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밥장이라는 분이 쓴 책 2권 "밥장, 몰스킨에 쓰고 그리다"와 "밤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보다 보니 내용도 비교적 지루하지 않고 일러스트도 괜찮아서 그 작가가 쓴 나머지 두 책도 살 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습니다.
병원 앞 헌책방에는 찾는 책들이 없더군요.
하나는 "떠나는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인데 떠나는 이유는 교보문고에도 매진되고 없어서 1권만 사서 왔습니다.
솔직히 한권만 산건 아니고 다른 책 두권을 더 샀습니다.
읽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빚도 많다면서 왜 책을 그렇게 자주 사냐고 구박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사실대로 이야기하기가 좀 꺼려지기는 하네요.
하지만 솔직함은 제 장점이자 단점의 하나입니다.
그런 솔직함 때문에 상처도 많이 주고 상처도 많이 받지만. ㅠㅠ
함께 산 다른 책은 도시계획을 전공했으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이장희씨가 지은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와 EBS에서 방송한 것을 책으로 꾸민 "감각의 제국"입니다.
책을 읽는 속도의 거의 100배쯤의 속도로 책을 구입하니 읽지 못한 책이 자꾸 쌓여만 갑니다.
말로는 제가 맨날 내일 눈뜨지 말았으면 하면서도 무의식중에는 그 반대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을 책도 많고 할일도 많지 않냐고 은근히 하소연하면서 오래 살기를 꿈꾸는 것이죠.ㅎㅎ
설사 무의식이 그렇다해도 제가 알 도리는 없습니다.
또한 의식과 무의식이 상반될 때 어떤 것을 본마음 혹은 진심으로 봐야 하는지도 애매하고.
그나저나 헌책방을 발견했어도 교보문고에 발을 끊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원하는 책이 헌책방에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그러고보면 교보문고는 아내같고 헌책방은 친구같습니다.
아내는 내가 원하는 걸 당연히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고 친구는 기대하지 않던 즐거움을 우연히 준다는 점에서 말이죠. ㅎㅎ
그래서 그럴리는 절대 없겠지만 제가 죽을 때쯤 노제라도 지내는 유명 인사가 되어서 노제를 치른다면 광화문 교보문고 사거리는 꼭 한번 들르라고 유언해 두어야겠습니다. ㅎㅎ
건물 전면에 걸린 싯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요즘 걸린 싯구는 최하림 시인의 "봄"이라는 시중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봄"--최하림
영화 20도를 오르내리는 날 아침
하두 추워서 갑자기 큰 소리로
하느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외쳤더니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은 공기 조각들이
부서져 슬픈 소리로 울었다
밤엔 눈이 내리고 강 얼음이 깨지고
버들개지들이 보오얗게 움터 올랐다
나는 다시
왜 이렇게 봄이 빨리 오지라고
이번에는 저넌번 일들이
조금 마음이 쓰여서 외치고 싶었으나
봄이 부서질까 봐
조심조심 숨을 죽이고
마루를 건너 유리문을 열고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봄이 왔구나
봄이 왔구나라고
더불어 어느 한강 다리 밑 공원도 노제시 한번 들러야겠지만 그 이유는 비밀로 남겨 두겠습니다. 
이 글에 "좋아요"가 100개쯤 달리면 혹시 공개할 지도.ㅎㅎ
그런데 이번에 교보문고에 가보니 조금 바뀐 곳이 있더군요.
캐릭터 피큐어와 만화책을 진열한 곳이 생겼습니다.
요즘 만화나 일러스트가 뜬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하기사 얼마전 히트친 tvN 드라마 "미생"도 만화가 원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피규어와 만화책 코너에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 북적거린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제가 어릴 때는 만화책을 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학교에서도 공부 포기한 아이들이나 만화책을 보고 만화를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글보다 만화, 일러스트, 사진, 영상 같은 비주얼 데이터가 더 대우를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학창 시절에 만화책도 열심히 보고 만화도 그려보고 할 걸 그랬습니다.
그 쪽에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참고로 현재까지 제가 가지고 있다고 확인된 재능은 다음 몇가지입니다.
물론 재능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좋은 쪽의 타고난 재주나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 어법상 좀 맞지는 않겠지만.
1. 남에게 말로 상처 주거나 울게 만들기
2. 화나지 않았는데도 화난 것처럼 보이기
3. 발음을 우물거려 다른 사람이 못 알아 듣게 말하기
4.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 보지 않고 말해서 무시당한 기분 들게 하기
5. 아군 만드는데 쓰는 정성과 노력의 1/100로 적군 만들기
6. 앞뒤 안 가리고 빚내어 돈 쓰기.
마지막 재능이 재일 겁나는 재능이군요. ㅠㅠ
여하튼 제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범생이과라서 만화책을 보거나 만화를 그리는 재미는 즐겨 보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일러스트 쪽으로 나갔다면 지금 밥장이라는 분처럼 재미도 있으면 편안한 (?) 삶을 살았을까요?
물론 의과대학 다닐 때는 의학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은 적도 있었습니다.
의학 분야가 보기보다 일러스트들이 그려야 하는 이미지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메디컬(의학) 일러스트가 상당히 인기 있고 보수도 좋은 직업이라 한주에 수백명이 메디컬 일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아볼 당시에는 우리나라에는 그런 직업 자체도 없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혀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아, 얼마전에 보니 그런 일을 부업처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더군요.
이제 막 그런 일을 시작한 젊은 아가씨이기는 했지만.
여하튼 부러웠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을 하는 사람이라서.
20여년 전에 제가 그 분야에 발을 디밀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을까요?
미래는 알 수 없고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처한 현재의 순간에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그 길이 결국 그렇게 잘 맞는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더군다나 편한 길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해도 별 수 없는 일이죠.
결코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