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은 학창시절이라기 보다는 만 13세까지는 성장기로 보기 때문에 성장기로 넣었고 학창시절이라 하면 보통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시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학창시절도 학업의 내용면에서나 육체적 정신적 수준의 면에서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은 크게 차이가 없어 중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로 나누는 것이 적당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는 기억이 오래되어 서로 잘 구분되지도 않습니다.
여하튼 중학교는 동대문구에 있는 동대문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대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제가 입학하기 몇년 전까지는 시험을 쳐서 들어 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제가 학교 들어가기 이삼년전부터는 뺑뺑이라고 해서 추첨제로 바뀌었습니다.
대광고등학교는 후기에서는 알아주는 명문이라 연세대학교에는 한해 수십명씩 들어가고는 해서 제 고등학교 선배들은 서울대에는 몇명 없고 연세대학에는 많았습니다.
아마 대광고등학교가 미션 스쿨이라 역시 종교 재단 학교인 연세대로 많이 간 것도 있을 것입니다.
여튼 그런 추첨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동대문 중학교는 소위 노는 아이들이 많이 다녀 깡패 학교로 유명하기도 했고 야구부가 개설되어 있었는데 중학 야구로 유명한 몇 안되는 학교였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이때는 아버지께서 재생 타이어 제조 공장을 해서 집이 공장과 함께 붙어 있는 중랑구 묵동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서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해야 했습니다.
사실 중학교 때는 친한 친구는 두어명 밖에 없었는데  이는 제가 내향적인 성격인 탓도 있지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집이 완전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예전 초등학교 친구는 한명도 인연을 이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 이사 가는 것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저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폐타이어를 나르는 일을 돕는 것이 일과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상체를 쓰는 일을 많이 한 덕분인지 지금도 저는 하체에 비하여 상체가 월등히 더 발달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발달은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는 하지만 후천적인 환경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집안 일을 돕는 것이 끝나는 늦은 밤이면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보기도 했지만 주로 지금은 개발되어 다 없어졌지만  판자집들이 즐비한 중랑천 뚝방길을 혼자 걷고는 했습니다.
중랑천 뚝방은 전에 북한에서 누군가 고위급 인사가 서울을 방문하였을때 정부에서 보여주는 곳 말고 자기가 원하는 곳을 한번 가보고 싶다고 헬기를 타고 가다가 불시에 내렸다는 그곳입니다.
북한 고위 인사가 보기에 그  동네는 아주 가난한 동네로 보여서 남한이 이렇게 못사는구나 하는 것을 생생히 보고 북으로 돌아가서 홍보할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 고위 인사가 내려서 다쓰러져 가는 뚝방의 어느 집으로 들어갔더니 마침 퇴근하는 가장이 호떡인지 무언가 봉지에 잔뜩 사서 가지고 들어가는데 안에서는 가족들이 TV를 보고 있어서 놀랐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고위급 인사의 가정에나 있는 TV가 여기서는 아주 못사는 사람들까지 가지고 있고 때때로 간식도 사먹을 정도라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뚝방은 밤 늦도록 불이 켜 있는 집과 가게가 많아서 걷기에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뚝방길은 요즘 잘 꾸며진 공원의 산책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길이었고 칸트가 걸으면서 항상 사색에 잠겼다는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과도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길이지만 제게는 젊은 날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견디게 해준 사색의 길이었습니다.
뚝방에는 각 판잣집의 변소들이 지금처럼 정화조등의 시설도 없이 바로 생으로(ㅋㅋ) 중랑천으로 배출되도록 출구가 나 있어서 중랑천은 그야말로 똥물이 흐르는 검은 강이었습니다.
푸른 도나우 강은 얼마나 깨끗한지 모르겠지만 어느 나라건 도시를 가로 지르는 강들은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먹고 사는 것이 일순위이던 시절에는 환경이니 자연이니 하는 것들은 별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이름에 걸맞게 깨끗해진 청계천도 그 당시에는 마찬가지로 더러웠는데 아마 중랑천이 기여한 바가 상당히 컸을 겁니다.
그래서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의 중랑천을 보고 그때의 모습을 상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언젠가 다시 가본 그 뚝방길에는 더 이상 쓰러져 가는 판잣집은 없었고 잘 꾸며진 산책로가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어떤 감흥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게와 조개가 살아 숨쉬는 갯벌이 차갑고 싸늘한 시멘트 포장으로 덮여 버린 것 같은 기분.
흡사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적 살던 숭인동의 달동네가 멋진 공원으로 바뀌면서 없어진 그것이 중랑천 뚝방에서도 사라졌더군요.

요즘 tvN 방송의 "세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라는 프로그램 보니 출연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 3개를 골라 이야기를 이어나가더군요.
중학교 시절에서 제게 중요한 단어 3개를 꼽으라면 문학, 미술,  철학입니다.
소위 인문학을 대표하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중에서 2가지가 포함되어 있군요.
그걸 보면 저는 문과로 진학해서 국문학과나 철학과를 갔어야 하는데 왜 이과인 의대를 가게 되었는지 이상하시죠?
저도 이상합니다. ㅋㅋ. 얼마전 말한 팔랑심의 4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ㅎㅎ  
어쨋든 그건 학창시절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고등학교 시절에서 답이 나오겠지요.

여하튼 다른 아들들도 대체로 비슷하겠지만 저는 자라는 내내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랑이니 뭐 그런 것 말고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했을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기억 나는 선물이 두가지가 있는데  중1때이든가 반에서 5등 안에 들면 사주시겠다고 말씀하시어 제가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4등인가 하여 선물 받았던 자전거가 그 하나이고  역시 중학교 때 아버지를 졸라서 산 100권 짜리 세계 문학 전집과 50권 짜리 한국 문학 전집이 다른 하나입니다.
반에서 4등이라고 하면 사실 지금 생각하면 별건 아니지만 그저 놀기에 바빴던 초등학교 시절을 거친 제게 60명도 넘는 아이들 가운데 5등 안에 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자건거를 선물로 받은 때는  1학년 초반기는 아니었고 1학년 후반기 때이거나 아니면 2학년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학창시절에 그리 특출나게 공부를 잘 한 건 아니었습니다.
문학 전집은 선물 받는 게 쉽지 않았는데 아버지께서는 공부에 방해된다고 해서 안 사주시려 했지만 역시 저의 편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읽고 싶었던 책들을 사서 마음껏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여기저기 옆집에서 빌려서 눈치를 보면서 읽어야 했으니까요.
서정주 시인이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스물 세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지만 저를 키운 건 8할이 책이었습니다.
그 시절  읽었던 책 중에 재미있게 본 책들은 투르게니에프의 "첫사랑", 스탕달의 "적과흑",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 로렌스의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 등 주로 로맨스 소설이었습니다.
저는 책이 있어서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았고 책이 있어서 긴 밤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 읽은 책들이 제 인생관과 가치관 형성에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뿐 아니라 살아나가면서 터득했어야 할 지혜들도 모두 그때 배웠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그저 영어 숙어  몇 줄과 수학 공식 몇개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나중에 대학 입시에서도 그렇고 공부하면서 보니 국어든 영어든 지문의 많은 수가 거의 문학 작품들에서 가져 온 것들이 많아서 익숙했으니 여러모로 그때의 난독이 도움이 꽤 되었습니다.
한때 제가 학교 친구들과 자신있게 내기 했던 것이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책 제목을 부르면 책의 저자를 맞히는 놀이였고 다른 하나가 버스 번호를 부르면 종착역을 맞추는 놀이였습니다.
어릴 때 구슬과 딱지를 가지고 놀던 것에서 이젠 유치하기는 하지만 약간은 지적인 수준의 놀이로 올라갔다고나 할까요? ㅎㅎ
물론 나라와 수도 이름 맞추기도 종종 하는 놀이였는데 저는 그 놀이는 거의 꼴찌였지만 책이나 버스 게임은 거의 제가 항상 이겼습니다.
저에게는 고독이 요였고 책이 이불이었으니 책의 제목에 따라 저자를 맞추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습니다. 주제를 맞추는 것이라면 조금 어려웠겠지만.

중학교 다닐 때는 아버지께서 하시던 재생타이어 공장 덕분에  이전보다는 형편이 아주 조금  괜찮아져서 다락이 딸린 집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방인 다락방이 생겼기 때문에 저는 그곳에서 책도 보고 꿈을 키웠습니다.
지금은 제 진료실이 저의 작은 성이라면 그때는 그 다락방이 저의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 성안에서 저는 성주였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고 비밀과 추억을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선물로 받은 것은 문학 전집이었기 때문에 철학 관련 서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철학책에 대한 갈증은 소설책보다는 크지는 않았지만 소설책이 달콤한 크림 케잌이라면 철학책은 케잌 위에 올리는 쓴 맛의 다크 초콜릿과 같은 것이라서 그 둘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철학 서적은 따로 구매해야 했는데 그때만 해도 동네 책방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동네 책방들이 거의 없어져서 요즘 저는 책을 살 일이 있으면 병원에 있을 때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고 집에 있을 때는 잠실 교보문고에 갑니다.
다행히 얼마전부터는 병원 옆 와이즈 파크에 리브로 서점이 생겨서 거기를 자주 가는 편이지만.
그 시절에는 동네 서점이 많아서 찾고자 하는 책을 멀리가지 않고도 쉽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춘기였던 저는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극심했던 때라 책을 사러 제가 직접 가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제 바로 아래 여동생을 시켜서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여동생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이거나 중1정도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그때 읽었던 책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혹은 "존재와 시간" 같은 철학책이었고 아니면 철학책보다는 심리학 책에 가깝지만 철학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인간의 삶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정신분석학 입문" 등등의 책이었습니다.
동생이 그런 책을 사러 책방에 가면 서점 주인이 그렇게 물었다고 하더군요.
"대학생 오빠가 시킨거니?"
"아니요. 우리 오빠 중학생인데요?"
"중학생??? 이건 중학생이 읽기는 좀 어려운 책인데 분명 이 책을 사오라고 한 게 맞니?"
"녜 맞아요. 여기 써 있잖아요."
저는 동생이 책 이름을 잊어 먹을까봐 종이에 책의 이름을 써주었습니다.
이런 책 심부름 뿐 아니라 저는 동생 둘을 많이 부려 먹었습니다.
나중에 동생들이 제가 시킨 심부름 중에 제일 하기 싫었던 것이 책 심부름이었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고백록답게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제가 시킨 것에는 철학책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ㅋㅋ
금병매 외에는 다른 책들은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데 지금으로서는 별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19금에 해당하는 야한 내용의 책도 종종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3류 애정 소설책은 문학전집에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무슨 밝힘증 환자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춘기 나이는 궁금한 것이 많은데 성적인 것에도 궁금증이 충분히 많을 만한 나이었으니까요.
동생들이 그런 책을 사오기는 사실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지금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초등학생이 비디오 대여점에서 포르노 비디오 빌려 오는 것보다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생들이 무슨 말로 둘러대면서 책을 사왔는지까지는 제 기억에 없지만 여하튼 동생들은 제 말을 잘 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이나 그때나 엄하게 군림하는 무서운 오빠거나 형이었고 동생들은 착했었거든요. ㅎㅎ

그때 읽었던 철학책의 내용이나 빨간책들의 내용은 지금은 기억 나지는 않습니다.
철학책은 아마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기억을 못할 것이고 빨간책들은 내용이 너무 뻔해서 기억을 못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전에 대학 다닐 때나 불과 몇년전에도 옛날 생각이 나서 예전에 읽었던 철학책들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다시 읽어 봤는데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더군요.
사회인이나 대학생인 저도 이해 못하는 것을 중학생 나이의 제가 단 한줄조차라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런 책들을 읽어 보려 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이런 책도 읽었다는 그런 과시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가정 형편이고 외모고 체력이고 내세울 것이 없는 아이들은 그런 이상한 것으로라도 남과는 다르게 튀어 보이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나이에 읽는 철학책이란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글을 눈동자에 잠깐 바른다고 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몇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금방 날아가 버리는 휘발성 강한 샤넬 코코아가씨 향수처럼 말이죠. {:4_101:}
그러나 비록 책의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 이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삶이란 것에 대하여 고민했었다는 사실이 반가웠습니다.
어두컴컴하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다락방에서, 쓰러져 가는 판잣집으로 이어지는 뚝방길에서 늦은 밤까지 잠 못들고 "인간은 왜 태어나게 된 것인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저 뿐이라면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외로웠겠습니까?
그러나 저 말고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다는 사실이 제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비록 제 바로 옆에서 그런 고민을 나눌 피가 통하고 심장이 뛰는 친구를 두지는 못했지만 먼 과거의  인물일지라도 책 안에는 살아있는 니체가 있었고 하이데거가 있었고 아우렐리우스가 있었습니다.
비록 그 당시의 제 지적 수준으로 저는 그 분들이 하는 말을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무슨 의미의 말이었건 간에 그들의 도란도란 거리는 말은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천둥치는 무서운 밤 잠결에 듣는 어른들의 말처럼 의미는 모르지만 옆에서 누군가 떠들어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움이 많이 가시는 것처럼, 삶에 대하여, 삶이라는 것의 불가해함에 대하여 가졌던 두려움을 많이 덜었습니다.
"진짜 두려움은 우리가 그 두려움에 너무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마따나 의미 없는 아니 의미를 모르는 문장들을 이해하려고 한 노력도 아마  두려움이 차지할 공간을 그만큼 줄여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제 모습을 학교 친구들은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친구들이 보기에 저는 아마도 똘아이 중에도 상 똘아이로 보였을 듯 싶습니다.
교복 바지는 다 떨어져 엉덩이는 누빈 자욱이 무슨 누비옷 같고 소매는 팔뚝이 훤히 드러나고 바지는 짧아서 종아리가 다 드러나도록 입고 다니면서도 고개는 절대 숙이는 법이 없고 가방에는 제목도 이상한 철학책이라니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왕따니 빵셔틀이니 하는 비슷한 것들을 당하지 않은 것은 험한 제 인상이 한 몫을 했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외모도  아주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ㅋㅋ
당시 저는 속으로 제가 왕따를 당했다기보다는 제가 저와 친한 친구 두어명을 빼고 나머지 다른 아이들을 왕따시키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은근 자뻑과이거든요.
"나는 너희 같은 코흘리개 들과는 급이 달라" 그런 생각으로 말입니다. ㅋㅋ
저를 지탱해 줄 다른 것을 찾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그런 자뻑은 어쩔 수 없는 제 생존의 수단이었다고 합리화 해 봅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서 무뚝뚝 대마왕 혹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오만한 모습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얼음과 불의 사이, 컴플렉스와 자뻑의 사이에서  조금은 특이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생각해 보면 제가 폼으로 철학책을 가방에 넣고 다닌 것이나 친구들이 빨간책을 가방에 넣고 다닌 것이나 뭐가 그리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빨간책을 넣고 다니면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이고 철학책을 넣고 다니면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것인지....ㅠㅠ
사실 저는 철학책과 빨간책은 같은 주제의 다른 표현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책이 왜 사는가에 대하여 어려운 말로 빙빙 돌려서 설명한 것이라면 빨간책은 왜 사는가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표현한 차이 밖에는 없다"는 것이 제 개똥철학입니다.
프로이트도 인간의 많은 행동들이 어릴때든 커서든 성적 갈등과 열망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보았듯이 말입니다.
참고로 야한 책들을 빨간책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런 책들의 표지가 거의 대부분 빨간색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흥가를 홍등가(빨간 등을 단 거리)라고도 부르는 것처럼 빨간색은 성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섹시하다고 하면 왠지 파란색이나 검은색보다는 빨간색이 떠오르는 건 본능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너무 이야기가 재미없게 흘렀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해 봤자 뭐가 있겠습니까?
요즘처럼 아이들이 조숙하여 미팅도 하고 그런 시대도 아니고 놀거리 볼거리도 거의 없어서 사실 중학시절은 다음과 같은 한줄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책을 보거나 공부를 했다."
그게 다입니다.
오늘은 책 이야기만 하다가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졸립기도 하고 해서 미술 등 나머지 이야기는 제 고백록의 열성적 독자가 10분 이상인 것이 확실하다면 다음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ㅋㅋ
만일 10명이 안되면 어떻게 되느냐구요?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지는 않겠지만 이것이 고백록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의과대학을 가게 된 이유나 미술과 저와의 관계는 영원히 베일에 묻히는 것이죠. ㅎㅎ

창세기 18장 32절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TBCOTE.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몽실ari4679 [2014-11-08 21:56]  주혜진 [2014-07-13 23:01]  진오비 [2014-07-13 12:10]  수진맘 [2014-07-11 08:37]  bella [2014-06-27 10:51]  봄봄이 [2014-06-26 20:49]  동네주민 [2014-06-26 14:44]  smart0417 [2014-06-26 10:21]  
#2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4-06-26 14:35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종교도 신도 안믿으신담서 성경책을 인용하여 십인을 모으시려 하시네요 ㅎㅎ

심장님이 올려주신 중학시절 반명함 사진을 떠올리며 아주 맛나게 읽었습니다^^
동생분들이 정말 착하네요~  나중에 기회됨  동생눈에 비친 오빠형의 심장님 모습도 궁굼합니다 ㅋㅋㅋㅋ

댓글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성경이나 불경에는 마음에 새겨둘만한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의인 10인하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생각나서 좀 절절함을 가미하기 위해 붙여 보았습니다. ㅎㅎ. 제 동생들은 아주 착합니다. 저도 착한 편인데 상대적으로 좀 독하다 그런 의미일뿐입니다. ㅋㅋ  등록시간 2014-06-26 16:03
#3 동민 등록시간 2014-06-26 14:53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샤넬 코코마드모아젤. 저도 애용하는 향수인데 금방 날아가 버리거나 하진 않는데요? 샤넬 향수답게 잔향이 긴편인데^^

Saturday Night Live 쇼는 제가 중딩때 Afkn 으로 보던게 생각이 나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하나 봐요?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국쇼를 열심히 화면만 뻐끔뻐끔 보고 앉아있던 이유가 있었죠. 그때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X - files의 멀더 David duchovny가 가끔 나왔기 때문 ㅋㅋㅋ 얼굴 한 번 보려고 몇주 허탕치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심장님 고백록 댓글로 어째 맨날 제 과거 회상을 하고 있는건지^^ 아무튼 재밌게 잘 읽었어요. 심장님  고백록의 애독자는 어림잡아도 100명은 될겁니다~ ㅋㅋㅋㅋㅋ미술과 심장님의 관계라니~ 미술반 반장으로 가만히 있을수가 없군요! 계속해서 달려주시길!!!!!:lol

댓글

듄님/ 제 기억엔 2번 이었습니다. ㅎㅎ 엑파나 사진은 늘 보던 모습이지만 afkn에 나오는 모습은 라이브로 생동감 있는멀더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아 그런데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에 구렛나루 붙이고 나와서 쇼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T.T 그냥 말끔한 수트 차림의 FBI 특수요원 멀더의 모습만 보고 싶었는딩~~  등록시간 2014-06-27 10:47
심장님/ 토욜밤 11시라니. 원래 미쿡꺼랑 방영 시간도 똑같네요 ㅎㅎ 미술 이야기 별거 없다고 그냥 한번 빼 보시는거 다~~~알고 있습니다.ㅋㅋㅋㅋㅋㅋ  등록시간 2014-06-27 10:43
tvN하는 프로그램으로 신동엽, 유희열 등이 고정으로 나오는데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생방송이고. 토요일 밤 11시에 하니까 한번 보세요. ㅎㅎ. 고백록의 애독자 100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으며 그저 10분이라도 넘는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ㅋㅋ. 그리고 사실 미술 이야기는 별거 없는데요??  등록시간 2014-06-26 16:14
AFKN...2번인가 1번 채널이였던걸로 기억나는데...근데 동민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저같으면 엑스파일이나 그가 나와있는 책받침사진을 한번 더 보지 못알아듣는 afkn을 볼 생각은 안했었을듯..ㅋㅋㅋ  등록시간 2014-06-26 16:06
#4 dyoon 등록시간 2014-06-26 16:03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아브라함이 사람수를 계속 줄여서 여쭤본것을 볼때, 제 생각에는 5이나 1명이여도 주께서는 멸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사료되옵니다만.....열혈독자 십인을 못찾으면 어떻습니까? 심장님께서는 글 쓰는게 좋으신거 아닙니까? 아닌가요? {:4_101:}너무 독자 의존적이 되시면 아니되옵니다.  뭐 상업 작가도 아니시지 않습니까...ㅋㅋㅋ (혹시 나중에 이걸 모아 출판계획이 있으신가요?^^)
근데, 십인..너무 적게 잡으셨삼~ 고정인원이 몇명인데..겨우..십인으로...? 낮추고 낮추신거지요?

아닌게 아니라 정말 동생분들은 정말 착하신것 같습니다. 사다주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나 사탕이 하나 남는 먹을꺼리 심부름도 아니고, 거 책심부름이라니...ㅋㅋㅋㅋㅋㅋ

댓글

아브라함이 그 이상 물어 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지만 자비의 하느님께서도 10명 이하로는 허락하지 않하셨을 듯 싶습니다. ㅋㅋ. 만일 아브라함이 체면불구하고 5명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봤다면 하느님께서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너 나랑 장난하냐? 5명이 뭐야 5명이? 됐거든. 다 관둬. 그냥 처음 말대로 50명 찾아와. 안 그러면 다 멸이다. ㅋㅋ  등록시간 2014-06-26 16:21
5# kmsmom 등록시간 2014-06-27 09:14 |이 글쓴이 글만 보기
10인이야 당연히 채워질 꺼라 믿지만...
원장선생님과 다른 시대를 산 듯 하지만 제 기억속에도  뚝방길은 남아있고... (유년기 동대문구의 추억 ㅎㅎㅎ)
질풍노도의 시절 책 속에 빠져 계셨을 모습이 낯설지가 않네요.
왠지 불안정하고 컴플렉스 가득했지만 열정 있고 때론 무모했지만 홀로 겉 멋에 빠져 있었던  성장기를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역시 임신 중의 호르몬은 냉정하고 싶은 아줌마를 감정의 파도에 너울지게 하는 마법이 있네요 .
매우 짧은 시간에 원장님의 글을  거의 다 읽은 1인으로  몇번이나 울컥울컥 한 적 이 있음을 고백드려요.
많은 임신 관련 정보와 기타 주옥같은 글이 있지만 고백록은 베스트 옾 베스트

고백록은 계속 되어지겠지요?

댓글

아 중랑천 뚝방길을 아시나 보군요. 반갑군요.ㅎㅎ. 근데 중랑천 뚝방길은 상당히 오래 전에 없어진 것으로 아는데..?? 여하튼 제가 고백록을 쓰면서 중간 중간 회한과 미안함에 울컥해서 잠시 글을 멈출 수 밖에 없었던 몇 곳 있었습니다. 누군들 지난 시절을 기쁜 마음으로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요. 열독하여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등록시간 2014-06-27 09:58
6# bella 등록시간 2014-06-27 11:02 |이 글쓴이 글만 보기
학창시절 고백록도 역시나 잼있게 읽었습니다. ^^ 요즘 소설들도 참 잘쓴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계속 읽히게 되는 고전의 힘은 대단한거 같아요. 심장님이 중학생때 읽으셨다는 투르게니에프의 "첫사랑"을 저는 30이 넘은 최근에야 읽었네요 ㅋ 간만에 손에서 놓기 힘들게 잼나게 잘읽히더라고요.
아.. SNL은 저도 초창기때 한동한 즐겨 봤는데 ㅋㅋㅋ 요즘도 잼있나봐요 ~ ㅎㅎㅎㅎ 다시 보고 싶네요.

댓글

그렇죠. 그래서 고전이죠. 저도 요즘 소설들은 예전에 읽은 것들 만큼의 감동을 주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SNL 재미있어서 저도 빼놓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등록시간 2014-06-29 16:18
7# 김지선 등록시간 2014-06-27 11:07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원장님의 고백록은 읽을때 은근 흡입력이 있어요ㅎㅎㅎ중학교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있으셔서 그런지 글솜씨가 있으신것같아요..그리고 십인은 충분히 채워지실듯요ㅎㅎ그 중 1인에 저도포함도어있으니..
다음 고백록은 고딩시절인가요?ㅎㅎㅎ무튼 다음 편도 기다리겠습니다요

댓글

흡인력이라...아마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라서 궁금증이 생겨서 그럴 것입니다.여하튼 열독하여 주시고 격려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음 고백록은 중딩 중 미술 관련이 될 수도 있고 고딩 시절이 될 수도 있겠지요.  등록시간 2014-06-29 16:20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