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떤 보호자 분이 진료실에 들어 와서는 대뜸 의료 보험증을 제 앞에 놓고 펼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님 보험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딸만 셋을 두었습니다. 저는 장손이라 아들을 낳아야 하기 때문에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애를 낳아야 합니다. 그런데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형편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 더 이상 아이를 여럿 낳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니 원장님께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비방을 꼭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이분 말고도 딸이나 아들을 골라서 낳을 수 있기를 바라는 분들이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과거에는 아들을 낳기 위해 돌부처의 코를 갈아 먹는 사람이 많아서 어지간한 절의 돌부처 중에 코가 성한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아들을 여럿 낳은 여인네의 속곳을 입으면 아들을 낳는다든가 하는 등 여러 가지 전통적인 속설들이 있지만 다 미신적인 것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얼마 전에는 젠더 초이스라고 해서 손목에 기초 체온을 측정하는 온도계를 달아서 체온을 체크하여 아들이나 딸을 골라 낳을 수 있게 한다고 과학의 허울을 써서 사람들을 현혹한 방법도 있었습니다.
즉 아들을 낳게 하는 Y정자가 산성에는 약하고 알칼리성에 강하며 X정자는 Y정자보다 산성에 강하므로 배란 직전에 질점액이 상대적으로 알칼리성이 높을 때 성관계를 하면 아들이 임신될 확률이 높고 배란일로부터 멀수록 산성 점액이 되므로 딸이 임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이런 이론에 근거하여 부부 관계 전에 소다수로 질을 씻어서 질점액을 알칼리로 만들어 준다거나 알칼리성 식품을 먹어서 여성의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만들어 준다거나 아니면 알칼리성이 높은 배란액이 나오는 오르가슴 직후에 사정을 하면 아들이 임신 될 확률이 높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 역시 모두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좀더 과학적인 모양을 띤 방법도 있었습니다.
소위 프랑스식 아들 낳는 비법이라고 하는 "셀나스 법’ 인데 프랑스의 세포 생물학자인 패트릭 쇼운 박사가 개발했다는 방법입니다.
이 이론은 난세포막이 서로 다른 기간동안 "+"와 "-" 극성을 띠는데 난세포가 "-"를 띠면 난자는 Y염색체하고만 수정이 되고 반대인 경우에는 X염색체하고만 수정이 되므로 난세포의 "극성주기"를 알면 딸, 아들을 구별해 임신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극성은 여성의 혈액형과 생년월일이나 초경을 시작한 해 등 몇가지 생체 지표를 이용하여 알아 낸다고 합니다.
물론 이 방법도 지금은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져 한때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가능성을 인정 받고 있는 방법은 가축 번식에 사용되던 방법인 마이크로소트 법입니다.
1990년대 초에 로렌스 존슨이라는 사람은 동물의 정자를 분류해서 새끼의 성별을 미리 결정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존슨의 방법은 X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유전물질을 더 많이 갖고 있어서 Y염색체를 가진 정자보다 더 크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정자를 염색한 뒤 여기에 레이저 광선을 쏘면 Y염색체를 가진 정자보다 X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더 밝게 빛나므로 밝게 빛나는 X염색체 정자를 골라 내어 수정을 시키면 딸이 된다는 원리였습니다.
이 방법은 남자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유전적 질병을 피하여 딸을 낳기 위하여 도입되었지만 비용이 일회 시술에 2500달러로 많이 들고 딸인 경우 예측률이 93%로 높지만 아들인 경우 73%로 낮다는 단점이나 그 외 윤리적으로 악용될 가능성 등을 안고 있어서 현재 대중화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첫번째 아이의 남녀 성비는 100:109 인데 반하여 세번째 아이 이상의 경우 남녀 성비는 2003년 통계 수치로는 137:100으로 심각할 정도로 남자 아이의 수가 훨씬 많은 상태입니다.
이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남아 선호 사상이 뿌리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현상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자녀를 하나만 낳아 기르려고 하는 풍조가 맞물려 요즘도 가능하다면 아들을 골라 낳을 수 있기를 바라는 부부가 많습니다.
아직까지 원하는 성별을 낳는데 있어서 믿을만한 방법이 없는 현실에서도 이러할 진데 만일 그런 분야에서 효과적이고 저렴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난다면 그로 인해 어떤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딸 아들을 골라 낳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인 관점을 떠나 국가 사회 또는 인류 전체로 볼 때 매우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연의 조절 작용에 비하여 인간의 조절은 훨씬 열등하여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과거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