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브로 서점에 갔다가 비싸서 평소 살까 말까 한참 고민하던 트로이카 가죽 지갑을 결국 샀다. 손바닥 두 장 정도의 크기 지갑이 9만원 정도면 여성들의 핸드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남성용 장지갑으로서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사실 이것 말고도 돈과 카드를 넣는 지갑은 선물 받은 것도 있고 두어 개 가지고 있지만 휴대폰과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 만년필 등 자잘하게 가지고 다니는 것들을 담을 지갑이 마땅치 않았다. 주머니에 넣으니 주머니가 축 처지고 걸려서 걸을 때 불편했다. 회사원처럼 서류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가방을 들고 갈만큼 대단히 멀리 갈 회사도 없다. 원래 이 지갑은 여행자들이 여권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지갑을 목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퍼 고리도 비행기 모양이다. 나야 여권을 가지고 여행을 갈만한 형편이 아니니 지갑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을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났다. 거의 매일 책상 위에서 뒹굴 팔자이고 어쩌다 콧바람 쐬는 것은 멋진 외국의 바닷가나 하다못해 제주도 유채 꽃밭도 아니고 그저  종이 냄새만 풀풀 풍기는 서점 일테니 말이다.  그래도 내 자동차에 비하면 지갑은 행운아에 속한다. 대단한 곳은 아니라도 주인과 함께 돌아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차는 한달에 한번도 콧바람을 쐴 일이 없다. 콧바람은 커녕 먼지만 뒤집어 쓴 채 어두컴컴하고 좁은 병원 주차 타워에 갇혀 공포와 따분함에 몸서리를 치는 신세다. 얼마전에는 병원 주방을 도우러 일요일에 잠깐 나오는 아내와 차를 타고 근처 공원으로 드라이브 하려고 근 두달 만에 차를 타워에서 꺼내 시동을 걸려 했더니 아무 반응이 없다. 그동안 어둠과 먼지에 찌들다 지쳐 삶을 마감한 모양이었다는 아니고 카 센터에 전화해 보니 오래 시동을 안 걸어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그럴 것이라고 한다. 차를 타는 외출을 오랫만에 하려던 나들이는 덕분에 롯데 시네마의 곤지암 영화 관람으로 바뀌었다. 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참 운도 없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께서 용하다는 점집에서 사주 팔자를 보고 오셔서는 내게는 도화살과 구설수와 역마살이 있다고 하니 매사에 조심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도화살은 여자를 다루는 산부인과를 택했으니 어느 정도 맞았다고 할 수 있고 구설수도 말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많으니 그 또한 그리 틀린 것 같지 않다. 역마살에 대하여는 여행 다니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으나 직업이 직업인지라  팔자대로 살을 풀면서 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여행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나중에 내가 책을 내는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내 주장을 강요하는 철학책 종류이거나 신세 한탄 같은 에세이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의학 정보를 주는 책을 낼 가능성도 조금은 있겠지만 지식이 짧아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두번째 책을 낸다 해도 여행기는 절대 아닐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여행이라는 단어를 갔다 붙일 수 있는 두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갔던 것은 학창 시절의 강제적 여행 즉 수학 여행을 빼면 총 5번 뿐일 정도다. 제목에도 썼다시피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니므로 각각의 여행에 대하여 짤막하게 코멘트만 남긴다.

첫번째: 제주도
아내와 함께 신혼 여행으로 갔다 온 곳이다. 12월 추운 겨울에 갔었고 숙제를 하듯 여기저기 열명 정도의 단체 여행객과 함께 다녀서 그리 달콤한 기억은 없다. 제주도야 그 시절에는 대체로 많이 가던 신혼 여행지였으니 뭐라 할 수 없겠지만 신혼 여행을 달콤하게 (?) 둘만 다니지 않고 싸다는 구실로 여럿이 함께 승합차 타고 다닌 것은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다. 겨울인데도 비가 내려서 계속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시절 일텐데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두번째: 인도네시아 발리
친구 부부와 함께 4명이 함께 갔던 여행이다. 20년 전 쯤 잘 하고 있던 병원을 접고 쉬는 동안 재충전 삼아 떠난 여행이다. 미래도 결정 된 것이 없고 먹고 살 일도 막막하여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지는 못한 여행이었다. 여행을 가서 그곳이 즐거우려면 즐거운 마음이 우선이어야 한다. 전에 영국 어느 신문사에서 지방 소도시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여행 방법에 대한 퀴즈를 낸 적이 있었는데 초등생 정도의 어린이가 일등으로 당첨되었다고 한다. 어린이가 써낸 답은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한다. 발리 여행은 친구 부부와 함께였으나 내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였으니  비터스위트는 아니고 스위티비터 쯤 되겠다.

세번째: 중국 광저우
산부인과 의사회 활동을 하던 때 유방 연구회를 이끌면서 회원들과 함께  중국으로 유방 조직 검사 연수를 위해  간 여행이었다. 가서 배운 것은 별로 없지만 희망에 들떴던 탓인지 나름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관광은 특별히 한 기억은 없고 우리나라 이태원과 비슷한 곳으로 짝퉁 만드는 가게들이 즐비했던 지역을 방문했다. 거기서 아내의 선물로 짝퉁 불가리 시계를 10만원에 사왔다가 하루 만에 고장이 나서 아내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좀 더 저렴한 것이라도 진품을 사다 주지 못할 망정 짝퉁이라니. 그 광저우는 지금은 짝퉁 제조의 불명예를 넘어 서서 세계 최대의 아이폰  제조 공장인 폭스콘이 있는 도시가 되었다.

네번째: 인도 꼴까타
한때 동업자로 일하던 최안나 선생님과 함께 교회에서 가는 의료 봉사단에 합류해서 간 여행이었다. 난 교인이 아니고 최안나 샘도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 카톨릭이었지만 아는 선생님의 권유로 어찌어찌 하여 가게 된 여행이었다. 가서 일주일 내내 진료 보조만 하다 왔다. 정작 진료는 최안나 선생님만 하였는데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이라 여성의 부인과 진료를 남성이 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진료가 없는 날 하루 시간을 내어 인도의 하층민들의 마을도 둘러 보고 테레사 수녀께서 잠들어 계신 곳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호스피스 병동 같은 죽음의 집을 둘러 보았다. 인도에서 놀랐던 것은 가난에 찌들어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행복에 넘쳐났다는 뜻은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가난에 찌든 이들의  얼굴에 서린 분노와 절망감은 없었다.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윤회 사상의 힌두교의 힘 때문일까?

다섯번째: 미국 위싱톤과 뉴욕
낙태 근절 운동을 위해 미국의 March for life 행사에 참석할 겸, 우리나라의 낙태 현실도 알릴 겸 역시 최안나 선생님과 함께 갔던 여행이다. 물론 최안나 선생님의 두 자녀도 함께 갔었다. 최안나 선생님의 큰 따님은 적극적이고 욕심도 많아 미국의 뉴욕을 그야말로 씹어 먹을 듯이 다녔던 기억이 나서 체력이 딸리는 내 몸이 많이 고생한 여행이기도 했다. 회한도 많고 설렘도 많았던 여행인데 그때 뉴욕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한번 볼 것을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돈도 부족했고 영어 대사도 못 알아 들어 최안나 선생님과 두 자녀만 들여 보내고 나는 극장 입구 언저리에서 빈둥거렸었는데 지나고 보니 조금 후회가 된다..

젊은 시절에는 꿈이 컸고 잭 런던의 말처럼 먼지가 되기보다는 재가 되기를 바랐다. 태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것보다는 비록 작은 주전자의 한줌 물보다 하찮은 무엇이었더라도 뜨겁게 데우고 가는 삶이고 싶었다. 아직 끝난 이야기는 아니니 기회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찻잔 정도의 커피나 데울 수 있는 에너지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는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유, 더하여 마음의 여유도 없으니 멀리 여행 가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여섯번째 여행이 있다면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모시고 가는 여행일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연세는 점점 많아져 걸을 수 있는 정도의 건강도 아마 일이 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파리 지옥에 빠진 파리처럼 나는 밥벌이라는 이름의 끈끈이에 묶여 있는 처지이니 마음 편히 다녀 오는 여행이 남은 생애에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간절히 소망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은 후회로 남아 인간의 남은 평생을 괴롭히는 존재가 된다. 간절히 소망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 중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도 있기는 했겠지만 이제는 가물가물하고 자식들에 대하여도 간절한 소망은 없다.  아내에 대하여도 이미 마음을 많이 비운 탓에 일년에 몇차례씩 가는 등산 여행에 대하여도 뭐라 토를 달지 않는다.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모님에 대하여만 간절한 소망 하나 있을 뿐이다.

남은 길보다는 지나온 길이 긴 나이가 되었다. 50년 이상 살면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데 두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을 분량이다. 그렇다고 그리 편안한 길도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만큼 대단히 치열하게 살았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드라마가 아니라도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이들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지 않다. 서점에 넘쳐나는 자전적 에세이를 보면 정말 다들 재미있고 치열하게 사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의 저자인 김보통은 자신의 책에서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지만 이름마저 보통인 김보통도 내가 보기에는 보통의 삶을 산 것은 아닌 듯 싶다. 뭐 이름대로 삶이 살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삶이 이름대로 살아진다면 이 세상의 모든 주기자 씨는 다 감옥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끔찍하다. 여행 이야기하다 보니 맥락없이 이름 이야기까지 왔다. 여하튼 이 글은 여행기는 아니니 상관은 없지 않을까? "제주도부터 뉴욕까지 들먹여 놓고 여행기가 아니라면 그럼 이 글은 뭡니까?" 하고 묻는 분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도 잘 모르니까. 그래도 굳이 정의를 원한다면 글쎄 신세 한탄 글 정도라고 해두면 적당할 듯. 그래도 제목에 신세 한탄이라고 쓰기는 좀 처량 맞아서.ㅠㅠ

음악은  꿀꿀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 "외로운 양치기" 다.


lonely_shepherd.mp3

3.62 MB, 다운수: 167

댓글

중국에도 가셨었네요! 중국에서 유학하며 세계 각국 친구들 많이 사겼는데, 인도 아이들의 세계관이 독특하긴 하더라구요~  등록시간 2018-05-0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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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eeun [2018-05-09 06:51]  podragon [2018-05-07 12:33]  hanalakoo [2018-05-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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