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료원 산부인과 외래는 6명의 산부인과 스태프가 3곳의 진료실 중 한 곳을 돌아가면서 맡아 진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각 방마다 담당 간호 조무사 한명과 전산 입력을 위한 사무원이 각 1명씩 배치되어 진료를 도왔는데 지금은 보편적인 것이 되었지만 당시 삼성의료원이 종이 챠트 없이 모든 처방과 검사와 심지어 PACS라고 하는 컴퓨터 영상 촬영 및 저장 장치까지 완전한 병원전산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각 진료실마다 처방 입력을 위한 사무원들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대부분 대형 병원들이 다 전산화가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삼성의료원이 국내 최초였고 그 작업은 삼성 SDS에서 맡았는데 아무래도 처음 개발하는 것이다 보니 오류가 많아서 진료하면서 애로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진료실 외에 간단한 시술이 가능한 처치실과 초음파실이 있었고 해당 구역을 맡은 조무사도 있고 해서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대략 10여명 남짓한 조무사 혹은 사무원이 있었고 전체 진료실을 통합하여 관리하는 간호사가 한명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주사나 검사등 의료 업무 중에 좀더 술기가 필요한 일도 하고 상담이나 다음 진료 예약을 맡았습니다.
이런 진료과 여러개를 묶어서 외과계 외래 담당 수간호사가 또 한명이 있어서 일정 시간마다 돌면서 문제는 없나 확인하고 하는 그런 인력 구조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위험임신과 기형진단이 주 진료 분야여서 주로 보는 외래 환자가 대부분 산모였지만 그외 질염이나 자궁과 난소의 초음파 검사등 부인과 진료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다른 스태프도 마찬가지였으며 다른 모든 대학 병원들에 근무하는 교수님들도 산과든 종양학이든 자신의 전공 분야를 주요 진료 분야로 하지만 요일에 따라 일반 부인과 검진이나 처치등의 진료를 합니다.
그러니까 현재 제가 임신 출산 분야인 산과만 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방식의 진료라고 할 수 있는데 한 1년간 해보니 장단점이 있어 약간은 보완할 필요도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서 제가 출산을 도운 산모에 한해서는 부인과 진료를 제가 하기로 결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당시 산부인과 스태프는 부인과 종양학 분야에는 과장님을 포함하여 두명, 불임과 내분비 분야에는 제 동기 한명을 포함하여 두명, 그리고 산과 분야는 저와 친하게 지낸 동기 한명과 제가 맡아서 보고 있었습니다.
요일별로 하루 두명 내지 세명의 산부인과 스태프가 진료를 하였는데 일반 병원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삼성의료원은 VIP를 위한 진료실이 따로 있어서 언제든 특별한 고객을 진료할 수 있는 진료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고위 공무원의 딸이나 며느리 혹은 재벌가의 며느리 혹은 연예인 등 말하자면 VIP 들을 위한 진료실이 있었는데 일반 진료실보다는 넓고 시설도 좋았습니다.
의료는 만인에게 공평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병원이 대기업 계열이다 보니 그런 자본주의적인 부분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저와는 다소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가난하게 자라서 그런지 다소 사회주의적(이거 이렇게 말하면 붙들려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는데) 성향에 가까운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른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먹는 문제와 의료 문제는 그런 경제적인 것과 관계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제공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돈이 없어 끼니를 못 잇거나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사회에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도 저와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현실에서는 알게 모르게 그런 경우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런 사람이 가장 자본주의의 표본이라 할 대형 재벌 그룹의 병원에 근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내는 동안은 가끔씩 그런 답답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항상 그런 괴리를 크게 느끼면서 지냈던 것은 아닙니다.
참 언젠가 이곳 홈피에서 저희 병원의 직원들은 얼굴 보고 뽑냐고 말씀하신 분이 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삼성의료원은 외래 조무사들과 간호사 등 모든 여자 직원들은 정말 얼굴 보고 뽑은 것이 확실한 것 같더군요.
원래도 삼성 그룹은 이병철 회장때부터 직접 회장이 말단 직원의 면접까지 보았다 할 정도로 사람을 중요시 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깔끔하고 예쁜 외모의 직원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외래에서 진료실 보조 업무를 맡은 직원 하나가 아주 예쁘장한 외모였습니다.
그래서 제 동기 중 한명은 그 직원과 점심도 함께 직원 식당가서 자주 먹고 저녁 회식도 구실을 잡아 함께 먹으려 하고 그러더군요.
뭐 이상한 꿍심이 있어서는 아닐 것이고 그 친구가 좀 사교적이고 멋 부리기도 좋아하고 젊고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뭐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음흉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
특히 그 직원, K양이라고 하겠습니다.
K양이 저와 제 동기가 보는 진료실을 담당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저희 둘과 K양이 가깝게 지낸 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K양에게 무슨 사감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동기도 마찬가지였을 거구요.
안과 전공의이던가 남자 친구도 있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이쯤되면 아 골기퍼도 있고 뭐 별거 없겠네하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별 거 없습니다 ㅋㅋ.
그러니까 기대하지 마십시요. 여긴 연애사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제 착각인지 모르지만 K양이 유독 저를 좀 챙겨준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아마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의사에게 대하여 도와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 때문이었겠지요.
수줍음도 많은 친구고 하여 발가락 장난 같은 것을 하고 그런 일은 일체 없었습니다.
그냥 예쁘장하고 착한 직원이었습니다.
궁금해 하실 듯 하여 전에 초음파실 배실장과 비교하듯 비교하여 말씀드리자면 분만실 오현경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좀더 이쁘게 생겼습니다.
더불어 현경씨와 다른 점이라면 얼굴이 약간 포동포동하고 동그랗게 생겼고 당연히 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경씨 화내지 말기를.... 돌출입 정도는 아니야...ㅋㅋ)
서로 농담도 하고 가끔 외래 끝나면 위에 말한 제 동기와 저녁도 함께 먹으러도 가고 그랬습니다.
주로 제 동기가 바람을 잡아서 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제가 삼성 의료원을 그만두기 한달인가 두달 쯤 전인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다시 한번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글은 연애사가 아닙니다.
계류 유산이 되어 제가 소파수술을 시행한 환자가 수술후 1주일쯤 되는 날 하혈과 복통으로 다시 외래로 왔습니다.
초음파를 보니 불완전 제거술 때문인지 혈액 덩어리와 약간의 조직이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재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는데 정식으로 수술장으로 올려서 마취를 하고 재 흡입 및 소파술을 하는 것이 맞기는 한데 환자가 출혈도 있고 통증이 상당히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인 양도 많지 않아 간단하게 생각하고 외래 처치실에서 그냥 처치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환자가 아파해서 수술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저는 아무 생각없이 옆에서 보조하던 K양에게 마취제의 일종인 진통제 투여를 지시하였고 그렇게 해서 처치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런데 처치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파수술후 재수술을 하게 된 환자가 고객 불만 센터이든가 아님 외래이든가 하여튼 윗선에 하소연을 하게 되어서 간호과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다른 것은 문제될 것이 없어서 저는 따로 문책을 받지는 않았는데 조무사이던 K양이 마취제의 일종인 진통제를 주사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의료법상 조무사도 의사의 지시 감독하에 얼마든지 주사를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의료원은 국내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외래 시술 시 주사는 간호사가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하여 이미 철저한 교육이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K양이 제 지시를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주사를 놓은 것은 병원내규를 어긴 행동이었습니다.
당연히 문책을 당했고 산부인과 외래에서 쫒겨나 물품 관리과인가로 좌천되는 것으로 결정났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내규에 대하여는 몰랐습니다.
주사 처치는 조무사든 간호사든 의사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당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때문에 그런 것을 그리 따질만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삼성의료원에 근무하기 전에 K양은 개업가에도 근무하면서 익숙하게 하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저 때문에 생긴 일이라 과장님께도 사정을 말씀드리고 K양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선처 해주십사 부탁드렸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좌천되어 타부서로 옮기기 전날 제가 K양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런 내규가 있었다는데 몰랐어?"
반말을 썼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그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누히 말씀드리다시피 잘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이름과 얼굴만 기억이 납니다.
나이도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스물 서넛 정도 되었을 겁니다.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
"아니 알고 있으면서 왜 그랬어? 상담실에 있는 박간호사라도 불러왔으면 되었을텐데."
"........"
"말해봐. 왜 그랬는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
"괜찮으니까 말해봐."
"전 제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환자분께서 많이 아파하시고 그리고 선생님께서 땀도 뻘뻘 흘리면서 급해 하셔서"
그러니까 결국 저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재수술까지 하게 되었는데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니 마음이 급했을 것이고 그것이 K양의 눈에는 아마 안쓰럽게 보였나 봅니다.
"급하다고 해서 그렇게 해?"
"제 딴에는 빨리 도와드려야지 하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그런 내규가 있었으면 나한테 미리 말했어야지."
"전 곤란한 처지에 처한 선생님을 제가 도와 드린다는 것에만 기분이 우쭐해서 깊이 생각을 못했어요."
"......"
참 바보 같은 친구였습니다.
결국 그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삼성의료원 외래 파트에서 쫒겨 나게 될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저는 많이 미안했지만 달리 도와줄 길이 없었습니다.
K양이 타부서로 옮기고 나서 가끔 원내를 오갈때면 물품 상자를 들고 왔다 갔다하는 K양과 마주치고는 했습니다.
인사를 꾸벅하고 지나가더군요.
"힘들지?"
그렇게 말하면서 제가 어깨라도 토닥거려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치면 얼마든지 그러고 싶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수많은 눈이 있는 곳입니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래 그럼 수고해."
이상이 K양에 대하여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에피소드입니다.
K양과 관련하여서는 그외에도 약간 간질간질한 에피소드가 몇개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기도 하고 또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대표적 에피소드 하나만 최대한 팩트를 기억하여 적었습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형용사와 부사는 상당히 생략해 가면서 간신히 담담하게 적었습니다.
이번에는 돌 날아올 일 없겠지요? ㅎㅎ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그런 사정으로 삼성의료원을 그만 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오자 마자 은평구 응암동에 심상덕 산부인과를 개원하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는 개원시절 이야기이므로 쓰게 되면 다음편에서 연결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 K양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거자필반 회자정리지요.
제가 삼성의료원을 그만 두게 될 즈음에 미안한 마음에 "내가 개업하게 되었으니 삼성의료원을 그만 두고 나와서 나를 도와 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K양의 어머니는 그래도 삼성의료원에 있으면 유명 병원이고 나중에는 더 편한 자리로 갈 수 있는데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은 손해라고 극구 말렸다고 했다더군요.
그러나 제가 K양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마음 즉 의리 때문이었겠지만 K양은 삼성의료원을 그만두고 제가 개업함과 동시에 저희 병원으로 와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TBCO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