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골 아픈 사례들이 있어 좀 피곤하군요.
양수 과소증이 있어 걱정했던 산모는 진통중 결국 심한 태아 심음 저하증이 나타나서 소아과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대학병원으로 전원하여 출산했습니다.
산모 분이야 건강하신 분이니 괜찮겠지만 아기도 회복 잘 하고 있나 모르겠네요.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는 곳이 전쟁터와 같아서 함께 가 있는 한두시간 동안 저도 걱정도 되고 피곤도 하였는데 산모와 보호자분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마음을 졸였겠지요.
날씨도 쌀쌀해 신촌 로터리를 터벅터벅 걸어 오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었다는 이야기는 먼저글에서 쓰기도 했었죠.
아기가 예상 체중이 4kg가 넘어 난산이 될까 걱정했던 유도분만 산모는 산모께서 힘을 잘 주어 이틀전 4.06kg의 여아를 쉽게 순산은 했으나 예상치 않게 아기가 호흡이 빠르고 청색증이 다소 보여 역시 대학병원 신생아실로 전원하였습니다.
검사 결과 아기 폐에 구멍이 나는 기흉이 있었다고 하는데 난산도 아니었는데 왜 기흉이 생겼나 모르겠습니다.
소아과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런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하는군요.
산모분은 오늘 퇴원하였고 아기도 지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니 며칠 후면 퇴원해서 엄마를 만나겠지요.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이틀째 유도분만하던 산모는 결국 자궁문이 2cm에서 더 이상이 진행이 안되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조금 전에 하였습니다.
출산후 아기가 움직임도 좋고 피부색도 좋고 다른 건 아무 이상이 없는데 울음 소리가 시원치 않아 보호자분들과 상의하여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진통을 어제와 오늘 반나절 하기는 했지만 양수에 태변 착색도 없고 하여 크게 걱정은 안 했는데 우렁찬 울음 소리를 들려주지 않는군요.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은 인큐베이터가 모자라서 보내기 쉽지 않아 세브란스 병원, 여의도 성모병원, 이대목동 병원, 성애병원 등 주변 지역에 소아과 의사가 상주하는 곳을 이곳저곳 알아 봐야 합니다.
아기를 전원하려고 소아과 담당 의사한테 병력을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죄인스러운 기분으로 받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손한 말투가 됩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공손한 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ㅋㅋ
아직 점심은 먹지 못하였지만 119를 타고 산모나 아기를 전원 보낼 때는 항상 의료진이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이송하고 방금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아기가 별탈없이 잘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제 밤에 출산한 산모는 아기가 3.6kg로 그리 큰 편도 아닌데 워낙 산모가 탈진되어 난산이 되어 힘들게 자연분만했습니다.
당연히 흡입기의 도움도 받기는 했지만 제가 산모의 복부를 누르면서 출산을 가까스로 해 내었습니다.
덕분에 온몸은 땀에 젖었고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삭신이 쑤시는군요.
산부인과 의사하는 이십여년간 분만실 직원들의 힘이 모자라 제가 직접 산모의 복부를 눌러야 했던 난산 사례는 이번을 포함해서 딱 두번이었습니다.
아기 상태는 무사할 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기는 호흡이나 울음 소리는 정상이었습니다.
소아과에 전원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고 정말 신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삼일동안 벌써 매일 한번씩 3번이나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갔다 왔는데 응급실 전원이 그리 흔히 있는 일이 아니라 일년에 한두번 갈까 말까 한데 요즘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입원 산모만 골치 아프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며칠전에는 외래 초진으로 온 산모분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장문의 원망 메일도 받고 포털 사이트에도 저랑 관련된 글도 올라가게 되었군요.
진료 받기 전 외래 직원의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했을때 좀 부담스러운 점이 있어서 대학병원에서의 진료를 권했던 분인데 제 응대 방식이 잘못되어 감정을 상하게 한 모양입니다.
상담과 진료 시간을 합해 30분 내지 40분 정도가 소요 되었지만 악감정이 들지 않게 하는 것에는 결국 실패한 듯 싶습니다.
워낙 제가 까탈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말도 냉정하게 하는 편이라 상처를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
그러나 제가 저를 찾아 오는 모든 산모분들의 출산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산모분들께서 마음에 드는 의사를 골라 출산을 맡기는 것처럼 의사들도 비록 대놓고 그럴 수는 없어서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서 말하긴 하지만 부담스러운 산모나 환자들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그런 케이스는 드물긴 합니다만.
여하튼 부담스럽다는 내색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턱(ㅎㅎ)을 넘어 진료를 계속 담당하게 되는 경우에는 저는 이전의 선입견은 잊고 의사로서 제 최선을 다합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 오히려 다른 분들보다 더 성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문턱을 넘지 못한 분들이 포털 사이트에 올려 놓은 글을 볼 때는 제가 거의 철천지 원수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더군요.
그저 한번 상담이나 진찰을 한 것 뿐이고 저희 병원이 마지막 병원이라 갈 병원이 없는 것도 아닌데. ㅠㅠ
더군다나 글들을 보면 저에 대해서 아주 잘 아시는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저도 저를 잘 모르는데..ㅎㅎ
요 삼사일 동안 여러가지로 좀 피곤했는지 결막염인지 눈에 뭐가 났는지 한쪽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고 몸의 컨디션이 상당히 안좋습니다.
전에는 지금처럼 한 삼사일 연속 밤잠도 설치고 신경을 썼어도 그럭저럭 견딜만 했는데 나이가 든 탓인지 이제는 몸도 마음도 쉽지가 않습니다.
아내에게는 일이 너무 힘들어 더 못할 것 같다고 하소연해 보지만 통하질 않는군요.
편의점을 운영하든 아님 멀리 깡촌의 보건지소에 취직을 하든, 다른 걸 하고 싶다고 말해도 제 능력에는 못할 거라고 합니다.
정 지방에 간다면 함께 갈 생각 없으니 가고 싶으면 저 혼자 가서 죽을 때까지 혼자 자취를 하든 하숙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ㅎㅎ.
병원 개원을 현재 아내 소유로 되어 있는 저희 집과 처가집을 담보로 빌린 자금과 신용 대출로 했으니 아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ㅠㅠ
병원을 그만두면 일부 빚인 수억원은 바로 갚아야 하거든요.
진퇴양난이라고 하는 건 이런 것이겠지요?
일할 날도 얼마 안 남은 처지에 빚을 져 가며 계속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이 나이에 며칠 밤낮을 새워가면서 일하고 항의도 듣고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얼마 안되는 산후맘 분들의 격려와 성원 덕분에 근근이 버티고 있으나 이제는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둘째 아들놈 생일이라 모처럼 지방에 있다가 올라와 가족 모임으로 점심인지 저녁인지 먹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퇴근해야겠습니다.
4일만에 들어가는, 점점 낯설어지는 집이지만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곳.
그 집에서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 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깨어나지 말기를,
다시 깨어나더라도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기를,
다시 산부인과 의사더라도 주제에도 맞지 않는 개업의사는 아니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 빌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