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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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님의 시 "옛날의 그 집"

인기지수 2 2225번 조회2013-12-26 14:04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위 시는 대하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작가의 시 입니다.
오늘은 문득 이 시의 글귀가 마음에 밟히는군요.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야 마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마음이나 감정은 뜻대로 쉽게 버려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 버려야 할 것들이니 그런 것들에 둘러 싸여 하루하루 아등바등 하면서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요.

좋군

와우

하품

나빠

뭐지

통과

답글쓰기 답글 (3 개 답글)

답글 땅콩산모 2013-12-26 14:14
고양이를 좋아하실 것 같진 않지만... 왠지 원장님니 그리시는 노년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답글 땅콩산모 2013-12-26 17:05
들려드리고 싶은 좋은 시 한 편 적고 갑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답글 동네주민 2013-12-26 18:53
감정은 마음대로 버릴수 있는건 아니지만
내가 버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버려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좋은 감정은 물론이고 힘들었던 감정이라도 지나고 나면 가끔 아쉬울때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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