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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임산부 토털 케어’ 의 함정

2013-03-18 14:39| 글쓴이: 심상덕| 댓글: 0


[기고] ‘임산부 토털 케어’ 의 함정 / 심상덕

우리가 돈을 쓸 때는 많든 적든 그 비용으로 얻는 효과를 생각하고 판단한 뒤 쓰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 액수가 클 경우 매우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하는 정책, 특히 의료정책을 보면 정책 당국자들은 ‘개인적으로 돈을 쓸 때와 같은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실행할 계획인 보장성 강화 정책 중 임산부에 관한 것을 보더라도 그런 생각을 버리기 어렵다.
정부는 ‘임산부 토털 케어’라는 이름으로 약 13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여 임신 중 받게 되는 검사들, 이를테면 임신 초기 검사를 포함하여 기형아 검사, 임신 당뇨 검사 등의 검사 비용 전부와 초음파 검사의 일부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해 모든 임신부가 혜택을 받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아직은 세부사항을 정부 안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초음파 검사는 몇 회까지 무료로 지원할지 그리고 양수 검사와 같은 특수 검사까지 무료로 받게 할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지급할지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다만 현재까지 정부 담당자의 말을 종합해 볼 때 모든 임신부에게 모든 산전 검사를 무료로 받게 할 수 있는 재원은 아니기에 모든 임신부에게 동일하게 일정액의 비용을 면제해 주는 방향으로 추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보장성 강화 정책은 저급여 저부담으로 시작한 의료보험 정책의 미비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으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춰 준다는 점에서 그 취지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어려우며 결국은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 정책의 목적이 출산율 높이기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료보험이라는 사회보장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모두 기대하는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정책은 병원의 양극화 심화나 의료의 질 저하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부를 위험이 높아서 문제가 많다. 특히 모든 임신부에게 동일하게 일정액이 돌아가게 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거두는 간접세 부담이 매우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간접세 부담률도 점차 개선이 필요하겠지만 최소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것을 되돌려 주는 혜택 부분에서라도 저소득층과 경제적으로 다소 여건이 나은 사람들 간에는 차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복지의 기본이고, 정부가 보장성을 좀더 강화하려 한다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자면 불임 지원 사업처럼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로 혜택 대상을 엄밀히 선정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나름의 목적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기껏 20만원 정도의 지원으로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소한 임신 기간의 모든 검사에 대하여 지원이 가능한, 말 그대로 토털 케어가 되어야 할 테지만 아직은 국가의 경제 형편상 모든 임신부들에게 이런 지원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거두는 데서 무차별적으로 거두어들이는 횡포를 줄이지 못하는 마당에 나누어 주는 것마저 일률적으로 골고루 나누어 주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복지를 추구한다는 정부로서 직무 유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배고픈 자와 배부른 자에게 동시에 비스킷 하나씩 줄 게 아니라 배고픈 자에게 식사가 될 만한 한 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정말 도와주는 것이다.

심상덕/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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