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신을 완전히 믿지 않지만--전에도 안 믿었는데 해나 일로 완전히 안 믿기로 했으니까--창세기를 보면 창조주는 3 일째 날에 풀과 나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중에 3 일째처럼 12 개월 중에 5 월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눈이 즐거운 계절이었다.
벗꽃은 다 지고 말았지만 은행 나무는 왕성한 가지로 손바닥 같은 이파리들을 화려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관사를 나와 진료실 쪽으로 갈 때면 항상 오래된 그 은행나무 앞을 지나야 했다.
은행나무는 가을이 제철이기는 했지만 우람하게 서있으면서 울창한 잎을 달고 있는 모습은 든든한 후원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해나도 가고 없는 요즘에는 이 은행나무를 자주 쳐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스케치의 소재가 될 기회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이건 간에 고통은 항상 흔적을 남겨 놓게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얼굴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세월의 더깨를 잔뜩 바르고 나타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잔잔한 체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나타나는 누님 같은 그런 모습처럼.
어린 시절 큰 바위 얼굴을 본 받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찌들기 보다는 비우고 편안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꼬챙이 같았던 감정이 요즘은 많이 누그러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에는 이제 아내와 더 이상 아웅다웅 할 일이 없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해나가 둘을 연결해주는 끈이자 족쇄였다면 이제는 족쇄가 풀어진 데서 오는 편안함으로 서로를 간섭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은행나무던 다른 것이던 그림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녀 때문일 것이다.
모든 웅덩이들은 항상 채워주기를 갈망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빈 채로 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생긴 쉽게 채우기 어려운 큰 웅덩이가 있었다. 삶의 허전함이라고 해도 좋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그 웅덩이 주변을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저도 그림 하나 그려 주세요. 제 초상이요."
윤약사가 약 조제를 핑계 대고 진료실로 들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약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산부인과 외래에서 쓰는 약이라고 해봐야 뻔 한 것이라서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것은 서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병원에서 잘못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얼마나 뒷감당이 힘든지는 하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항상 약봉지를 가지고 와서는 물어 볼 것이 있는 것처럼 찾아 오고는 했다. 물론 이야기의 내용이야 하루의 일상에 관한 그다지 중요할 것 없는 이야기인 수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부터인가 요구 비슷한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거나 사랑하게 되거나 집착하게 될 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적 현상이 있다.
그것은 서술형의 문장이 어느날 부탁이거나 명령형의 문장으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즉 있는 사실만을 감정의 색채 없이 그저 표현하는 것에서 감정이 실린 문장으로 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당신이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어." 라든가 혹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라든가.
앞의 문장은 아내가 나랑 사귈 때 귀 따갑도록 내게 했던 말이고 뒤에 것은 누군가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했을지 모르는 말이다.
어쨋든 서로가 서로에게 모종의 명령과 구속을 요구한다는 것은 호감이던 증오던 또는 감정의 백미라 할만한 사랑의 감정이던 그런 경우에 한결같이 통용되는 법칙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게 명령에 가까운 그런 부탁을 했다.
"저도 그림 하나 그려 주세요."
그 말을 명령처럼 느낀 것은 그녀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말에서 느껴지는 부탁이 아니라 눈빛에 감추어진 그 이상의 무언가 강렬한 호소가 숨어 있었다. 어쩌면 짙고 깊은 그녀의 눈빛 때문에 나 혼자 착각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람 간의 의사 소통 방법으로 언어는 매우 수준 낮은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평소의 내 신조로 보아 그녀가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아직 그것이 무언지는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부탁은 눈빛 때문이던 아니던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의 몸부림이 의미없는 것과 같이 발버둥칠수록 그저 중심으로 끌려 들어갈 뿐이다. 점점 헤어나올 수 없게.
"예.....그러세요. 사진 한장 갖다 주세요. 그려드릴께요."
"아니요. 사진 말구요. 직접 실물 보고 그려 주세요. 그래 주기를 바래요."
그래 주기를 바래요 ? 완전한 명령이다가 부탁이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당돌하게 변한 동기가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저번 달에 해나의 일로 문병 와주고 한 것 밖에는 따로 기억나는 둘 만의 일은 있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그때의 일이라면 그녀는 두고 두고 내 평생의 회한으로 쌓일 일을 만든데 있어서 빌미를 준 사람이기도 했지 않은가.
물론 그녀에게는 상처를 주기 싫어 그 사실을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실물을 보고 그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실 텐데요. 저야 상관없지만.
먼저도 이야기 하셨지만 제 집에 숫가락 갯수까지도 훤할 만큼 감추기 어려운 곳이 이곳이라면서요?"
"누가 여기서 그려 주시랬나요 ? 제가 다른 사람들 잘 모르는 좋은 장소 안내 해 드릴 테니까 선생님은 대신 제 초상 하나 그려 주세요. 초상 하나 꼭 갖고 싶어서 그래요. 대신 이쁘지 않더라도 이쁘게 그려주세요."
그녀로써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쁘지 않은 얼굴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언제 시간 되실때 말씀해 주세요."
응낙을 하고 말았지만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림이라는 것이 자판기에 돈만 넣으면 뽑아 낼 수 있는 커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작든 크든 또는 어떤 재료를 가지고 하던 한 인간의 열정이 들어가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것이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고 그림도 예외가 아니었다.
단 한줄짜리 시라고 백장의 소설보다 적은 고민으로 나온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그런 착각들을 하고는 했다.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리거나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들을 했다.
그런 사람은 예술이라는 것의 근처를 슬쩍도 훔쳐 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예술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것은 살을 떼어내고 피를 나누어 주는 창조자의 고통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은 피로 버무린 화가의 고통에 다름이 아니며 시는 시인이 남긴 혈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요구하는 것에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장님 접수된 환자 있는 데 부를까요 ?"
아마 내가 윤약사와 이야기하는 동안 한참이 흘러 기다리던 김혜원 간호사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일깨워 주었다.
요즘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적이 많아서 김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인지 그러면 안된다는 호소인지 애매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다가 황황히 눈을 돌렸다.
"윤약사님 그 약 문제는 제가 좀더 알아 보고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선생님. 저 갈께요. 이따 꼭 알려주세요. 수고하세요. 혜원씨."
그녀는 김간호사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갔지만 김간호사는 가벼운 목례만 하고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게 물었다.
"과장님 약 문제 있으면 제게 말씀하세요. 약사님이 자꾸 번거롭게 하셔서 불편하실 것 같은데 제가 약국 가서 알아 올께요.....커피 한잔 타드릴까요 ?"
"아니 괜찮아요."
그러나 사실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내게 그림을 부탁하는 그녀가 나를 혼란케 했다. 처음에 비밀 수첩으로 나를 혼란케 하던 그녀가 이제 그녀의 존재 자체로 나를 혼란케 하려 한다.
이즈음 나는 하과장을 따라 골프 연습을 다니기 시작했다. 해나일과 아내의 일로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는 운동만한 게 없기도 했지만 이곳 관사에 같이 있는 과장들이 아침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실내 골프장을 다니는 모양이라 합류하기로 했다.
사실 관사에 같이 산다고 해도 각자의 생활들이 있기 때문에 함께 얼굴을 볼 기회는 아침 운동 때나 점심 시간이 아니면 보기 어려웠으므로 이렇게 해서라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날아가는 작은 공을 보는 것도 상쾌한 기분일 듯 싶었다.
물론 나야 벌써 며칠째 스윙 연습만 하고 있어서 갑갑증으로 몸이 근질거리는 상태였지만.
"이 과장. 간호과장 이야기 알죠 ? 이미 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니까."
그날 회식 때 선배 병원장 옆에 앉았던 그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던 간호과장을 말하는 모양이다.
"아니오. 잘 모르는 데요 ?"
"왜 정원장의 세컨드라고 소문이 나있는 그 사람말이야."
"예 그런 이야기는 저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사실인가 보죠 ? 저도 사실 선배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물어 보는 것이 도리가 아닐 것 같아 그냥 모르는 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 다른 것이 있나요 ?"
"이번에 아마 부인하고 완전히 갈라설 모양이예요. 이미 법적 수속을 밟고 있다지 아마."
"아 예 그렇군요."
뭐 나로써야 별 할말이 없었다. 나이에 비해 젊고 상당한 미모라는 외에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까. 사람이던 사물이던 관심이 없는 대상은 내게 있어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 간호과장도 특별히 나와 부딪힐 일도 없고 하여 오다가다 가볍게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그냥 병원 현관에 국화 화분이 놓여 있는 것처럼 거기 그렇게 있는 어떤 사람일 뿐이었다.
보이는 표정으로야 간호과장이나 선배나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아마 그녀에게도 선배에게도 아마 쉽지 않은 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기존의 각자의 가족들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 제도라는 이름으로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것들이 그들을 죄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삶의 뒤엉킴이란 참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선배에게도 묻지는 않았지만 산다는 것 그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 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즐거움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나 그 정도 나이의 남자가 쌓아온 사회라는 틀이 주는 보이지 않는 구속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따스하기 보다는 따가운 시선이고 반가운 관심이기 보다 가만히 놓아두었으면 싶은 구속이었겠지만.
여하간 그런 종류의 늪은 한번 빠지면 그렇게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늪은 그렇게 한 인간의 모든 것들을 그 안으로 끌어 담아서 침몰시키고 마는 특성이 있다.
왕좌를 버리고 사랑은 택한 외국의 왕족의 이야기가 아름다움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세상을 많이 살아 보지 않은 어린 사람일 것이다.
그가 겪었을 번민과 고통의 나날을 완전히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그는 사랑을 얻었으니 반은 얻은 셈이다. 왜냐하면 이런 늪은 잘못 빠지면 모두 잃고 삶의 의욕조차 잃어 버리게 되는 수도 많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가다 문득 다른 이들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가 아무런 느낌없이 공허한 텅빈 눈을 한 사람들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은 사랑에 크게 가슴을 다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정원장처럼 사랑이라도 얻은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설사 연인이 곁을 지키고 남는 행운을 안았건 아니면 연인을 잃는 비극을 당했던 건 간에.
연인의 존재 여부가 사랑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연인의 부재를 겪으면서도 사랑을 끌어 안고 사는 것처럼 괴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느낌을 잘 모르지만 누군가를 심하게 사랑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런 고통을 지나본 자들만이 아는 공감이 순간순간의 대화나 표정에서 얼굴을 내밀 때가 가끔 있다.
"병원장님이 간호과장과 그런 관계라는 것을 알면 주위 사람들이 일하는 데 불편하지 않은가요 ? 호칭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하는 지도 혼란스럽고......"
내 질문에 하과장은 글쎄라는 짤막한 대답 외에 별 다른 답은 없었다. 내 질문을 무시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저 모르는 듯이 행동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일게다.
딱 소리를 내며 공이 멀리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다. 하과장이 한쪽 다리가 불편한 대신 팔의 힘은 굉장히 강한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친 타구의 비거리보다 1.5 배는 더 나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거리는 꼭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오해였던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항상 사람은 자기가 아는 수준까지만 보이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게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말들을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과장은 윤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하루살이를 생각하고 있는 데 갑자기 윤약사 이야기를 꺼내서 당황했지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아 태연을 가장하고 대답했다.
"윤약사에 대해서 왜요 ?"
"아니 요즘 윤약사랑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길래 궁금해서요."
"그렇게 보이셨나요 ? 윤약사야 하과장님께서 잘 아시고 친하시지 않은가요 ?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아니예요. 저는 잘 몰라요. 그녀가 비교적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 따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거나 하는 것은 없어요.그런데 요즘 이과장님 방에 부쩍 자주 들락 거리는 듯 싶어서 여쭈어 보는 거예요."
"간혹 약 문제로 오기는 하는데 별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혹시 그녀에 대해서 뭐 아시는 점이라도 있으신 건지요?"
"조심하시라구요. 그 윤약사가 요즘 소문이 썩 좋지를 않아요. 파견나온 공중 보건의 선생들과 밤 늦도록 술자리를 함께 한다고도 하고 또 어느날은 술을 빌려 달라고 오기도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요....."
어두운 그늘이 잠깐씩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대체로 밝은 표정이어서 그런 행동을 할 여자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그 젊은 선생들과 썸씽도 만든다고 하는 소문도 있어요. 사실 윤약사의 눈이나 행동을 보면 좀 섹시한 부분도 없지는 않잖아요 ?"
"네 ?"
당혹 자체였다. 그럴 리는 없었다. 내가 들여다 본 그녀의 눈에는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
"헛 소문이겠지요 ? 그럴리가 없습니다. 절대 그럴리가요 ?"
"어 이과장이 윤약사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이예요 ? 강력히 부인하는 것을 보니"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쓸데 없는 것에 흥분을 했다. 그냥 운동이나 하다 가면 되는 데 아침부터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갑시다. 공도 잘 안맞고 시간도 거의 되었으니. 김과장님 신과장님 그만 들어 가십시다."
저쪽 코너 쪽 타석에서 치고 있던 다른 과장들을 불러 들어 갈 준비를 했다.
하과장의 차를 타고 병원에 들어 오니 8 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김과장과 신과장은 씻는다고 먼저 들어가 버리고 나와 하과장이 간단히 요기를 하러 식당에 들르니 이미 당직 간호사 등 몇몇 직원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맛있는 토스트 냄새가 코 속으로 스치면서 후각과 위장을 자극했다. 냄새 때문이겠지만 갑자기 허기가 들어 후라이팬이 달구어져 막 소시지와 계란 후라이가 익고 있는 테이블에 끼어 앉았다.
"어서 오세요. 이과장님. 하과장님 앉으세요"
수술실 간호팀들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그네들과는 종종 수술 때문에 부딪혀서 인지 낯을 많이 가리는 내게 비교적 낯이 덜 설은 직원들이었다.
운동 후 아침에 구워 먹는 토스트가 맛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알았다.
마음을 좀 다잡을 생각도 있었지만 운동을 시작한 게 목표 체중 65 kg에 허리 둘레 32 인치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조찬을 매일 먹다보면 살이 도리어 찔 것 같았다. 한입 한입 먹는 음식이 그대로 몽땅 흡수되어 살로 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