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입원한 산모가 진행이 느려서 출산을 못하고 있어 진료실에 내려와 중간 중간 글도 쓰고 하다가 하도 졸려 진료실 옆 초음파실의 검사 침대에서 감깐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꿈을 꾸다가 전화벨 소리에 깼는데 꿈꾸다 바로 깨서 그런지 꿈이 현실인것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군요.
꿈에서 저는 역시 자궁이 다 열려 곧 출산을 해야 하는 산모의 분만을 돕고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아기가 내려 오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배도 누르고 해 보는데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는군요.
흡입기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내려 오지도 않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까지 나가서 주변이 어두워졌습니다.
엎친데 덮친다더니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산모의 남편이 제가 있는 스테이션으로 나왔습니다.
남편: "지금 산모 상태가 어떻습니까?"
나: "진행이 잘 안되지만 산모나 아기 모두 아직 잘 견디고 있으니까 좀더 기다려 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말을 하면서 제 옷을 꽉 잡고 있는데 옷과 함께 살이 찝혀서 아프네요.
나: "손 잡으신 옷에 제 등살이 찝혀 아프니 손은 좀 놓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편: "왜 어때서?"
갑자기 남편이 반말을 하더군요. 꿈이란 것이 원래 그렇지만 밑도 끝도 없이 이해불가능한 상황들이 종종 생깁니다.
그리고 꿈에서는 그런 이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하여 대체로 이유를 따져 묻지 않고 받아들이더군요.
남편: "왜 이렇게 진행이 안되나요?"
나: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기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럴 수도 있고...."
물론 저는 계속 등을 꽉 잡힌 채로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 "그럼 여기서는 불안해서 안되겠고 옆의 큰 병원으로 옮겨야 겠습니다."
나: "그렇게 하십시요. 근데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남편: "옆의 I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나: "그 병원에 혹시 연결될만한 분 있으신가요?"
남편: "내가 그 병원의 의사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꿈이라서 그렇겠지만 왜 근무하는 병원을 놓아두고 저희 병원으로 왔는지에 대하여 궁금하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알았다고 하고 산모를 전원을 하였습니다.
꿈이라서 얼마간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금 있으니 직원이 제게 와서 말하길 그 산모가 옮겨간 병원에서 저를 오라고 한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 병원으로 달려 갔더니 흰가운은 입었지만 의사 같지는 않고 형사인 듯 것 같다고 생각이 되는 어떤 사람이 저를 보자마자 솔직하게 대답을 하라고 하네요.
나: "왜 그러시죠?"
형사 같이 생긴 사람: "당신이 보던 산모가 지금 제왕절개 중인데 거의 사망 직전의 상태입니다. 수술이 곧 끝나고 정식으로 조사하겠지만 우선 당신의 진술을 듣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왜 수술 끝난 다음도 아니고 더군다나 경찰서도 아닌 그 병원으로 저를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꿈이라서 그런 것에 대하여 궁금증은 들지 않았습니다.
나: "말씀하세요."
형사 같이 생긴 사람: "뭘 잘못했는지 아시고 있죠?"
나: " 예?"
형사 같이 생긴 사람: "왜 그따위로 일을 처리했습니까?"
황당한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으면서 그 수술에 참여하고 있어 지금은 여기 없지만 수술이 끝나면 나오게 될 남편으로부터 내가 무슨 봉변을 당하게 될까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형사 같이 생긴 사람의 말은 잘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취조 중 마침 전화벨이 울려 형사 같이 생긴 사람이 전화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나가는가 싶은데 그래도 계속 전화가 울립니다.
그때 제 정신이 돌아오면서 저는 꿈에서 깼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9시군요. 한 30분 정도 깜빡 졸은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입웝한 산모가 촉진제라도 맞고 빨리 낳고 싶다고 하는 내용과 어제 밤에 병원으로 전화를 했던 다른 초산모도 방금 병원에 왔다는 현경샘의 전화이네요.
악몽의 꿈이 빨리 깨서 다행입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진통 산모가 있을 때 졸려서 잠깐 비몽사몽으로 있을 때는 이런 종류의 꿈을 종종 꾸기는 합니다.
대체로 기쁘고 그런 내용의 꿈은 없고 아찔한 종류의 꿈이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꿈은 깨고 나면 기억은 잘 나지 않고 어떤 한 장면만 희미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올라가서 진찰을 해 보니 한시간 전에 진찰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 촉진제를 쓰기로 했습니다.
지시를 해 두고 나서 출근하면서 혹시 배가 고프면 먹어야지 싶어 사둔 삼각김밥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었습니다.
원래 저는 아침을 먹지 않는데 새벽부터 나와서 왔다갔다 했더니 좀 허기가 져서 늦은 아침이지만 김밥과 커피로 때웠습니다.
물론 오른쪽에 있는 커피는 설탕 한 스푼 듬뿍 들어간 설탕 커피입니다. ㅋㅋ
그나저나 두분 다 빨리 순산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