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마침 아내가 병원에 온 날이기도 하고 한가하여 오랜만에 드라이브 삼아 서삼릉 근처로 향했다. 서삼릉은 고양시에 있어 막연히 멀다고 생각해서 갈 마음을 먹지 못했다. 네비게이션으로 위치를 찍어 보니 차량 정체가 없어서인지 이곳 동교동에서 차로 20여분 밖에 안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아내는 전에 응암동에 개업했을 때 가끔 가곤 했던 서삼릉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우리밀 칼국수와 오리 밀쌈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으로 그 주변에서는 꽤 유명했던 집이다. 이곳 홍대의 음식점들은 사람이 북적 거려 잘되는 것처럼 보이던 집도 어느 날 보면 없어지기도 하여 그 집도 그사이에 혹시 없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아내 말이 없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규모를 키워 근처로 옮겼다고 알려준다.
나는 운전 중이라 아내가 위치를 검색해 보겠다고 휴대폰 검색을 켠다. 식당의 이름을 묻는데 나도 그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한참 동안 간 적이 없어 이름을 잊었는데 나이는 얼굴로만 오는 게 아닌 모양이다. ㅠㅠ.   마당 넓은 집이라는 것 밖에 생각이 안나서 삼송리 지역이니 지역 넣고 그 단어로 한번 검색해 보라고 했다.
" 아이 참 안 나온다고...정확한 이름이 뭐야!!" 하며 짜증을 낸다. 아니 이름을 모르는 건 저나 나나 마찬가지인데 왜 나한테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아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짜증이 늘었다. 경제적 능력이 별로 좋지 않는 나에게 쌓인 불만이 깨진 바가지 사이로 물이 새듯 이런저런 사소한 기회를 틈타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으니 반대로 빈 곳간은 사람의 마음도 황폐하게 만드는 듯하다.

결국 목 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한참 머리를 쥐어 짜며 마당 넓은 집, 마당 넓은 집하고 되뇌이다 보니 너른마당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너른마당이야 너른마당"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뛰쳐 나오면서 유레카를 외칠 때의 기분보다야 못하겠지만 상당히 기뻤다. 생각 날듯 날듯 하면서 안나는 것이 생각나서 시원한 것보다 그쯤에서 아내의 짜증을 중단시킬 수 있어서다. 그렇지 않았다면 운전하는 내내 구박을 받으면서 즐겁던 마음이 완전 먹구름이 되었을테니.

너른마당이라는 집을 처음 알게 된지는 꽤 오래 되었다. 20여년 전 응암동에서 개업하고 있을 때 출산한 어떤 산모가 만두를 선물로 준 적이 있다. 만두가 너무 맛있어서 어느 집 만두인가 물어 듣게 된 것이 서삼릉 근처의 그 식당이었다.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갈 생각에 이름을 기억해 두려 물으니 너른마당이라는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 후 부모님이 오시거나 손님 맞이할 때면 간혹 그집에 모시고 가서 음식을 대접하곤 했다. 은평구를 떠나 이쪽으로 와서 개업하게 되면서 멀어져 그 이후는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거의 10여년 만에 처음 가보는 꼴이다.

도착한 식당은 꽤 넓어졌고 서삼릉에서는 여전히 멀지 않았다. 손님이 많아서 한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러 찾아 온 것이라 기다리기로 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 올려놓고 풍성히 열린 감나무도 구경하고 작은 연못의 마른 연잎도 보면서도 산책하니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 사진도 몇장 찍었다.















서삼릉 지역이 아파트도 들어서고 개발이 되면서 땅값이 많이 올랐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넓은 땅에 식당을 차린 것을 보면  돈을 많이 번 모양이다. 요즘은 그렇게 못하겠지만 20여년 전에 내가 처음 가던 때에는 아주 크지 않은 집이라 마당에서  토종닭을 직접 키워서 닭볶음 요리를 한다고 들었다. 난 오리 고기보다 닭볶음 요리를 좋아하는데 이날은 아내가 좋아하는 만두와 오리 밀쌈을 시켰다.





좋은 재료에 맛을 더하고 정성을 다해 손님을 맞이한다. 거기다가 주변 풍광도 좋으니 잘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럽다.
병원은 식당과는 달리 재료가 좋고 정성을 다한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식당도 정성을 다하고 맛이 좋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전 만난 수련 동기들과 병원 경영이 성공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한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요즘 출산도 줄고 하여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산부인과가 경영 압박이 심하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경제 이야기가 주요 대화 주제였다. 수련 동기들이 병원이 잘 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모두 운이었다. 물론 운이 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자 조금씩 다르게 대답했지만 그 편차는 10% 남짓에 불과했다. 그날 만난 4명 중 가장 성공하여 중대형 규모의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는 동기는 운이 거의 99% 작용한다고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노력 등 다른 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 합해봐야 1%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다. 에디슨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고 했는데.....
동기들의 생각 그리고 내 생각도 동일하지만 노력은 누구나 비슷하게 자신의 최선을 다하니 그에 따른 차이는 별로 없고 결국 운이 거의 대부분의 영향을 끼친다고 봐야했다. 2017년에 참여 연대의 의뢰로 우리리서치가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64% 그러니까 대략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에 더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노력의 영향력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은 병원 뿐 아니라 모든 경제영역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사가 운에 의해  좌우된다면 허탈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것들은 뭐란 말인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티끌 모아 태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등등 그 많은 금언들은 다 거짓인 것인지....
비록 운의 비중이 높아도 운이야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노력이야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이라서 그런 금언이 생긴 것이라고 추측해 볼 뿐이다.  
이즈음에서 드는 역시 쓸데 없는 생각 하나.
만일 병원을 경영한다는 것이 99%의 노력과 1%의 운에 달린 것이었다면 나도 지금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었을까?

유튜브에는 그냥 이 사진들을 모아서 붙이고 배경 음악 넣어서 영상을 만들어 올렸으니 궁금한 분은 아래 주소로 가서 보시길.....

https://youtu.be/7UH6ngr0V20

댓글

맛집 고민하던 차에 마침 원장님 올려주신 글보고 저희도 오늘 너른마당에 가봅니다~~~^^ 이게 바로 기막힌 타이밍의 운인가요 매일 열심히 홈피 들어오는 노력인가요~~~히히  등록시간 2018-11-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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