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쓴 "의사가 쓰는 출산 후기"가 그렇듯 이번에도 첫만남 때의 소감부터 시작합니다.
2013년 4월 18일.
봄이 한창이던 어느날 김포가 집인 초산모 한분이 진료를 받고 분만을 상담하고자 오셨더군요.
병원을 옮겨 오시는 분들께 그렇듯 역시 왜 옮기려 하는지, 굳이 옮기기 보다 다니던 병원의 선생님을 믿고 다니시는 것이 좋다는 식의 설교를 한참 늘어 놓았습니다.
더군다나 집이 김포면 다니기에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자연주의 출산을 위한 기대로 이곳까지 오시기는 했지만 그만큼 내세울 것도 없는 병원이라 실망하게 되는 것에 대한 염려도 커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작심하고 오셔서 설득은 그리 효과는 없었고 이후 죽 진료를 받고 출산까지 하시게 되시었죠.
사실 외모는 평범한 분인데 진료하면서 보니 애교도 나름 많으시고 성격도 상당히 적극적이더군요.  제가 가지지 못한 것들입니다.
혹시라도 진료를 받으시면서 제가 그리 무뚝뚝하지 않고 친절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본인들이 그런 성격이라 저까지 감염시켜서거나 혹은 본인들이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원래 저는 태생부터 무뚝뚝한 성격이 맞습니다.
아뭏튼 이 분 포함 몇분이 제 무뚝뚝함을 조금은 약화시키게 만들었는데 아마 새로 개원하고 일년 동안 그런 분들이 한 십여분 정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

진료하는 기간 동안 별 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부모님 모두 고혈압이 있으셨고 산모도 중간 중간 혈압이 130 이상으로 올라가는 날들이 있어 임신 중독증 (임신성 고혈압)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내심 걱정하기는 했습니다.
임신 후기로 가면서 아기 크기도 좀 상대적으로 커지는 듯 하여 걱정을 했지만 체중 관리를 위하여 나름 애를 많이 쓰셔서인지 막상 출산 때는 다행히도 아기는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참 다른 분들과 비교하여 유독 특기할 만한 점이 한가지 있기는 하군요.
제가 요즘은 바쁘기도 하고 열의가 떨어져 하지 않지만 전에 임신 중기나 후기 쯤 산모와 남편의 영상--아기에게 쓰는 영상 편지--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리고는 했는데 땡큐엄마와 아빠의 영상은 찍고 나서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잘 나오고 재미도 있는데 산모와 남편께서 촬영 영상을 보고 너무 쑥스러워해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영상을 산모께 드리기는 했으니 궁금하신 분은 쪽지로 요청해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그 후 며칠간은 그 영상을 가끔 보면서 진료하면서 오는 시름을 잊고는 했었습니다. ^^

그렇게 몇달을 보내고 마침내 8월 22일.
낮에 이슬도 비치고 진통도 있어서 외래로 오셨는데 진행이 거의 안된 상태라서 댁으로 가셔서 쉬시도록 했습니다.  나중에 출산 후기를 보니 그렇게 힘드신 줄 알았으면 그냥 입원해 계시도록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드는군요.
다음날 새벽 진통이 심해 병원에 오셨지만 역시 자궁은 별달리 진행이 많이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통증이 심해서 그리고 집도 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번거로울 듯하여 입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순산이 쉽지 않겠구나 걱정을 했었죠.
왜냐하면 아직 초기 단계임에도 진통이 이렇게 심하면 본격적 단계에 가서는 대체로 견디지 못하고 수술을 해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 또 진통을 강하게 너무 오래하면 탈진도 되고 자궁 수축력도 떨어져 막상 출산이 임박해서는 힘주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태동 검사에서는 산모가 느끼는 진통에 비하여 자궁 수축이 너무 약해서 잘 진행될 지 자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견뎌내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소 제게 보인 모습이 있으니 잘 견뎌내실 것이라 기대하고 촉진제를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분만 과정 동안에 촉진제를 쓴다거나 혹은 자연적 출산을 기다린다거나 아니면 수술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교과서에서 정해 놓은 기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상황이 모두 다르고 현장의 상황이랄까 계량화하기 어려운 복합적 여러 요인들이 있어서 하나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결정을 앞에 두고서는 그동안 겪었던 경험과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온갖 경우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이 산모의 안전하고 건강하고 그러면서도 편안한 출산에 도움이 될까 고민을 합니다.
겉으로는 별 것 없는 것처럼 태연해 보여도 마음 속으로는 저도 왜 걱정이 없고 고민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분만 산부인과 의사의 삶을 오리의 물장구에 비교하기도 한 것이죠.
여하튼 촉진제를 쓰면서도 오히려 통증만 악화시키고 막상 진행에는 도움이 안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왠걸 오전 9시 넘어서 자궁 문이 많이  열렸더군요.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전 9시 58분에 건강한 여자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초기 진통은 오래 걸렸지만 막상 본격적 개구 단계 (자궁 문이 벌어지는 단계)와 만출기 (아기를 밀어 내는 단계)는 다른 초산모 분들에 비하여 상당히 빠른 편이었습니다.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며 걱정하던 혈압도 그리 높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만실에서의 기억은 별 다른 것은 없었고 모자는 이쁜 것으로 챙겨서 쓰려고 했으나 빨았는지 어디 숨었는지 못찾겠더군요.
그리고 더 찾아 보려해도 진행이 빨라 분만실을 지켜야 해서 더 찾아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여 제가 이전에 땡큐 어머니와 한 약속은 두개 모두 지키지 못했습니다.
모자가 그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입원해 계시는 동안 "팔랑심표 볶음밥"을 해 드린다는 것이었는데 게을러서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 점은 나중에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요.
혹시 그동안 이용해 주셨던 분들을 모시고 병원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라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ㅎㅎ

이제 두달이나 지나고 보니 분만 당시의 상황도 기억이 잘나지 않을만큼 희미해지고 있는데 제 기억에 또렷이 각인된다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좋고 편안했던 기억보다는 걱정스럽고 괴롭고 한 기억이 오래 남는데 그런 것이 없이 나름 순풍 순산을 하신 것이니까요.
앞으로 둘째는 계획이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첫째보다는 훨씬 쉽고 임신 중독증도 없이 순산을 하셨으니 아마도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굳이 멀리 동교동까지 오실 것 없이 마음 편히 동네 병원을 믿고 다니셔도 될 것입니다.
저와 같이 까다롭고 눈치가 보이는 의사에게 출산을 돕도록 맡긴다는 것은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어서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다지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 물론 둘째를 임신하시게 되도 귀찮으니 오시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ㅎㅎ
저희로서야 한분의 산모라도 더 와주시면 좋고 이용해 주셨던 여러분들이 이곳 저곳에 실제보다 좋게 포장해서 홍보해 주신 덕분에 이전보다 분만이 늘기도 했습니다만 아직도 정상적 병원 운영이 가능한 수준은 아닙니다.
따라서 찾아 오시는 산모분들을 굳이 내쳐도 될 상황은 절대 아니니까요. ㅠㅠ
여하튼 재미있는 분을 만나 출산하는 순간까지 약간의 긴장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름  즐거웠습니다.
홈피에서도 이런 저런 사진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풍성하게 해 주신 점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별탈없이 건강하게 순산해 주시어 제가 돌팔이라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아기 잘 키우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아래 초음파 사진은 임신 5개월 무렵 처음 오셨을 때 땡큐 얼굴 입체 모습과 임신 7개월 쯤  얼굴 입체 모습입니다.
어때요? 아빠랑 많이 닮았습니까?
남편분이 미남이시라 아들이면 한 인물 했을 것 같은데.....
대신 이쁜 딸로 커주겠지요. ^^
아 물론 땡큐 어머니도 외모에서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없으시길.....

#2 이순영 등록시간 2013-09-16 09:12 |이 글쓴이 글만 보기
후기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그런데 저 출산한지 아직 한달 안됐어요~~ 두달 전 일이라뇨~~ 8월에서 9월로 달이 넘어가서 헷갈리셨나봐요 ㅋㅋㅋ
이 후기를 나중에 우리 땡큐가 커서 읽게되면 얼마나 감회가 새로울까요 ^------^
아직 요녀석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둘째 계획은 없지만 생기게 되면 원장님께 가야죠~ 저희 신랑이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원장님에 대한 신뢰감이 대단하거든요 ㅋㅋㅋ ^^
팔랑심표 볶음밥 기억하시네요~ 요즘 워낙 바빠보이셔서 잊어버리신줄 알았어요~ 기억해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하네요 ㅋㅋ 게다가 제가 하루밖에 입원을 안해서 해주실 시간도 없으셨을꺼에요~ 마음만으로도 감사히 먹은걸로 할께요~ 대신 진짜로 출산산모들 모여서 옥상파티하게 되시면 꼭 초대해주셔야 되요 ㅋㅋㅋ
그리고 원장님은 부리부리~한 스타일 좋아하시나봐요 ㅋㅋ 저희 신랑 큰 눈 말고는 볼게 없는데 너무 좋게 봐주시네요 ㅎㅎㅎ
땡큐가 아들이면 한인물 했을지언정 저는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 좋네요~~ 삔하고 핑크색으로 도배해주죠 뭐 ㅋㅋㅋㅋ
우리 땡큐 만나게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
진오비에서 출산하시는 모든 산모님들 건강하고 안전하게 출산하시고 저처럼 좋은 기억만 간직하시길 바랄께요~~!! ^^

ps. 땡큐에게 쓰는편지.. 재밌게 보셨다니.. 저희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영상이지만.. 지치고 우울할때 한번씩 보시면서 맘껏 웃으셔도 좋아요 ㅋㅋㅋㅋ *^^*
#3 심상덕 등록시간 2013-09-16 09:24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이순영님이 2013-09-16 09:12에 등록
후기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그런데 저 출산한지 아직 한달 안됐어요~~ 두달 전 일이라뇨~~ 8월에서 9월 ...

두달이 아니고 한달도 되기전인데 왜 오래 전인것처럼 착각을 했을까요?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도 말하지만 제가 천재들이 가진 단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인가봅니다.
건망증, 거만함, 황당함, 외골수 등등.....
물론 제가 천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모자와 볶음밥을 어찌 잊었겠습니까? 제가 어느 글에도 썼다시피 홈피에서 열심히 활동해 주시는 분들은 제게는 나름 VIP인데......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울 기회가 오면 반드시 불러서 대접해드려야 하는 분 중에 한분이죠.
바깥분은 눈도 눈이지만 코가 잘 생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코도 낮고, 입도 튀어 나오고 얼굴도 길고 등등 외모에 대하여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군데도 없어서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지만 뭐 그게 부모님 잘못은 아니죠.
그나마 전 남자라 외모 뜯어 먹고 살 필요는 전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외모가 잘 생긴 어느 산부인과 의사는 의사 얼굴 보려고 진료  오는 분도 많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

여하튼 아기 잘 키우시고 둘째 임신하시면 서울로 진출하시어 진오비 산부인과로 오세요.
연희동이 살기가 좋은가 봅니다.
좀 비싼 동네이기는 하지만 바깥분이 노력하시면 되죠. ㅋㅋ

댓글

청주 머네요... 서울이면 몰래 구경이라도 가볼까했더니 ㅋㅋㅋㅋ 아~~ 원장님 진짜 쎈스쟁이~~!!!♥♥♥ 이래서 제가 원장님 팬이에요~~~!!! ㅋㅋㅋㅋㅋ  등록시간 2013-09-16 15:46
그 산부인과는 청주에 있는데 한번 가보시겠다면 병원 이름과 주소 알려드리고요. ㅎㅎ 바깥분이 보고 싶은 것만 보시나 본데 다시 적어드릴께요. 캡쳐해 보여드리세요. 땡큐 아버님, 열심히 노력해서 돈 많이 버세요.돈으로 모든 게 되는 건 아니지만 많은 게 된답니다.  등록시간 2013-09-16 13:44
그 산부인과 어딘지 새삼 궁금하네요... ㅋㅋㅋㅋ 둘째 생기기 전에 신랑 열씨미 부추겨 서울진출을 목표로 삼아야겠네요 히히~~^^ 요 글 캡쳐해서 신랑한테 보내줬더니 노력하란 글은 안보이고 자기 코 얘기만 보이나 봅니다... 입이 귀에 걸려 심원장님은 역시 좋은분이라고 칭찬이 칭찬이... ㅋㅋㅋㅋ  등록시간 2013-09-16 10:08
#4 dyoon 등록시간 2013-09-16 11:39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볶음밥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이영돈PD 버전ㅋ). 나중에 옥상파티에 참석 기회를 주시면 저도 맛있게 먹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금요일 저녁이나 토욜저녁이면 언제든지 call입니다. ㅋ

댓글

예 그런 날이 오면 꼭 연락드리죠. ^^ 충북에서 오시려면 아무래도 평일은 곤란하겠죠?  등록시간 2013-09-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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