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아이온 산부인과로 운영시 썼던 칼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왕절개율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매우 높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통상 10 % 나 20 % 전후 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30 % 에서 40 % 사이로 상당히 높습니다.
심지어 어떤 병원은 70% 내지 80% 까지 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병원의 경우 당시 어떤 특수한 상황이 있었는 지 알 수는 없지만 비정상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산모는 다니던 병원에서 도대체 자연 분만을 한 산모를 보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입원해서 보니 태어난 신생아 20 명 가까운 아기들 중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는 1 명 밖에 없더라고 하는 산모도 보았습니다.
이런 점은 아무래도 주변에 감시자가 적은 개인의원에서 좀 더 심한 경향이지만 규모가 큰 종합병원이나 대학 병원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제가 교과서에서 정해 놓은 대로 원칙에 준해서 철저하게 적용이 되는 경우에만 제왕절개를 시행해 보고 있는 데 약 10 %에서 20 % 수준으로 외국의 예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첫 아기를 제왕 절개로 분만해서 반복해서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산모를 제외하면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산모는 아주 소수임).
물론 제가 시도하고 있는 분만례가 그리 많지는 않으므로 제 경우를 다른 모든 경우에도 일반화 해서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예를 보면 제왕절개 수술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시행이 되고 있는 지 간접적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만삭의 산모인 데 탯줄이 아기의 목을 감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실을 산모에게 얘기하고 이런 경우에 자연 분만을 시도하는 것이 원칙이며 다만 흔치는 않지만 탯줄이 진통 중에 졸리게 되서 태아가 제대로 혈액 공급을 못 받으므로써 응급 제왕절개 수술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얘기드렸습니다.
그런 경우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어떤 교수님의 보고에도 한번 정도 탯줄을 감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아기에게 위험이 높은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산모는 주변에 아는 분들에게 문의해 보니 그런 경우는 모두 제왕절개로 낳았고, 낳아야 한다고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산모에게 제왕절개를 할 필요가 없이 자연분만을 시도하여도 된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데, 또한 자연 분만을 하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괜한 불안감을 없애는 데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꼭 탯줄 문제 뿐이 아닙니다.
아기가 아직 떠 있다는 둥, 골반이 좁다는 둥 여러가지 구실로 제왕절개를 유도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메스컴에 알려진 것처럼 경제적인 이유 (제왕 절개시 병원 입원 비용이 2 배 내지 3 배 정도 많이 듬)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주된 이유는 의료 사고에 따르는 부담감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환자가 내는 의료 비용의 지불은 사회주의 국가처럼 사회 보장적인 의료 보험에 따르면서 의료 사고시 병원이 피해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따라서 막대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모순때문입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사고시 발생하는 불법적인 행패, 진료 방해, 협박 등이 가장 의사에게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런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방어적 진료에 관해서도 물론 가장 큰 일차적인 책임은 의사에게 있습니다.
주변 여건이 어떠하건 간에 원칙을 지켜 나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하는 데 사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의사라고 하는 집단은 집단의 특성상 반사회적이고 도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이기 보다는 사회에 순응하고 피동적이며 과거 지향적으로 보수적이고 다소간 출세지향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틀내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높고 잘못된 제도라 하더라도 회피하고 우회해서 지나치려는 성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의사 집단의 이런 점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그 다음에 제도적인 문제에도 적지 않은 잘못이 있습니다.
의사 집단이 그런 우회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되게끔 경제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어떤 보호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 데 우리나라의 의료 제도는 전혀 그렇지를 못합니다.
어느나라 속담인가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하지요.
"배고픈 의사에게 진료 받는 환자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무슨 뜻일까요?
배고픈 의사는 양심에 따라 올바른 진료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의사에게 진료 받는 경우 필요없는 과잉 진료를 받게 될지 모른다거나, 배 고플 때는 사실 제 능력을 다 발휘하기 어려워서 오진을 하기 쉽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데 어쨋든 의사의 배고픔 (경제적 어려움)이 환자에게 득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같다는 위 속담은 우리나라에서 의료 정책을 입안하는 관리들 또는 경제학자 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 내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조건 의사를 많이 양성하면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의료의 질이 좋아지고 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습니다. 헛소리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악화 (즉 비양심적인 의사, 또는 어느 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의사라고 하기도 힘든 자)가 양화 (양심적이면서 또한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하는 좋은 의사)를 몰아 내서 점점 양심적으로 진료하는 의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과거 의료 보험이 없고 의사가 많지 않던 시절에 오히려 의사다운 멋진 존경스러운 의사들이 많았던 점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이렇게 의사가 넘쳐나는 세상에 옛날 보다 존경스로운 의사를 많이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다면 옛날 보다 질이 나쁜 사람이 의사가 되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우리의 속담도 있다시피 의사도 사람인 데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 정도는 해결이 되어야 남을 위하여 그만큼 배푸는 삶을 살기가 쉬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 분만을 시도하던 산모인 데 저녁 약속 때문에 그냥 째고 왔다. (제왕절개를 하고 왔다.)"라고 얘기하는 그런 의사들만 남는 세상을 당신은 상상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의사가 의사같지도 않은 사람으로 남게 될 때 (혹시 지금이 그 때는 아닌가?) 그런 의사인지 아닌지 당신은 구분할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좋은 의사는 관두고라도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의사가 많은 세상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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