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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신문] No 진흙쿠키, Only Prowoman!

2013-02-14 00:00| 글쓴이: 심상덕| 댓글: 0

진오비 낙태 상담 센터 개설한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사랑하는 의사들’ 소속 진오비 산부인과 김종석, 심상덕, 최안나 원장
(좌로부터)

24시간이 주어진다면 36시간을 ‘낙태 문제’에 대해 얘기를 풀 수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두 의사,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에 유일한 ‘계급’인 대변인 최안나 원장과 ‘대표격’ 회원인 심상덕 원장을 만났다.
한때 동교동을 주름잡던 아이온 산부인과는 얼마 전 진오비 산부인과로 이름을 바꿨다. 진오비에서 함께 활동하는 김종석 원장도 합류했다. 2년간 쉬었던 분만을 다시 시작하면서 한 달 사이에 아이를 둘 받았다.
원장 만나기 어려운 걸로 소문도 자자하고 분만도 2년이나 쉬었다는 작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겠다고 찾아와 준 환자들은 두 사람에게 지난 6년간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오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아이와 산모, 그리고 여성의 몸을 지키는 산부인과 의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운 요즘, 그들은 이 작은 개인병원에서 ‘그렇게 해도 안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망하면 그건 제도가 잘못됐다는 증거이니 정부가 알아서 하지 않겠느냐는 대범 혹은 태평한 말투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굳은 믿음이 느껴진다. 병원 이름을 아예 ‘진오비’로 바꾼 것은 이런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라고. “사실은 낙태를 안 한다고 하면 취직이 안 되기도 하고, 낙태는 안 해도 되지만 ‘진오비’라서 안 된다고 하는 원장도 있거든요. 우리가 보여준 가능성으로 새로운 산부인과 문화를 만들어보려는 후배들이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고요, 잘 돼서 그런 후배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기도 해요.”

여성대통령, 낙태에 대한 입장도 밝혀야
“여성대통령을 표방한다면 보건의료와 교육, 낙태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밝혀야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외면하면서 여성대통령 운운하니 실망스러워요.”
뜨거운 대선 열기도 최안나 원장의 냉정한 지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낙태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낙태 문제에 관한 한 진보도 보수도, 종교인도 비종교인도 없다는 그의 말에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오랫동안 여성과, 진료실에서 그들을 만나는 산부인과 의사에게만 밀어놓고 있던 사회에 대한 분노가 서려있다.
2008년 진오비 모임을 처음 만들면서 이들에게 낙태는 일부분이었다. 시작은 돈을 벌기 위해서 불법도 서슴지 않는 집단으로 의사를 매도하는 정부에 대응해서 현장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원칙진료가 가능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지극히 단순한 목적이었다. 문제는 활동을 하면서 항상 발목을 잡는 것이 ‘낙태’였다는 점이다. 1953년에 제정된 낙태 관련 법은 그동안 아무도 지키지 않는 법이었고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현실에 맞게 개정할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최 원장은 이런 상황에 대한 정부의 직무유기를 매섭게 비판한다.

이제 변화가 보인다
진오비가 얼마 전 개설한 낙태상담센터도 사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누구도 손을 대려고 하지는 않는 ‘찝찝한’ 그 무엇. 산부인과 의사들은 그 문제를 덮는 역할을 해왔다. 그간 산부인과의사회나 산부인과학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산부인과 단독이 아닌 여성계, 법조계, 종교계와 함께 혹은 외부에서 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산부인과 의사는 당연히 낙태를 하고, 그래야하기 때문에 산부인과 수련을 포기하는 의사들도 있던 시절이었다.
“오늘 낙태 몇 건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지금은 최소한 그런 얘기를 내놓고 하지는 못해요. 전화해보면 80%에 달하는 산부인과가 낙태를 안 한다고 해요. 저희들의 역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드라마 등에서 미혼모의 선택이 존중받고, 미혼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분위기를 보면 조금은 뿌듯하기도 하죠.”
그러나 정작 산부인과 내부에서 진오비 회원들은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동료를 고발한 사람들이라는 반감이 크다. 그러나 최 원장은 이런 선택을 일종의 ‘충격 요법’이었다고 설명한다. 종교를 가진 의사들까지도 태연하게 낙태를 몇 건 했다고 말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고.
“진오비가 낙태근절운동을 시작한 것은 2009년 8월 이었어요. 실제로 보도자료를 뿌리고 추적 60분을 시작으로 매스컴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국감 때인 10월이었구요. 일부러 시기를 맞춘 거죠. 통계를 보면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낙태하는 비율이 10%에 달했어요. 애는 낳을 거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이유로 낙태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최소한 지금은 이런 식의 낙태는 많이 줄었어요. 혼전 임신이라도 나중에 결혼하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구요. 예전에는 혼전 임신이라면 무조건 낙태를 선택했을 테니까요.”

진흙쿠키는 더이상 안 굽는 걸로
진오비를 이끌어온 심상덕 원장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낙태 찬성론자’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처럼 피임의 다른 수단으로 ‘낙태’가 횡행하는 상황을 반대할 뿐이다. 그는 진오비가 낙태반대 운동에 앞장설 때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며 반박했던 여성단체들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진흙쿠키라고 아세요? 먹을 것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진흙으로 쿠키를 구워줘요. 그걸로라도 허기를 달래라고. 물론 기생충부터 설사까지 부작용은 다양하죠. 아이들을 위해서는 진흙쿠키로 허기를 속일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걸 줘야 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낙태권을 권리라고 하는 것은 진흙을 쿠키라고 내미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자기 아이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는 가부장적 문화, 취약계층을 나몰라라 하는 사회제도부터 개선한 다음 낙태권을 주장해야죠.”
종교적인 시각으로 낙태를 반대하는 의견도 물론 존중하지만 심 원장은 이 문제에서만은 자신은 ‘프로라이프(생명 우선)’가 아닌 ‘프로우먼(여성 우선)’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주위의 시선,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명을 포기하는 사회 구조가 바뀌고 나면 그 때는 ‘낙태하겠다’는 여성의 권리도 지켜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최안나 원장이 한 마디 덧붙인다. “진오비 회원도, 회원이 아닌 분들도 많은 희생을 감수하셨어요.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이제 가족이나 직원에게도 떳떳한 의사가 될 수 있잖아요.”
정상적인 산부인과 의사 노릇을 하고도 살아남겠다는 목표를 위해서라도 두 사람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무뚝뚝 대마왕’이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산모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심상덕 원장은 머리(의술)와 가슴(친절)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고 최안나 선생은 TV에서가 아니라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환하게 웃는다. 모든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여성 건강과 생명 탄생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최소한 ‘산부인과’를 지원한 인턴이 “힘들어도 아기를 받는 건 기분 좋겠다”는 부러운 시선을 받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김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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