AF62-0F7379CB6AFB.jpeg (2.22 MB, 다운수: 86)

7642BEE4-D05B-42EC-AF62-0F7379CB6AFB.jpeg

댓글

후기보면서 도움이 많이 될듯해요! 운동의 고민들이 저랑 비슷하시네요 ㅠㅠ 저도 10월이 예정인데 이제 순산을 위해 열심히 운동해야겠어요~ 축하드리고 아가가 너무 이뻐요~! 이쁘게 잘 키우세요~!!  등록시간 2021-07-08 06:39
출산후기보면서 감동했어요ㅠ 이쁜아가 건강하게 잘 키우시길바랍니다  등록시간 2021-06-19 14:52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suny6616 [2021-07-08 06:35]  용자외할매 [2021-06-19 14:49]  심상덕 [2021-06-18 20:03]  쪼이어멍 [2021-06-18 19:49]  

본 글은 아래 보관함에서 추천하였습니다.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