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창천 교회 주차장에 세우고 길 건너의 카페 "거품"으로 올라갔습니다.
복도는 좁고 어두컴컴 했는데 흡사 장차 내 앞에 놓인 운명의 모습이 이럴까 생각했습니다.
아니 생각했는지 아닌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듯 싶습니다.
열기를 주체 못하는 젊은이들이나 밟을만한 계단을 오르는 일은 제게는 아침마다 수염을 깍거나 세수를 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만큼 익숙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그런 카페를 가는 것조차 생소했을 뿐 아니라 더군다나 마음에 둔 여떤 여자를 찾아가는 일이란 이전에 단 한번도 상상조차도 못 해본 일이었습니다.
아내와 연애하지 않았냐구요?
연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그런 곳을 가지는 않았습니다. 아내와는 크라운 베이커리만 갔습니다. ㅎㅎ
실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평범하고 조금 달달하지만 레드불 맛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보니 오늘 피곤해서 글을 올릴 수 있으려나 했는데 점심때 직원에게 심부름 시켜 사온 레드불의 힘으로 이 글도 조산시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조산된 탓에 조금 미숙하고 머리도 찌그러졌지만.....
어쨋든 그냥 여자도 아닌 직원이라.
그런 일은 저 개인적으로도 처음 겪는 일이지만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상당히 드문 일일 것입니다.
물론 산부인과라는 특성이 여자를 주로 상대하다 보니, 그리고 직원도 모두 여자이다 보니 그런 스캔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 주변에 아는 후배도 결국 본처와 이혼하고 병원의 젊은 직원과 재혼한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의사와 환자 혹은 직원 간에 그렇게 바람이 나는 경우는 정신과 의사의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산부인과 의사라는 말을 들은 기억도 납니다.
정신과 의사와는 속마음을 주고 받다 보면 그럴 법도 한데 산부인과는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기회가 많다보면 발생 건수도 늘어나게 마련이죠.
소가 뒷걸음 치다 개구리를 잡는 일도 세렝게티 초원의 들소보다는 개구리가 많은 우리네 시골 논두렁에서 노는 황소에게 더 흔히 생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우연히 어떤 일이 생긴다는 속담으로는 각 나라마다 표현 방법이 다른데 소가 뒷걸음 치다 개구리를 잡는다는 속담은 우리나라에만 있더군요.
참고로 영어권에서는 그 표현을 이렇게 말하죠.
A blindman may sometimes shoot a crow (장님도 때로는 까마귀를 잡을 때가 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영국에는 까마귀가 많습니다. ㅋㅋ
여하튼 아무리 그렇다해도 중년의 사내가 젊은 여자를 만나러 가는 일은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고 기쁘기만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실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제 나이의 반 밖에 안될만한 젊은 학생들이 여기저기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더군요.
그리고 보니 음악이 아주 시끄러운 것이 락카페이더군요.
전 내심 이야기하기 좋은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였으면 했는데 제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 상황 자체도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르기는 매 한가지기는 하지만.
어쩌면 살면서 이다지도 운명의 장난이 제 마음에 딱들게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난도 좀 재미있고 제게 유익한 쪽으로 칠 수도 있을텐데 운명은 제게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나 봅니다.
일렬로 창을 향해 난 의자에 걸터 앉아 유리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을때 M이 들어 왔습니다.
아래 부분부터는 소설입니다.
소설이라고 해서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고 기억을 억지로 더듬어 당시 느낀 감정을 살리는 쪽으로 살을 붙이거나 뼈를 뺐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체적 대사가 기억 나지 않기 때문에 반쯤은 허구의 대화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점 이해하고 봐주시길....
"원장님 저..... 왔어요."
"응 어서와 앉아."
사실 락카페라서 워낙 주변이 시끄러워 말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왜 이런 곳을 정했나 싶었습니다. 제가 할말이 무슨 말일지 얼핏 짐작이 가서 피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상당히 시끄럽네. M은 여기 자주 오는 모양이지?"
"아니요, 오빠랑 가끔 오기는 하는데 자주는 아니예요."
"오빠? 동생말고 오빠도 있었어?"
젊은 아가씨가 오빠라고 하면 뻔한 건데 저는 짐짓 모른채 했습니다.
"아니요. 그런 오빠 말고 오빠요."
아니 오빠에도 종류가 있나?
"아 좋아하는 오빠가 있는 모양이구나. 오빠는 잘해 줘?"
사실 그 뒷말이 바로 나온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작 묻고 싶은 것도 그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젊고 이쁜 여자가 사귀는 오빠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텐데 왜 저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제 생각만 했을까요?
여하튼 제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던 이성의 눈은 완전히 장님이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불을 보듯 뻔히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내심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하는 무의식이 눈을 감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잘 챙겨 주는 편이예요."
"......"
그 뒤부터는 주변이 시끄럽기도 하고 뭐라 더 말할 만한 기운도 없어졌습니다.
가만히 음료를 시켜서 홀짝거리면서 먹었는데 정말이지 제가 기억력이 나쁘기는 하지만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저 아무 맛도 없고 멍하기만 했습니다.
"저기 말이야. 눈치챘겠지만 나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나질 않지만 그 당시 제가 가졌던 느낌과 감정 상태를 감안해 본다면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대답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사실 M도 제 마음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테니까요. M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내숭을 떠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하튼 제가 원하는 쪽의 대답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일 제가 원하는 답과 대응을 받았다면 그 장소를 굉장히 친숙하게 느끼게 되었을텐데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그 카페 주변을 지날 일도 적지 않았지만 단 한번도 옛추억을 회상할 겸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리 좋은 추억을 주는 곳이 아니었다는 의미겠지요.
몇마디 말을 더 나누었던 것 같지만 그리 오랜 시간 앉아 있지도 않았습니다.
처음에 제가 저녁 만남을 생각했을 때는 맛있는 저녁도 먹고 뭐 이렇게 저렇게 시간도 보내려는 아주 응큼하지는 않아도 살짝 응큼한 속셈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역시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냥 정말 달랑 차만 한잔 마시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날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후 다른 장소에서 그랬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여하튼 한번인가는 제 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내가 M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지?"
"예."
"날 어떻게 생각해?"
"원장님은...음.... 좋은 분이시고 제가 나중에 결혼해서 아기 낳게 되면 원장님께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또....."
"그래? 좋은 원장님이라. 그게 다야?"
"예 좋으신 분 같아요."
"그래 알았어."
어느 장소인지 그 후에 어떤 대화가 더 이어졌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거기서 더 진행된 것은 없습니다.
아마 그런 뭔가 미적지근하고 할일을 다 마치지 못한 기분, 무언가 더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말하지 못한 무지근한 느낌이 있는 채로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또 그 이상한 회식이 있었습니다.
M이 오고 나서 한 네번째인가 다섯번째 쯤의 회식이었던 것 같은데.
평소 술을 잘 못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왠일인지 그 날은 M이 넙죽넙죽 술을 많이 받아 마시더군요.
좀 많이 먹는다 싶었는데 결국 취했습니다.
무슨 말을 횡설수설하는 것 같았는데 주변이 시끄러웠고 발음도 불분명해서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리를 파하면서 각각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M은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갈길로 다 보내고 주변을 둘러 보니 M과 저 단둘만 남게 되었더군요.
이쯤되면 일 터지기 딱 좋은 상황이죠.
여자는 인사불성이고 호시탐탐 그녀를 그리워하는 남자라 (원장도 늑대과에 속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상기해 주시길. ^^)......
그러나 역시 교육의 힘은 무섭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세네카와 아우렐리우스가 저를 집으로 이끌었습니다. 만취되어 떡이된 그녀를 부축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병원 거의 옆에 붙어 있다시피 해서 그렇게 한 듯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의 병실로 가서 잤을만한데 왜 뜬금없이 저희 집으로 데리고 왔나 모르겠습니다.
직원들한테는 무슨 이유를 둘러대고 병원도 아닌 집으로 왔는지 저도 좀 궁금하기는 하군요.
만일 물어 볼 수 있다면 그러고 싶네요.
"야 팔랑. 너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녈 집으로 끌고 간거야?"라고 말이죠. ㅎㅎ
여하튼 집에 그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사실 이전 글에 말한 대로 아내도 M과는 안면이 있었고 아니 안면이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M도 아내를 상당히 따르면서 애교를 떨어서 아내도 동생처럼 귀여워하는 편이었습니다.
얼핏보면 큰 언니와 막내 동생 쯤으로 보일만큼 말이죠.
아내가 동안인 편이기도 하고 사실 어떤 집은 10살 이상 차이 나는 자매도 많으니까요.
당시 빈방이 없어서 그녀를 안방에 재우고 저와 아내는 거실에서 잤습니다.
그녀를 데리고 집에 온 것에 대하여 아내는 별달리 불편해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격이 좋은 편이거든요. 아 오해는 마세요. 그때까지는 성격이 참 좋았습니다.
그 이후 언제부터인가 완전변태가 되면서 호랑이과로 바뀌기는 했습니다만.
다음날 아침 그녀를 깨워서 병원으로 보내고 아내가 제게 말하더군요.
"재 좀 이상해."
"왜? 뭐가?"
"아니 밤에 내가 잘 자는지 안방에 들어가 봤더니 글쎄 속옷만 입고 자는거야."
"아무리 술이 취해도 그렇지 어떻게 원장집에 와서 젊은 여자애가 속옷만 입고 잘 수 있어? 내가 민망해서 혼났네."
평소 M에 대하여 호의적이던 아내가 좀 놀란 눈치였습니다.
"아니 술이 취했으니까 갑갑해서 그랬나 보지 뭐."
"그래도 좀...."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제가 방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뭐를 어떻게 할 것도 아닌데 왜 얼굴이 후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녀와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투성입니다. 특히 제 마음의 행로가 그렇습니다.
M이 병원에 근무하는 몇달간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좀 이상한 혹은 엇갈리는 상황들이 종종 생겼습니다.
한번은 제가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먼저처럼 시끄러운 곳에서가 아니라 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저녁 무렵에 병원에서 멀지 않은 안산에 가서 M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할말 있으니까 잠깐 이리로 와줄래?"
"어디신데요?"
"응 안산이야"
"...."
그렇게 문자가 두어번 오고가고는 답장이 더 오지 않았습니다.
왠 일인가 해서 저는 문자를 몇번 더 보냈습니다.
아니 사실 몇번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하니 20여통을 보냈더군요.
완전히 스토커가 따로 없습니다.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는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20통의 이유는 단순히 그런 것만이 아니라 상대의 무반응에 대한 분노, 반발, 갈증 그런 것들이 뒤엉켜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굉장히 화가 났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예 내 문자를 무시하다니.......나 그래도 원장인데.......잡아 먹을 것도 아닌데.......
참고로 안산은 제가 얼마전 이곳에 소개 영상도 올렸지만 야트막한 동네 뒷산으로 사람도 많이 다니는 곳으로 인적이 드물거나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워할만한 곳이 아니고 공원처럼 꾸며진 곳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M과 헤어지고 2년인가 3년 지나서 한번 만났을 때 제가 물어서 답을 알았습니다.
"너 그때 안산에는 왜 안 온거야? 날 그렇게 싫어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제가 그때 안산은 너무 멀어서 갈 수가 없는 사정이었어요. 원장님."
"아니 안산이 멀긴 뭐가 뭘어."
"지하철 타고 가려면 두시간도 더 걸리기 때문에 도저히 간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지하철???"
그랬습니다.
그녀는 제가 경기도 안산에서 자기를 부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문자를 더 이상 못 보낸 것도 차마 못간다고 하기 어려워 안 가면 안 기다리시겠지해서 였답니다.
저는 그 대답이 정말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사실 안산이 병원 근처에 있다고는 해도 모르는 사람은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여하튼 그렇게 화끈하게 퇴짜를 맞은 그 일은 제가 과격해지는데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얼마후 제가 썼던 아주 유치한 시를 보면 그 일과 그리고 M과 헤어지게 된 과정의 급작스러움이 제게 얼마나 아픔이었는지 짐작이 갈 겁니다.
제목은 "한번에 헤어지지 마세요" 입니다.
그리운 사람과는 한번에 헤어지지 마세요.
헤어져야 한다면 천천히 헤어지세요.
보름달이 이지러져 그믐달이 되듯이
파란 감이 빨갛게 익어 가듯이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듯이
그렇게 보이지 않게 천천히 헤어지세요.
그래서
달이 이지러져도 어둡지 않고
감은 익어서 떫지 않고
어른이 되어도 동심을 잃지 않고
그리고 헤어져도 마음이 슬프지 않도록
그렇게 천천히 말이예요.
보고 싶은 사람과는 한번에 헤어지지 마세요.
헤어져야 한다면 연습을 많이 하세요.
연인에게 편지 쓸 때 하듯이
도공이 청자를 빚을 때 하듯이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세요.
그래서
내 마음이 잘못 전달되지 않고
그릇은 옥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아이는 넘어져서 다치지 않고
그리고 헤어져도 가슴이 아프지 않도록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세요.
나중에 나는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지게 될 때는 천천히 헤어질 겁니다.
충분히 연습할 기회도 줄거구요.
언젠가 죽게 되더라도 갑자기 죽지는 않을 겁니다.
옆에서 간병할 수 있는 기쁨을 주면서 서서히 죽어 가겠습니다.
때로는 신경질도 내고 때로는 즐거워 하면서
나를 천천히 보낼 수 있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헤어지는 연습을 아주 많이 해서 헤어질 땐 더 이상 가슴이 아프지 않도록
그렇게 헤어지겠습니다.
누군가를 한순간에 갑자기 보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드는 일이니까요.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무리 없이 떼어내는 일은 무작정 끊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실망하도록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는데 (사실 굉장히 중요한 날인데 기억이 안 나네요.) 그 퇴짜가 있고 나서 며칠 후 제가 M에게 결국 아주 거칠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나랑 살자. 아내와는 이혼할 거고 나랑 어디 멀리 가서 둘이 살아. 난 너 없이는 안되겠다. 사랑한다."
뭐 등등.
지금 생각하면 내 입에서 나온 말 맞나 싶은 그런 얼굴 화끈거리는 말들의 종합선물 세트를 날렸던 거 같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바로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 황당했겠지요.
자기에게 관심과 호감이 상당히 있는 건 알고 있었겠지만 갑자기 결혼이라니요?
설사 좋아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있고 아주 좋게 봐주어 사랑했다 하더라도 너무 뜬금이 없었을 겁니다.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비슷하게 흐르지 않으면 균형이 맞지 않는 레일을 달리는 기차가 결국 탈선하는 것처럼 길게 가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당시 그녀가 아마도 약간의 호감과 존경이라는 이름의 굼뱅이 붐붐카를 타고 있었다면 저는 그야말로 청룡열차에 올라타고 있는 꼴이었으니 지속적으로 관계가 유지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때 제가 갑자기 그런 고백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으시겠지만 중간 중간 마음이 빠져 들어간 과정에 대하여 이해가 가도록 쓰지 못한 잘못이 있고 중간 부분이 뭉텅 짤려 나갔기 때문이겠지만 저로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갈 수 밖에 없는, 아 운명이다 싶은 길을 간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보고 싶었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었는데 나이의 차이나 원장과 직원의 관계니 하는 것들은 그저 정오의 그림자였을 뿐입니다.
즉 정오에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안 보인다는 뜻입니다.
아 제가 좀 흥분하는 것 같습니다. 어설픈 비유가 또 터져 나오는군요. ㅠㅠ
어쨌든 그 고백 이후 다음날 M은 병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A 간호사에게 물어 보니 몸이 아파 며칠 쉰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정신이 혼란스럽고 충격을 받아서 였겠지요.
평소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원래 그녀가 가진 병이 그렇지만 병원에서도 근무중 때때로 피곤해 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었지만 단 한번도 병을 핑계로 쉰 적은 없었으니까요.
저는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작은 새를 너무 꽉 쥐었던 겁니다.
새가 이뻤으면 자기에게 적당한 나뭇가지에 앉아 편안하게 노래하도록 놓아두고 멀리서 그저 바라보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신이 제게 준 역할이었는데 제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녀의 무대에서 배경으로 있어야 행인3이 갑자기 주연 중의 하나인 양 팍 차고 나온 겁니다.
당연히 연극은 끝났습니다.
그 며칠 뒤 그녀를 한두번 더 만나기는 했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의 인연의 끝이었습니다.
제가 그 고백을 한 뒤 며칠 후 제게 남긴 한줄짜리 이메일 한통은 해석이 어려웠습니다. 한글인데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요.
"전 솔직히 무서워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이메일의 전인지 조금 후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후였던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녀가 저를 위해 그나마 제가 좀 상처를 받지 말라고 한 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장님. 저도 알고 있었었요. 저도 원장님 좋아하게 되었는데 전 저를 아껴준 사모님을 도저히 아프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아내를 아프게 할 수 없어서 나를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제가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정말 저를 좋아했지만 아내에게 미안하여 그랬을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 세세히 적지는 못했지만 아내와는 상당히 가깝고 정말 친 자매처럼 여기질만하다고 하면서 지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병원의 직원들은 저보다 일주일에 두어번 병원일을 도왔던 아내를 더 편하게 생각했고 특히 M과는 사이가 상당히 좋아서 단순히 원장 사모와 직원의 관계 이상의 관계이기는 했으니까요.
그러나 어쩜 제가 상처를 덜 받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겠지요.
저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이별로 상당 기간 힘들었고 그 일 후 2년 후인가 3년 후 M을 다시 만났을 때 이제 그녀가 내 마음에서 떠나 갔구나 하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잘 지내"
짧은 인사로 그녀를 마중하고 그녀의 인생의 무대 위에서 2년전에 쫓겨났던 저도 그제서야 제 인생의 무대에서 그녀를 내보내 주었습니다.
이상이 제 한때의 괴로웠던 기억의 전말입니다
처음에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가졌을 궁금증--그래서 어디까지 갔다는 건데?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모르겠군요.
육체적인 접근의 정도(말이 좀 어렵네요. 제가 그런 표현에 익숙치를 않아서,ㅠㅠ)에 대하여는 그냥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너무 막장의 드라마를 마음 속에서 쓰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미 막장의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ㅎㅎ
비록 한때지만 제게 뮤즈였던 M 혹은 M들 (원래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서 9명입니다. ㅋㅋ)은 이제 제 기억에서도 가고 여기 홈피에만 남아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사실 빛이 바랜 사진처럼 이미 기억 속에서도 상당 부분 지워져서 위 글의 많은 부분도 실제 있지도 않은 것들로 소설에 가까울 지경입니다.
다만 그때의 제 감정이 어떠했는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찌질한 것을 왜 보여주냐고요?
팔랑심의 고백록 1장 12줄에 있습니다. 12절이 아니고. ㅋㅋ
여하튼 뮤즈가 가고 이제 제 인생에서 드라마는 없습니다.
혹여 Muse의 뒤로 Nymph가 올지는 모릅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혹시 만일 앞으로 제 인생의 남은 기간 동안 님프가 찾아 오는 일이 있다면 전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N!
내게 너무 가까이 오지 말아요.
내 심장은 때로 불같이 뜨겁거나 얼음같이 차가워서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날개가 다칠 수 있으니까"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