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번 주의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하나씩 명작 그림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올리기로 했는데 명작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리고 제가 여자들만 진료하는 산부인과 의사인 점도 고려하여 앞으로는 제목을 "화가의 눈에 비친 여인"으로 바꾸어서 매주 한편씩 올릴 생각입니다.
마무리 짓지 못한 시리즈 "화가의 자화상"의 속편 쯤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ㅋㅋ
예리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본 화가들에게는 과연 어떤 여인들이 눈에 띄었고 어떻게 표현했을지 하는 것을 돌아 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요?
7월 네번째 주인 오늘은 툴루즈 로트렉의 "세탁부"를 소개합니다.
여름철이니 아무래도 세탁 거리가 많이 생길 듯 한데 이곳을 찾으시는 산후맘들께서도 육아와 가사로 힘드시겠지요?
그런 모든 산후맘과 그리고 앞으로 산후맘이 되실 모든 산전맘 분들께 작은 여유가 되길 바랍니다.
위 그림은 1889년 작품으로 로트렉의 나이 25세에 그린 것으로 미술관에 전시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 사는 르 베시네,도르튀 여사가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림의 크기는 92*74cm이며 이 그림은 200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로트렉 작품 가운데 최고가인 2240만달러(약 232억원)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
대충 빚은 머리, 허름한 블라우스, 앞에 놓인 일감으로 하여 그림은 한눈에 봐도 고단한 일상에 지친 여인의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니 흰 블라우스와 까만 치마, 제가 좋아하는 두 색의 옷을 입었군요. ㅎㅎ
저는 주로 흰 화이셔츠에 까만 바지 혹은 까만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는 하는데.....
여하튼 잠시 밖을 내다보는 여인은 무엇을 보는 것일까요?
아마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즐거워 하는 모습이거나 혹은 나들이 가는 어느 가족의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삶과는 물리적으로는 창문 하나일 뿐이지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많이 떨어진 것들이겠지요.
로트렉 자신도 그렇게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춤추는 무희와 그녀들을 눈으로 즐기는 고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림 속의 세탁부가 느꼈을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둘다 아웃사이더인 것이죠.
사실 로트렉은 창녀이자 무희인 잔 아브릴의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가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눈 앞에 있지만 만질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것들,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씩은 가질만한 행복감과 사랑이 그에게는 일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세탁부와 같은 여인이 아니라도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던 화가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로뜨렉은 서민 중에서도 창녀, 무용수, 세탁부등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밤의 화가"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그가 그리는 대상들이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삶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곳을 응시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트렉은 부모님 모두 명문가의 귀족이었지만 서로 사촌지간이라 근친상간의 경우 빈발하는 유전질환인 골형성 부전증이라는 병을 타고 난 데다가 어릴 때의 사고로 인해 150cm 남짓에서 성장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아주 작은 키로 고단한 삶을 살다가 알콜중독과 매독에 의한 정신착란으로 37세의 길지 않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1899년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퇴원할 때까지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약 1500여점이 넘는 그림과 포스터, 석판화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하니 그에게 삶의 동력은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역시 그림이었나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로트렉은 고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래에 보시는 "빨강머리의 화장하는 여인"이라는 작품은 흡사 고흐가 그린 것이 아닌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입니다.
그리고 보면 로트렉이 고흐가 사망한 나이인 37세에 요절한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세탁부나 이 빨간 머리 여인이나 모두 정면을 응시하지 않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점이군요.
1886년 작품이며 종이에 유채로 그린 것이고 작품 크기는 54*64 c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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