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생명력이 강한 순서대로 소개한다.
1위는 물도 볕도 없는 냉장고 야채칸에서 20센치나 싹이 자란 양파.
놈들은 어디서도 생존 가능한 야채계의 울버린이다.
2위는 닦아내고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집요하게 생겨나는 욕실의 곰팡이
놈들은 머리를 베도 베도 살아나는 미생물계의 히드라다.
3위는 과일을 이틀만 실온에 둬도 어디선가 출몰하는 초파리 때.
놈들은 어디든 침투 가능한 벌레계의  특수부대다.
꼴찌는 과민성 대장염과 비염,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사는 나.
이 놈이 이집 주인처럼 보지만 실상은 최약체다.

위 글은 홍인혜 작가가 쓴 [혼자 일 것 행복할 것]이라는 책에서 퍼온 것으로 반려 생물에 대한 글이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천만명을 넘어 섰다고 한다. 반면 출산은 파업이라고 할 정도로 대폭 감소해서 여성 1인당 평생 낳는 아기가 1명 정도 밖에 안된다.  국내 굴지의 출산 전문 병원인 제일 병원이 직원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다가 결국 폐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 이유는 출산율 저하다.  거리에 사람은 여전히 넘쳐 나고 청년 실업율은 갈수록 높아진다는 기사를 보면 출산이 줄었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을 듯 싶다. 그러나 산부인과 병원, 산후 조리원, 분유 회사, 아기 용품점 등 출산과 관련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 여파를 절절히 느낀다.

반려 생물을 키우는 사람은 늘어 나고 출산은 줄어드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문적인 연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고 나는 사회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도 모르고 그 둘이 무슨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반려 생물을 키우는 사람 중에 홀로 사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듣기는 했다. 출산을 하기에는 여건도 안되고 아기를 키우는데 따른 부담이 있지만 반려 생물은 인간 아기를 키우는 것보다는 쉬운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것보다 반려 생물을 키우는데 있어 장점을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보았다.  
1. 상대가 없이도 혼자서도 구할 수 있다.  임신은 반드시 두사람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반려 생물을 얻는 것은 혼자서도 가능하다.
2, 여성의 입장에서 출산이라는 부담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반려 생물을 데리고 오면서 출산에 따르는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다.
3. 키우는데 따르는 비용이 저렴하다. 반려 생물을 키우는데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억단위의 양육비와 학자금이 드는 것은 아니다.
4. 키우다 잘못되었을 경우 처벌이 약하며 심적 부담도 덜하다. 동물의 경우 학대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인간의 경우  아동 학대는 8년 이상의 징역이고 사망하면 그 처벌은 징역 15년까지 올라간다.  

물론 인간과 동물 혹은 식물을 동일하게 비교하는 자체가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인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도 과거에 비하여 그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 동물을 위한 병원은 생긴지 이미 오래고 동물을 위한 호텔이나 학교도 있다고 들었다. 반려 동물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사람도 있다. 반려 동물이 죽거나 다치면 그 상실감 또한 적지 않고 장례도 가족 못지 않게 치룬다. 반려 동물을 통해 위안을 받는다면 잃었을 때의 상실감도 클 것이고 키우는데 드는 비용도 점점 올라갈 것이다.

앞으로 인공 지능과 로봇 공학이 더 발달하면 지금의 반려 생물의 자리를 로봇이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로봇의 경우 인간이나 동물과 흡사한 외형과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면 죽는 것으로부터 오는 상실감을 겪지 않아도 되니 장점이 크다. 일본에서는 페퍼라는 로봇이 노인들의 대화 상대로 활용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로봇을 통해서 자녀들이나 친구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유대감과 위로를 얻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이성의 배우자가 유일한 반려자이던 시대에서 동성의 배우자도 반려자가 될 수 있도록 인식이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법적으로는 많은 나라들에서 아직 동성 결혼은 허용되지 않는다. 생물이 반려자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나  로봇이 반려자의 하나로 여겨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마 그것보다는 짧을 것이다.  로봇은 화를 내지 않는다.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미리 프로그램되어 나올 것이며 인공 지능까지 탑재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척척 들어줄 것이다. 일부러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까칠한 로봇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지 싶다. 오작동으로 주인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인간끼리 서로 다치게 하는 경우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 내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대상과 평생을 함께 사는 세상. 분명히 많이 편한 세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편한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세탁기와 청소기가  여성들이 주로 겪던 과중한 노동의 일부를 없애주었다. 대신 빨래를 하는 시간 동안 나들이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내 아내는 내 어머니보다 빨래에 들이는 시간이 훨씬 적다. 내 딸은 아마 직접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 것이다. 근로 현장에서도 귀찮은 노동을 대신해 줄 로봇이나 기계들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세상이 변할 것이다. 기계가 대신 해주어서 남는 시간 동안 하는 일이 빨래를 하면서 또는 제품을 만들면서 얻는 몸의 건강, 마음의 정화 또는 경제적 이득보다 더 값진 것인지는 아닌지는 개개인에게 달렸다. 어쩌면 더 가치없이 시간을 보낼 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총량보다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냈는지가 중요하다. 반려자를 두거나 반려 생물을 두는 것은 그것으로 하여 내가 좀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다.

산부인과 의사로서는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 생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우선 첫째는 의사로서 밥벌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간적 연민 때문이다. 어미로부터 분리한 아기 원숭이가 쇠로 만든 원숭이보다 헝겊 원숭이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안타까움이다. 아기 원숭이에게는 쇠 원숭이보다는 헝겊 원숭이가 필요하고 헝겊 원숭이보다는 진짜 어미 원숭이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동물보다 사람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바람직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서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 관계가 중요하다.  다른 생물과 인간은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반려 생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반려자나 자식을 위해 또는 부모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그 선택을 반려 생물에게 똑같이 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과 반려 생물은 수평적 관계가 아니며 수직적 혹은 종속적 관계라는 의미다.

참고로 나는 강아지도 여러마리 키워본 적이 있고 길 고양이도 여러마리 키워 본 적이 있다. 내가 똥까지 치우고 목욕을 시킨 것은 아니니 엄밀히 말하면 아내나 아이들이 키우는 것을 옆에서 본 것에 불과하기는 하다. 하지만  상당한 기간 같이 살면서 봤기 때문에 반려 생물을 키우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는 반려 생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 생물이 주는 것이 있고 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 반려 생물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인간 반려자나 가족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인간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반려 동물에게서 완전히 동일하게 얻을 수는 없다.  

여기서 내 장황한 이야기의 결론을 말하고자 한다.
반려 생물에게 쏫을 수 있는 애정과 여유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인간에게 쏫기를 바란다. 자신의 자식이나 부모, 배우자에게 해도 좋고 자신과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쏫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돈이든 애정과 관심이든 말이다. 이 세상은 인간이 인간에게 기울여야 하는 노력과 관심이 너무도 부족해 보인다.

역시 삭막한 글을 포근히 감싸줄 사진으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반려 동물 인형 사진이다. ㅎㅎ. 몇년전 홍대 입구의 라인 매장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물론 사지는 않고 나왔다. 이 글에 밝힌 철학 때문은 아니고 아내가 예쁜 쓰레기 밖에 더 되겠느냐는 눈총을 주어서다. ㅠㅠ.
아내는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나나 아이들이 아무리 그 필요성에 대하여 침이 마르게 말해도 모양이 괜찮은 것은 예쁜 쓰레기라고 하고 모양이 별로인 것은........그냥 쓰레기라고 말한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배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가방도 있고 바람막이라고 불리는 옷도 있다. 또는  음식이기도 하고 그릇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그 원래의 이름으로 불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다만 하나의 몸짓 아니 쓰레기로 불리지 말고 소니 카메라라거나 해피해킹 키보드라거나 데몬 만년필이거나 그 이름으로 말이다. ㅠㅠ

이 글에 좋아요를 표시한 회원

roka11111 [2019-01-18 15:35]  시온맘 [2018-12-29 04:17]  piglet5017 [2018-11-16 08:52]  happybud19 [2018-11-16 08:23]  alaia [2018-11-12 21:38]  구현정 [2018-11-09 14:35]  이연경 [2018-11-03 12:22]  박선주 [2018-11-02 15:01]  씽씽 [2018-11-02 11:18]  podragon [2018-11-01 16:31]  rutopia [2018-11-01 10:21]  
#2 happybud19 등록시간 2018-11-16 08:28 |이 글쓴이 글만 보기
제일병원이 폐원이라니..잠시 다녔는데 늘 대기가많았던기억인데 말입니다. 반려동물과 반려자..사람과 로봇이 주는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글입니다. 상처받기싫고 좋은 에너지만 받고파서 사람에게 로봇이나 반려동물에게 거는 기대를 한 시절을 돌아보게되어요. 그리고 그게 얼마나 어리고 단순한 생각이었는지도요!  ^^ ;;
#3 hanalakoo 등록시간 2018-11-26 19:40 |이 글쓴이 글만 보기
키보드 돈주고 사는거 이해 못했는데, 어느날 남편이 뭔가 쫀득거리는(?) 키보드를 샀더라구요. 글 쓸 맛이 나던데... ㅎㅎㅎ

스마트폰 모드|진오비 산부인과

© 2005-2024 gynob clinic

빠른 답글 맨위로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