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시 나이가 40세가 넘어가는 임산부께서 다른 산부인과에서 임신을 확인 한 후 오늘 우리 병원에 처음 방문했다. 토요일이기는 하지만 대기 산모가 없어 기다림 없이 바로 진료를 하였다. 그러나 내 대응 방법이 잘못된 탓에 기분이 매우 상하신 채 진료도 안 받고 가버렸다. 한 20분인가 30분 쯤 후에 화가 많이 나서 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사과를 요구했다. "40세가 넘는 노산이라 임신 출산에 따르는 위험이나 기형 발생의 위험이 다소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 병원보다는 대학 병원에서의 산전 관리와 출산을 권하고 있는 편입니다. 오셨으니까 일단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 검사를 먼저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그저 의학적 사실을 말씀드렸던 것이지만 노산, 기형의 위험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내 말이 문제가 된 것이다.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씀도 드렸다. 자주는 아니지만 내가 인격적으로 미숙한 탓에 그리고 내 말투가 사람 감정 상하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탓에 일년에 한두번쯤 겪는 일이다.
참고로 출산시 임산부의 나이가 만 40세가 넘는다고 해서 모두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노산 (원래 노산은 35세 기준이나 나는 40세를 전원 기준으로 하고 있다)에 따르는 위험이 있을 수 있어 대학병원에서의 출산이 바람직하지만 저희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자 하시면 중간에 대학병원으로 갑자기 전원하게 될 수 있는 점등 소규모 병원이 가진 한계에 대한 설명 후 산전 관리 및 출산을 저희 병원에서 원하시는 분들은 진료를 맡고 출산도 돕고는 한다.



신생아 사망율이나 모성 사망율이 과거보다 대폭 낮아지기는 했지만 출산 관련하여 예상치 않은 부작용의 발생 사례는 아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출산으로 초래되는 위험이나 원치 않는 악결과는 항상 예측 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확률적으로  노산이나 기존에 임산부가 가진 질병 등 출산 관련한 고위험 요인이 많을수록 후유증이나 부작용의 발생 확률이 높다.  물론 고위험군이라고 해서 반드시 후유증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는 고위험 산모라도 순산을 하거나 순산을 하지 못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더라도 후유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하여 일반 임신부들께서든 고위험 요인이 한두개 쯤 있는 임산부들께서든 이 글로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다. 괜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글 처음에 적은 임산부 분의 사례처럼 과도한 두려움이나 걱정을 끼치게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저 출산에 대하여 조금 더 관심을 가지시고 필요한 준비와 대비를 하여 위험한 상황을 피하시도록 돕고 싶은 것 뿐이다. 그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고 대학 병원에 있는 다른 의사일 수도 있다. 만일 내가 다른 의사에게 진료 받기를 권하고 다른 곳에서의 출산을 권했다면 경험에서나 기타 부대 조건의 측면에서 그것이 그 임산부께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산부께 좋은 결과는 내게도 좋은 것이고 임산부께 나쁜 결과는 내게도 나쁜 것이다.

임산부와 산부인과 의사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다. 다만 일부 의사들은 그저 눈 앞에 당장 보이는 이익 즉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임산부라도 더 확보하여 돈을 벌고 싶은 욕심, 자연분만보다 쉽게 수술을 결정하여 분쟁의 위험을 아예 피해가고 싶은 유혹에 굴하는 사례들이 있어 의료 환경이 상당히 혼탁해졌다. 어느 병원이 좋은 병원이고 어느 병원이 나쁜 병원인지 알기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최종의 수호자는 자기 자신이다. 의사는 조언자이고 조력자일 뿐이다. 어느 의사의 말에 신뢰를 두고 들을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같은 길을 두고도 그 길에 전혀 위험이 없다고 말하는 의사가 있고 그 길에 위험이 있지만 조심하면서 가면 된다고 하는 의사도 있고, 그 길은 위험하니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의사도 있다. 어느 치료법이 혹은 어느 병원이 자신에게 제일 안전하고 좋은 길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살면서 많이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는 어떤 선택으로 하여 이득을 얻는 사람과 조언을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살펴 보고 만일 같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것이 좋다. 수술을 꼭 해야 하는지 궁금할 때는 수술을 담당하지 않는 의사의 의견을 묻고 노산이든 다른 고위험 요인이든 자신이 가진 위험이 대학 병원을 가야하는 것인지 동네 의원을 가도 되는 것인지 궁금할 때는 출산을 담당하지 않을 다른 의사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그 의사에게 그리 득이 될 것이 없는 조언이라면 믿을만한 조언일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의사라면 원칙과 양심에 따라서만 조언하고 의료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의료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져서 양심적 진료 행위만으로는 의사도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지다보니 모든 의사들이 원칙에 따른 진료만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이다.
물론 대부분의 조건들이 무리가 없이 적당해서 내가 출산을 도울 수 있게 된다면 좋겠고 그런 분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진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출산 연령이 높아져서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수준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줄어든 분들 가운데에서도 별 고위험 요인이 없어도 소규모 의원을 택하기 보다 대형 병원을 택하는 분들이 많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이 사회에 기여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은 길게 남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곳 홈피의 어느 글에서인가 쓰기도 했지만 위험성이 있을 수 있는 출산을 앞둔 분들께 내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것이다.
"위험이란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있을 수 있는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에 불과하고 위험할 것이 없지만  위험에 대하여 전혀 가능성도 두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으면 위험은 현실이 될 수 있으므로 정말 위험하다."

의료도 서비스 중에 하나이고 찾아오시는 환자 혹은 고객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음식점에서 손님이 요구하는 것에 맞게 주방장이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의료 서비스는 다르다. 그렇다면  의사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하여 내 개인적 생각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의사란 환자 혹은 산모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아니며 때로 위안과 위로도 필요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거짓의 위안보다 환자 혹은 산모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꼭 들어야 할 말을 자신에게 생기는 득과 손해에 좌우되지 않고 말해 주는 사람이다."
즉 환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의료 서비스라는 의미다.

역시 이해를 돕기 위해 객관식으로 준비해 봤다.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신이라면 다음 중 어느 의사를 선택할 것인가?
1. 무슨 성분인지 모르겠고 검증된 바는 없지만 어떤 풀뿌리를 끊인 물을 주고 한달만 먹으면 완전히 낫는다고 장담하며 혼자만 가진 비방의 방법이라 비싸다고 하면서 약 혹은 치료법을 권하는 의사.
2. 치료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완치 사례도 사실 적기는 하지만 현재 효과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검증된 사례가 있는 이 치료법에 대하여 희망을 가지고 부작용을 함께 이겨나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자고 하는 의사.
3. 이 병은 전혀 부작용이 없는 치료법은 없고 상당한 부작용에 치료 성과는 아직 많이 미흡하여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안타깝지만 괜히 돈 낭비하면서  병원에서 고생하지 마시고 가족들에게 알리고 하고 싶은 일 하시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는 의사.
4. 나는 이 병에 대하여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치료가 쉽지는 않은 병이다. 이 병에 대하여 잘 아시는 분을 소개해 드릴 터이니 너무 상심 마시고 가시어 진료를 받아 보시고 치료 여부를 선택 하라고 하는 의사.

1,2,3,4 항목을 여기서 보면 답은 금방 보인다. 병이 정말 어떤 예후를 가졌는지 좀더 알아 보고 경제력과 여러 사정들을 놓고 고민해 봐야 하겠지만 2, 3, 4번은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도 있는 답이지만 최소한 1번 의사는 답이 아니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실에서 자신에게 이런 문제가 닥치면 1번 의사를 오답이라고 배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의사의 말이 더 정확한 것 같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일반인들도 그럴진대 병에 걸려 상심이 큰 환자 입장에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과거에는 의사가 적고 병원 이용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의사의 수도 많아지고 한집 건너 병원일 정도로 병원도 적지 않다. 의사의 절대 다수가 부족했던 시대에는 의사가 없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과거에 비하여  의사와 병원이 대폭 늘어난 지금에도 적절한 진료와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과잉 진료나 무성의한 짧은 진료, 오진, 의료 분쟁에 대한 글은 조금만 시간을 들여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찾기 어렵지 않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의사나 병원은 숫자가 너무 적으면 독과점에 의한 폐해가 크다. 반대로 의사나 병원이 많으면 과당 경쟁으로 인해 필요 없는 과잉 진료가 생겨나게 된다. 의료가 일반 경제 상품과 다르고 적정 수준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런 특성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어느 정도의 의료인의 수가 적정한지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적정 수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사의 절대수가 많은지 적은지에 대하여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정부는 적다고 하고 의료계는 많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절대수가 모자란 것보다는 지역별 편중이 심해 대부분 병원이 대도시에 있고 지방에는 상대적으로 병원이 적은 것이 더 문제다.  대형 병원과 소규모 동네 의원 간에 의료 전달 체계(동네 의원에서 다루기 어려운 중증 질환의 경우에만 의사의 진료 의뢰서를 받아 대형 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환자나 산모 마음대로 대형 병원을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제도. 많은 의료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며 우리나라도 명목상으로는 있지만 유명 무실하여 실제 효력은 없다.)가 무너진 탓에 동네 의원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대형 병원은 과중한 업무로 적절한 진료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물론 적절한 진료는 어떤 것인지, 과잉 진료는 어디까지인지 객관적 기준은 없다. 나아가 좋은 의사는 어떤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리고 과연 그런 의사들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항상 그렇지만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하여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친절한 의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불친절하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평이한 성격이 아닌 까칠한 성격을 가진 의사인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위의 4가지 문항에서 2번이나 4번에 해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당신은 어떤 의사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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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원장님처럼 담담하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해주시는 분이 더 믿음이 갑니다! 우리 병원 오기전에 후기를 많이 읽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간 부분도 있어요 헤헷  등록시간 2018-05-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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