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중에는 만년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다. 학창 시절에는 쓰기 편한 장점 때문에 주로 볼펜이나 하이테크 C, 마하펜과 같은 수성펜을 주로 썼다. 지금이야 대부분 노트북에 강의 내용을 입력하거나 디카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들었는데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그런 문명의 도구가 없었다. 특히 의과 대학 강의는 필기량이 엄청 나게 많아서 어떤 친구들은 소형 녹음기로 녹음했다가 다시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나는 졸필이기는 하지만 필기를 빨리 하는 편이라 노트에 내용을 빠짐 없이 적는 편이었다. 빨리 적기 위하여서는 만년필보다는 BIC 볼펜 같은 속기용의 굵은 볼펜이 편하다.
만년필에 대한 내 기억은 상당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6촌 형이 당시 유명하던 파카 만년필을 선물해 주어서 받았던 것이 최초의 만년필이다. 당시에는 파카가 만년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시절이고 쉐퍼인가하는 독일 회사의 것도 유명했다. 지금은 파카나 쉐퍼 모두 쇠락하여 인기가 없다. 만년필은 그뒤에도 장인어른께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나지만 내가 만년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남다 보니 그리고 의료 제도 관련하여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 많다보니 최근 몇년간 여기저기 글을 많이 썼다. 요즘이야 열정도 식고 바다에 돌던지기 같은 느낌으로 지치기도 하여 글을 거의 쓰지 않지만 한동안 글을 쓸 때는 매일 한편 이상의 글을 썼다. 내게 있어 글쓰기란 주로 자판을 이용하여 컴퓨터에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노트에 필기를 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만년필이나 그외 여러 종류의 펜들에 관심이 쏠렸다. 요즘에야 필기를 한다고 해도 별 의미도 없는 낙서를 끄적거리는 것 뿐 대단한 문장을 쓰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쓸 때는 필기구가 마음에 안 들면 속 옷 안에 들어와 있는 머리카락처럼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내 느낌대로 말하라면 글을 쓸 때의 느낌은 잉크를 찍어 쓰는 딥펜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딥펜은 수시로 잉크를 찍어서 써야 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한번에 일필휘지로 문장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쓸 수가 없는 필기 도구다. 그래서 딥펜 다음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 만년필이었다. 다만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형편도 안되다 보니 몽블랑이니 펠리칸이니 하는 비싼 만년필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비교적 저가의 만년필을 몇자루 가지게 되었다. 저가의 만년필로는 국내에는 라미 만년필이 인기가 높다. 나도 라미 만년필을 두자루 정도 가지고 있다. 나는 특히 데몬 만년필이라는 종류에 관심이 많은데 데몬이란 데몬스트레이션의 약자로 속이 비치는 투명 만년필을 말한다. 데몬 만년필도 세일러 등 일제의 고가 만년필도 있지만 국내에는 아주 저가지만 성능은 괜찮은 플래티넘 사의 프레피 만년필과 파이로트 사의 쁘띠 만년필이 잘 알려져 있다. 라미에서도 데몬 만년필이 나온다. 얼마전부터는 모나미에서도 올리카라는 제품명으로 2000원대 가격의 만년필을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올리카는 여러 종류의 색깔이 카트리지 형식으로 나와 있고 어지간한 문구점이나 서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생긴 모양은 아주 이쁜 편은 아니지만 플래티넘사의 프레피보다는 디자인은 다소 나은 듯 싶다. 필기감은 프레피보다 한수 아래다.
나는 물건을 살 때 성능과 가격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물건을 고르다 보면 디자인이 약간씩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로고나 글씨를 지운다거나 약간 가공을 하여 내 취향에 맞게 개조를 한다. 물론 그렇게 개조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다. 올리카 만년필도 가격이 아주 마음에 들고 필기감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두어자루 구입을 했다. 그러나 디자인이 2% 부족했다. 올리카 만년필은 초기에 나온 것은 전체가 잉크의 색에 따라 색이 반투명하게 들어가 있고 나중에 나온 것은 투명 케이스에 잉크의 색에 따라 중간 그립 부분에 색깔이 들어가 있다. 난 그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 그립을 제거하고 아래처럼 바꾸었다. 캡에 있는 브랜드 이름도 페인트 리무버로 지워 버렸다. 이런 투명 그립을 따로 파는 것은 아니고 두툼한 스카치 양면 투명 테이프에 한쪽 면은 얇은 투명 스카치 테이프를 붙인 것이다. 물론 사이즈에 맞게 오리고 하는 것이 좀 번거롭기는 하지만 투박한 색깔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여하튼 만년필로 글씨를 쓸 때의 사각거리는 느낌은 가끔 피곤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문구점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만년필을 기웃거리게 되고 펜이나 문구 관련 서적들은 거의 다 사서 보기도 한다. 아이러브 펜슬 [http://ilovepencil.com] 같은 인터넷 문구 사이트에도 들러 종종 들러 글도 읽고 승진문구 [http://www.munguland.com/]같은 온라인 문구 쇼핑몰을 들러 아이 쇼핑도 한다. 캘리그래피나 펜화를 동영상 강의로 제공하는 손그림 그리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__tlrPrBbQmRoMfklI3qXQ]라는 유튜브 사이트도 종종 들린다. 시간 보내기에 괜찮다.^^ 병원에서 매일 지내다 보니 무료한 저녁 시간을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시청으로 때우는데 직원들이 나보고 드라마 그만 보고 운동하라고 눈치를 준다. 그렇게 드라마 중에 볼만한 게 없을 때는 문구 싸이트가 딱이다. ㅎㅎ
아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투명 만년필들이다. 좌측부터 원래의 올리카 파랑, 개조한 올리카 검정, 프레피 검정, 프레피 빨강, 파이로트의 에르고그립, 타치가와의 스쿨G펜 검정, 스쿨G펜 세피아다. 플래티넘 사의 밸런스 만년필은 6만원인가 주고 샀는데 얼마전 잃어버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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