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쓸 때는 중학교 2학년이 알아듣게 써야 한다는 문장을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학교 2학년이 경험해 보지 못했을 만한 일들 이를테면 출산이든 질염이든 생리 불순이든 그런 것들을 어찌 그 나이 수준에 맞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될 것이고 그런 비유도 종종 사용하기는 하지만 어떤 때는 비유가 더 알아 듣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어설프지만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 드리는 것이다. 주로 만성 경부염이나 질염으로 인한 치료 때 없는 실력 짜내서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한다. 그린 종이는 뜯어서 그대로 드린다. 산모들께도 임신 출산 관련하여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면 좋겠는데 그런 것들은 그림이 복잡하여 내 능력으로는  그릴 수가 없다.  설사 실력이 된다해도 산모들께는 초음파 검사 결과등 설명 드려야 할 것들이 많아 시간에 쫓겨서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림도 그리고 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병명이나 치료법들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얼마전 질 세정을 설명하면서 상처에 바르는 "아까징끼"처럼 피부 염증에는 바르는 약이 제일 효과적이며 질염도 피부  염증과 다를 게 없다라고 환자분께 설명한 적이 있다. 옆에서 듣던 직원이 진료가 끝나고 나서 나중에 "아까징끼"나 "빨간약"과 같은 용어는 아마 40대 이전인 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하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냥 베타딘 소독액으로 좌욕하라고 해도 알아들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것은 내 오래전 꿈과도 연관이 있다. 물론 꿈 중에는 화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물리학자가 꿈이었던 적도 있고 소설가가 꿈인 적도 있었다.  의과대학 입학 시험을 치기로 결정을 한 재수생 시절 전까지는 의사가 되는 것은 전혀 꿈에도 없었고 상상해 보지도 않았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는 식으로 어쩌다 보니 의사 그것도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여하튼 역시 꿈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꿈도 이루지 못했고 꿈꾸지 않았다 해도 현재의 일을 잘 해내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 모두가 쉽지가 않다. 그저 내가 하는 설명이나 조언이 쉽게 이해되기라도 하면 좋겠다.  긴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거라도 되었으면 하는게 그나마 남은 소망이다. 좋은 의사가 되는 것도, 경영 능력이 뛰어난 원장이 되는 것도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다. 요즘 내가 즐겨 보는 드라마의 타이틀처럼  의사는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

그래도 의사를 직업으로 가지면 좋은 점들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환자나 산모들이 의사의 설명을 끝까지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신이 가진 증상과 관련된 것이고 자신의 병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세상 어떤 이야기보다 더 귀를 기울여서 들어준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보다 더 관심있게,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어떤 신기한 이야기보다 더 집중해서 들어준다. "저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긴 설명은 다음에 들을께요, 그냥 처방전이나 빨리 적어 주세요" 라고 말하는 분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말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 (의사도 그 중 하나다.)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여럿 있겠지만 욕을 제외하고서라면 특히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아마 다 같을 듯 싶다. 내가  막내 딸내미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을  내가 설명을 시작하려고 할 때 환자나 산모들로부터 듣게 된다면 힘이 쭉 빠질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일까 궁금해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 말은 이미 제목에 적었다.



사족:
이 글을 보시고 혹시나 "어? 나에게는 설명 간단하게 하고 말던데 나만 푸대접 받았나?"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항상 그런 길고 자세한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고 그럴 때 시간을 들여, 필요하면 그림도 그려가면서 설명한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댓글

아까징끼 ㅋㅋㅋㅋㅋㅋㅋㅋ 넘 올만에 들어보네요^^  등록시간 2017-10-2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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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징이맘 [2017-10-29 13:22]  zoomooni [2017-10-28 23:36]  podragon [2017-10-27 08:12]  daphne [2017-10-2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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