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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출산후기가 아니다. ]


연애하던 시절부터 아내는 아이를 여럿 갖고 싶어했다. 구체적인 숫자로는 3. 형제자매가 그 정도는 있어야 서로 챙겨주면서 외롭지 않게 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그러지, 정도로 대답하곤 했다. (참고로 아내는 세자매 중 둘째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첫 아이가 생겼다. 우리는 아내의 회사 근처 산부인과에서 첫 검진을 받았다. 회현역 부근에 위치한 모 산부인과. 그곳은 분명 산부인과였지만 미용 목적의 시술이 많이 시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강남의 성형외과처럼 한껏 세련된 병원 인테리어와 간판, 각종 외국어(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된 안내판, 질주름 수술 홍보 포스터 등등.. 우리는 아기집이 그려진 첫 초음파 사진을 얌전히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에 기쁜 소식을 알리기에 앞서, 우리는 앞으로 다닐 산부인과를 결정해야 했다. 검색엔진을 총동원하던 아내는 진오비 산부인과가 본인에게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이랬다.

1) 집에서 가깝다. (차로 15~20분 거리)
2)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 (손쉽게 수술을 권유하지 않는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본인이기에, 본인도 자연분만을 시도해보고 싶다고 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무섭다면서. (장모님은 세자매를 모두 자연분만으로 낳으셨다.)

사실 아내는 겁이 많은 편이다. 불과 2주 전쯤 아이를 순산했지만, 남편인 나도, 아내 본인도 그 일을 어떻게 겁 없이 해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출산이 임박했을 때, 아내는 내게 한 가지를 당부하듯이 말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께 꼭 말해줘. 산모가 겁이 많으니 따뜻하게 말해달라고. 나 무서워.”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그 말을 따로 그들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1) 의료진은 아내를 충분히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2) 촉진제를 맞은 아내는 쏟아지는 고통에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어쨌건 겁이 많은 아내는 진오비 산부인과를 선택했고, 지금 기억으로는 임신 8주차부터 이곳에서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진료를 받으면서 크게 걱정할만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남편의 입장이다. 아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가령 임신 16주차 임산부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증상이 본인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불안해했고, 걱정했다. 그 증상이 임신 15주째나 17주째에 생길 수도 있지 않느냐는 식의 말은 아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진료와 진료 사이의 기간이 더 짧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아이와 산모의 상태를 더 자주 알 수 있다면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오비가 아내 본인의 선택이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진오비를 선택해서 겪었던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시점이 되자 나와 아내는 성별이 궁금해졌다. 애초에 진오비를 선택했으므로, ‘32주에 알면 그만이라는 마음이었지만, 주변에서 성별을 물어볼 때마다 계속 같은 대답을 하는 것에 우리도 조금 지쳤던 모양이다.

, 성별은 아직 몰라. 우리가 다니는 산부인과가 조금 엄격해서..”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성별을 알아내자는 작당을 했다. 25주 진료 때 있던 초음파 검사. 그날 나의 눈은 초음파로 비춰진 아이의 두 다리 사이에 집중됐다.

딸 같애. 작대기가 없어.”
진짜?”

아내는 자신은 잘 보지 못했다며 되물었다. 확신에 가득 찬 나는 아내에게 녹화된 초음파 영상을 다시 보라고 말했다. 사실 의학적 근거는 없었다. 50%의 확률에 배팅했을 뿐이다. 아내의 불안감도 줄일 겸. (운 좋게도 우리 아이는 32주에 여아로 판명 받는다.)

진오비는 성별을 알고 싶었던 수많은 산모가 거쳐간 곳이다. 1,000명의 산모가 있다면 그중 성별을 최대한 일찍 알고 싶은 산모가 대략 999명쯤 될 것이다. 그렇다면 눈치싸움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진오비의 초음파실에서는 ‘32주 전에 알고 싶은산모(와 가족)‘32주에 알려 주려는의사 사이의 눈치싸움이 피터지게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단 하나다. ‘입은 닫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볼 것

위에 적지 않았지만, 아내가 진오비를 선택할 때 머뭇거렸던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원장님이 무뚝뚝하다는 것’. 진오비 홈페이지와 맘카페의 수많은 출산후기를 비교분석하던 아내는 그 무뚝뚝함을 살갑지 못함으로 해석하는 결론을 도출했고, 그제서야 머뭇거림을 멈추고 진오비로 향하는 첫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원장님의 무뚝뚝함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모습으로 주로 드러났는데, 속사포 같은 설명을 하시면서도 산모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이 내겐 카리스마 있어 보였지만 역시 아내에겐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원장님이 아내의 눈을 똑똑히 바라본 때가 있었다. 내 기억엔 딱 한번 있었는데, 그건 40주에 이르러 출산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당시 아이가 평균치보다 크기가 컸고 양수일지 알 수 없는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을 때였는데, 아내는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자연분만이 가능할지 걱정이었고, 의사 선생님은 진통이 올 때까지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산모 본인이) 자연분만을 선택했으니 기다려보자는 것이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출산하기도 한다.”는 설명과 함께, 양수가 파수될 경우의 리스크와 아이가 지나치게 커졌을 경우의 리스크 등을 설명해주셨고, 분만방식의 선택은 산모의 몫임을 재차 설명해주셨다. 나는 아내의 눈을 바라보는 원장님의 눈에서 깊은 진심을 느꼈고, 걱정하는 아내에게 조금 기다려보자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내의 걱정하는 마음을 토닥여주는 것이 먼저 임을 알면서도, 원장님의 눈빛이 마치 산모님은 저희 병원을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2021831. 임신 40+6일이 되던 날.
미리 지어놓은 아이 이름은 여름이었다. 출산이 하루하루 늦어지면서 아이가 9월에 태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아이 이름을 가을이로 바꿔야 하나, 지금까지 여름이라고 불렀는데 어찌하나 하고 있을 때, 유도분만의 날짜가 잡혔다. 그렇게 8월 마지막 날에 이르러, 여름이는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자연분만으로 출산하려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결정은 아니다.
태아 성별을 합법적인 시기에 알게 되는 것도 특이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진오비를 다니면서 거기 특이하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아내는 스스로가 유별난 산모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덧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버려서,
본질을 지키려는 병원이 어느새 특이한곳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변해버린 세상을 한탄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진오비를 선택했기에,
나와 아내는 조금은 독특한 출산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P.S.
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원장님, 간호사님들, 23일의 입원기간 동안 극기훈련 같던 모자동실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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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zini [2021-12-15 09:20]  사비나 [2021-11-28 23:18]  hachi0205 [2021-09-23 18:11]  suny6616 [2021-09-14 18:22]  진오비 [2021-09-14 07:12]  
#2 진오비 등록시간 2021-09-14 07:19 |전체 글 보기
안녕하세요,
남편분께서 써주신 출산후기 보고 어떤분인지 단번에 눈치 챘답니다.
무던한듯 옆에서 그저 바라만보고계셨지만, 이렇게 꼼꼼하고 자상하실줄 몰랐어요!

마지막 출산을 앞두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되셨을테지만
엄마 아빠의 최선의 선택에 여름이가 잘 도와주었네요!
태동검사할때 만난 산모분은 정말 최고 씩씩하셔서 잘해내실줄 알았어요.

정말 더웠던 여름, 고생 많으셨고 축하드려요.
이제 여름이와 행복한 가을날 보내시고, 즐거운 육아 함께하시길 응원합니다 :)
행복하세요!
#3 심상덕 등록시간 2021-09-14 23:27 |전체 글 보기

이것은 후기 답글이 아니다

출산후기가 아닌 글 잘 봤습니다. 제가 그간 쓴 글을 패러디하셨나 봅니다.
남편분께서 적어 주시는 후기는 지금까지 몇편 못 보았을 정도로 드문데 글 솜씨가 좋으시군요.

여하튼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 특별하게 여겨지고 원래부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까다롭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 조금 안타깝습니다.
더불어 저희 병원의 철학을 잘 이해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행복한 육아.
함께 잘 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이것은 후기의 답글이 아닙니다. 감사의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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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어멈 [2023-01-12 07:44]  사비나 [2021-11-28 23:18]  hachi0205 [2021-09-23 18:11]  
#4 김희정2 등록시간 2021-11-17 03:47 |전체 글 보기
심상덕님이 2021-09-14 23:27에 등록
출산후기가 아닌 글 잘 봤습니다. 제가 그간 쓴 글을 패러디하셨나 봅니다.
남편분께서 적어 주시는 후기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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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덕 [2021-11-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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