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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성차별인가 의료의 미래인가

2013-03-18 14:36| 글쓴이: 심상덕| 댓글: 0

 

[기고] 성차별인가 의료의 미래인가 /심상덕

“어머 남자 의사네?”
진료실에 들어서다 말고 당황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환자들을 전에도 가끔 만났었지만 요즘은 유독 그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여자 환자로서 남자 의사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져서라기보다는 과거보다는 여자 산부인과 의사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환자들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서 지금은 산부인과에 관한 한 여의사의 대우나 장래가 더 낫다는 것은 일선에 있는 전문가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남자 산부인과 의사는 취업률도 여의사에 비하여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런 현상은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로 하여금 역 성차별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몇 해 전부터 의과대학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외국도 이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이런 추세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단순한 성차별로만 볼 수는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의료의 미래 변화 중 하나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의료의 미래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만한 부분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을 담당한 신은 아스클레피오스라고 하는 남신이다. 그에게는 두 아들과 네 딸이 있었는데, 맏딸인 이아소는 ‘의료의 여신’이라고 불린다. 둘째딸 판아케아는 만병통치의 능력이 있었다. 셋째딸은 아이글레인데, ‘광명의 여신’이다. 넷째는 하이게이아로 위생을 관장하였다고 한다. 이아소라는 여신의 이름에서 평안·편함이라는 의미의 ‘ease’라는 단어가 나온 것으로 추측되며, 영어에서 질병이라는 단어는 ‘ease’에 ‘Dis’라는 부정어를 붙여 ‘Disease’라고 한다. 판아케아의 ‘판’은 ‘모두’라는 의미이고 ‘캐어’라는 단어는 영어로 치료를 뜻한다. 위생을 뜻하는 ‘hygiene’도 넷째딸의 이름에서 연유했다. 여하튼 네 딸은 모두 의료와 관련된 부분을 관장했지만 두 아들도 의료의 일정 부분을 담당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신화에서 의료의 출발은 남자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서 시작했지만 나중엔 여성인 딸들에게 의료의 역할이 맡겨지고 있다.

미래에는 의료의 많은 부분을 컴퓨터나 로봇이 담당하게 될 것이고 의사의 역할은 고통에 빠진 환자를 위무하고 공감하는 역할이 주가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아마도 그런 일은 여성이 대부분을 수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여성이 가진 고유의 모성 본능이나 섬세함과 위무자로서의 힘이 남성보다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하튼 앞서 든 사례가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여야 하는 바람직한 의료의 변화 중 하나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분명 성차별적인 요소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의료행위에서 같은 성별이 더 불리한 것은 아니지만, 의료라는 것이 꼭 같은 질병을 앓아야만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남자 의사든 여자 의사든 모든 의사는 ‘의사’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산부인과이든 다른 진료 과목이든 의료인 중에 반 이상이 남자인 형편에서 단순히 남자 혹은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선택의 잣대를 삼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단순히 성이라는 잣대로 판단하는 것보다는 의사의 역량이나 철학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남자 의사가 아니고 그냥 의사로 대우받고 싶다.


심상덕 산부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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