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인간 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인간 관계와 행복의 연결 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물론 사랑과 우정은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행복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고 발전한다.
노년이 되면 대체로 인간 관계의 중요성이 덜해진다.
어쩌면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어쩔  수없이 해야하는 이별을 덜 고통스럽게 하려는 자연의 자비로운 섭리일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든 인간관계에는 불확실성의 요소가 늘 있기 때문에, 그 인간관계가 완전무결한 것으로 미화되거나 무언가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 될 수는 없다.
아마도 가장 친밀한 관계일 결혼이 그렇게도 불안정한 이유도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행복의 주된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혼 생활을 눈물로 끝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위글은 1920년 영국에서 태어나 정신과 의사로 대학교 강의와 저술, 그리고 심리 치료를 했던 앤서니 스토가 쓴 책 "고독의 위로 (원제목: Solitude. A return to the self)" 서문에 있는 글입니다.
모든 작가들이 prologue(서문) 아니면 epilogue(후기)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히 보여주게 마련인데 이 책은 후기는 없으니 서문에서 그의 생각을 드러내었다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책의 맨 마지막에서  보울비의 "애착과 상실"에 있는 문장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번 밝히기 때문에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에 대한 친밀한 애착을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아기일 때나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일 때나 어린아이일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청소년일 때나 성인일 때, 노인일 때도 그렇다.
이런 친밀한 애착에서 사람은 살아갈 힘과 기쁨을 얻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힘과 즐거움을 준다".--존 보울비의 "애착과 상실" 중에서

하지만 내가 볼 때, 보울비의 애착이론에서는 일의 중요성, 사람이 혼자 있을때 그의 마음 속에서 진행되는 정서변화의 중요성, 무엇보다 창의력을 지닌 사람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중심 공간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밀한 애착관계는 삶이 전개되는 하나의 중심축일 뿐, 유일한 중심축은 아니다.

책에는 베토벤이나 바흐, 리스트등 많은 음악가와 여러 소설가, 화가, 철학자등 다양한 종류의 창조적 작가들과 고독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위에 쓴 보울비 뿐 아니라 프로이트, 융 등 여러 정신분석학자들이 인간의 삶과 고독 그리고 애착의  문제 대하여 펼친 주장들도 나옵니다.
그러나 저는 광기와 우울함이 유독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돌파구로 창의적 작가가 되며 그 수단으로서 고독은 필수적 요소인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란 다들 비슷하며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그것을 글이나 혹은 음악, 그림으로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우울하고, 광기를  가지고 있고 고독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 앤서니 스토는 전자의 경우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여하튼 이책은 원하던 원치 않았던 애착관계의 형성에 집중하기 보다는 글쓰기나 기타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고독과도 때로 가까이 지냈던 제게 일말의 위안을 줍니다.
전에 잠시 보았던 스캇펙 박사의 책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는 그런 애착관계의 형성이 매우 중요하고 살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최종 목표처럼 언급하고 있어서 그런 점에서 잼병인 저로서는 다다를수 없는 넘사벽 앞에선 절망감을 느끼곤 하였으니까요.
그러니 고독이 병도 아니며 특별한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창의적인 사람에게는 오히려 꼭 필요한 것이기까지 하다는 앤서니 스토의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런 창의적 재능을 가지지 못한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대단한 예술 작품을 남기는 수단으로써 활용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저는 지금은 전에  한참 열중하던 산부인과 의사회 일이나 동문회 모임, 친구들 모임, 낙태 근절 활동 등 거의 대부분의 대외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저 진료를 위해 산모와 직원을 만나는 것 외에는 다른 만남은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한때 거의 혼자만 지내다가 이후 이런저런 관계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살았는데 다시금 예전의 조금은 고독한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고독의 위로"라는 책이 눈에 띄인 건 아마 그런 생활에 대한 변명을 찾던 제게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중간쯤에 있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서곡"의 한 부분을 올려 드립니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좋은 본성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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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gges [2020-01-01 23:28]  
#2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6-10 13:15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원체 내성적이신 분이시면서... 산모든 직원이든 동료의사든 남을 상대하는 '자영업'에 종사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요? '타인'이란 의미에서 그들과 대외관계 속의 사람들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동굴속에 편히 숨어있고자 하는 본성을 다스리면서 이미 충분히 적극적인 삶을 사시는 것 같은데.
굳이 변명같은 건 필요 없어 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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