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는 산모가 자꾸 줄어든다고 한다. 올해는 총 출생아수가 35만명도 안될 것이라는 예측이 파다하다.  여성 한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총수도 이미 0.9명으로 두명은 고사하고 한명이 채 안된다. 따라서 출산과 관련한 시장은 모두 어려운 경영 여건에 놓였다. 예식장, 출산 육아 용품 업체, 그리고 산부인과와 소아과까지 적자 경영에 허덕인다.

우리 병원이 개업하고 있는 동교동 홍대  인근은 나날이 젊은이들이 늘어나서 과거 주택이었던 곳이 커피집이나 식당으로 바뀌고 있다. 한산해서 밤에는 무섭기까지 했던 병원 옆골목은 이제는 지나다니다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힐 정도가 되었다. 반면 이대와 신촌은 상권이 죽어서 임대 내놓은 가게가 여럿이다. 신촌으로 가던 사람들이 다수 홍대 쪽으로 오는 탓이다. 이렇듯 많은 사회 분야나 경제 분야는 제로섬인 경우가 많다. 한쪽이 늘면 다른 한쪽이 준다. 임대료가 오르면 건물을 가진 사람은 좋고 건물에 세들어 사는 사람은 어려워진다. 그러나 출산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서 출산이 준다고 다른 것이 느는 것은 아니다. 출산은 가정에서도 국가에서도 기본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영역이 영향을 받는다. 몇년 후면 대학교도 학생이 모자라 폐교를 해야 할 곳이 많다고 한다. 국가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이 물과 에너지 등 자원의 관리와 인구 정책이다.  때로 일부 정치인들은 저출산 관련하여 지나치게 통제적인 해법을 제시하여 여성들의 비난 세례를 받기도 한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나도 출산 인구가 줄면 줄수록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어진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서도 저출산 현상은 좀 개선되어야 할 듯 싶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로 이십여년간 겪어 본 바로는 임신 출산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어떤 사람은 임신하고자 하는데 안되며 어떤 사람은 해서는 안되는데 임신이 되어 고민에 빠진다. 사람마다 삶을 영위해 나가는 방식이 다양하듯이 임신과 출산도 그렇다. 인간의 행위는 큰 의미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것들도 있지만 나름의 절박한 이유와 견고한 동기에서 시작하는 것들도 많다. 물론 큰 의미없이 택한 순간의  선택으로 인하여 한 사람의 인생 궤적이 달라지기도 하고 한 나라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궤적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순간의 가벼운 선택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순간의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도 없다. 저출산 문제도 그런 이유로  해결이 쉽지 않고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모 CF도 있지만 비록 선택은 순간이지만 10년간 영향을 끼치는 선택을 하는 일이라면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은 순간일리가 없다.

매듭을 푸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꼬인 매듭을 차근차근 푸는 방법도 있고 칼로 매듭 부분을 잘라 버리는 방법도 있다. 어떤 것이 더 나은 방법인지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서 해결하면 된다. 다만 처음에 매듭이 없이 매끈했던 줄에 매듭이 생겼다고 해서 항상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신발끈처럼  매듭이 있으므로서 풀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매듭은 오히려 꼭 필요한 매듭에 해당한다. 나는 저출산 현상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거나 꼭 필요한 매듭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출산 현상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거나 매듭인 것인지도 충분히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저출산 현상은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나 개인의 삶을 어렵게 만들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작용하고 있다.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보아서도 상당한 여파와 부작용도 있을 것으로 짐작 된다.
맬더스라는 사람은 인구론이라는 책에서 인구 폭발로 인해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현명하게 대처한 덕분에 그가 말한 재앙은 오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이 적지는 않지만 그것은 자원의 편중 때문이며 식량의 절대 부족 때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도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북극의 빙산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탓에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처럼 인구 문제도 개개인에게 당장 닥치는 불편함 혹은 후유증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개미 집단에서도 모든 개미들이 똑같이 일하는 것은 아니고 불과 20%의 개미만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파레토의 법칙이다. 20% 덕분에 전체 개미 집단은 잘 유지되고 있다고 하며 이는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고 원칙을 지켜서 했음에도 망할 수 밖에 없는 의료 환경이라면 편법과 불법으로 살아 남지 말고 망하는 것이 맞다는 운영 철학으로 20여년 전에 병원을 개업했다. 아직도 경영은 한달 한달이 위태롭지만 다행히 의사로서 하늘을 우러러 많이 부끄러운 일을 하지는 않았다. 까칠한 성품, 그다지 도덕적이지 못한 처신,  능력없는 가장과 자식인 탓에 인간으로서는 하늘을 우러러 많이 부끄럽다. 20여년의 병원 경영의 결과가 어떨지, 30여년의 의사 생활의 종지부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흡족하지는 않을 듯 싶다. ㅠㅠ)  그동안 쏫아 부은 노력과 지나온 과정에는 큰 후회가 없다.

저출산을 적정 출산으로 늘리는 과제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다만 여성의 출산권을 간섭한다느니 엄청난 예산에 비하여 티도 나지 않는 비효율적 방법이라느니 하는 비난을 듣지 않는 방법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눈으로 보이는 출산율을 일시에 과시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지금의 출산율 수준에서 개개인의 행복과 생존이 가능하도록 돕는 쪽으로 가기를 바란다. 당장의 출산율 개선에는 도움이 안되겠지만 살만한 세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임신과 출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도 저출산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인구가 자꾸 감소한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출생아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몇년 전 낙태 근절 운동을 하면서 여성 단체들과 많이 싸웠다. 유럽 국가들은 낙태가 합법화가 되어서 낙태율이 낮다고 주장하는 여성 단체 사람들의 오류를 지적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그런 나라들에서 낙태율이 낮은 것은 낙태가 합법화 되어서가 아니라 낙태를 안해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데 노력을 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낙태를 합법화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낙태 문제와 출산 문제는 거의 동일한 바탕을 가진 문제다. 살만한 세상이 되면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낳는 것이지 가정을 꾸리게 강제하고 아이를 낳도록 압박을 한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아이를 억지로 낳게 한다고 해서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 환경은 그대로 두고 낙태만을 합법화 한다고 낙태율이 주는 것이 아니며  여성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개인의 삶의 질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최대한 노력한다면  저출산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더라도 저출산으로 인한 부작용은 적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내 생각이지만 저출산 현상도 좋아질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병원은 망할 수 밖에 없는 의료 환경이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인다면 더 나은 결과가 온다고 믿고 사는 것과 같다. 세상만사에 권선징악이 작용하고 정의가 항상 이기며 모든 사랑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의가 스러지고 새드엔딩이라는 못마땅한 결과를 얻게 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다만 과정이라도 정의롭고 새드하지 않는다면 반은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해답이 아닌 풀이 과정에 점수를 주지는 않지만 자신 스스로는 풀이 과정과 해답을 비슷한 비중으로 본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왜나하면  어떤 답에 이르는 과정을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해 모르지만 자신 스스로는 잘 알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게도 얻고 구럭도 잘 가지고 있는 일이고 제일 나쁜 것은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것이다. 구럭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게를 잡으러 나아갈 힘이 생긴다. 보통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에 오거나 아니면 맨 마지막에 온다. 판도라의 상자에서는 제일 마지막에 남은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어떠한가에 따라 남을 수도 안 남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정책과 제도와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당장 게(출산율)에만 눈을 주지 말고 구럭 (개개인의 삶의 질)을 잘 지키는 것에 좀더 관심을 두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댓글

출산한지 한달이 넘었지만 출산 전보다 더 자주 들어와서 글을 읽게 되네요. 애독자가 되고 있습니다. 항상 통찰력 있는 좋은글 너무 잘읽고 있고요, 또 기다리겠습니다!  등록시간 2018-09-17 11:50
원장님 글을 읽으면 언제나 힘을 얻습니다.  등록시간 2018-09-13 11:00
원장님 글을 읽으면 언제나 힘을 얻습니다.  등록시간 2018-09-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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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ka11111 [2019-01-18 15:46]  YOON [2018-09-26 09:06]  alaia [2018-09-17 00:42]  동민 [2018-09-15 23:14]  tgruddms [2018-09-13 20:41]  podragon [2018-09-13 10:40]  rutopia [2018-09-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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