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있으면 아내의 생일이다.
결혼한 지 30년을 진주혼이라고 한다는데 진주혼도 지났으니 살갑게 생일이라고 미역국 먹고 생일 선물 챙기고 그러지는 않는다. 내 생일을 챙겨 주지 않았다고 크게 서운한 것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 점심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다 급식 빵을 받는데 나만 건너 뛸 때처럼  약간의 뻘쭘함은 있다. 물론 나도 아내의 생일을 까먹고 지난 적이 있고 선물이라고 따로 챙겨 준 적은 몇번 되지도 않는다. 이번 생일은 며칠 전에  아내가 조금 비싼 등산복을 사면서 생일 선물로 퉁치자고 하여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그날 문자만 달랑 하나 보내면 되니 별 부담이 없다.

전에 "마지막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산부인과 의사회 홈페이지에 dkzh라는 필명으로 졸작 소설 하나 올린 적이 있다. 그때 썼던 소설은 이곳 홈페이지의 내 블로그에도 올려 두었지만 선물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것이다.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그동안 감사하게도 많은 선물을 받았다. 직접 그린 그림이나 조각, 혹은 책, 자작 곡, 병원 일러스트, 병원 내부 사진 등 종류도 다양하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물을 받았고  병원 주변의 빵집이나 떡집의 빵과 떡은 다 먹어 본 것 같다. ^^. 내가 살면서 받았던 선물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선물 3가지만 적어 본다. 병원 하면서 산모 분들께 받은 선물은 나중에 따로 적을 기회를 엿보기로 하고 이번 글은 그 전까지의 선물이다.

첫번째는 대학교 입학할 때 큰 아버지께 선물 받은 양복이다. 서울대학교에 붙었다고 하니 큰 아버지께서 집안에 대학생이라고는 없는데 내가 첫번째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기분이 좋아서 당시로 큰 돈을 내시어  맞춤 양복을 사주셨다. 내가 사 입은 양복 중에는 아내와 결혼할 때 입은 옷이 가장 비싸지만 그때 큰 아버지께서 사주신 양복이 제일 비싸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큰아버지는 따로 하시는 일이 없어서 그 정도의 큰 돈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나 가족에게 큰 일이 생겼을 때 쓰려고 오랫 동안 조금씩 모아 두셨던 비상금이었을 것이다. 큰 아버지께서 다섯남매나 되는  자신의 자녀에게는 작던 크던 선물을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큰집과 우리집이 가까이 살아서 왕래가 잦기는 했지만 조카인 나에게 그런 선물을 준 것은 상당한 파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데리고 양복점에 들어 가시던 큰 아버지의 당당한 걸음은 그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다. 원래는 아버지께서 그런 선물을 해 주셨을 법한데 아버지는 내가 의과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시기도 했고 의과대학 등록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버거움에 그런 선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돌아 가셨고 양복도 작아지고 헤어져 버린 지 오래지만 선물을 받았을때의 고마운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체크무늬의 쥐색 양복이었는데 색깔 취향은 선물을 받던 38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혹시 식사 전인 분 열람 금지라고 하는 제목 글을 보고도 무시하고 여기까지 읽으신 식사 전 분들은 마지막 기회다. 식사 후 다시 오시기 바란다.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미 들어 오신 분이라면 아마 비위가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다.
두번째는 인턴때 어느 할머니께서 주신 천원짜리 석장이다. 인턴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국가 고시에 붙은 초년병 의사다. 대학 병원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의사인 듯 의사 아닌 듯 한 사람을 말한다. 주로 하는 업무는 챠트 준비, 검사물 채취 및 검사 결과지 확인, 혈관 주사 등이다.  관장도 업무 중 하나인데 어느날 간기능 이상으로 혼수 상태인 할아버지의 관장을 도왔던 적이 있다. 관장은 비눗물이나 글리세린 같은 용액을 항문으로 넣어서 하는 관장도 있고 대장 내시경 검사 전에 하는 것처럼 완전 관장이 필요한 경우 설사제를 다량 먹어서 관장을 시키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변을 보지 못해 직장에 꽉 들어찬 변은 그런 방법으로는 빼낼 수가 없다. 간기능 이상으로 변을 보지 못하는 분들은 독소가 몸에 쌓여 혼수 상태가 개선이 되지 않는다. 효과적 치료를 위해 관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경우에 시행하는 마지막 방법으로 핑거 에네마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손가락 관장이다. 손가락을 항문에 넣어서 변을 조금씩 조금씩 파내는 관장법이다. 손에 글러브를 끼고 하는 것이지만 오래 묶은 변이라 냄새도 냄새거니와 그 딱딱하면서도 몽글몽글한 느낌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그래서 핑거 에네마가 걸리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요리조리 피하고자 꼼수를 쓰는 인턴도 많았다. 나야 운도 없는 판에 꼼수와도 거리가 먼 성격이라 할아버지의 관장을 맡게 되었다. 그 할아버지의 손관장은 변이 워낙 단단하고 나오지 않아 30분 이상 거의 1시간쯤 걸렸던 기억이 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는지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시던 할아버지의 부인되는 할머니께서 관장을 끝내고 나가는 내 가운 주머니에 꾸깃꾸깃 접은 천원짜리 3장을 넣어주시면서 "수고했어요. 학생"했던 기억이 난다. 뭐 의사기는 해도 배우는 과정이니 학생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금은 돌아 가셨겠지만 그 냄새 그 돈은 잊히질 않는다. (갑자기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이 떠오름. ㅎㅎ) 그 이후 "동포여" 하면서 새벽길에 동포를 잠에서 깨우며 돌아 다닌다는 이들의 수고로움이 절실히 느껴졌다. 참고로 동포여 하는 말은 예전에 푸세식 변소가 대부분일 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화장실 변을 퍼가는 사람들이 "똥퍼요" 하며 내는 소리를 어느 교수가 글에서 그렇게 쓴 말이다. 정말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받는 경우가 출산도 있지만 그렇게 오래 변을 보지 못한 사람을 변을 보게 해 주었을 때, 소변줄이 막혀 소변을 못봐 쩔쩔 매는 분들을 요도에 관을 꼽아 소변을 보게 해 주었을 때다.

세번째는 오래전 지방 의료원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대체 복무로 산부인과 과장으로 있을 때  진료실 보조 직원이 선물해 준 벤자민 고무나무다. 그때는 내가 젊어서 성격이 불같기도 했고 그 직원이 워낙 초보라서 실수가 잦은 탓에 수시로 내게 질못을 지적 받고 혼나고는 했다. 워낙 자주 혼나서 주눅이 들었는지 다른 선생님 앞에서는 그리  실수가 많지 않음에도 내 앞에서는 유독 실수를 많이 했다. 그 직원이 공채가 아니라 낙하산을 타고 누군가의 연줄로 채용되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더 내 미움을 받았던 점도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매몰차게 혼내지 말 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질정 하나 떨어 트렸다고 혹은 환자 접수 순서를 틀리게 잘못 호명했다고 해서 그렇게 못되게 꾸짖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에는 인색하고 꾸짖는 것에는 후하다. 물론 그런 성격은 나 자신에 대하여도 예외없이 엄격히 적용한다는 것으로 변명을 삼는다. 그렇다해도 나도 나 같은 상사를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오금이 저려서 잘하던 일도 잘 못 하게 될 듯 하니 말이다. 순산 체조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해서, 혹은 산모 수첩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해서 혼났다고 하는 내용을 어떤 산모 분의 출산 후기에서 봤는데  그 분 외에도 혹시 그렇게 느끼신 분이 있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강박적 성격이 되어서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렇게 혼나기만 했던 직원이 내가 의료원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 작은 화분에 담은 벤자민 고무나무를 아무 말 없이 내밀었다. 의외였다. 한두달 전부터인가 접수 창가 유리병에 작은 나무 이파리가 하나 담겨 있는 것 같더니 내게 주려고 꺽꽂이를 해두었던 모양이다. 내가  선물을 받을 정도로 잘 대해 주지 못해서 의외였던 점도 있지만 내개 그렇게 무언가를 쑥 내밀 정도도 되지 못할 정도로 나를 무서워 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선물을 주었던 점이 더 의외였다. 그 나무는 이사 다닐 때마다 반드시 함께 가지고 가고 분갈이도 중간 중간해서 한 20년 정도 키워서 어른 키만큼 키웠는데 몇해 전 아주 추운 겨울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얼어 죽었다. 나무가 아까워서라기보다 그 직원에 대하여 일종의 속죄의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였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 슬프기도 하였다. 그 직원은 지금도 병원 계통에서 근무하는지  궁금하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든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든 나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지금쯤은 다 씻겨졌으면 좋겠다. 언젠가라도 우연히 만나면 선물해준 고무나무 덕분에 내 마음의 죄책감도 많이 덜 수 있어서 고마웠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세상 모든 것들에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있다. 선의도 있고 악의도 있다. 그러나 좋은 마음으로 주는 선물은 있지만  나쁜 마음으로 주는 악물은 없다. 다행이라 하겠다.  선물이란 아무리 받아도 물리지 않는 것이니까. 비가 오지 않고 맑은 날만 이어지면 땅이 척박한 사막이 되고 말 것이라고 하지만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주는 사람도 기분 좋은 일이며 누구의 마음도 황폐화 되지 않는다. 구겨진 천원짜리 지폐든 한 켤레의 양말이든 아니면 작은 손편지이든 다 소중한 선물이다. 다만 출산 전에 혹은 수술 전에 주는 선물은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다. 주시는 마음이야 감사하지만 출산도 하기 전에 선물을 받는 것은 감사의 마음만큼 무거운 부담감을 동반한다. 선물의 반대말은 없지만 뇌물이 아마도 선물과는 어느 정도 대척점에 서는 것 아닐까 싶다. 선물은 주는 사람도 그 자체로 기쁨이지만 뇌물은 그 자체로 기쁜 것이 아니며 원하는 결과가  뒤따르지 않으면 기쁨이 없다.

기억에 남는 선물은 이외에도 좀더 있지만 선물 이야기가 자기 자랑처럼 될 것 같아 초음파실 배실장님이 얼마전 여행 갔다 오며 선물로 준 마리모 이야기로 글을 끝맺으려 한다. 화초나 나무 같은 것들은 제때 물갈이를 해 주어야 하고 적당한 빛도 쪼여 주고 하지 않으면 곧 죽고 만다. 그런 정성을 기울여서 화초를 키우는 것은 내겐 고역이다.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물만 가끔 갈아 주면 된다는 마리모를 선물로 내게 주었다. 받은 지 두어달 되서 처음에 콩알만하던 아기 마리모가 이제 조금 컸다. 그러나 아직도 콩알이다. ㅠㅠ. 너 언제 어른 될래?  마리모는 기분이 좋으면 떠오르기도 한다는데  아직 한번도 떠오르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마리모가 떠오르면 행운도 함께 가지고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눈이 빠지게는 아니고 가끔씩 마리모를 쳐다 본다. 혹시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하면 병원 바로 옆에 있는 로또 복권방으로 달려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조그만 아기 마리모에게 달렸다. ㅎㅎ

댓글

오늘 마리모가 처음으로 떠 올랐다. 그동안 배실장님과 친한 미랑샘이 열심히 관리한 덕분인 모양이다. 좋은 일이 있을 징조라고 하니 기대해 봐야겠다. ^^  등록시간 2019-12-18 17:16
비오는 날 읽는데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등록시간 2018-05-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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