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맛은 어떤 맛인가? 혹은 소금의 맛은 어떤 맛인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단맛 혹은 짠맛이라는 대답을 내놓기까지 2,3 초도 안 걸릴 것이다. 그러나 전주 비빔밥은 단맛인지 짠맛인지 혹은 다른 맛인지 묻는다면 한참 고민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음식은 다섯가지 미각인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감칠맛 모두를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것을 더 강하게 느꼈는지는 재료의 종류와 배합에 따라서도 다르고 사람마다도 다르다.
인간의 삶이란 전주 비빔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잡하다. 그러므로 인생은 즐겁고 행복한 것인가 아니면 힘들고 슬픈 것인가?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마 다섯살짜리도 바로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슬프기만 한 순간 뿐인 삶도 없고 기쁘기만한 순간뿐인 삶도 없다. 어떤 것이 좀더 강렬한 감정으로 남아 있는지에 따라 그리고 타고난 천성이 어떤가에  따라 삶이라는 것을 즐겁고 기쁜 쪽으로 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 인생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여러 순간 중 한 순간인 출산은 어떤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려는 것 뿐이다. 인생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겠는가마는 출산은 한 여자의 일생에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소한 4명, 산모, 남편, 아기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까지 4명의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이다. 그 순간은 과연 어떤 순간인가.

아래는 워싱턴 의과 대학의 Thomas Holmes 박사팀이 개발한 생활 스트레스 순위표 중 20위까지만 발췌한 것이다.
1. 배우자의 죽음 (100점)
2. 이혼 (73점)
3. 배우자와의 별거 (65점)
4. 교도소 또는 다른 보호시설에 수감 (63 점)
5. 가까운 친척의 죽음 (63점)
6. 심한 부상이나 질환 (53점)
7. 결혼 (50 점)
8. 해고 (47 점)
9. 부부의 화해 (45 점)
10. 퇴직, 사직 (45 점)
11. 가족의 건강과 행동의 변화 (44 점)
12. 임신 (40 점)
13. 생활의 장애 (39 점)
14. 새로운 가족이 생김(출생, 입양, 노부모의 이사 등) (39 점)
15. 중요 사업조정 등 직무상의 변화(합병, 재편성, 도산 등) (38 점)
16. 가계(家計)상의 커다란 변화(평상시보다 더 나빠지거나 더 좋아질 때) (37 점)
17. 가까운 친구의 죽음 (36 점)
18. 배치전환, 전근 (36 점)
19. 부부싸움의 횟수가 크게 변할 때(자녀교육, 개인습관 등에 대해서 더 싸우거나 덜 싸울 때) (35 점)
20. 1000만원 이상의 저당권 설정(집의 구매) (31 점)

이혼이 2위, 결혼이 7위, 임신이 12위, 출생이 14위다. 임신과 출산이 10위 밖으로 밀려나 높은 순위가 아닌 것은 예상 밖이기는 하다. "당신이 할 줄 아는게 망치질밖에 없다면, 모든 문제가 못처럼 보일 것이다." 라는  매슬로우의 말처럼 내가 출산을 돕는 것 밖에는 할 줄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은 그런 일로 인해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스트레스는 두려움과 직결된 것이지만 출산에 두려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여 출산하면 어떤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 설문 조사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출산을 이미 한 사람과 출산을 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서 비슷하게 결과가 나올지 아닐지도 궁금하다.
출산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은  기쁨, 감동, 두려움, 고통 등 다양하겠지만 출산을 앞둔 당사자라면 출산에 동반되는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출산은 질병은 아니지만 산모에게  여러 잠재적 위험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다들 안다.  출산을 도우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는 어떤 감정이 드는 지 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 산부인과를 택했는지 하는 질문은 종종 받아 보았지만 출산을 도울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하는 질문은 산모에게서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한번도 듣지 못했다.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야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하고 임산부 입장에서도  출산의 순간을 생각할 때 의사든 아니든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까지 헤아릴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닌 탓이다. 출산을 생각하는 순간 머리 속이 하애지고 자신의 앞가림도 하기 벅찰텐데  남편, 가족, 의사 등 다른 이들 감정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네번이나 다섯번쯤의 출산을 경험한 임산부라면 혹시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지식이 짧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출산에 임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감정에 대하여 조사한 리포트를 본 적은 없다. 느끼는 감정은 대체로 비슷할 것은 같지만  다른 의사에게 물어 보지 않았으니 그저 내 감정만을 알 뿐이다. 내게 있어 출산하면 제일 강하게 떠오는 것은 보람과 기쁨보다는 두려움이다. 출산을 준비하면서 소독 가운을 입고 소독 장갑을 낄 때, 혹은 제왕절개를 위해 손을 씻을 때 심박수가 증가하고 얼굴 근육은 긴장으로 굳어지고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른다.  교감신경의 작용이다.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작동하는 신경인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되어 있다. 두 신경은 서로  반대되는 기능을 하는데  교감신경은 아드레날린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해서 스트레스 상황 즉 공포감을 느끼거나 위험이 닥쳤을 때 신속하게 대응 하도록 만든다. 긴장 상태에서 혈압이 올라가고 근육이 수축되는 것이 교감신경에서 분비한 아드레날린의 작용이다. 또한 동공이 확대되고 폐와 기관지가 확장돼 호흡은 빨라진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은 노어아드레날린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해서 흥분된 신체를 가라 앉히고 이완을 시켜 평상시의 원할한 작동을 돕는다.  기도를 수축시키고, 심장 박동을 느려지게 한다. 신장에서 소변이 많이 만들어지도록 하고, 음식물의 소화가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한다.

위험성이 있는 수술이나 시술을 앞둔  의사는 그가 노련한 명의든 경험이 짧은 초보 의사든 모두 일정 정도의 두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실수 없이 능숙하게 시술이나 수술을 해 낼 수 있도록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아 나가는 것 뿐이다. 다만 일반적인 수술을 담당하는 것과 출산을 돕는 것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외과 수술은 경험이 많을수록 두려움이 줄어 들지만 출산을 돕는 것은 경험이 많고 노련한 의사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거나 적지 않다. 오히려 출산을 돕는 의사의 경우 경험이 많은 의사일수록 두려움이 크고 신중하며 경험이 적은 의사일수록 두려움이 없고 과감하다. 의료 행위에 동반하여 발생할 수 있는 나쁜 결과에 대한 기억은 어느 의사도 쉽게 잊을 수 없는데 의료 분쟁은 경험 많은 의사라고 해서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분만과 관련한 악결과는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의사의 경험의 얕고 깊음과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의료 분쟁 경험은 대개의 경우 분만 의사로 지낸 기간이 긴 의사일수록 더 많다.

출산을 도우면서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의 정도도 의사마다 다르다.  출산에 임하여 상대적으로 덜 긴장하는 의사가 있고 그렇지 못한 의사가 있다. 전자가 강심장이라면 후자는 약심장 (이런 말은 없다. 역시 내가 방금 만들어낸 말이다. 새가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이다. 나는 다른 모든 것에서는 강심장이지만 출산에 대하여서만은 약심장이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는다고 무섭지도 않으며 무섭게 생긴 사람이 나를 협박한다고 해도 별로 겁날 것 같지 않다.  다만 출산 순간에 접어 들면 갑자기 약심장이 된다.  나와 산부인과 수련을 함께 하고 친한 어떤 선생님이 출산을 도왔던 아기의 상태가 안 좋게 되어 의료 분쟁에 휘말렸던 사례를 이야기 해 준 적이 있다.  아기의 아빠가 요구한 합의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여 합의에 응하지 않고 법정에 해결을 맡기자고 하였더니 아기 아빠가 신문지에 둘둘 싼 길죽한 어떤 것(아마 칼일 것이라고 하였다.)을 들고 진료실로 불쑥 들어 와서는 배에 그것을 갖다 대고는 "이 새끼야 여기서 같이 죽던지 아니면  제대로 보상금을 지불해!" 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 친구 의사의 대응은 보호자가 기대한 방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배를 쑥 칼 쪽으로 내밀면서 한 말은 이랬다. "그래 찔러라 찔러. 나는 줄 돈도 없지만 그만큼 큰 돈을 줄만큼 잘못한 것도 없으니 여기서 찌르고 끝내자." 아기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니 어쩌면 감정에 못이겨 정말 끔찍한 칼부림이 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섭지 않았냐고 내가 물으니 그런 사람들은 막상 강하게 나가면 오히려 꼬리를 내린다고 조언해 준다. 아닌게 아니라 그 친구가 그렇게 나가니 보호자는 칼을 뒤로 빼면서 "왜 이러세요? 원장님. 위험하게. ㅠㅠ. 저희 집이 가난하고 아기 치료할 병원비도 없어요.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조금 허풍이 있는 선생님이니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 같으면 도저히 그렇게 강하게 응대할 자신이 없다. 나라면  굳이 칼을 들이 밀지 않아도 "원하시는대로 다 해드리겠습니다. 진정하시고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것이 뻔하다. 그처럼 타고난 강심장이 아니면 산부인과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타고 나기를 그런 강심장으로 타고 나는 사람도 있고 세월이 지나면서 단단해 지는 사람도 있다. 세월과 노력의 힘으로 단단해지는 건 근육 뿐만은 아닌 듯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심장도 주된 조직은 근육이다. ㅎㅎ

나의 대학 동문들은 선배건 동기건 후배건 개업가에서 성공한 산부인과 의사는 많지 않고 대부분 교수로 대학 병원에 근무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개업해서 성공하여 의사들 중에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산부인과 의사 선배가 한분 있다. 나도 전공의 시절 그 분이 하는 병원에 아르바이트를 나간 적이 있어서 그 선배의 진료 모습이나 분만에 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봤던 산부인과 의사 중에 강심장으로 첫 손가락에 꼽아도 손색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 선배가 개업초인지 전공의 시절인지 잘 모르겠는데 초보 산부인과 의사일 때의 모습을 전해 들었는데 전혀 내 예상 밖이었다. 약심장도 그런 약심장이 없어 겁이 많기로는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유산 소파 수술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간혹 자궁이 천공 (길쭉한 의료 기구에 의해 자궁이 뚫어지는 것) 되는 경우가 있다. 천공이 되어도 대부분 출혈도 별로 없고 감염만 되지 않도록 항생제만 넉넉히 쓰면 정상적으로 회복이 된다. 물론 드물게 과다 출혈이 될 수 있어 수술후 두어시간 후에 출혈이 복강 안으로 있는지 초음파 검사를 하고 혈압이 내려가지는 않는지 체크해 보기는 해야 한다.  한번은 그 선배께서 유산 소파 수술을 하고 자궁이 천공이 된 환자가 있었는데 두어시간 후에도 별 이상이 없어 루틴대로 항생제를 처방하고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선배는 그 환자가 걱정이 되서  도저히 집에 마음 편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그 환자의 집을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그 당시는 휴대 전화가 없던 시절이었다.) 직접 찾아 가서 환자의 상태가 괜찮은지 살펴 보았다고 한다. 걱정에 노심초사하면서 환자의 집을 찾아간 선배의 얼굴을 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이 간다. 생길 수 있는 온갖 나쁜 상황들이 머리 속을 꽉 채우고 그런 결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우 중에는 최악의 사례만이 현실이 될 것 같이 느껴진다.  밥맛도 없고 우울해지면서 말 수도 줄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을 것이고 웃음기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어디 아픈 지 아니면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하는 걱정 소리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이것이  약심장들이 가진 전형적인 반응이며 이런 상황에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우울증에 빠진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얼굴이다. 그 환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연히 아무 일이 없었고 그 선배의 지나친 대응이었으니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약심장의 사람이 강심장 산부인과 의사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의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의료 분쟁 서류들이 진료실 책상에 수북이 쌓여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눈 하나 꿈쩍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기든 산모든 건강과 생명에 치명적인 악결과가 생겼다고 해도 자신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돈이면 다 해결되는 것이니 필요없이 마음 졸이고 걱정할 것도 없다는 조언도 들었다. 세월이 준 경험과 그 자신의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합의금으로 큰 액수를 지불해도 될 정도로 그동안 벌어 놓은 많은  돈이 주는 힘 덕분이라고 짐작한다. 세월과 노력의 힘이 성격과 감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지만 그 선배가 약심장에서 강심장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의 몇배 이상의 시간이 이미 지났음에도 난 여전히 그대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내 약심장은 그리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밤새 진통하는 산모의 옆방에  쪼그려 누워 있다가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비명 소리에 수시로 달려 가게 될 것이다. 출산 후 출혈이 다른 산모들보다 조금이라도 많다 싶으면 산모의 옆을 잠시도 떠나 있기가 불안해서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수시로 내진하고 살펴 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동안은 약심장은 불치병이다.



여기서 글을 끝내도 그리 짧은 글이 아니고 이미 충분히 지겨울 만하지만 지겨움을 극복한 분이라면 별 도움 되는 내용은 없겠지만 계속 읽어도 좋다.
두려움은 꼭 나쁜 것은 아니고 스트레스도 나쁜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두려움에 대하여 조금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야기를 조금 더 보태 본다.
"추락환자의 예후인자로서 외상지수와 추락높이의 의의"라는 논문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추락과 손상의 발생에 대한 연구에서는 6m를 기준으로 통계적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6m는 보통의 건물 한층이 3m인 점을 감안하면 2층에 해당한다. 자연 분만을 도울 때 내가 느끼는 아드레날린 수치는 아래로 떨어질 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좁은 2층 난간에 서 있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한 것 같다. 2층에서 떨어지면 다칠 수도 있지만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 탈없이 뛰어 내릴 수 있는 정도의 높이다.  흡입 분만을 시도할 때의 두려움은 2층 옥상 혹은 3층 옥상 정도 높이에서 뛰어 내려야 한다고 하면 느낄 정도의 공포감과 두려움을 준다. 흡입 분만으로 아기가 아무 탈 없이 나와줄 것인지 하는 걱정 때문이다. 흡입기를 쓰게 되는 상황과 산모의 상태에 따라 층수는 달라진다.  흡입기는 20분 이상이나 흡입 컵이 3번 이상 떨어지면 더 이상 쓰면 안된다. 아기에게 뇌출혈이나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성마비나 사망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흡입기를 10분 이상 사용하는데도 아기가 나오지 않아서 중단하고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준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들어 가면 뛰어 내려야 하는 건물의 층수는 5층 이상으로 훌쩍 높아진다. 이 정도 높이면  다치지 않고 뛰어 내리기란 불가능하다. 최소한 팔이나 다리가 골절되거나 어쩌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피부만 살짝 까진 정도로 위험을 피해갈 수도 있지만 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 흡입 분만 시도후 제왕절개 수술은 아기에게도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지만 산부인과 의사에게도 두렵고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직 경험이 짧아서인지 (30년인데?)  일년에 한두번은 그런 상황에 마주치고는 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흡입 분만 시도하다 안되어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된 경우 중에 산모든 아기든 건강상 치명적으로 위험하게 되어 분쟁에 휘말린 사례는 없다. 아기 머리 피부만 조금 까진 것처럼 5층 높이에서 뛰어 내렸음에도 내 마음 속의 피부만 살짝 까지고 크게 다치지 않은 정도로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외의 다른 상황으로 의료 분쟁에 휘말린 경험은 30년 동안 몇번 있었지만.

이제 정말 글을 끝내야 겠다. 너무 많은 시간을 뺐었다.
제목의 의미는 다들 아셨을 것이고 작년 이전까지는 매일 뛰어 내렸는데 올해는 이틀에 한번 꼴로 뛰어 내린다. 두려움을 느끼는 횟수는 줄었고 대신 빚이 늘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2층 혹은 때때로 3층에서 뛰어 내리는게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생활비도 제대로 주고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야 아내한테 이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1층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서 2층으로 올라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틀에 한번 뛰어 내린다고 비는 다른 날은 마음 편히 쉬고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니 빨리 빨리 뛰고 끝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사실 내로라 하는 큰 대형 병원에 근무하면서 보장된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30년 전 쯤에 개업 일선에 뛰어든 이유는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힘든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오래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개업해서 빡쎄게 한 10년이나 20년 쯤 해서 노후 자금을 마련하고 그 이후는 쉬엄쉬엄 여행이나 다니면서 가족들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살려고 해서였다. 30년이 약간 넘는 의사 생활 동안 매일이 죽을만큼 힘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날들을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했고  그렇지 않은 나머지 날들도 그리 설렁설렁 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개업하면서 팔아 먹은 집은 다시 찾을 길이 없고 언제 쌓였는지 모르게 반갑지 않은 빚만 잔뜩 쌓였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틀린 것 같다. 틀렸으니 죽음 같은 깊은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사족]
여기다 쓰면 사생활 침해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우리 병원 초음파실을 맡고 있는 배유진 실장님이 오늘 50점 짜리 스트레스 하나를 받았다.

[참고 문헌]

제목: 추락환자의 예후인자로서 외상지수와 추락높이의 의의
저자: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교실 서경수∙박순태∙하우송∙최상경∙홍순찬∙이영준∙정은정∙정치영∙정상호∙주영태
출처: 대한외상학회지 Vol. 22, No. 1, June, 2009

요약:
현대 사회에서 추락으로 인한 사고는 정신과적 문제나 개인적 이유로 인한 자살의 증가뿐만 아니라 공사장과 작업 현장의 안전사고, 건물의 고층화와 위험한 구조물의 증가로 인하여 그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Mathers와 Weiss의 연구에서는 응급실 내원 환자의 9%가 추락사고에 연관되어 있으며 응급실 외상환자의 21%에 달한다고 한다. 추락사고는 대개 떨어진 높이에 따라 손상 정도를 예측할 수 있으나 어떤 높이에서의 추락이 어느 정도의 부상과 사망률이 예측되는지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그 예후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추락환자들의 주요 예후 인자로는 추락높이, 환자의 나이, 외상지수, 바닥의 성질과 추락 시 환자의 자세 등이 있으며, 본 연구에서는 생존하여 응급실에 내원한 추락 환자의 예후 인자 중 외상지수와 추락높이가 환자의 예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추락 후 손상과 예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자는 너무 다양하므로 획일적인 조사가 쉽지 않으며, 본 연구에서도 몇 가지 제한 점이 있었다. 첫째, 후향적 연구인 관계로 추락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둘째는 한 층의 높이를 3 m로 일률적으로 환산하였으므로 실제 높이와 오차가 발생될 소지가 있었다. 셋째, 3차의료기관이며 현장에서 사망한 환자를 제외하였으므로 가벼운 경환자와 손상이 심한 중환자가 본 연구에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추락높이를 대상으로 손상정도를 조사한 본 연구에서 추락높이가 6 m 이상인 경우에 그 이하 추락환자에 비해 평균 ISS, 평균재원기간, 입원률, 수술률의 뚜렷한 증가를 보이므로 6 m 이상의 추락환자에 대해서는 심각한 손상에 대한 가능성을 인식하고 내원 초기부터 철저한 검사와 면밀한 환자 상태 파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추락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고, 연구에서 제외되는 환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의료기관의 광범위한 협조와 전향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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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analakoo 등록시간 2018-05-13 17:13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응급제왕 바로 직전 흡입기 사용으로 희움이가 나왔으니, 그 날 원장님께선 5층에서 뛰어내리는 기분이셨겠군요 ㅠㅠ 둘째 셋째는 숨풍~ 낳아서 한 1.5층에서 뛰어내리는 느낌이 드시도록 해볼게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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