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퍼즐 이야기로 시작해 봅니다.
작은 종이 조각으로 이루어진 퍼즐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텐데 퍼즐의 배경으로는 웅장한 군함이나 비행기이거나 아니면 멋진 풍경인 수도 있지만 유명한 그림 작품이 배경인 것이 제일 많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것은 불과 이삼십개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도 있지만 복잡하게는 100 개나 300 개 씩으로 아주 정밀하여 단숨에 맞추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한 500 개 정도 되는 것은 며칠 또는 몇십일 씩 걸리기도 하고 아예 짜 맞추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더군요.
이렇게 힘든 퍼즐을 맞추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당연한 것이지만 완성된 그림을 얻고자 하기 때문은 아닐테고 맞추고 나서의 희열 때문이겠지요.

왜 갑자기 퍼즐 이야기를 하냐구요 ?
오늘 이야기하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시중에서 파는 많은 퍼즐의 배경 그림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
아닙니다.
물론 그의 그림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화려하고 오밀 조밀한 배경 때문에 많은 퍼즐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퍼즐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림의 감상이라는 것도 퍼즐하고 비슷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던 그림도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개인사와 그림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이나 그림과 얽힌 에피소드를 알고 나면 퍼즐의 조각이 맞추어 지면서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듯 그림도 조금은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점이 비슷합니다.
이러한 감상 태도는 주로 평론가들이 하는 것이겠지만 이름을 붙인다면 분석적 감상 태도라고 해야 하겠지요.

반면에 그림을 그 자체로서 즐기고 처음에 받은 강렬한 인상 그대로 간직하는 것은 즉흥적 감상 태도라고 이름 붙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두 용어는 제가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이지만 그림은 종류에 따라 즉흥적 감상이 어울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분석적 감상이 어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화가의 그림이 분석적 감상의 대상인지 아니면 즉흥적 감상의 대상인지는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
대체로 고전주의, 인상주의 등 전통적인 작품들은 한번 보는 것으로 그 그림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흥을 충분히 얻기 때문에 즉흥적 감상에 어울리는 편입니다.
굳이 역사적 배경과 개인사를 모르더라도 고흐의 그림에서는 굵은 붓터치와 노랗고 파란 원색의 색깔에서 대부분의 감상자가 강렬한 고독이랄까 그런 인상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나 현대적인 작품 쪽으로 내려오면서 입체파니 표현주의니 허무주의 또는 초현실주의니 하는 부류의 그림들은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나 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선뜻 무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그림들은 분석적 감상에 적당하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보는 사람에 따라 한 작가의 같은 작품이라도 즉흥적 감상의 대상이 될 수도, 분석적 감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를 가진 상태에서 오늘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적인 작품인 "키스"를 살펴 봅니다.
대체로 그의 그림에 나오는 남자는 자화상이 아닐지라도 그의 분신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 대부분이라 이 그림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즉흥적 감상으로는 밝은 색체와 기하학적인 무늬의 나열 그리고 꽃과 제목 그대로 키스하는 여자와 남자의 모습 때문에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나요 ?
그래서 퍼즐의 배경이나 아니면 무슨 선물의 포장지로 써도 좋을 것 같은.
제게는 그렇게 보였는 데 다른 감상자도 그리 다르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반대로 그림이 발생한 태생적 배경에 대한 지식과 그림 자체의 의미에 대한 분석을 통한 감상을 시도해 볼까요 ? 
구스타프 클림트는 미술 사조 상으로는 빈 분리파라고 불리는 화가중의 한 사람입니다.
빈 분리파가 어떻게 형성되고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졌는 지는 여기서 이야기할 성질은 아니며 다만 분리파라고 하는 그룹은 전통적인 미술에 대하여 일종의 반란적인 성격으로 탄생된 유파라고 알고 있으면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새로운 경향은 항상 기존의 제도와 양식을 허물고 부정하는 가운데 생겨 나는 것이다 보니까 기존의 견해나 고수자들로부터는 거부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그림도 당시에는 퇴폐적인 그림으로 치부되어 악평을 받았습니다.
베를린 분리파인 에드바르드 뭉크가 "하수구의 예술"이라고 악평을 받았던 것과 비슷합니다.
여성이 자위 하는 그림이라든가 남녀의 성교 장면 등 그가 그린 많은 성애 그림을 보면 에로티시즘과 포르노의 구분이 모호한 것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의 개인사를 살펴 보면 그런 그림이 탄생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모델들에게 금전적으로 후하게 대우해 주면서 작품의 모델로서 뿐 아니라 실제로 성적 대상으로도 삼았으며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여러명의 사생아를 낳았는 데 사후에도 친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림 자체를 살펴 보면 꽃들이 핀 벼랑에 남녀가 진한 포옹을 하고 있으며 여자의 얼굴 표정이나 꼬여있는 오른쪽 손가락의 모습을 보면 여자는 상당히 황홀한 순간을 보내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우측에 있는 천인지 무언지 노란 후광 같은 부분은 전체의 짙은 갈색 배경과 뚜렷이 분리되어 인물과 한 덩어리로 보면 둥그런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그것은 남성의 성기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남자의 머리털 모양도 그렇고 여자의 치마 부분에 흡사 음모처럼 죽 늘어진 노란 장식 실 같은 것도 그냥 보아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분석을 통한다면 그는 아마도 그의 다른 많은 그림에서 표현한 데로 남녀의 성적인 만남을 통한 희열의 순간을 표현하고 싶어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희열에 사로 잡힌 남녀 간의 성애에 대한 표현, 단순히 그런 의미 뿐이었을까요 ?
여기서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할 다른 사실은 여자는 얼굴 표정에서 손가락 또 다리나 허리의 윤곽 등 여러 부분들이 매우 정밀하게 묘사된 반면에 남자는 얼굴도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몸통이나 다리는 어디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이며 그저 머리 때문에 남자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로 밖에 표현되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 환자의 심리 상태를 짐작해 보기 위하여 자유스럽게 그림을 그려 보도록 할 때 외면하고 싶거나 두려운 대상은 작게 그리거나 구석에 그리며 또한 불분명하게 생략하여 그린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의도한 것이었든 아니었든 이 그림에서 남자는 여자에 비하여 덜 화려하고 덜 분명하게 그려졌으며  따라서 그는 아마도 평생 어머니라고 하는 품을 벗어 나지 못하여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그의 인생에서 남자라는 것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괴로워 한 것 같습니다.
남자의 경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관계를 갖게 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클림트는 그  많은 성애 그림을 통하여 그리고 실제 생활 속에서의 문란한 성생활을 통하여 자신에게 결핍된 남성성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

이런 관점에서 그림을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
그림을 보면서 조금은 낮뜨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왜소한 한 남자의 몸부림 같은 것도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

어떻게 느꼈거나 당신의 자유입니다. 
왜냐하면 미술 작품은 다큐멘터리나 제품 설명서가 아니니까요.
물론 도덕책도 아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을 보고 퇴폐적이다 아니다 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보고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도데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만 아니라면.

아래 사진은 Moriz Naehr라는 사람이 찍은 실제 클림트의 모습입니다.
그의 많은 그림들과 너무 안 어울리는 얼굴이죠?
예술이란 그런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뚝뚝하기만 저와 같은 사람도 포근하고 닭살스러운 그림을 그려 남기지 말란 법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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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산모 [2014-05-06 14:38]  
#2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5-06 15:14 |이 글쓴이 글만 보기
클림트의 사진을 보니 정말 '홀딱 깬다'싶습니다 ㅋㅋ
삼국지에서 묘사하는 '장비'와도 닮고,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허풍을 일삼으며 다소 폭력적인 '테너가수'의 이미지(오직 제 개인적인 의견)와도 겹쳐서 재밌네요 ㅋㅋㅋ

에곤쉴레와 더불어 워낙 대중적인 화가이다보니 저도 클림트의 작품 중 '여인의 세 시기'란 그림의 한 조각 (모성애 가득한 엄마가 아기를 안고있는 그림)을 가지고 있어요.
클림트가 누구인지도 모르던 20대 초반에 광화문 교보문구에 책보러 갔다가 강렬하게 눈에 띄어 비싸지도 않은 9900원에 나무카피본을 구입한거랍니다 ㅎㅎ
그저 보고만 있어도 맘 편해지고 마치 절 위로하는 듯한 그 그림..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자궁속이 그리워요..' 이런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오곤 해요.
십년넘게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끈임없이 위안과 격려를 주었다고 볼 수 있지요!
'격정적인 희노애락'과 마주하기 두려워(그래서 또 전 '여인의 세 시기'중 노년의 여성 그림은 보기도 싫습니다.  프리다 칼로와는 대조적인 성격이란 걸 아주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ㅠㅠ) 아기갖길 꺼려했던 제게 임신을 하기까지 적지않게 영향력을 행사한...100원 모자란 만원짜리 그림이었죠^^

'외설'이 나오니 에곤쉴레의 작품이 자동으로 떠오르는데요... ^^;
영화'그랜드 부다패스트 호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도둑맞은 명화작품 자리에 슬쩍 몰래 걸어놓은 에곤쉴레의 대표작 중 한 그림(자위하는 여성 - 실제론 에곤쉴레의 그림을 패러디한 누드화입니다 ^^)을 보곤 수치스러워하며 부수어버립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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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덕 [2014-05-06 15:17]  
#3 심상덕 등록시간 2014-05-06 17:34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땅콩산모 2014-05-06 15:14
클림트의 사진을 보니 정말 '홀딱 깬다'싶습니다 ㅋㅋ
삼국지에서 묘사하는 '장비'와도 닮고, 술과 여자를 ...

실물 사진 보니 완전 깨죠?
아마 제 글을 보는 사람도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ㅎㅎ
근데 영화를 좋아하시는 줄은 알았지만 엄청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는 처음 듣는 이름의 영화도 빠삭하게 꽤고 계시니..ㅎㅎ
여하튼 클림트의 작품이  주원이가 탄생하게 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앞으로도 그의 모사품이라도 고이고이 모셔 두셔야 할 듯.....ㅎㅎ
#4 동민 등록시간 2014-05-07 01:11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말씀대로라면 전 상당히 즉흥적 감상태도를 가지고 있군요. 고전명화 뿐만 아니라 텍스트가 중요한 컨템퍼러리까지 ㅎ 좋은 작품은 보는 순간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든,더럽고 추한걸 표현했든 상관없이 말이죠.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운이 있어요 ㅎㅎㅎ 그래서 어떨땐 말과 글로만 떠드는 평론가들을 그닥 좋아하지 (실은 종종 ㅋㅋㅋ) 않기도 합니다. 그들 또한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글빨이 서고 본인들이 알고있는 편협한 지식을 과시하는데 용이한' 작업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추천받은 작품만이 최고인것처럼 권위가 실리기도 하지요.

클림트의 키스는.. 엉뚱하게도 학부 1학년때 교양영어 강좌에서 이야기한적이 있네요. 그림을 보고 뭐가 떠오르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뜬금없이 여자가 스컬리 닮았다고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엑스파일 빠순이인 저는 뭐든 멀더 아님 스컬리 였어요. 둘다 남자, 여자로서 제 이상형이었으니 ^^)

여성편력이 화려했던 인물치고 대단한 미남은 그닥 없었던것 같은데 ㅋㅋ 클림트의 상의 어깨부분에 그려진 무늬도 뭔가 의미심장 하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어떻게 제 마음을 아셨을까! 색깔도 그렇고 딱 커피콩이죠? ㅋㅋㅋㅋㅋㅋ  등록시간 2014-05-07 01:26
상의 어깨라...역시 예술가답게 관찰력이 뛰어나군요. 의미심장이라...커피빈 생각나네요. ㅋㅋ  등록시간 2014-05-07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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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덕 [2014-05-0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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