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피아노, 만두, 산부인과에 관하여 말하려고 한다.
이 3가지 단어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 하신 분들이 있다면 다행이다. 궁금하지 않으면 글을 계속 읽을 동력이 확 줄게 될 뿐 아니라, 읽었다 해도 괜한 시간 낭비만 했다는 원망만 듣게 될 터이니. 이 세가지는 사실 별로 관련이 없다. 굳이 관련성을 따진다면 오늘 내가 접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이고 좀더 멋진 말로 포장한다면 모두 먹고 사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위 3가지는 일반 명사고 고유 명사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앙상블 슈, 등촌동 코끼리 만두, 진오비 산부인과.
일반 명사와 고유 명사의 차이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나에 대한 이야기처럼 그 구체성에서 차이가 난다.

오늘 책 한권 구경할까 해서라기보다 저녁 시간이 무료해서 내가 자주 가는 서점의 하나인 영풍문고에 들렀다. 마침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장난감처럼 생긴 아주 작은 피아노가 앞에 놓여 있었다. 작은 피아노로 몇곡을 들려 주는데 일반 피아노와는 음색이 많이 달랐다. 그랜드 피아노의 웅장함은 없지만 오르골과 같은 가벼움 혹은 상쾌함이 좋았다. 연주자 근처 서점 테이블에 앉아서 연주와 연주자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니 지방에서 올라와 자신의 연주를 홍보하기 위해 영풍문고에서 버스킹 한 것인 듯 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혹은 주말이면 펼쳐지는 홍대 길거리 공연 연주자들을 볼 때 과연 이 사람이 이 일을 평생을 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사나? 부모가 부자인가? 등등이 먼저 생각난다. 그런 점을 보면 나도 이미 생활에 찌들대로 찌든 아저씨가 된 것이 틀림없다. 물론 이 아가씨가 어느 날 피아니스트 조성진처럼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어 방송에서 얼굴을 보게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위 영상은 오늘의 연주자가 소개한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올려진 연주 모습을 퍼온 것이다.)



오늘 분만실 저녁 근무인 현경 샘이 방송인 이영자 씨가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만두 집에 만두를 사러 며칠전 새벽 6시인가에 갔다고 한다. 가게 위치는 강서구 등촌동이라고 하는데 집에서 가깝고 해서 간 모양이다. 그 집은 하루에 딱 100명 분만 판다고 한다. 이미 유명한 데다 유명세를 더 타서 간 날은 새벽 6시에 벌써 매진되어 정작 만두는 사지도 못했다고 아쉬워 했다. 그날 가장 일찍 온 사람은 새벽 3시에 온 사람이라고 주인이 귀띰해 주었단다. 애플 사의 신제품이 나오면 새벽 3시든 전날부터든 줄을 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만두 가게도 그런 곳이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만두만 그런 것은 아니고 지방의 어느 단팥 빵집도 유명해서 낮에 가면 다 떨어진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홍대 넘어 철길 근처에 김진환 빵집도 소보루와 식빵만 만들어 파는데 나오자 마자 매진된다. 나도 한번 먹어 봤지만 내 혀가 똥혀라 그런지 별 차이를 모르겠다. 참고로 재주 없는 손을 똥손이라고 하듯이 맛을 잘 모르는 것을 똥혀라고 표현해 보았다. 물론 내가 방금 만든 말이다. 그런데 똥손까지는 몰라도 똥혀는 좀 그렇긴 하다.

빵이든 만두이든 어떤 집은 잘 되고 어떤 집은 안되서 문을 닫는다. 이걸 좌우하는 것은 음식의 맛과 질, 가격, 접근성 등 여러가지가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접근성 소위 목이 중요하지만 요즘은 SNS 등 인터넷을 통한 입소문 탓에 과거보다는 목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해졌다. 결국 남는 것은 크게 봐서 맛과 재료의 신선함 등을 뭉뚱그린  품질과 가격 두가지이다. 그렇다면 병원이 파는 의료 서비스는 무엇으로 결정이 날까? 그 전에 일반인이 병원의 서비스의 질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감기 때문이던 무엇 때문이든 그동안 갔던 병원에 대하여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 있나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친철함, 가격, 출신 학교 정도는 아마 그리 어렵지 않게 알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까 유명하다는 만두 집에 대하여 주인이 혹은 종업원이 친절하다 아니다 하는 언급은 없다.  그러므로 제품의 질이 중요한 곳은 친절은 그리 중요한 평가 잣대는 아니다. 찾아온 손님에게 "뭐 쳐먹을라고 왔어, 이눔아."하고 욕부터 한다는 욕쟁이 할머니 가게도 대박이 났으니 그런 할머니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병원은 더욱더 제품의 질이 중요함에도 병원의 결정에 있어서는 병원의 규모와 친절한 정도가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규모와 같은 겉모습이나 친절이나 가격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이 제품의 질을 거의 알 수 없기 때문인 점이 클 것이다. 의료진에 대하여도 출산 학교 외에 다른 정보는 사실 거의 알 수가 없다. 어디서 어떻게 수련을 쌓았는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정도의 경험을 쌓았고 의료 분쟁이나 사고의 사례는 얼마나 되고 왜 사고가 났고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등은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병원이 제공하는 제품의 질에 대한 평가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 병원에 오래 근무한 지인이 있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질이 아닌 것으로 경쟁해야 하는 병원 운영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우리 병원과 같이 작은 규모의 병원은 경쟁이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원장도 친절은 고사하고 까칠하기만 한 의사임이랴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여 새벽부터 줄을 서는 복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거니와 그나마 오늘날까지 문 닫지 않고 열고 있는 것도 다행이라 하겠다. 어찌어찌 찾아와 주신 산모들 덕분이지만. 감사드린다.

글을 계속 쓰면 또 그 놈의 하소연 시작인가 하는  비난을 들을 듯 하여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다만 제목에 낚였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까 하여 부연 설명만 조금 보탠다.   토이 피아노에 대하여는 나는 오늘 처음 알았는데 다른 분들도 나처럼 처음 알게 된 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신기함 혹은 재미가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등촌동에 있다는 맛있는 만두 가게도 소개하였으니 새벽 5시에 졸린 눈을 부비면서 갈 수 있는 정도의 정성이 있으신 분들께는 좋은 정보가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규모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의사의 푸념을 들으면서  먹고 사는 것의 치열함에 대하여 잠시라도 고민해 볼 수 있었을테니 삶의 철학까지 더했다. 그렇게 한 글에 3가지를 담았다.
삭힌 홍어와 돼지 고기, 묵은 김치로 구성된 홍탁삼합도 서로 아무 연관이 없지만 사람들이 좋아해서 홍탁삼합이라는 한 묶음의 메뉴가 되었다. 이 글에서가 아니라면 토이 피아노와 만두와 산부인과는 그렇게 한 묶음으로 묶일 일은 없지만 내가 책을 다시 낸다면 이런 어거지 묶음이 아니라도 재미도 있고 정보도 있고 철학이 있는 책이면 좋겠다. 그러나 삶이 재미 없는데 글이 재미 있을리가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 삶은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출산을 돕는 것이 보람이 없지는 않지만 출산을 돕는 것이 재미 있다고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 삶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출산을 돕는 것이거나 출산하는 산모의 진찰을 담당하는 것이거나 그도 아니면 출산하는 산모의 순산을 걱정하면서 보내는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전에 홈피에 올릴 글을 아내에게 먼저 보여주면  하는 말이 있다. "당신 글은 재미가 없어. 올리지 마!"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난 아내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런 덕분에 다행히 홈피에 글이 얼마간은 쌓였고 불행히 훨씬 더 많은 빚도 쌓였다. 그러니 홈피 (혹은 드론이건 카메라건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가 더 중요한 분은 아내의 말을 무시해도 되고,  홈피보다 빚이 없는 게 더 중요한 분은 아내의 말을 잘 들으시길 바란다. 여하튼  글을 쓸 때면 난 항상 그게 궁금하다. 글재주를 타고 나거나 글쓰기 노력을 열심히 하면 삶이 재미 없어도 재미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는지......

toypiano.mp4

28.76 MB, 다운수: 173

댓글

원장님 글 너무 재밌어하는 1인 여기 있어요~ 근데 똥혀 라는 표현 너무 신박한대요? ㅎㅎㅎ 저도 써먹어야겠습니다 바로 저예요  등록시간 2018-05-10 12:05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rutopia [2018-05-10 21:44]  hanalakoo [2018-05-10 12:04]  satieeun [2018-05-09 04:06]  podragon [2018-05-08 13:10]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