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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미혼모, 언제까지 그들을 외면할 것인가

2013-03-18 14:11| 글쓴이: 심상덕| 댓글: 0


[기고] 미혼모, 언제까지 그들을 외면할 것인가 / 심상덕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1998년 시사주간 <타임>에서 20세기의 인물 중 하나로 선정됐으며, 97년 <월스트리트저널> 조사로는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3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 빈민가인 뉴욕 할렘에서 자라고 사촌 오빠와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14살의 나이에 미혼모가 되기까지 했다. 그의 불우했던 과거와 지금의 성공적인 모습은 미국에서는 어느 여성의 성공담 정도의 화젯거리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단순한 성공담 이상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어느 미혼모 입소 시설 원장의 말을 들어보면 그곳에 입소하는 산모들의 주된 이유는 경제적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보다는 남들 특히 가족들로부터 임신 사실을 감추고 출산하기 위해서였다. 전에 우리 병원에서 출산한 어느 미혼모는 자신의 출산 기록을 의무 기록에서 지워 주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고자 한 그 산모를 바난하기 앞서 우리나라에서 미혼모가 처한 현실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프랑스처럼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미혼모와 그들에게서 출산한 아이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챙겨주는 것은 먼 꿈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미혼모가 처한 현실은 여러가지 점에서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앞서 말한 미혼모 입소 시설의 원장한테서 전에 들었던 애로사항도 그 단적인 사례다. 수십명의 미혼모들이 입소하여 생활하는 그 기관이 지금은 자리를 잡았지만 집을 구할 당시에는 주변 주민들이 반대해서 집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이 경우는 ‘님비 현상’의 하나로 볼 수도 있겠지만, 공공의 목적으로라도 미혼모를 위한 시설과 관리에 부정적 시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미혼모들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은 꼭 미혼모 자신들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합법적인 결혼 상태에서 임신하고 출산하는 산모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악조건을 무릅쓰고 출산하기로 결정한 용기와 자신이 키우지 못하더라도 한 생명을 출산하여 사회에 구성원으로 보내는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 많은 미혼모 입소 기관이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금이 적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고아원이나 노인 요양소에 견줘 미혼모들에게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한테까지 지원할 필요가 있는가”라며 비난과 질타를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잘못’이 아니라 한때의 ‘실수’로 법적·도덕적 테두리 안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지 못한 것뿐이다. 그들에게 다른 산모들처럼 축복받으면서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선물하지는 못할지언정, 그들이 숨어서 아기를 낳거나 출산 사실조차 감추고 싶을 만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면서 사는 한때의 실수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는 이때 사회에 도움을 주는 흔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과 희생과 비난을 대가로 사회에는 귀중한 생명을 주었다. 심각한 저출산을 말로만 걱정하면서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을 외면할 것인가?

심상덕/산부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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