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적인 통계로는 2018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97명이라고 한다. 부부 한쌍이 평생 낳는 아이가 1명이 채 안된다는 의미다.

“내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도착해서 달의 대지에 발을 디디면서 맨 처음에 했다는 말이다. 달 착륙은 지구라는 행성에만 머물러 살아온 인류의 활동 공간이 우주라는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달 착륙은 지금도 진실을 놓고 공방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도약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큰 도약의 밑 바탕에는 닐 암스트롱을 포함한 우주 비행사들의 기여, 나사의 수많은 연구원과 기술자들의 노력, 재정을 지원한 미국민들의 희생 등 무수히 작은 한 걸음 한 걸음들이 있다.


“한 개인에게는 작은 선택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퇴보다.”
이 말은 닐 암스트롱이 한 말과는 정반대의 의미의 말이지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없다. 이런 사례는 이미 역사에서 숱하게 보아 왔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말할 가치도 없어서일 것이다. 나치 시대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게 던진 한표 한표들은 그 자체로는 별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그 총합이 그를 독일의 리더로 만들었다. 히틀러에 의해 초래된 2차 세계 대전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고 인류의 역사를 한참 후퇴시켰다.
정반대의 두 문장을 서두에 꺼낸 이유는 얼핏 봐서는 의미도 없어 보이는 개개인의 작은 행동들이 나중에 역사의 물줄기를 전혀 다르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물론 그 결과는 도약일 수도 있고 퇴보일 수도 있다. 충분한 세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 작은 하나 하나의 행동들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게으른 사람들이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과학이 발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나는 게으름보다는 호기심에 의하여 과학이 발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세탁기나 로봇 청소기 등 가전 제품을 보면 그런 주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그러므로 상당한 부분에서 과학은 선과 악과 관계없이 게으름의 산물이다.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는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노벨상을 만든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도 돌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도 쓰이지만 인간을 살상하는 전쟁 무기로도 쓰인다.  대체로는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과학이나 문명의 발전이 선한 방향 (물론 인간에게 선한 방) 쪽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선한 쪽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출산율이 제일 적은 나라는 홍콩, 싱가폴, 그리고 우리나라다. 우리나라는 2018년 합계 출산율이 잠정적 통계지만 0.97명으로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1.0 미만인 나라가 되었다.  반면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로는 니제르, 말리, 우간다 등이 있는데 모두 아프리카 국가들로 합계 출산율은 7.0 안팎이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는 그 나라의 경제 사정과 문화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피임율의 차이다. 피임법의 대표적인 방법은 먹는 피임약이다. 피임약의 발명은 최근 100년간의 의학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의학 발전의 하나로 꼽힌다. 피임약의 개발 덕분에 여성 그리고 남성은 부양의 의무를 져야 하는 출산을 하지 않고도 성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항생제는 물론이고 피임약이나 콘돔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먹여 살릴 경제력이 없으면서도 피임을 할 줄 몰라서 많은 아이를 낳는 일이 굉장히 많다. 피임법이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피임을 하여 적정한 가족수를 유지하려고 하거나 심지어는 출산을 하지 않고 자기 발전에 힘을 쏫는 경향이 있다. 출산을 할 지 말지 선택을 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피임을 해서 아기를 적게 낳거나 아예 낳지 않은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많은 아이를 낳은 부부나  아이를 예닐곱명씩 낳은 우리 부모 세대가 잘못을 했다고 비난 받아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출산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권리이며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만 출산을 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국가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런 사람도 낮은 출산율로 국가와 사회가 퇴보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꼭 낮은 출산율이라고 해서 국가와 사회가 퇴보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저출산의 결과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 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저출산 환경에 장기간 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위에 말한 것처럼 충분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작은 것들의 총합이 끼치는 결과를 알기 어렵다.  피임약의 사용은 분명히 개인에게 실보다는 득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인류 전체에게도 현재까지는 실보다는 득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일부 국가에서는 저출산 때문에 걱정이기는 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가 적정 인구인지에 대하여는 정답은 없기 때문에 지금의 저출산이 정말 국가적 위기인지 아니면 인구 구조에 있어 새로운 파라다임을 만들어야 하는 전환점에 놓인 것뿐인지 아직 알 수 없다.

나는 앞으로 인류가 얼마나 더 존속할지 모른다.  혹시 멸종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지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겠다. 공룡의 멸종에 대하여 그런 가설이 있지만 혜성 충돌로 초래된 급격한 변화로 인해 사멸할 것 같지는 않다. 당장은 아니지만 수십년 뒤에는 과학이 발달하여 그런 현상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그런 사건에서의 대응 방법과 관련한 선택은 몇몇의 정치가와 과학자들이 하기 때문에 결정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 피임이나 난임은 혜성처럼 급격히는 아니지만 수백년 혹은 수천년이 지나면서 인류 멸종 혹은 거의 멸종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 수천년 먼 미래의 일까지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여하튼 피임과 같은 것은 개개인마다 자신의 생각이 있고 그런 개인의 생각을 어떤 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빅브라더처럼 독재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일은 소설에서나 가능하다.
나는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이 부디 긍정적인 쪽으로의 변화가 되어서 적은 인구로도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한 국가의 출산율을 끌어 올리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다. "소수의 사람을 오래 속이기는 쉽다. 다수의 사람을 잠깐 속이기도 쉽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는 말처럼 다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그것도 피임이나 출산과 같은 아주 사적인 영역에서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인권의 침해로까지 여겨질 수 있다.  
나치 시대 독일 국민들의 한표 한표로 뽑은 사람이 히틀러가 아니고 미국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링컨 같은 리더였다면 아마 독일 국민들이 세계인 특히 유대인을 대하는데 있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을 초래하게 된 개개인의 선택이 국가가 쪼그라들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쪽이 아닌 쪽으로, 적은 인구로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 지는  쪽으로의 긍정적 변화이기를 소망한다.

초저출산 현상을 단기간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초저출산이 미래에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질 수 있도록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제 다시 인류에게서 피임약을 빼앗을 수는 없다. 피임약을 선택하고 말고 할 권리를 빼앗을 수도 없다. 피임약이 있음에도 피임을 하지 않도록 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은 피임을 해서 아기를 낳지 않거나 한명 (합계 출산율이 0.97이니 거의 한명임)만 낳게 되어 현재 인구의 반 이하가 되어도 국가 사회가 건실하게 유지되도록 만드는 일 뿐이다. 과거 두명 혹은 세명이 해야 할 일을 이제는 혼자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당장 육아에 대한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은 나이든 부모에 대한 부양이나 혹은 경제력이 없는 노약자, 빈곤층에 대한 지원과 부담을 두배로 더 져야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들처럼 아주 장난스럽게 표현하자면 0.97명의 초저출산이라는 말은 내가 놀 수 있는 공간이 두배로 늘어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넓은 땅을 나 혼자서 깨끗히 청소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개인의 작은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도약일지 퇴보일지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다. 선택과 책임, 귄리와 의무. 그 둘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인식하고 대비한다면 최소한 퇴보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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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akoo [2019-04-12 23:08]  한개 [2019-01-26 00:27]  navi3561 [2019-01-25 09:04]  pavese [2019-01-25 00:45]  박선주 [2019-01-24 13:54]  podragon [2019-01-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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