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점에 음식을 주문할 때는 절대 독촉을 하지 말아라"
항간에 널리 퍼져있는 조언이다. 독촉을 하면 음식을 만들면서 주방장이 음식에 침을 뱉어서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런 정도로 양심 없는 주방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배달 음식이 늦어 독촉 전화라도 할 때는 살짝 그런 걱정이 들어 망설여지기도 한다.
손님으로 가서 주인이나 직원의 눈치를 보는 경우는 이외에도 종종 있다.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음식점에 혼자 가서 1인분을 시키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여러명이 가서 같은 메뉴는 하나도 없이 모두 다 다른 메뉴를 시키려고 할 때, 대기 손님이 밀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후식 과일이나 음료를 먹고 있을 때, 전혀 뒤통수가 근질근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손님이 눈치를 보는 경우보다는 주인이나 직원이 고객의 눈치를 보는 일이 더 흔하다. 돈을 주고 받는 것은 서비스나 물건을 제공하고 정당하게 받는 상호간 공정한 거래임에도 돈을 주는 사람은 갑, 돈을 받는 사람은 을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과거 병원에서 대기 환자를  부르는 용어는 누구누구 씨였다. 그러던 것이 몇년전부터는 누구누구 님으로 바뀌었다. 임신부의 경우에는 산모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은데 잘못 들으면 사모님처럼 들리는 수도 있다. 물론 사모님이라는 말이 결혼한 여성의 높임말로 흔히 쓰이는 형편이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세들어 사는 처지로 집주인을 부를 때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왠지 하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 꼭 집자를 넣어서 집주인님이라고 부른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렇게 호칭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호칭의 변화만큼 병원을 찾는 환자 혹은 임신부들의 위상도 달라졌다.
과거 내가 산부인과 수련을 할 때는 임신 출산을 돕는 산과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밤낮 가리지 않는 출산과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의료 사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출산을 돕는 산과 분야를 전공으로 택하는 의사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과가 가진 2가지 큰 장점--출
산을 돕는데서 오는  보람, 개업하면 수입이 상당하는 것-- 때문에 꾸준히 지원자가  있었다. 지금은 두번째 장점은 사라지고 없는 형편이다.
산부인과에서 병원을 찾는 임신부의 수는 과거에는 자기 소유의 병원 건물을 얼마나 빨리 가질 수 있는 지 알 수 있는 지표였다. 지금 그것은 계속 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나누는 존립의 지표가 되었다.  저출산으로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 악화로 인하여 일선 산부인과에서 낯 뜨거울 정도의 홍보나 불법 덤핑 같은 경쟁은 이제 너무 흔해서 이야기거리도 되지 못할 정도다.  산부인과에 왜 수영장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수영장을 갖춘 산부인과도 있다고 한다. 일류 호텔 출신 주방장을 엄청난 월급을 지불하면서 채용했다는 산부인과도 있다고 하는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인지 아니면 출산을 부대 서비스로 제공하는 식당이 생긴 것인지 혼란스럽다. 지방으로 출산하러 간다고 하는 임신부에게 진찰하면서 몰래 질에 촉진제를 넣어서 진통을 오게 해서 못 가게 한다는 병원도 있다. 출혈 위험이나 혈압의 이상으로 상당한 고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는 임신부들은 대학 병원에서의 출산이 꼭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병원에서 출산을 하게 하기 위해 전원을 보내지 않는다는 병원도 보았다.
이 모두는 한명의 임신부라도 더 보려는 의사의 욕심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치열한 유치 경쟁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의사들이나 병원 직원들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속된 말로 폭탄이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상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폭탄이란 중증의 고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의료 사고의 발생 위험이 높은 환자 혹은 임신부를 말한다. 한마디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언제 갑자기 사고가 발생할 지 모른다. 개원가에서야 굳이 그런 고위험 환자나 임신부를 보지 않아도 되지만 최종 3차 병원인 대학병원에서는 전원을 할 수 없어서 자신의 팀으로 그런 중증 고위험 군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진상이란 이미 많이 쓰이고 있는 속어인데 그 말의 유래는 확실히 모르겠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는 “겉보기에 허름하고 질이 나쁜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해 놓았고 대중 문화사전에는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컸는다고 쓰여 있다.
비행기에서 갑질의 진상짓을 부린 사람이나, 식당에서 진상짓을 부린 사람들이 종종 지면에 오르내린다. 어떤 음식 체인점 대표는 “직원에게 인격적 모욕을 느낄 언어나 다른 고객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 시 정중하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자사 식당에 게시하여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진상 관련하여 병원이 무대인 기사는 별로 없다. 병원이라는 곳이 가진 특수성 때문에 그런 사례들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 진상 고객들이 온다고 해서 위 식당 대표처럼 안내문이라도 써 붙이면서 대응하기란 어렵다. 식당과 같은 일반 서비스와 다르게 의료 서비스는 특별한 사정없이 제공자 입장에서 함부로 거부할 수 없기도 하다. 소위 진료 거부에 해당하여 법적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진상짓이 진료 거부를 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의료법의 세부 내용을 살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의사들 사회에서는 그런 진상을 피하기 위한 여러 요령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중 오래 전에 선배 의사께 들은 내용이 아마 가장 확실하고 부작용이 없이 진상 환자의 진료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제가 처음 해 보는 수술인데 교과서를 봐 가면서 공부해서 최선을 다해서 수술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농담으로 한 이야기일 것이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 그렇게 말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술이 아닌 진료나 또는 분만이나 제왕절개 수술처럼 도저히 처음하는 수술일 수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래저래 진상 환자의 진료를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폭탄이 내 차례에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진상 환자가 내게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만날 수 있는 진상 사례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권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의 지인임을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우선하여 빨리 진료나 수술을 해 달라고 하는 사람.
의사의 조언과 관계없이 자신이 내린 진단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처방에 따라 처방전만을 적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
인터넷에 떠도는 민간 처방이나 잘못된 정보가 의사의 조언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믿고 의사를 불신하는 사람.
진통이 오면 아기가 돌아온다고 하는 속설을 믿고 진통이 올 때까지 수술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기다려 보겠다는 역아 임신부.
직원들을 아래 사람 대하듯 반말로 요구 사항을 말하거나 대답을 하는 사람.
진료 예약 시간을 지나서 와서는 왜 빨리 진료가 안되고 기다리게 하냐고 거칠게 항의하는 사람.
병원을 자선 사업하는 곳으로 생각하여 챠트 복사나  진료 의뢰서 발부와 같은 업무에 돈은 왜 받는지 항의하는 사람.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고 과도한 욕설을 내 뱉거나 행패를 부리는 사람. 등등
몇사례를 적어 보았지만 사실  여기 적은 사례들 외에도 진료 현장에서 마주치는 답답한 사례들은 적지 않다.  병원은 영리 사업이 아니라고 하지만 100% 자기 자본을 투자해서 정부의 일체의 지원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운영해 나가야 하는 병원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찾아오는 환자나 임신부는 한분 한분이 모두 소중한 고객이다. 따라서 어지간히 문제되는 진상 고객이 아니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진료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병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위험 환자나 진상 고객은 의료 분쟁이나 민원 제기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고객을 재빨리 캐치해서 별 무리없이 처리해 돌려 보내는 직원은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대형병원의 경우 진상을 부리는 사람이나 행패를 부리는 사람을 처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기도 하다.
진상 고객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병원에 나타나면 직원들은 긴장하고 신중히 대응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사소한 말실수나 서운함도 큰 소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마다 다르지만 그런 진상 고객을 내부 직원들끼리 알 수 있도록 챠트에 따로 표시를 해 두는 경우가 많다. 물론 특정한 암호 같은 기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챠특 복사를 한다거나 실제 챠트를 본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면 진상 고객이나 열성적 팬은 종이 한장 차이뿐일지도 모른다. 진상 고객이었지만 충실한 설명으로 열성적 팬이 되기도 하고 열성적 팬이었다가 사소한 서운함으로 안티 또는 진상 고객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영화 대사도 있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고정 불편의 것이 아니다. 하루 중에도 어떤 때는 기분이 좋았다가 어떤 때는 기분이 우울해 질 수 있다.
또한 진상으로 취급되는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런 진상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아니면 기대 수준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다소 높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받은 서비스가 높은 기대 수준에 미흡하다보니 진상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도 방문한 가게에서 진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물론 여지껏 살면서 음식점이나 매장에서 큰 소리 내서 항의해 본 적은 없다. 아니 딱 한번 있다. 유명해서 손님이 많은 칼국수 집에 갔다가 나보다 늦게 온 손님에게 먼저 칼국수가 나가서 큰 소리로 항의한 적이 있다. 그때 왜 그렇게까지 내가 화를 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배가 많이 고팠던 때라 그랬지 싶다. 화를 내면서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이런 항의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터무니 없이 가벼운 일에 불같은 화를 내는 진상 짓은 보통의 심성을 가진 사람은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런 심성을 타고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다른 사람에게 진상으로 보이기보다는 얌전하고 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면서 진상을 만나는 것도 피하고 싶은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진상으로 비치는 것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불교의 법구경에는 나온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아라. 사랑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여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보아서 괴롭다.”  

댓글

너무 잼있게 읽었어요^^ ㅋㅋ어느 업계나 진상과 폭탄은 존재하는 것 같아용~ㅋ산모님...사모님에서 혼자 킥킥 거렸네염 ㅋㅋㅋ  등록시간 2017-02-25 23:20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땅콩산모 [2017-07-14 16:22]  a9joajoa [2017-04-14 23:05]  soundyoon [2017-03-14 15:28]  달콤짱짱 [2017-03-11 01:51]  zoomooni [2017-02-25 23:18]  enfant2821 [2017-02-25 23:17]  podragon [2017-02-25 15:08]  
#2 땅콩산모 등록시간 2017-07-14 16:25 |이 글쓴이 글만 보기
보고싶은 사람 못 봐서 괴로운 것과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 보여서 괴로운 것 중 어느것이 더 괴로울까 고민해보게 되네요 ^^ 차라리 눈에 보이는 사람 대놓고 미워하는 게 속시원하니 덜 괴로울듯요 ㅎㅎ
저또한 심장 벌렁벌렁하며 음식점에서 큰소리로 항의한 적이 있는데요... 메뉴판의 음식 사진과 실제메뉴의 비쥬얼 차이를 보곤,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서였답니다 ㅎㅎ  저도 몹시 배고팠어요 ㅋㅋㅋ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