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오비 산부인과

제목: 화가의 자화상 10--난해한 미술가, 파블로 피카소 [프린트]

글쓴이: 심상덕    시간: 2014-05-06 12:28
제목: 화가의 자화상 10--난해한 미술가, 파블로 피카소
1994년인가 EBS 방송에서 미국의 화가 "밥로스"가 나와 멋진 풍경의 유화를 아주 쉽게 그리는 방법에 대하여 방송을 한 적이 있었는 데 아주 인기를 끌어서 그가 개발한 붓과 물감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를 그리는 방법이라든가 전원 풍경이나 호수의 풍경을 그리는 방법을 매우 쉽게 설명하면서도 그림을 흡사 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경쾌하게 그리는 것을 보고 그림을 저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감탄했던 기억입니다.
아니 감탄을 떠나서 어느 정도는 충격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한때는 아주 잠깐 그림을 그린 적이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란 내면 깊이 웅크리고 앉은 에너지를 어렵게 쥐어 짜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화가는 그림이 일반인들과 괴리되어 전문적인 애호가나 화가들만의 전유물로 남게 된 이유는 다른 분야와 달리 회화에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잔가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고 불리우는 그림들처럼 그림의 작품성을 떠나서 보아서 그저 즐겁고 잘 그렸다고 판단되면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엄격한 틀에 의해서 이런 분야의 것들은 매도되고 다 거세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그림이나 음악이 주로 왕이나 귀족을 위하여 만들어 졌던 그대로 이제는 전문적인 애호가나 화가들만의 전유물로 남게 되고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너무 어려운 높은 곳으로 가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그림의 예술성과는 별개로 피카소라는 화가를 매우 싫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만든 데 크게 기여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 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추상화는 좋지 못한 그림이고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사물을 그리는 극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추구하는 화가의 그림만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형태와 원근 등 여러 부분에서의 파괴로 피카소의 그림을 일반인이 보고 바로 이해하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와 같이 평범한 일반인에게 있어 피카소의 후기 그림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 이외의 다른 느낌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그것을 작품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 감상자가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부끄러워 하게끔 몰아 가므로써 많은 사람을 그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피카소 스스로 "나는 왕이다"라고 말했다지만 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또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만 좋아하면 된다는 오만이 느껴집니다.

나는 아비뇽의 처녀라든가 게르니카 등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후기 그림들을 좋아 하지 않으며  그래도 그가 젊은 시절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고 다른 이에 대한 배려가 묻어 나오던 시절의 그림은 그런데로 좋아하는 편입니다.
오늘은 그의 자화상 몇개를 실어 보는데 맨위의 그림은  1901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20 세로 하층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의 참상과 고독감을 테마로 삼은 시기의 그의 자화상입니다.
그때는 연료가 없어서 자신의 그림을 태워 몸을 녹이면서 다른 사람들께 인정 받고 싶어 했던 시기로 흔히 피카소의 청색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입니다.
맨 마지막의 그림은 후기에 아프리카의 가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형태를 재조합하면서 큐비즘에 깊이 빠져 있던 시기인 1972년에 그린 그의 자화상입니다.
흔히 피카소하면 떠오르는 이상한 얼굴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기의 그림인데 여러분은 어떤 그림이 느낌이 더 잘 오나요 ?

물론 나의 이런 생각이 옳고 유일한 견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림이란 그림을 그리는 그 사람 자체의 내적 에너지의 분출이라는 측면과 함께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하여 제작되는 것인 만큼 감상하는 사람을 당혹케 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대다수의 사람이 당혹을 느껴야 하는 그림이라면 그래서 역시 그림이란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오해를 주게 하는 것이라면 그런 그림을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

모든 예술이 어느 정도의 데포르망(Deformation, 여러 종류의 변형과 왜곡으로 기존의 틀을 벗어나 감정과 사상의 자유로운 해석을 유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예술성이란 이미 예술로서의 가치 중에서 공감이라고 하는 큰 부분을 상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고 싶습니다.
우화의 내용이야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임금님은 벌거벗은 상태로 아무 옷도 입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정말 그런 옷이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할때 옷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벌거벗고 있는 임금님의 모습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 권위를 갖추어야 하는 임금님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 당혹보다는 오히려 외면을 해야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리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입는 사람과 극소수의 옹호자 이외에는 그렇게 외면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런 옷은 당연히 좋은 옷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피카소의 그림도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무언가 다른 의미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는 실패한 그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그림을 볼때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철학서를 통독하고 역사를 이해하고 분석적 입체파라거나 종합적 입체파라거나 하는 것이 무언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만이 그 의미가 다가온다면 미술 또는 음악이라고 하는 것들이 처음에 태어날 때의 목적으로부터는 이미 많이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피카소의 그림을 볼 때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내 눈에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를 보면서 그가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심오한 고통과 민중의 저항을 호소하고 싶었는 지 아니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아직 내 눈에는 그런 신비한 옷을 볼 안목이 없어서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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