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 타고 여행을 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열차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써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 순환 열차인가 봅니다.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티켓에는 다 다른 목적지가 써있군요.
어떤 사람의 티켓에는 부귀 영화라는 단어가 써있고 그 옆의 사람의 티켓에는 자아실현이라는 단어가 써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티켓에는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써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그것에는 행복이라고 써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이번 여행은 처음 해 보는 여행이며 여지껏 많은 정류장을 지나쳐왔습니다.
지나쳐 오는 동안 새로 올라오는 사람도 보았고 중간에 본인의 의지로 혹은 타의에 의해 내리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지나온 정류장들에는 어떤 것은 멋진 풍경을 가진 곳도 있었는가 하면 조금 우울한 기분을 주는 역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역에서는 그저 잠깐 스치기만 한 곳도 있고 어떤 정류장에서는 아주 오래 머물면서 기뻐하거나 혹은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타고 가는 동안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어떨때는 혼자서 말없이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아 있는 역들이 어떤 역들일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정류장은 지금까지 지나온 정류장보다는 오래 정차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류장의 이름은 그리움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마지막 정류장인지 아니면 또 그대로 타고 어디론가 계속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가 내려야 할 역이 써있는 티켓을 내려다 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 것도 써있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아무 내용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세월이 지나면서 글씨가 지워진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은 이미 내려야 할 역을 지났기 때문에 저절로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아마 그도 행복이라는 이름의 목적지가 써 있는 티켓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지나온 역에는 행운처럼 비슷한 역은 있었지만 정확하게 일치하는 그런 이름의 역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디서 내려야 하는 지 언제 내릴 수 있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어쩌면 원래부터 행복이라는 이름의 정류장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지나는 길의 이름이며 정류장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설 수 없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저 지나가면서 느끼는 길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그에게는 이 열차 여행이 매우 낯설고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 그는 가끔이지만 그만 열차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상실, 고통, 두려움이라는 역만 남아 있을까봐 불안합니다.

어차피 타고 갈거라면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산이며 나무, 들과 꽃들을 보면서 여행의 즐거움에 못 이기는 척 자신을 슬쩍 맡겨도 될 것 같은데 그는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랬다면 그는 이미 자신이 처음에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티켓에는 목적지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있다 해도 아무도 목적지에 내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에게 삶이란 이 여행은 너무나 낯선 여행입니다.
행복 뿐 아니라 티켓에 써 있는 정류장이라고 생각한 곳은 그저 지나가면서 바라 보는 풍경의 한 모습일 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번 내리면 다시는 탈 수 없는 열차를 타고 매우 낯설고 당황스러운 여행을 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비쳐 보입니다.
아무리 긴 시간을 타고 왔어도 그에게 이 여행은 익숙해 질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