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아서 소일 거리로 도봉산 등산하시는 일 말고는 딱히 하시는 일이 없다.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하여  국민 연금과 자식들이 가끔씩 보내 드리는 돈으로 생활하시는 듯 하다. 매달 드려야 하는데  내가 능력이 없다보니 매달 드리지는 못하고 가끔 가뭄에 콩나듯  형편이 되면 조금씩 드린다. 서너달 전에도 30만원 쯤의 돈을 아내에게 주면서 어머니께 드리라고 하니 아내는  자기도 봉투를 준비했다고 한다. 아내가 왠일로 돈을 준비했나 싶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액수가 궁금하여 봉투에 얼마 넣었니 하고 물었다. 아내의 말이  돈은 내가 준비했을테니 자기는 봉투만 준비했다고 한다. 정말 말 그대로 순수하게 빈 봉투만 준비했다는 이야기다.  돈은 없이 빈 봉투만 내미는 아내를 보니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귀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서글프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오래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항상 출마하는 후보가 두명 있었다. 한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고 다른 한사람은 진 무언가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름은 잊어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의 인기가 높던 시절이라 다른 후보들의 득표율은 높지 않았다. 따라서 군소 후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유세장에서 막걸리도 돌리고 돈봉투도 돌리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기자 회견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홍보 기회였는데 방송의 힘은 지금도 막강하지만 그 당시는 더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그때는 기자 회견을 열면 기사를 잘 써달라는 의미로 참석한 기자들에게 후보가 돈봉투를 건네곤 하였다. 기자 회견이 끝날 무렵 위의 진모씨가 촌지라고 하면서 기자들에게 흰 봉투를 돌렸다.  봉투를 열어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큰 돈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봉투에 달랑 천원 한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만원쯤 되는 돈이다.  당시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유리한 기사를 써달라는 의미의 뇌물성 돈으로는 터무니 없이 적은 액수였다. 말 그대로 촌지였다. 당연히 돈을 안 주느니만도 못한 역효과 났다고 하는데 그때 진모씨의 의도가 뭐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봉투나 촌지나 말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내가 생각하는 의미와 상대가 생각하는 의미가 다르면 오해가 생긴다. 같은 말을 하고 살면서도 오해가 생길 수 있는 것이 세상사다.  오해를 덜 불러 일으키려면 의미를 정확하게 담은 말을 쓰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은 그 뜻을 부연하여 설명하면 된다.  이런 배려와 세심함은 가정사에서나 사회 생활에서나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그러나 갈수록 말은 짧아지고 직접적 대면보다는 SNS나 이메일등 간접적인 전달 방식이  늘어나고 있어서 말로 인한 오해가 점점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과거에 비하여 요즘은 말이나 글보다 영상을 더욱 선호하게 된 것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유튜브를 해 보라는 권고를 많이 받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아닌게 아니라 이러다 팔튜브라도 하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보여줄만한 얼굴도 아니고 공개할만한 유용한 내용도 가지고 있지 못하니 웃는 미소년 가면을 쓰고 한시간 내내 가만히 앉아 있는 영상이라도 보여 주어야 하는 걸까? 내가 웃는 모습을 한번도 못 봐 서운했다는 오래전 어느 산모분의 호소를 감안하여.....ㅎㅎ
참고로 팔튜브에서  8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찾느라 애쓰는 분이 혹시 있을지도 몰라 오해가 없도록 설명드리자면 내 인터넷상 필명이 팔랑심이라서 붙인 것 뿐이다. 팔랑은 남의 말에 줏대없이 흔들리는 팔랑귀에서 따온 것이다.

아래는  전에 살던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 붙여져 있던 것을 찍은 사진이다. 층간 소음만큼이나 괴로운 것이 냄새로 인한 고통이다. 그런데 내가 아직도 이해 못하겠는 것은 담배는 아랫집에서 올라온 것일텐데 왜 생선을 굽는다는 것인지??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죄없는 윗집 사람만 피해를 보는 건 아닌지, 아니면 냄새도 소리처럼 아래로도 퍼지는 것일까?
사실 쪽지를 붙인 사람은 무엇을 오해했다기보다는 잠시 착각한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글에 사진도 없이 내 인상 만큼이나 딱딱한 글만 있으면 좀 그래서 전에 휴대폰으로 찍었던 사진을 올렸다.

댓글

navi3561 / 재미있다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아기가 착하게 생겼다는 말보다는 이쁘다는 말을 더 좋아하는 부모처럼 의미가 좋다는 것보다 재미가 있다고 하는 말이 더 기분은 좋군요. ^^  등록시간 2018-11-01 00:30
오늘 글도 너무 재밌게 잘읽다가요^^원장님 글읽는게 하루 일과중 중요한 하나에요 소소한 내용부터 무게감있는 내용까지 항상 빠져들게되네요 제삶에서 글 읽는 즐거움이란 평생 모르고 살았는데 알게해주셔서 감사  등록시간 2018-10-3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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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ia [2018-11-12 21:39]  happybud19 [2018-11-06 17:15]  이연경 [2018-11-03 12:26]  씽씽 [2018-11-02 11:14]  박선주 [2018-10-3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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