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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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낙태죄를 줄일 것인가, 낙태를 줄일 것인가

2013-03-20 16:42| 글쓴이: 진오비| 댓글: 0


[기고] 낙태죄를 줄일 것인가, 낙태를 줄일 것인가

최안나 진오비 대변인

임신 6주 태아를 낙태 수술하여 기소된 조산사가 낙태죄 위헌 소원을 내 헌법 재판소에서 공개 변론이 열리면서 낙태 문제가 다시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조산사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위해 낙태 수술을 했다는 주장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산부인과 의사에 의한 자정운동을 벌이고 있는 의사로서 이번 위헌 소원을 환영한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엄격히 낙태를 제한하고 있는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런 제한 없이 태아가 생존력을 획득한 시기 이후의 낙태도 이뤄지고 있어 완전 낙태 허용 국가라 볼 수 있다. 낙태 문제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법치국가가 아닌 것이다.
 
불법 낙태는 우리 사회 소수의 문제가 아니며 많은 가정이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금도 하루에 최소한 1000명 이상의 여성들이 낙태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낙태 문제에 관해 너무도 조용하다. 이번 낙태죄 위헌 소원은 ‘비겁한 침묵’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사회는 낙태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감대는 당연히 여성의 행복과 태아의 생명권이 모두 존중 받는 길을 찾는 것이다. 
낙태가 여권 운동의 중요 쟁점이었던 선진국의 역사와 달리 우리나라는 낙태로 인한 여성의 건강 문제와 복지, 권리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없었다. 과거 정부가 인구 억제 정책의 하나로 낙태를 조장한 것을 비롯하여 우리의 낙태 문제에 있어 태아는 물론 여성들도 분명한 피해자다.
 
낙태하려는 여성을 많이 만나본 산부인과 의사로서 우리의 낙태 문제는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미 낙태를 줄이기 위해 많은 정책과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개선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연 예방을 위해 해마다 3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쓴다. 그러나 낙태 예방에는 올들어 고작 12억원을 썼다. 낙태가 담배보다 국민 건강에 미치는 해악이 적지 않음에도 정부가 얼마나 낙태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법 따로 현실 따로를 방치하고 있는 사법부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불법인 지금도 아기 아빠, 혹은 가족으로 부터 낙태하라고 강요받고 있는 여성들이 부지기수인데, 합법이 되면 이 엄마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이번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도 이 문제는 검토되지 않았다.
 
또한 지난 9월 발표된 복지부 실태 조사에 의하면 낙태한 여성의 60%가 피임을 하지 않았고, 피임 한 경우도 82%가 월경 조절술 등 실패율이 매우 높은 피임법에 의존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교육열을 볼 때 이러한 피임 실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른들도 피임을 안하는데 청소년 성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피임 교육만 제대로 해도 낙태는 대폭 줄일수 있다.
 
낙태는 법으로 금해야 한다는 사람이나 합법화를 바라는 사람 모두 낙태를 안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낙태의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계획 없는 임신을 했어도 낙태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이제 힘을 모으자. 생명이 우선이냐 여성의 선택이 우선이냐 갈라져 싸우는 사이, 정부의 방관 속에 오늘도 어디선가 낙태 하며 우는 여성들이 있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할 가능성이 높은 남녀가 있고, 주위 비난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미혼모들은 고통받고 있다. 낙태죄로 고통받는 여성을 줄일 것인가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을 줄일 것인가 이번 헌법 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어느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답을 내놓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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