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낙태 근절 운동가 심상덕 의사를 만나다
글/ 임연수 기자
dustn0775@kookmin.ac.kr
사진/ 고동완 기자
kodongwan@kookmin.ac.kr
기사입력 2013-08-27 16:57 기사수정 2013-08-27 16:57
“저는 프로라이프도, 프로초이스도 아닌 프로우먼(prowoman)입니다”
낙태수술 베테랑, 낙태반대운동을 시작하다
“혹시 다음 주에 인터뷰가 가능하신가요?” “네, 그럼요. 아무 때나 오세요”
기자의 조심스런 인터뷰 요청에 심상덕 씨는 너무도 흔쾌히 승낙했다. 심상덕 씨의 이름을 인터넷에 치면 저서와 칼럼 소개 및 그의 이름이 언급된 뉴스가 여러 개 뜰 정도로 그는 낙태관련운동 쪽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지난 14일(수) 심상덕 씨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거만함이나 권위적인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심 씨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90년부터 산부인과 전문의 생활을 시작한 24년차 베테랑 전문의다. 인턴 시절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된 이유는 별다른 건 없어요. 다만 산부인과 병동을 돌면서, 아기를 낳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퇴원하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힘들지만 이 일 정말 할 만하다고 느꼈어요”
심 씨는 2008년 산부인과 전문의 모임인 ‘진오비(GYNOB)’(Gynecology<부인과>와 Obstetrics<산과>의 앞 글자를 딴 약칭. 정식명칭은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를 만들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낙태수술을 시행해왔다. 그러면서 병원 운영을 유지 해오던 그는 어느 날부턴가 낙태수술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낙태를 한 여성들은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더라고요. 여성들이 스스로 낙태를 원하니까 저는 그들을 위해서 낙태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때부터 낙태수술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죠”
산부인과는 임신·분만·여성의 생식기에 관련된 병을 다루는 병원의 특성상 찾는 환자가 많지 않아 수입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산부인과 병원에서 낙태와 같은 불법 수술을 병행하면서 적지 않은 수입을 얻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많은 산부인과의 핵심 수입원이 분만, 낙태, 질 축소수술(일명 여성성형)이에요. 우리 병원은 지금은 낙태와 여성성형수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수입이 크게 줄었어요. 그에 따라 병원 규모도 줄일 수밖에 없었죠”
진오비는 바람직한 산부인과 의료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심 씨가 2008년 12월 1일(월) 개설한 의사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점차 낙태반대운동으로 활동을 확장시켜 나갔고, 2009년에는 심 씨를 중심으로 진오비 의사들과 전국의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모여 낙태근절 운동본부를 설립해 낙태반대운동을 펼쳤다. 이후 낙태근절 운동본부는 ‘프로라이프 의사회’로 개명이 되었는데, 심 씨는 본부 내에서 의견 충돌이 생긴 뒤 뜻이 맞는 일부 회원들과 함께 의사회를 탈퇴하고 작년 10월 자신의 병원 ‘아이온 산부인과’를 ‘진오비 산부인과’로 개명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낙태와 여성건강을 주제로 한 진오비 주최 초청공연 관련 포스터
낙태 찬성과 반대의 가운데에 서다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불법낙태 시술을 빈번히 행하던 병원 3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자 당시 의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심 씨에게 동료 의사들의 수많은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동료를 고발할 수 있냐며 많은 의사들이 저를 욕했어요. 그래도 낙태 운동 관련해서 상당히 강수를 둔 거죠. 내용이 뭐든 간에 의사가 의사를 고발했다는 거는 사람들 주목을 끄니까. 앞으로 이런 강경한 방법이 또 있을 것 같진 않아요”
현재 낙태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라 일부 낙태허용사유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이다. 이것에 대해 낙태행위에 반대하는 ‘프로라이프(prolife)’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낙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낙태는 여성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악영향을 미치며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낙태의 전면 합법화를 주장하는 ‘프로초이스(prochoice)’측의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 같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누구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심 씨의 말에 따르자면, 낙태를 하는 여성들 중 절반은 20~30대 미혼여성이다. 그들은 임신을 하고서는 대부분 산부인과에 혼자 와서 낙태수술을 상담 받는다고 한다. 심 씨는 임신한 사실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거나 도망친 남성들이 많다고 밝히면서 여성 혼자 낙태를 고민해야만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많은 병원의사들이 낙태를 말리기는커녕 왜 이제야 왔냐고 하면서 반겨요”라고 하며 한편으로 그는 차라리 본인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다시 시작해서 낙태 상담하러 온 여성들을 잘 설득해 집에 돌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지난 해 12월, 진오비 회원들과 뜻을 모아 자신의 병원 안에 낙태 상담 센터를 개설했다. 이곳에서 그는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낙태를 원하는 임신부를 대상으로 낙태에 관한 의학정보를 제공하며,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여성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피임 교육과 낙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예방 활동도 펴고 있다.
근본적으로 심 씨는 낙태를 최소화하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낙태찬성과 반대입장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럼에도 수술을 받길 원한다면 낙태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경제적, 사회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여성이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요? 저는 여성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프로우먼(prowoman)입니다”
▲낙태상담센터 개관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심상덕씨(왼쪽 첫 번째)와 진오비 회원들
낙태는 우리 모두가 관심 가져야 할 문제
심 씨는 낙태라는 이슈를 공론화하기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신문과 인터넷에 칼럼을 기고해왔고, 2010년에는 낙태에 관한 본인 칼럼들을 엮은 ‘낙태와 낙태’라는 책을 펴냈다. 지난 3일(토)에는 진오비 이름으로 낙태에 반대하는 미국 여의사들의 초청 강연도 주최했다. 그러나 심 씨는 그 어떤 근절운동보다 ‘낙태가 남의 일’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2005년 복지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낙태 건수는 약 34만 건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이 다 끌어 모아도 30명이 채 안 돼요. 낙태는 가임기에 있는 모든 여성들이 언제 어느 시기에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문제에요. 저는 찬성 쪽이든 반대 쪽이든 사람들이 낙태 문제에 관해서 일단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활발하게 해야 한다고 봐요”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심 씨는 “낙태가 불법이든, 합법이든 낙태가 만연하는 사회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인 여러분이 목소리를 내서 이 문제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가길 바랍니다”라고 하며 독자들을 향해 당부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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