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 드는 게 좋다. 이상하게 젊을 때부터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땐 막연히 나이가 들면 희로애락에서 벗어나고 여유가 있어지지 않을까 싶었고. 지금 이 나이(71세)가 편안하고 좋다. 세월이 지난 후의 더 초췌해진 모습도 전혀 두렵지 않다. 미국 생활은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새치가 넘치고 화장도 하지 않는다. 이번 컴백 기자회견도 메이크업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주최 측이 야단을 쳐서 머리만 조금 염색했다. 나이 들어 잡티나 주름살이 생기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헤르만 헤세가 그랬듯이 나무가 나이테가 생기듯이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 좋다.”
이 글은 박인희 씨가 2016년도 국내에 들어와서 컴백 무대를 갖고 나서 중앙 선데이와 인터뷰 한 내용 중 일부이다.
박인희 씨가 2016년도에 컴백하면서 KBS "불후의 명곡"에 나와 자신의 히트곡 중 하나인 "끝이 없는 길"을 부르는 모습이다. 박인희 씨가 20대 때 부른 노래를 들었을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녀가 나이 든 탓이거나 아니면 내가 나이 든 탓일 것이다.
(영상이 플레이가 안되면 원본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bXcZJjG6Zsk 으로 가서 보시길.)
“이 책에 있는 몇 편의 글을 읽었다고 해서 낙태 문제에 대하여 진실을 깨닫고 많은 사람이 혹은 정부 당국자가 쉽게 생각을 바꾸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가 책으로서는 마지막 페이지이지만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불가능해 보였지만 가능하게 된 모든 것은 그것이 가능하게 되기 직전까지는 불가능한 것에 대한 무모한 도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열정이 물을 끓일 정도의 섭씨 100도까지는 안 되도 계속 노력한다면 결국 ‘따뜻한 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동안 낙태를 근절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려가면서 걸어온 길은 짧지 않다. 그러나 연간 낙태 34만 건이 우리가 가는 길의 끝일 수도 없고 끝이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스캇펙 박사가 가치 있는 인생을 위해 쓴 『아직도 가야할 길』의 한 구절을 옮기면서 내 짧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긴 발걸음을 시작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4가지 기술은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는 것, 책임을 자신이 지는 것, 진실에 헌신하는 것, 그리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내가 2011년도에 낸 책 "낙태와 낙태"의 마지막 페이지에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는 소제목으로 실은 글이다.
박인희 씨가 그 노래를 불렀을 때 인생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 길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나는 길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제목의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삶이든 낙태 근절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든 내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는 길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고 끝이 없는 길도 없다.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육아도 언젠가는 끝나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진통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끝난다. 그렇게 끝난다는 사실이 어떤 경우에는 위로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아쉬움이 될 것이다. 한때 불같이 사랑했던 연인도 언젠가는 거리에서 스쳐 지나도 알아 보지 못할 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든 염색체의 끝에는 텔로미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텔로미어는 유전 정보가 없어 별다른 기능은 없지만 유전 정보를 가진 나머지 염색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노화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가 한번 복제할 때마다 그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다가 일정 회수의 복제가 끝나면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된다. 인간의 경우 보통 60번 정도가 복제 한계라고 한다. 텔로미어가 다 없어지면 해당 염색체는 보호막이 없어진 탓에 손상을 입고 사멸하게 된다. 이를테면 자동차 바퀴의 타이어와 같은 역할이다. 타이어가 다 닳으면 자동차는 더 이상 달릴 수 없고 휠로만 달린다면 결국 정상적인 주행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텔로미어가 정상적으로 줄어 들어 세포가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에도 불구하고 텔로미어가 줄어 들지 않아서 끝 없이 복제가 가능한 세포가 있다. 바로 암세포다. 암세포는 무한히 증식해서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주변의 세포들을 잠식해 버린다. 암으로 인해 건강과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은 이렇게 정상 세포가 쫓겨나고 암세포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암세포 중에 최초로 실험실에서 증식에 성공한 세포가 있는데 헬라 세포 (HeLa cell)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라는 31살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하고 나서 조지 가이라는 박사가 그녀의 자궁 경부암세포를 채취하여 증식을 시켰다. 그녀의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이 헬라 세포는 의료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세포로 이 세포를 이용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암 연구와 치료 방법의 개발에 많은 기여를 한 헬라 세포는 1951년에 채취하여 증식에 성공하였으니 현재 나이가 67살 쯤 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 증식을 해 나갈 것이다.
위 사진은 헬라 세포주의 모습이다.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은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끝나는 때가 온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일 것이다. 아직 삶을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젊은 말기암 환자도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아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 힘들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여 모든 질병에 대하여 치료법이 개발되고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 시대가 되었을 때 과연 그것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사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도, 아프지 않으면서 잠깐 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질병으로부터 벗어나서 영원히 살 수 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다. 죽음이 없는 세상이다. 빨간 알약을 먹으면 질병이나 사고로 혹은 노화로 인하여 100년 이하의 삶을 살다 죽게 되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살할 수도 있다. 죽음이 있는 세상이다. 위와 같은 가상의 약이 정말 개발이 된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약을 먹게 될까?
끝이 있다는 것. 그것이 신 혹은 자연이 생명체에게 준 선물인지 아니면 벌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선물인 것 같다. 햇빛이나 공기나 물 등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받은 대부분의 것들이 선물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하루의 끝인 잠도, 인생의 끝인 죽음도 선물처럼 생각된다. 문득 영화 은교에도 나오는 대사지만 시인 로스케가 한 말이 생각난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비록 선물이라 해도 나는 죽음을 당장 앞당겨 받고 싶지는 않지만 잠이라는 선물은 물리도록 받고 싶다. 어제도 한밤에 와서 새벽에 출산하는 산모가 있어 잠을 거의 못 잤는데 밤 3시인 지금 양수가 파수되어 입원한 산모가 있다. 오늘은 얼마 쯤의 편안한 잠이 내게 주어질지 모르겠다. 두세 시간? 아니면 길게 다섯 시간 쯤? 삼신 할미만 아시겠지……
평소에는 잘 안 쓰는 단어이지만 이 글에는 특별히 써본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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