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도구 준비
나뭇가지 하나를 꺽어 가지를 쳐내고 매끈하게 만드는 것이 제일 처음에 하는 일이다. 갸야금을 만들 것은 아니니까  나무는 들판에서 흔히 보는 어떤 종류의 나무라도 상관은 없었지만 너무 굵거나 너무  가는 것은 곤란했다. 이미  죽어서 습기를 잃은 것도 부러지기 쉬워서 적당하지 않다. 가시가 많은 찔레 나무도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얇으면서도 단단한 싸리나무는 빗자루의 재료로도 쓰이지만 아이들의 놀이에도 제일 적합했다. 그때의 나무가 꼭 싸리나무였다는 뜻은 아니다. 잘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넉달 전의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이 많은데 40년도 더 전의 일이니 기억 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

2단계. 미끼 잡기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개구리 뒷다리다. 아무리 작은 개구리라해도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것들은 잡기가 쉽지 않다.  부모의 무덤을 물가에 만든 우화 덕분에 널리 알려져 있고 만화 영화  "개구리 왕눈이"의  개구리가 청개구리인 이유로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청개구리가 가장 흔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들판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은 청개구리가 아니다. 무덤 가에서 잘 보인다는 소문이 있는 송장 개구리는 그 잿빛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듯 싶지만 실제로는 역시 무덤 근처의 깊은 숲에서는 찾아 보기 어렵다. 중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듯이 개구리는 양서류이기 때문에  개울이나 저수지처럼 물이 있는 습지 주변에서만 산다. 제일 보기 쉬운 개구리는 보호색인  갈색의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참개구리다.  송장 개구리이든 빨간 점박이 무늬가 있는 무당 개구리든  아무 개구리나 뒷다리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아이들은 다른 개구리를 만지는 것은 꺼림칙하게 생각해서 흔하기도 하고 부담감도 별로 없고 살도 많은 참개구리를  선호했다.

3단계. 미끼 다듬기
개구리를 잡으면 뒷다리를 한쪽 떼어내고 껍질을 벗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도록 먼저 죽여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죽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죽이는 과정이 잔인해서 기억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때의 일들이 그리 끔찍한 느낌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40년도 더 전의 개구리 죽이기를 기억하기에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소나 돼지를 도살할 때  단단한 망치로 정수리 가운데 부분을 쳐서 한번에 고통없이 죽인다고 들었는데 개구리도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죽였을 것이다. 죽이는 과정을 즐기려는 것이 개구리를 잡는 목적이 아니었으니 최대한 깔끔하게 죽이는 것이 좋다.

4단계. 미끼 정리
준비한 나뭇가지에 개구리 뒷다리를 묶는데 이때 필요한 실을 따로 준비하지는 않는다. 실을 집에서 가져올만큼 여유가 있는 아이도 없어서 필요한 도구나 재료는 현장에서 조달해야만 했고 현장에서 조달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았다. 그 시절의 들판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동쪽에는 작은 숲이 있었고 남쪽 언덕배기에는 용도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는 각종 크기의 돌 무더기가 있었다. 인간의 도구 사용 역사가 돌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돌 무더기 옆에는 아이들의 보물창고가 있었는데 칼이며 연필, 자석, 심지어는 그 당시 보기 힘든 망가진 라디오 같은 것들도 있었다. 필요한 것은 그때 그때 가서 주워 오면 되었다. 그곳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보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야적장이고 먼지 투성이의 거친 들판일 뿐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보물창고였고 놀이터였고 휴식 공간이었다.

5단계. 현장 이동
요리하기 전에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거나 식재료가 보관된 창고로 가듯이  아이들은 기찻길 옆 도랑으로 향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도랑에는 항상 물이 흘렀다. 주변에 높은 산, 깊은 계곡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일부러 물길을 낸 것도 아니었을텐데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이 모여서 흐른 것치고는 거의 말라 있던 모습을 본 기억은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아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물의 시원은 중요치 않았다. 서울 시민이 매일 사용하는 물의 대부분이 한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시원이 강원도에 있는 검룡소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시멘트로 만들어진 도랑의 깨진 틈이었다.  그곳에 아이들이 찾는 것이 있었다.

6단계. 목표물 유인
틈새의 사이로 개구리 뒷다리를 묶은 나뭇가지를 살살 밀어 넣고 잠시 기다린다. 모든 요리에 시간이 필요하듯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있어 시간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시간이 정지된 사진조차도 엄밀하게 보면 정지된 것이 아니다. 그 사진이 찍혔을 찰라의 순간--사실 찰라는 아니고 125분의 1초든 30분의 1초든 적지 않은 시간--의 노출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지 영상이라고 믿는 사진은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는 그리 적지 않은 시간의 기록이다. 그러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틈새 안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있는지 살펴 보는 시간은 사진을 찍는 시간에 비유하자면 별의 궤적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중에 "11분"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지만 그때 아이들에게도 그 쯤의 시간이 필요했다. 코엘료의 소설에서는 11분이 인간이 오르가슴에 이르는데 필요한 시간이라고 하던데 아이들이 11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맛보는 희열도 결코 그에 못지는 않았다. 한강의 단편 소설 "파란 돌"에서 주인공 소녀는 몰래 흠모하던  친구의 외삼촌과 가벼운 입맞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을 때 느꼈던 기쁨 이상을 이후 어떤 남자에게서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자극의 강도가 꼭 희열의 강도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7단계. 목표물 추출
음식이 잘 익었는지 냄새는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냄비의 뚜껑을 여는 시간이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긴장된 시간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그랬다. 과연 나뭇가지의 끝에 원하는 것이 있을지, 있다면 얼마만한 덩치의 놈일지 궁금증으로 반들거리는, 여섯 개에서 많을 때는 10개 정도의 까만 눈동자가 한곳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성공율은 대개 50% 쯤이었다.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가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4번중 한번 정도의 확률이라고 한다. 그에 비하여 나름 괜찮은 성공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침내 나뭇가지를 서서히 밖으로 꺼내면 개구리 뒷다리를 꽉 잡고 있는 튼실한 집게발이 보인다. 민물 가재다. 뒷다리를 꽉 잡고 있으면 결국 잡혀서 죽게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잡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먹이를 먹고자 하는 유혹 때문에 못 놓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떤  쪽이든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개구리 뒷다리 하나를 포기하지 못해 생명을 잃게 되는 가재가 한심해 보인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온갖은 아니라도 어지간한 풍상을 겪어 보니 위험한 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산부인과 의사도 그렇다. 위험과 보람을 잇는 외줄을 타는 것과도 같아 끝에 무사히 도달하면 보람이 있지만 끝에 무사히 도달하지 못하면 치루어야 할 댓가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꼭 먹고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니라도 지는 줄 알면서 싸우는 싸움도 있고 얻지 못할 것을 알면서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보람이든 명예든 부든 혹은 성이든 모든 욕망에 대하여  포로라는 점에서 인간이 과연 가재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행복이라는 이름의 목적지에  결국은 도착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떠나는 여행이 삶이다. 참 즐거운 소풍이었다고 말하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천상병 시인 외에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8단계. 굽기
생으로 먹기에는 비려서 가재는 불에 구워서 껍질이 빨갛게 될 때까지 익혔다. 불을 피우는 것은 흔한 것이 성냥이었기 때문에 아주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성냥을 보기가 어렵지만 당시는 팔각 성냥이나 조그만 곽에 담겨진 성냥은 길거리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운 없게 비가 온 다음날이나 아주 습한 날만 아니라면 불 피우기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요즘처럼 라이터도 흔하고  고급진 오븐이나  인버터, 하다못해 전자 렌지가 집집마다 갖추어진 것에 비하면 초라한 불 피우기이기는 하지만. 요즘의 굽기 도구들은  절차도 간단해졌을 뿐 아니라 다양한 단계로 구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살짝 익히는 것부터 껍질을 바싹 태우는 것까지. 그러나 성냥을 성냥곽에 그어 한두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불을 지피고 나뭇가지를 모아  어설프게 가재를 굽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편리한 것과 행복은 비례 관계인지 반비례 관계인지 아니면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9단계. 먹기
미끼는  가재가 물고 놓지 않아 완전히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충분히 재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제약은 없었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사냥을 계속 할 수 없어 시간의 제약 때문에 한번의 사냥에서 얻는 가재는 고작 대여섯마리 정도 뿐이었다. 여러명의 아이들이 먹기에는 크기도 작아서 부족한 크기였지만 아이들은 공평하게 나누어서 먹었다. 그곳에 빈부는 없었다. 아니 빈부가 없는 것이 아니고 빈만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다툼이 생기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래 다툼이라는 것이 워낙 없이 살면 생길 일이 별로 없다. 다투어 쟁취해야 할 것이 많을 때 다툼이 치열해 지는 법이다. 따라서 경제가 발달하고 먹고 사는 것이 좋아질수록 다툼이 많아지고 빈부의 차이가 커진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가진 가장 큰 취약점이며 앞으로 인류가 너무 늦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사용하지 않고 남은 개구리 뒷다리도 함께 구워 먹었음은 물론이다. 영양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변두리 가난한 아이들에게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라고 하기에는 양이 너무 적기는 했다. 그래서 가재 잡기는 영양 공급의 목적보다는 놀거리가 없는 아이들에게 놀이로서의 목적이 더 컸다. 비록 짬짜면처럼 정확한 반반은 아니지만 놀이와 음식의 조합이 좋은 조합이라는 것은 요즘의 예능 PD들보다 먼저 옛날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이 질리지 않고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마도 먹는 것과 노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섹스를 포함하여 인간이 즐기는 많은 것들이 인생의 한 시절에만 가능한 것에 비하면 그 둘은 나이가 많든 적든 모든 사람이 거의 평생에 걸쳐서 한다. 너무 나이가 들어 육체를 움직이기 어려운 경우에조차 인간은 상상 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놀이를 즐긴다. 놀이가 멈추었을 때, 음식 먹기를 멈추었을 때, 그때가 바로 한 인간의 인생이 끝나는 지점이다. 아이들의 먹기가 끝나면 그날 놀이도 끝났다.  

"우리 가재 잡으러 갈래?" 하고 물어봐 주던 친구들은 지금은 없다. 그 말은 오늘 맛있는 것 먹으러 갈래 하는 말보다 더 즐겁고 오늘 재밌는 게임 하러 갈래 라고 하는 말보다 더 배 부르다. 이제는 갈 수 없는 시절을 그렇게 추억에서만 만난다. 그때의 가재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이후 한번도 먹어 보지 못했다. 그 기분을 아마 한강 작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푸른 돌이 그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삽입한 음악은 글의 느낌을 살리는데 적당한 것으로 골랐다.  
‘Tornero’ 라는 이 곡은 이태리 깐소네로 I Santo California라는 그룹이 작곡하고 부른 곡이다.  영화 "박하사탕"에도 나오는 말이기도 한데 "나 돌아갈래"라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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