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요한 복음 10 장 11 절---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작가 노트라고 하니까 그럴싸 한데 나는 작가는 아니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특별히 붙일 말이 없어서 그렇게 붙였을 뿐이다.
앞으로 쓸 소설 마지막 선물은 주변 환경과 등장 인물의 역할은 내 개인적인 경험을 일부 바탕으로 한 것이 있지만 대부분 소설이 그렇듯이 그 내용이 사실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 중에 언급되는 의학적인 부분에서나  그외 다른 전문적인 부분에서의 내용들은 가급적 틀리지 않게 기술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다소 틀린 것이 있다면 내 얕은 전문가적 지식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 내 머릿 속에서조차 결말이 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결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임시로 붙인 제목 '마지막 선물'도 나중에 다른 이름으로 바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작가란 그저 인물에 성격을 부여하여 소설에 등장시켰을 뿐이고 이야기의 흐름은 순간 순간 주인공들의 자발적 추진력에 의하여 흘러간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중의 하나이다.

전에 여기서 보니 어떤 분의 연애 시리즈가 아주 재미있게 올라오던데 지금은 잘 보이지를 않는 것 같다.
내가 쓰려는 글은 그런 재미와는 그리 관계가 없는 글이다.
다만 이 글의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으로 고생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줄까 해서 졸필이나마 올려 보기로 결정했다.
나름대로는 제대로 된 구성과 좋은 결말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약속할 수는 없다.
다소 무책임할 지도 모르지만 내 정서 상태가 불안정하고 변덕이 죽끓듯 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단 1 회로 끝날 수도 있다.
아니면 대단한 인내력과 졸필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과단성을 바탕으로 계획대로 굴러 갈 수도 있고.
내 예상으로는 끝까지 이야기가 흘러갈 가능성은 10 % 미만이다. 혹은 11 % ?
여하튼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소설 속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I

작은 사슴을 닮은 섬이라고 해서 소록도라고 이름을 붙였다지만 녹동항에서 바라본 소록도는 전혀 사슴하고 닮은 구석은 없어 보였다.
그저 육지와 가까워서 별로 파도도 없고 그다지 왕래하는 사람도 없어서 조용한 섬인 점이 남을 괴롭히지 못하는 사슴의 성징과 닮았다면 닮았을까.
겨울이라 해가 짧아서인지 6 시인데도 벌써 사위가 어둑어둑해 졌다.
선창 주변의 바닷가 횟집들에서 켜놓은 네온싸인 불빛이 잔잔한 바다에 일렁이면서 흔들리고 있지만 아무도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다.
소록도는 바로 눈앞에 가까이 보였지만 이미 막배가 끊어지고 난 뒤였다.
부득불 근처에 숙박할 곳을 찾아 보아야 했지만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다가 철 지난 바닷가를 찾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인지 포구는 날씨처럼 썰렁해 보여 딱히 들어가보고 싶은 여관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런 겨울 더구나 이런 시간에 여기서 내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처량한 인생의 마지막 날로 너무 쓸쓸한 이런 날을 택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마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지나친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은 달성 가능성 여부를 떠나 꿈을 꾸는 행위와 다름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날도 굳이 그런 소박한 꿈 마저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록 어느 소설에서처럼 한 겨울 하얀 눈속에 박속 같은 피부를 간직한 채  발견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아름다운 장소와 아름다운 시간에 그렇게 가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남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해서 나마 추하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작은 욕심이 있었다.
별로 읍내가 크지 않아 여기저기 뒤져서 주변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호텔을 찾아 들어가니 예상대로 손님이라고는 나 밖에 투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호텔은 신혼 여행때 가보고는 처음이라 무어라 부르는 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웨이터가 안내해 주는 데 따라서 방을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을 다소 낡은 침대가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 이불을 쓴 채로 손님을 기다리는 창녀처럼 떡 드러누어 있었다.
침대에 걸쳐 앉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온 약품들을 가만히 꺼내 보았다.
수산화 칼륨.
주사기.
알콜솜.
고무줄.
800 만 가지의 죽는 방법이라는 누군가의 소설도 있지만 죽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약물을 투입하여 사망케 하는 것이 아마도 죽는 사람이 가장 덜 고통스럽고 뒷처리도 깨끗한 것일거라서 의사들 중에는 그런 방법의 자살법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투신하여 엉망으로 부서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은 설사 모른다하더라도 남아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니겠는가.
수산화 칼륨은 근육 수축에 관여하는 약물이라서 많은 양이 일시에 주입되면 심장 마비를 초래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사이 없이 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할 수가 있다. 물론 정말 고통을 느끼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살아서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알 도리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역시 독약인 청산 가리의 맛이 단지 쓴지도 아직 아는 사람이 없다.
병원에서 가져온 약품들을 바라보면서 의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이 죽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생각하니 잠시 실소가 났다.
바다 쪽으로 난 커텐을 제치고 창문을 열었다.
겨울 바다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출렁이는 파도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비릿한 바닷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청정 해역이어선지 그다지 기분 나쁜 냄새는 아니었다.
이 밤에 어쩌다 알지 못하는 이 먼곳까지 오게 되었는 지 생각해 보면 아직도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아주 오래된 일인 것처럼 생각이 들었지만 불과 7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사람은 하루 하루의 앞날 조차 내다 볼 수 없는 존재인가 싶어 스스로에게 잠시 연민이 들었다.

이렇게 여기까지 흘러 오게 된 것이 운명인지 자신의 의지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이던 간에 아마 처음 출발 때부터 이런 결말이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면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예정된 결말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의 끝은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 시작한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인생의 종착역이 무덤이지만 누구도 무덤을 생각하면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모든 시작에 결과를 미리 생각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든 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배려 중 하나일 것이다.

약을 꺼내면서 주머니에든 지갑이 같이 딸려 나왔나보다.
언젠가 아내가 선물해 준 지갑을 열어 보니 폴라로이드로 찍어 누렇게 바랜 내 사랑했던 그녀의 웃는 얼굴 사진과 한 삼십몇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 있다.
이 돈으로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며칠 동안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것 들 중 꼭 해야 할 몇가지들,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 그녀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이지만 신이 허락하지 않은 금기인 일, 내가 나를 파괴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그것 말고 내가 달리 선택할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차피 배도 끊어져서 소록도에는 오늘은 들어갈 수가 없으니 우선 잠이나 자두어야 겠지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자기 인생의 마지막 며칠을 잠을 자면서 보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매일 똑같이 떠오르고 지는 태양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밤하늘의 달과 별이며 때마다 새로 나고 지는 꽃과 이파리들이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은 인생의 일회성이 주는 감상 때문일 것이다.
너무도 익숙하여 보이지 않았던 밤의 색깔과 역시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숨소리, 그리고 역시 마찬가지의 땅 냄새를 온 눈과 귀와 코로 속속들이 받아 들여 하나도 빠짐없이 내 기억의 저편에 쌓아 두어야 겠다.
그녀의 기억 때문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의 틈을 비집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더러움과 괴로움과 슬픔으로 가득 가득 담아서 가야겠다.
그러려면 여기서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빨리 세수도 하고 허기도 별로 들지는 않지만 밥도 먹어두어야 한다.
우선 세면대로 가서 세수를 하기 위해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본다.
수십년을 매일 매일 들여다 보아 익숙한 한남자의 얼굴이 거울 저쪽에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언제는 소년이었다가 청년이었다가 이제는 머리도 빠지기 시작하고 눈가와 이마에는 세월의 나이테 같은 주름이 패여 있는 중년의 남자가 나를 쳐다 보고 있다.
무슨 말을 할 듯한데 아무 말이 없다.
너 왜그러니 ? 또는 그러지마라. 괜찮은거야 ? 등의 말을 해 주고 싶을 것 같은데 거울 속의 남자는 묵언 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말이 없다.
그냥 나를 빤히 쳐다만 본다.
그렇든 저렇든 신경을 쓰지 말아야 겠다. 시간이 얼마 남지를 않았으니까.
내 좋아하는 발삼향의 쉐이빙 폼을 쓰고 싶지만 여기서 그것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
비누칠을 하고 일회용의 거친 면도기로 면도를 해 나간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한 일지만 무슨 의식을 치르듯이 구레나룻부터 천천히 깍아 나간다.
지나간 자국마다 거품이 없어지고 깨끗한 피부가 드러난다. 그렇게 어그러진 지난 기억들도 이렇게 싹 밀고 다시 나기를 기다려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한 이십분 쯤의 의식을 마친다.
여지껏 무언가를 하기 위해 면도하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었다.
그저 면도를 하기 위해 면도를 하고 세수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세수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다.
사실 그것만큼 상쾌하게 즐길만한 의식도 많지 않은 세상인데.
면도 후에 바르는 스킨은 항상 그렇지만 피부에 약간의 통증을 가져다 준다.
싸한 통증은 지난 추억이 안겨주는 통증인 양 그렇게 피부를 지나 혈관을 지나 가슴 속을 뚫고 심장을 스친다.
지난 시절 터질 것 같았던 고통의 기억이 알콜의 싸한 통증과 함께 잠깐 얼굴을 내밀려 한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진짜 두려움은 우리가 그 두려움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을때 생겨난다는 것.
두려움을 치료해줄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라는 사실.
오프라 윈프리의 이 말처럼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고통도 우리가 그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을 때 심해지는가 보다.
다만 두려움의 경우와 달리 고통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로도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 뿐.
고통에 대하여는 거부하거나 부인하지 말고 그대로 담담히 받아 들이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러면 고통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쾌락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자 여하튼 나도 이제는 준비가 되었으니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헬렌 켈러의 사흘처럼 내게 남은 며칠을 즐기러 다시 한번 세상 속으로 나가보아야 겠다.

II

"선생님 분만 준비되었어요."
간호사의 콜을 받고 급하게 진료하던 환자를 마무리하고 분만실로 들어 갔다.
이미 아기의 머리가 보이는 상태라 바로 소독 가운을 갈아 있고 분만을 받을 준비를 했다.
베타딘으로 회음부를 소독하고 소독포를 덮고 카테터를 요도로 집어 넣어 소변을 빼고 회음부 절개를 위하여 리도케인으로 국소 마취를 했다.
벌써 10 년 이상 한 일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할만큼 익숙한 일이라 거의 기계적으로 일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매번 등줄기에 가느다란 긴장이 흐르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아기의 어깨가 잘 빠져 나오지 않는 견갑 난산이 되어 애를 먹은 경우나 출산된 아기가 전혀 울지를 못하고 얼굴이 파랗게 변하는 경우를 당했던 기억이 분만 때마다 문득 문득 떠올랐다.
심한 하혈로 산모의 생명이 위중했던 순간들도 있었는 데 그런 것들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매우 드문일 임에도 불구하고 꼭 그런 나쁜 기억들만 떠오른다.
특히나 이번처럼 새 병원에 부임하여 처음 받는 분만이나 수술은 아무래도 그만큼 더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소심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응급 상황이나 최악의 상항도 항상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 직업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기는 순조롭게 산도를 빠져 나와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아기의 입이나 코에 들어 있는 양수를 흡입기로 부드럽게 빼주고 있을 때 산모가 "아들이예요 딸이예요"하고 성별부터 물어 보았다.
출산 직후 산모가 묻는 질문은 대개 둘중 하나였다.
아들인지 딸인지를 묻는 것 아니면 아기의 손가락이 10 개 다 제대로 있는 지 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아들이예요. 건강합니다." 하고 간단하게 대답을 해 주었지만 출산의 순간에 손가락이나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심장 이상이나 내부 장기의 이상이나 척추의 이상은 훨씬 심각한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기형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차피 외견으로만 보아서는 잘 알기 어렵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런 것을 물어 보는 산모는 없었다.
사실 " 아기 심장은 어때요? 간은 어때요?" 하고 물어 본다는 것도 좀 우습기는 했지만.
여하튼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나마 아기의 건강이 괜찮아 보인다는 것은 산모나 가족 또 분만을 받은 의사 자신을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기의 상태가 나쁘거나 산모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에는 의사의 과실 여부를 떠나 혹독한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풍토를 지난 세월의 경험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난 세월의 아픈 경험이 나를 이곳 멀리 북쪽 철원이라는 곳까지 끌고 온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분만 때마다 누구 못지 않게 아기와 산모의 건강과 순산을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탯줄을 자르고 태반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도우면서 잠시 옆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간호사를 쳐다 보았다.
얼마전에 내가 오면서 함께 새로 채용된, 경험이 없는 초보 간호사였지만 업무를 빨리 익히기 위해서 바로 분만에 보조로 들어 오게 된 모양이었다.
산부인과의 업무라는 게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당직이라도 서는 날에는 분만 산모나 산모들이 맡긴 아기들을 돌보느라 밤새 잠을 설쳐야 하는 일이라 의사들뿐 아니라 간호사들로부터도 이미 3D 업종으로 분류된지는 오래였다.
그만큼 이직율도 높아서 정확히 통계를 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간호사들의 평균 재직 기간이 6 개월이 안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처럼 경험이 없는 서투른 신참 간호사의 보조를 받게 되는 것도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대체로 산부인과를 택하는 간호사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구석이 있는 데 그것은 일종의 오기랄까 강단이랄까 하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소아과나 내과를 택하는 간호사들에 비하여 아무래도 업무량도 그렇고 일의 내용도 평범한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의지나 아니면 최소한 체력이라도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경험인데 이번에 새로온 간호사는 얼굴이 창백해서 너무 약해 보이는 데다가 그렇다고 별로 강단 같은 것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고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목덜미에 땀방울도 맺혀 있는 것 같았지만 마스크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다.
"선생님 메덜진 주사할까요 ?" 라는 안 간호사의 질문에 퍼뜩 정신이 돌아와 "예 아이엠해요. 항생제도 같이 놓아 주세요."
라고 말하면서 잠시 당황스러운 듯이 시선을 거두었다.
외래에 대기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뒷 처리를 빨리 끝내고  진료실로 돌아 오면서 왠지 다른 날보다는 덜 지치는 느낌이었다.
분만이라도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여서 별로 난산이 아니어도 빨리 지치고 해서 그런 날은 좋아하는 컴퓨터도 잠시 접어 둘 정도인 데 그래도 기대 이상으로 초보 간호사가 잘해 주어 덜 지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과장님, 오늘 저녁은 병원장님께서 선생님 새로 오신 턱으로 저녁 회식 하기로 한 것 잊지 마시라고 좀 전에 연락왔었어요."
안 간호사의 말이다.
그렇구나. 이곳에 온지도 이제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매번 가는 곳마다에서 신고식처럼 회식을 하곤 했다.
수련 받을 때도 매월 새로운 사람이 오고 갈때마다 회식을 하곤 했는데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때는 그런 식의 요식행위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많이 들어서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된 의례적인 인사들,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친한 것처럼 구는 가식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게 들어 왔다.
그러나 이번의 회식이 내 힘든 역사의 시작이 될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이 되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III

밖으로 나오니 바닷 바람의 기분 나쁜 쌀쌀한 느낌보다 먼저 비릿한 내음이 얼굴에 물 끼얹듯 확 덮쳐 왔다.
아무리 청정해역이라도 역시 바다는 바다인가 보다.
원래도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다가 빈속이라 그런지 속이 거북하고 울렁거리는 증세가 나타나려고 했다.
냄새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떤 감각이건 사건이건 고통으로 괴로울 때는 그냥 움직이지 않고 피하려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괴로움과 피해가 덜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다.
찬 물속에서는 움직이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것이 덜 춥게 느껴지는 것처럼.
더군다나 후각 기능은 인간의 감각 기관 중에 가장 빨리 마비된다고 하지 않는가.
후각 기능이 다른 감각 기관에 비하여 빨리 마비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시각이나 청각 또는 촉각 자극은 쉽게 피할 수가 있지만 후각은 코에 그 기능이 달려 있기 때문에 피하기가 어렵다. 만일 그렇게 빨리 마비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상당히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물론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쉴 수는 있지만 잠시도 아니고 긴 시간을 그래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한지는 심한 감기로 입으로 숨을 쉬어야 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어느 연구자의 논문에서 읽은 것이지만 후각 유전자는 단일 기능을 담당한 유전자로는 제일 많아서 전체 유전자 숫자의 3%를 차지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사람은 1 만가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 데 다행히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면서 코가 냄새의 많은 원인을 차지하는 땅으로부터 멀어지면서 그 기능이 퇴화되었다고 한다.
없어서는 안되겠지만 너무 발달되어서도 곤란한 기능이 후각 기능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우선 식사를 할 만한 집이 있는지 둘러 보았다.
물론 바닷가에서 생선을 빼고 메뉴를 고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은 아닐지라도 내게 남은 한끼 한끼니의 기회를 아무 생각없이 의무감에서 해치우는 섹스처럼 그렇게 해 치운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바닷가 마을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감자탕집이 있는지 찾아 보았다.
그다지 운치가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그녀와 제일 처음에 둘이 함께 먹은 음식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처음 먹는 음식으로 피하라고 일컬어지는 음식이 몇가지 있다.
비빔밥이나 자장면을 피해야 한다고 한다. 먹는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동남아 요리등 항신료가 많거나 자극성이 강한 요리도 피하라고 한다. 입냄새가 난다는 것은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손이 많이 가는 가재 요리나 부페 요리도 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 감자탕은 어감이 그래서 그렇지 그리 문제될 것도 없는 음식이기는 한 것 같다.
마지막 먹는 감자탕이라, 과연 이 항구에 그런 게 있을지......
읍내도 돌아볼 겸 슬슬 걸어 보기로 했다.라기 보다 사실 사람들에게 무엇을 물어 보고 하는 것이 그리 익숙치 않기 때문에 어딜 가건 절대 물어 보는 일없이 스스로 찾아 해메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내가 밤새 돌아다니지 않고 불과 10 분여만에 쉽게 감자탕집을 찾은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다음날 알고 보니 그 항구에서 감자탕 집은 그 집이 유일한 집이었는 데 방향을 반대로 돌았다면 아마 읍내를 다 돌아서 한 시간 이상 걸려서야 찾았을 것이다.
방향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금방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고 아니면 똑같이 노력했지만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려서 도달하거나 아예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처럼 인생에는 많은 우연과 운이 따른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다면 너무도 뻔한 결과가 예측되는 인생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반드시 둘이 나오는 인생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한 재미와 기대와 흥미를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는 아마도 도박이 가장 나중까지 인류에게 남아 있는 직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운이 나쁜 쪽의 패를 든 사람들에게는 안된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그녀를 만났다는 것, 그리고 오늘 감자탕집을 일찍 찾았는 것 말고는 대개의 경우 나는 그리 운좋은 인생을 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해봐야 소용도 없는 일이니까,인생이란 어차피 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감자탕은 생각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큰 노력없이 쉽게 찾아서였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녀가 곁에 없기 때문이거나 혹은 서울댁이라고 써있는 집의 주인 아주머니의 솜씨가 모자라서 였든지.
이제는 전에 맛있게 먹었던 그때 그 감자탕은 영영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다시금 밀려 왔다.
우리가 갔던 옛집은 그대로 있겠지만 그녀가 더 이상 내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각이 떠오르기만 하면 아직도 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진다. 이제는 낮익은 감정인데도 나는 아직도 이런 감정을 무어라 표현하는 지 잘 모르겠다.
잘 모르기도 할 뿐 아니라 이겨내는 방법은 아예 모르고 있다.
날카로운 칼에 손을 밸 때의 아린 느낌과 팔이 무엇엔가 꽉 눌려 피가 통하지 않을때의 저린 느낌 그리고 무거운 것이 가슴을 한없이 누르는 것과 같은 뻐근한 느낌을 모두 합쳐 놓은 것 같은 이런 느낌을 나는 무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감정은 가끔씩 나를 찾아와 내 이성의 뿌리, 의지의 기둥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간다.
그래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이 PC 방을 찾아 들어 온 것은 내 의지가 했다기 보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서 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어느 방향으로 온 것인지도 전혀 모르겠다.
그녀가 나를 부르듯 모니터와 키보드가 나를 불러서 이리로 끌고 왔다.
내가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녀를 만날 수 있도록 유일하게 허용된 공간으로.
이제 무엇이라고 써야할까.
그녀가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안 어딘가에 있을텐데 무어라고 써야할까.
내가 이곳까지 온 것조차 모를텐데 무어라고 쓰면 좋을까 ?
미안하다고 할까, 아니면 나중에 누구의 눈도 겁내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저쪽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고 할까.
아니면 그냥 잘있어라고 말할까.
아니면 그녀에게 내가 항상 하는 말 그리고 제일 많이 했던 말 그 말을 할까.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지.
내 마지막 편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IV

차를 타고 가면서 속으로 이번이 마지막 직장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 길지 않은 반생동안이지만 지나온 삶의 궤적이 다른 사람들보다 어지러워 이제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도 어느 정도 이골이 날만 했지만 아직도 새로이 사람을 만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은 늘 힘들었다.
그래서 언제가는 철새처럼 또 이곳을 떠나게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 터전이 내 의사로써의 마지막 터전이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했다.
사랑을 떠나 보낼 때 다시 또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자의 덧없는 바램처럼.
친한 선배의 병원으로 오기로 결정한 이유도 나이 들어 능력 없는 의사로 퇴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오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선배는 아니 이제는 병원장님이라고 해야 겠지만 아직도 병원장이라는 말이 입에 설어서 익숙치를 않았다.
선배는 수련은 같이 받았지만 나이는 나보다 5 년 위였다.
이미 이런 병원을 두세군데 더 가지고 있는  선배는 상당한 경영 수완을 가지고 있어서 이 바닥에서는  나름대로 알아 주는 사람이었다.
회식 장소는 병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부득불 관사로 가서 차를 가지고 가야 했다. 다른 과장들과 함께 병원 차를 타고 가도 되었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과 그리 살갑게 어울리는 성격도 못되는 데다가 혹시 병원에서 응급 산모 때문에 연락이라도 오면 바로 올 수 있는 차편이 필요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목욕탕에 들어 갈때도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가야 했는 데 내가 좀 지나치게 강박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고 자위하기로 했다.
여하튼 그런 여러가지 점들을 생각하면 산부인과 의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은 참 바보 같은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요즘 들어서 더 많이 들었다.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처량한 내 신세 탓인지 요즘은 감정이 아주 예민해져서 조그만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피를 흘린다.
세월의 켜가 쌓일수록 더 단단해 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물러지고 쉽게 부스러지는 것이 있다.
배추야 물러지면 김장을 담구든 동치미를 하든 써먹을 데나 있지만 나이든 자의 감정은 물러지면 주변을 불편하게 할 뿐이다.
그런 감정의 무름은 남자 산부인과 의사로 사는 내 삶에 대하여 흡사 한여름에 모피코트를 입고 있는 것이나 또는 수영장에서 정장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어색하고 생경하게 만드는 나쁜 작용을 일으켰다.
의사가 모든 환자의 질병을 겪어 보아야만 진료를 담당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나도 그런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정도의 개연성은 있어야 환자로부터 어느 정도의 공감을 얻고 치료든 위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산부인과의 남자 의사란 산모와는 전혀 공감을 나눌 수도 없고 그리고 앞으로 그럴 개연성도 전혀 없다는 점에서 산모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는 다짐은 악어의 눈물처럼 완전한 가식일지 모른다.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안정된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에 자신을 속이기 위한 그럴싸한 포장을 씌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생각이 아닐까.
그래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아이를 하나 낳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진통하는 산모에게 아기를 낳을 때의 그 고통과 그 힘든 순간의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다 그런 것이라고. 나도 그랬었다고.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남자니까.
우리 사회가 아직 남자 위주의 사회이다 보니 남자로 태어나서 비참했다고 생각할 상황은 거의 없었지만 유독 산부인과 의사라고 하는 직업에서는 매 순간 이런 한계를 절감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절망감 같은 것이 아마도 나로 하여금 일에 매진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아 다니게 만든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제 자리에 끼우지 않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 다니는 것. 훗날 내 인생의 모습을 표현하라면 한마디로 그렇게 표현한다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과연 나는 어디에서 떨어져 나온 퍼즐일까 ?

"이과장 뭐해 ? 들어 가지 않고."
소아과의 하과장이 옆에서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밤새 차속에서 그러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싶으니 이 나이에 왠 노망기인가 싶어 실소가 났다.
그러고 보니 차는 이미 회식하기로 정한 백리향에 도착 해 있었다.
겉은 아주 허름해서 그래도 이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의 의사들이 하는 회식 장소로는 좀 어울리지 않는 집 처럼 보였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국집 특유의 장을 볶는 냄새와 불에 그슬린 양파의 고소한 냄새가 풍겨 왔다.
이미 병원장을 비롯하여 내과의 김과장과 외과의 신과장 그리고 이비인후과의 정과장이든가 하고 정형외과의 최과장이 와 있었다.
그리고 병원장 옆에 있는 사람은 병원장과 내연의 관계라고 들은 간호과장이 앉아 있는 데 40 대 중반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상당히 세련되고 젊어 보이는 미인이었다.
그 옆으로 검사실장으로 있는 황실장과 수술실장으로 있는 마취과장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응급실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당직을 서느라고 빠지고 나머지 전 과장들이 함께 앰블런스로 미리 온 모양이다.
마취과장의  옆에 있는 여자는 아마 병원 직원이기는 할 것 같은데  누군지 처음 보는 사람이다. 생머리에 포니 테일을 한 생김으로 보아서는 의사 같지는 않은데.
"어이고 오늘의 주빈께서 오셨네. 분만 때문에 좀 늦으셨네. 이리 오세요. 이박."
이박.
doctor 라는 의미겠지만 그리 좋은 호칭은 아닌 것 같다.
박씨면 박박, 구씨면 구박, 정씨면 정박인가 ?
여하튼 어감이 그리 좋은 접미사는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바닥에서는 그런 호칭이 관행적으로 쓰였다.
병원장의 말에 다들 내쪽을 쳐다 본다.
이미 구면이라 따로 인사는 생략하기로 했지만 반갑다는 둥, 오래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둥, 이곳이 경치도 좋고 살만한 곳이라는 둥 의례적이고 별 의미도 없는 말의 성찬이 이어졌다.
"아참 윤약사는 처음 보지 아마 ? 인사해요. 이번에 오신 산부인과 이혁 과장님, 그리고 이쪽은 윤승혜 약사. 이번에 부친상 당해 가지고 갔다 오느라고 서로 인사를 못했지 ?"
병원장의 소갯말을 들으니 문득 관사에 처음 들어가면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내가 쓰기로 한 관사는 1 층에서 오른쪽에 있는 방이었는데 그 전에는 병원 약사가 쓰던 방이라고 했다.
내가 오면서 약사는 병원 외부에 있는 간호사들 기숙사로 따로 나갔다고 들었는데 미처 챙겨가지 못한 소지품이 몇가지가 눈에 띄었다.
침대 메트리스 밑에서는 얼마가 묵었는지 모르겠는 오래 되어 바랜 팬티와 아마 잊고 간 듯한 일기장인지 조그마한 파란색 수첩 같은 것이 있었다.
팬티가 너무 지저분해서 처음 온 날부터 방 주인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다.
일기인지 수첩인지는 사소한 남의 개인사라 읽어 보지 않고 돌려 주어야 했지만 양심이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별 중요하지 않은 메모 같은 것도 있고 무슨 일정 같은 것도 있고 중간 중간에 일기 처럼 보이는 내용이 몇개 들어 있었다.
날짜가 써 있는 부분도 있고 없는 데도 있는 데 이런 사적인 것을 흘리고 다니는 것 보면 그리 깔끔한 여자는 아닌 듯 싶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듯 싶은데.

소아과 하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
오늘도 점심 때 복도에서 잠깐 스치면서 눈을 쳐다 보았는데 눈이 참 맑았다.
불편한 다리로도 운동을 가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 건강한 남성미가 느껴진다.
잠자리에서는 어떨까 ? 굉장히 뜨거울 것 같은데.
다른 과장들한테는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카리스마 같은 것인지 순수함 같은 것인지.
언제 술 한잔 사달라고 해볼까 ?

오늘은 날씨처럼 기분이 꿀꿀하다.
그이 한테서 또 전화가 왔다.
빨리 서울로 올라 오라는 성화다. 일단 별거하고 서로의 마음을 가라 앉혀 보자고 했으면 가만히 놔두면 좋으련만.
아직 몇달이나 되었다고 다시 또 재촉인지 모르겠다.
이혼해달라면 해 주면 되지 왜 자꾸 집착을 부리는지.
하여튼 인간이 다 싫다.
특히 남편이 싫다.
내일은 휴대 전화 번호를 바꾸어 버리든지 해야지.
그나저나 근무 중에 그렇게 전화를 해서 내 신분이 탄로 나면 무슨 망신인가.
아직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조금 나이든 노처녀로 아는 채로 놔두고 싶은데.

2 월 5 일.
아빠의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에는 아빠한테 한번 가봐야 겠다.
큰 기대를 받으면서 고이 키워 주신 아빠에게 딸로서 아무 것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여 아빠한테 너무 미안하다.
자주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내가 별거하고 있는 것도 부모님 마음에 너무 큰 못을 박은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다.
빨리 나아지셔야 할텐데. 하느님 도와주세요. 우리 아빠를 제발 조금만 더 살려 주세요.
제가 가슴에 박은 못 그 상처가 아무실 때까지 조금만 더 지켜주세요.

"뭐해 이박 인사하지 않고 ?" 병원장의 면박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혁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선생님. 윤승혜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께요. 자주 놀러가도 되죠 ?"
어디를 자주 놀러 온다는 이야기인가 ? 진료실로 아님 관사로 ?
수첩을 흘리고 다니는 칠칠치 못한 여자치고는 목소리는 맑았다.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상당히 적극적인 성격의 여자이거나 아니면 주책인 여자 아닌가 싶었다.
여하튼 관사에서 훔쳐본 그녀의 수첩 때문인지 그녀의 첫 인상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내색 할 필요는 없었다.
산부인과 의사로 많은 여자들을 만나 보았지만 나는 얼굴을 보아서는 아직도 여자의 나이나 그 성격 등에 대하여 잘 모르겠다.
아마 한 삼십 초반 아닐까 싶은데 그냥 보아서는 결혼한 여자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로써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기도 했고.
여하튼 사람을 만나면서 선입견은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입견이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인간적 교류가 늦어 지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급적 갖지 않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서 마음에 든 것이 있다면 생머리를 묶어서 뒤로 넘긴 꽁지머리를 한 것과 크고 맑은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까맣고 큰 눈은 아이들의 눈처럼 순수해 보이면서 약간 슬픔 같은 것이 묻어 있었는 데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첩에서 얼핏 보인데로 아마 순탄치 않은 가정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자 식사하면서 이야기 합시다. 이 집이 이래뵈도 서울의 유명 호텔의 중식당 주방장이 나와서 개업한 집이예요. 음식도 일품 요리는 하루 전에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먹지 못해요."
병원장의 설명대로 전채를 포함해서 몇 가지 음식이 나왔는 데 그 중 돼지 고기에 파인애플을 얹은 요리는 생전 보지 못한 음식인데 어울릴까 싶었지만 비린내도 나지 않고 상당히 깔끔한 맛이었다.
이런 촌구석에서 맛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음식이었다. 그 뒤에도 몇가지 일품 요리가 나왔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나는 메뉴가 중이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담을 넘어갈 정도로 맛이 있다는 불도장이라는 메뉴였다.
역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집의 생김으로야 어디 지나가다라도 올 만한 집 같지를 않았으니까.
내 앞에 앉은 저 약사도 어쩌면 보기와는 다른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유독 그녀에게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마 남겨두고 간 그녀의 수첩에 적힌 비밀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내면의 비밀을 나만 안다는 것은 모종의 끈처럼 서로를 연결 시켜 주는 은밀한 작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녀는 노처녀처럼 행세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다른 남자를 유혹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연예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독신녀라고 하는 프리미엄을 누리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처럼 상대방의 호감을 줄어들게 하는 요인도 없을테니까.
별 의미도 없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질색이지만 나를 위한 환영 회식이라니 미리 몰래 빠져 도망가기도 어려웠다.
약간의 반주가 곁들인 모임이 끝났을 때는 밤 10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봄이지만 밤 공기는 차가워서 밖으로 나오니 목덜미 사이로 선득한 바람이 휙 지나갔다.
일부의 직원은 집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이차로 노래방을 가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집으로 가는 쪽에 서야지 하는 데 윤약사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려는 내 팔을 잡아 끌면서 함께 가자고 성화다.
"이 선생님, 저희랑 함께 가세요. 노래 실력도 보여주시구요. 저 노래 잘 해요."
"아, 예"
"그리고 이따 집에 갈때도 좀 바래다 주시구요. 차가 끊어진단 말이예요."
"그러세요. 이 과장님."
검사실장도 한 목 거든다.
그래서 엉겹결에 노래방까지 가게 된 것이 소아과 하과장을 포함해서 공교롭게 4 명 만이 남게 되었다.
정형외과 최과장이야 아무래도 전공의니까 같이 어울리기는 그랬을 것이고 다른 과장들도 함께 가지 않는 것을 보면 병원 분위기는 그리 살가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소아과 하과장과 검사실장 그리고 윤약사까지 4 명이 내 차에 올랐다.
나는 술을 거의 먹지 않았기도 하지만 이런 곳에서 음주 단속을 하는 경우도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노래방에서 보니 윤약사가 왜 노래방을 오자고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래를 빼어나게 잘 하기도 했지만 아마 하과장과 같이 있고 싶어서인 모양이었다.
바로 옆에서 하선생의 팔을 잡기도 하고 어깨를 손으로 치기도 하면서 둘이 아주 친한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원래 스킨쉽을 좋아하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일기에 쓴 것처럼 속으로 좋아해서 인지는 모르겠다.
나와 황실장은 들러리인 것인 분명했다. 둘 다 노래를 그다지 잘 부르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직 허물없이 그렇게 어울릴만한 사이들은 아니었으니까.
여하튼 들러리는 들러리 답게 주연을 빛내주어야지.
그녀가 부른 노래는 내가 모르는 노래들이 많아 거의 기억은 못하겠지만 평소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를 그녀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너를 기다려"라는 노래였는 데 "거침없는 사랑"이라는 드라마의 OST로 삽입된 노래였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굳이 대자면 사랑은 원래도 거침없는 것이라는 내 생각과 같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많이 힘들었나요로 시작하는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서 였다.
그녀는 그 뒤에도 하과장과 함께 몇곡인가 신나게 노래를 불러대었다.
그 즈음부터인가 예의 그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파오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노래방을 싫어하는 이유는 노래를 잘 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노래방은 대개 지하에 있어서 그 퀘퀘한 냄새로 하여 항상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는 해서이다.
그런 괴로움을 그녀의 열정적인 노래가 약간 잊게 해 주기는 했지만 결국 두통약을 사러 밖으로 나와야 했다.
밖으로 나오니 안에서의 답답하고 눅눅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밤이 늦어서인지 아니면 그믐날쯤 되어서인지 밖은 칠흑 같이 깜깜했다.
그래서였겠지만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 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잊어버렸던 행동인 것처럼 어설프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쳐다 보았다.
이곳만 해도 도시에서 떨어져서 별이 많이 보일 줄 알았는 데  메마른 들판에 난 성긴 풀처럼 하늘에는 별도 얼마 보이지는 않았다.
황폐한 내 마음과 같이 하늘도 그렇게 황폐해 보였다.
많지 않은 별 중에 카시오페아 자리가 북쪽 하늘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 특징적인 W 자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는 별 자리였다. 물론 지금은 M 자처럼 뒤집어 진 모양인 것을 보니  봄은 봄인가보다.
"뭐 보세요 ?"
그때 윤약사가 옆에 와서 말하면서 같이 하늘을 쳐다 보았다.
"아 예 머리가 좀 아파서요. 하늘 좀 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별 좋아하시나봐요 ? 선생님 별자리는 뭐예요. 저는 양자리인데"
"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아내가 책갈피 사준 것으로 보면 아마 사수 자리일 겁니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언젠가 연애하던 무렵에 아내가 내 별자리에 해당하는 모양의 책갈피를 선물해 준 기억이 났다.
말을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돌려 쳐다 보았다.
그때 바람이 불어서 자몽인지 레몬 냄새인지 달콤한 과일 향기가 그녀의 얼굴로부터 진하게 풍겨왔다.
그 향기 때문이었는 지 잠깐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전에 아내와 연애할 때 느꼈던 아득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와 비슷한 어지러움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예민하게 느끼는 감각이 있지만 나는 냄새에 아주 약한 체질이었다.
다른 사람은 맡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냄새도 나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면 그 사람만의 독특한 채취를 느끼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편이었다.
아마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만의 체취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이나 목소리의 생김새 만큼이나 다양한 향기를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
그러나 외모와 다르게 체취가 가진 특징이 있다면 자신의 체취는 자기 자신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코를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그것은 흡사 상대방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사랑의 감정과 비슷해 보였다. 물론 자기애의 경우는 예외지만.
냄새에 예민하다 보니 강렬한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거나 아니면 아득한 현기증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개의 사람이 멋진 그림을 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에서 느끼는 희열을 나는 향기에서 더 느끼는 편이었다.
나의 향기는 어떤 느낌일까 ? 좋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녀에게서 난 과일향처럼.
"참 선생님, 제가 관사 비우면서 빠트린 것 있는데 조그만 수첩 같은 것. 혹시 못 보셨어요 ?"
그 낙서와 일기 비슷한 것이 적혀 있던 낡은 파란 수첩을 말하는 모양이다.
뭐라고 그래야 하나 ?
이미 수첩을 보았다고 하면 내용도 알테니 그녀가 창피해 할 지도 모르는데 모른다고 해야 할까 ?
"글쎄요. 못 보았는데 나중에라도 보면 말씀드릴께요. 어떻게 생긴 수첩인가요 ?"
"별거는 아니고 그냥 메모 같은 것 간단히 적어 놓은 것인데 제게는 소중한 것이라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슬쩍 쳐다 보았다.
그때 다시 봄 바람이 가볍게 스치면서 과일향이 풍겨왔다. 같은 바람이지만 이상하게 아까와는 다르게 춥다는 느낌은 없었다.
향기를 맡으면서 감정이 차분해지고 왠지 모를 포근함이 느껴졌다. 역시 냄새의 중추는 대뇌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 영역에 속하는 변연계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항상 냄새는 어떤 종류든 감정의 끄트머리를 끌고 나오는 수가 많았으니까.
"노래를 아주 잘 하시던데, 안에서 기다리실 텐데 안 들어가세요 ?"
"선생님과 여기 함께 있으면서 별도 보고 좋은데요. 왜 싫으세요 ?"
역시 생각대로 너무 적극적인 여자 아니면 조금 헤픈 여자인가 생각이 들려 했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저는 괜찮습니다만, 안에서 기다리실 것 같아서. 소아과 하과장님과는 잘 아시는 사이신가 봐요 ?"
"네에, 제가 처음 왔을 때 부터 제게 잘 대해 주셔서 병원 식구들 중에는 그래도 말도 종종 나누고 비교적 친하게 지내는 분이세요."
"네."
"선생님은 사모님은 같이 안 오세요 ?"
"네 ?"
갑자기 집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흡사 추억에서 현실로 끌어 내리듯 혹은 푹신한 소파에서 갑자기 딱딱한 바닥으로 내려 앉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아, 예, 직장이 서울이라서. ㅂ 병원의 안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마침 그때 노래방에 있던 두사람이 나왔다.
"이 과장, 윤약사. 여기 있었네. 그렇게 두 사람만 오붓한 시간 보내도 되는거야 ?"
"아 예 죄송합니다. 이제 그만 가셔야지요. 저도 오늘은 첫 분만을 해서인지 조금 피곤해서 그만 들어갔으면 싶습니다만."
"그럽시다. 그럼 방향을 어떻게 가야 하나 ?  황실장과 윤약사가 같은 방향이니까 황실장  먼저 내려 드리고 윤약사도 기숙사에 내려 드리면 되겠군요. 이 과장님은 저와 함께 관사로 가면 되고. 자 그럼 그만 갑시다."
여전히 북쪽 하늘에서는 고대인들이 5개의 손가락으로 여기고 '헤나의 물들인 손'이라고 불렀다는 카시오페아 자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V

안녕.
사랑하는 나의 여신.

처음 당신과 함께 바라 보았던 카시오페아는 지금도 저 하늘 위에서 빛나는 데
당신을 만나면서 맡았던 자몽 과일향은 아직도 내 코에 생생한데
당신의 보드라운 뺨의 감촉은 아직도 내 손에 그대로 남아 있는 데
당신의 질끈 동여맨 윤택한 머리결과 맑은 눈은 내 망막에 그대로 남아 있는 데  
약간 들뜬 색깔의 당신 음성은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한데
여기 내 곁에 당신이 없다는 사실이 믿어 지지를 않아.

물거픔으로 사라지는 인어 공주와도 같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백설 공주의 난장이와도 같이
죽음의 독약을 마시는 줄리엣과도 같이
외투 주머니 가득 돌을 끌어 안고 아우스 강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와도 같이
우리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걸까 ?

그저 당신 아프지 않기를 소망했을 뿐이고 평온 하기를 소망했고 잠깐이라도 영원인 것처럼 내 안에서 휴식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것 뿐인데.
그 작은 소망도 신은 허락해 주지 않으셨지.
언제나 우리의 만남은 가시 돋친 솜사탕을 핥는 것처럼 달콤함과 쓰라림을 함께 가져다 주었지.

영원히 함께 하기로 한 우리의 약속은 누가 가져간걸까 ?
내가 잘못한 것일까 ? 아니면 당신이 ?
나로써는 더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보고 싶은 당신을 마음껏 보지 못하고 만지고 싶은 당신을 온 가슴으로 안아 볼 수 없는 것이 내게는 차라리 죽음 보다 더한 지옥이니까.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이 편지를 읽고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주 짧은 단 한마디 문장이라도 답장을 보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당신은 그랬었지.
어느 영화에서 사랑해요라는 고백에서 한번도 사랑한다고 같이 대답하지 못하고 미투라고 말한 못난 남자처럼 당신은 언제나 내 편지에 짧게 대답을 했었지.
나도 그래요라고.
내 맘도 그렇다고.
지금도 마지막으로 당신의 그런 대답을 다시 한번 들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너무도 어둡고 쓸쓸한 곳에 당신 혼자 남겨 두고 나는 이렇게 멀리 와 버리고 말았어.
도저히 그곳에서 당신의 괴로운 모습을 지켜 볼 수가 없었어.
미안해.
함께 있어 주고 손 잡아 주지 못해서.
당신 손 잡고 힘들지 말라고 아프지 말라고 내가 아는 모든 신께 용서를 빌고 도움을 부탁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내가 한 빈말들은 어떻게 속죄해야할까 ?
내가 쉽게 고통없이 내뱉었던 사랑의 언어들은 무엇으로 보상해야하나 ?
내 불행을 팔아서라도 당신의 행복을 사고 싶었지만 이제는 내 죽음으로도 당신의 한 순간의 평온도 사주지 못하는 걸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하나 ?
누군가 그렇게 말했지.
사랑은 인생에 있어 진정 소중하고 유일한 것이라고.
사랑은 혹독한 겨울에도 장미를 피우는 힘을 가졌다고.
그러나 어째서 내 사랑은 당신을 구원하지 못하고 파괴만 하고 만것일까 ?

이제 당신께 마지막 편지를 써.
많은 밤과 낮을 설레게 하고 힘들게 하고 그리고 두렵게 한 만남과 헤어짐도 이제는 없을거야.
돌이켜 보면 나는 당신께 준 것이 너무도 보잘 것 없어서 슬퍼.
이름 모르는 초라한 이파리 몇개와 재미없는 책 한권, 별로 우습지 않은 유머 몇마디와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지 않은 위로가 전부였지.

지금에서야 고백하는 거지만 나는 처음 당신을 보는 순간, 당신의 향기를 맡는 순간 당신이라는 늪에 빠진 거였어.
물론 몸이 움직일 수 없게 된 나중에서야 그것을 알았지만.
그 조그만 파란 수첩에 적힌 당신의 영혼을 훔쳐 보면서 당신과 내 영혼이 충돌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
사랑은 광풍처럼 혹은 섬광처럼 오지 않고 가랑비처럼 온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
미안해, 당신이 잃어버린 그 파란 수첩은 내가 몰래 감추었어.
이곳에 내려오면서 당신의 수첩과 당신이 내게 준 이미 말라 비틀어진 꽃과 이름도 잊은 책은 다 태워버리고 왔어.
이제 더 이상은 내가 지켜줄 수 없는 물건들이니까, 이제 내가 없는 세상에서 더 이상 의미 없는 물건들이니까.
별 하나에 이름 하나씩 부른 시인처럼 하나씩 태우면서 지난 우리의 추억도 하나씩 태웠어.
그러나 웃는 당신의 모습이 담긴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은 도저히 태우지 못했어.
그래서 이곳에 함께 가지고 왔어.
사진 저 안쪽에서 당신이 웃고 있네.
그래 당신은 그런 모습이 좋아.

내가 너무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제 편하게 지내.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께.
당신도 곧 올거지 ?
이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편한 사람으로 내게 와.
두려움 없는 황홀한 사랑만 할 수 있도록.
당당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나에게 와줘.

미안해 앞이 흐려져 자판이 잘 안보여 편지를 더는 쓸수가 없어.
안녕. 내 사랑.
잘있어.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서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까봐 얼른 얼굴을 손에 묻었다.
눈만 감으면 환하게 떠 오르는 그녀의 얼굴이 아직 너무 또렷해서 내게는 눈을 감는 것도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 볼 때는 그녀의 존재가 내 많은 주변 것 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눈을 감으면 오로지 그녀 만이 내 의식의 전부가 된다.
의식의 전부가 되기 때문에 고통의 강도도 훨씬 강해진다.
한 세상을 산다는 것은 무언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무언지 모르겠다.
소풍 가는 길과 같은 설렘이고 맛있는 도시락을 까먹는 기쁨일까 ?
그러나 산다는 것은 그리고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게는 고통이고 불안이고 파멸이고 두려움일 뿐이다.
그것은 채울 수 없는 허탈함의 다른 이름이고 마시기 힘든 쓴 잔을 마셔야 하는 일이다.
사랑은 끊임없이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데서 오는 고통에 시달려야 하고 언젠가 이별해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떠는 일이다.
내 자신과 심지어는 사랑하는 그녀 조차도 완전한 파멸의 구렁으로 넣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일이다.
또한 완전한 통제 불가능의 무기력한 상태에서 오는 허탈감에 항상 시달려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아무리 마셔도 줄어 들지 않고 너무 써서 도저히 마시기도 힘든 쓴 잔이다.
태어나기 전 영혼의 세계에서 살아야 할 인생의 모습을 미리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 이런 괴로운 생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데 이것은 누가 선택해서 만들어진 삶인지 정말 모르겠다.
누가 선택했길래 이다지도 힘든 길을 내 앞에 준비해 놓은걸까 ?
내 앞에 놓인 인생이라는 잔에 든, 너무 써서 삼킬 수도 없는 물은 도대체 누가 가져다 놓은걸까 ?
인생은 고해이며 또한 사랑도 황홀한 기쁨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나머지 모든 삶은 고통과 괴로움만으로 버무려져야 한다는 것은 미처 몰랐었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일지 모른다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작지만 또렷하게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24 년 간이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에게 있었던 악마가 있어서 나에게도 찾아 온다면 나는 그에게 내 인생의 전부와 영혼을 주고 그녀의 하루를 사고 싶다.
그 하루 동안에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들을 하고 싶다.
마지막 날인 줄 모르고 평범한 어느 하루처럼 아무 말 못하고 그저 가벼운 목례만 하고 스쳤던 우리의 마지막 만남의 날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그녀의 맑은 눈을 보고 그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당신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던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그 한마디를 하고 싶다.
인간이던 신이던 어느 누구도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있겠지만 사랑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어 공주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을 할 수 있는 목소리를 주지 않는다면 얼굴이라도 눈이 짓무를 만큼 오래 오래 바라 보고 싶다.
그녀의 웃는 밝은 얼굴을.
악마가 있어 가능할 수만 있다면 그녀와 나를 그저 조금의 호감과 그만큼의 설레임만 있던 이전의 상태로 돌려 놓고도 싶다.
그래서 차라리 회한으로 가슴 떨며 이곳까지 오지 말고 만나면 즐겁고 만나지 않더라도 괴롭지 않은 조금의 설레임만으로 그녀를 바라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허락된 며칠의 시간 중 첫날을 그녀와의 마지막 인사로 시작했다.
이제는 영영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녀와의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야겠다.
수줍은 듯이 봄에 시작한 만남부터 한 여름의 열기처럼 너무도 뜨거워 영혼을 데일 것 같았던 기억들을 지워야만 한다. 그리고 예감하지도 못했던 이별의 가을까지 모든 기억들을 내 가슴에서 덜어 내야 한다. 그래야 편한 가슴으로 저 세상에서 처음인 것처럼 그녀를 다시 마중하지 않겠는가.
서럽도록 너무 짧았던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그래서 태초의 첫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 것처럼 내 마음도 공허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고 창세기처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잉태라고 생각하자.
오늘은 10 월의 다섯번째 날.
내게 남은 세상의 날은 길어야 1 주일.
가을의 초입에서 밖에는 낙옆도 지고 어쩌면 내 좋아하는 비도 올 지 모르겠다.
그러나 밖에는 비는 오지 않고 잔잔한 밤바다와 일을 쉬는 고깃배들만 가지런히 이쪽을 보고 있다.
밤이라 어두워서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마른 눈물과 세월의 무게로 찌든 초라한 남자의 얼굴을 감추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배들은 흡사 코뚜레를 꿴 소들처럼 자신만의 끈을 매단채 일렁이는 바다에 몸을 싣고 흔들리고 있다.
살아 있는 생물이 숨쉬는 것처럼 이쪽으로 조금 기울었다가 저쪽으로 조금 기울어진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배들도 다 자기만의 이름이 있는 데 그러고 보면 사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소래 포구든가 젊은 시절 언젠가 동아리 모임에서 바닷가로 야외 스케치를 나간 적이 생각난다.
정말 20 년도 지난 기억인데 냄새는 오래 전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했다가 잊었는가 하면 어느 순간 불쑥 끌어내는 작용이 있다.
그렇게 바닷가 비린내가 진한 테레핀의 독한 냄새처럼 지난 기억들을 불러 온다.

VI

이곳 철원에서 처음 맞는 일요일이라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어차피 서울에는 가봐야 아내가 반가워 해 줄리도 없어 그냥 이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서로가 부담이 덜하니 우리에게 부부라는 것이 더 이상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귀여운 막내 딸 '해나'의 모습을 보고 싶다. 언제까지나 그 나이로 머물렀으면 싶은 이제 초등학교 2 학년으로 정말 귀여운 나이다.
지금도 여전히 촐랑거리고 온 아파트 집집마다를 제 집 마냥 돌아 다니고 있는지.....
밖으로 나갈까 하다 딱히 생각나는 데도 없고 하여 오랫 만에 처박아 두었던 화구를 펼쳐 놓으니 좁은 방이 더 좁아 보인다.
다른 과장들은 아마 가족들과 근처의 고석정이나 한탄강으로 혹은 삼지연 폭포 쪽으로 놀러 들 갔을 것이다.
놀러 다니기에는 아직 날씨가 다소 추운 날이기는 했지만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있는 가장들이 주말에 집에 붙어서 쉬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조금 더 힘들 것이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 문을 열어 놓으니 조금 춥기는 하지만 환기가 되어 냄새가 좀 덜 난다.
물감 냄새는 이제는 익숙해기도 하련만 아직도 오래 맡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온다.
관사는 방이 두개인데 큰 방은 침실로 쓰고 있고 옆방인 이곳을 서재 겸 화실로 쓰고 있는데 방이 좁아서 책을 쌓아 놓고 그림 도구들을 펼쳐 놓고 있으니 몸 하나 간신히 운신할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나마라도 이런 관사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팔레트에는 이미 굳어서 딱딱해진 물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바로 바로 닦고 정리를 해야 하는 데  수개월 전에 그린 상태로 그냥 두었더니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유화는 그런 점이 불편했다. 일단 물감을 짜면 어느 시간 내로는 다 소진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다시 쓸 수가 없고 오히려 골치 덩어리가 되고 만다.
사람의 감정도 그럴 것이다.
바로 바로 정리를 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면 나중에는 돌처럼 굳어서 무엇으로도 풀어 내거나 닦아 내기가 어렵다. 나와 아내가 그런 것처럼.
그렇게 되면 그냥 포기하고 송두리째 도려내거나 아니면 미이라를 보는 처참한 기분으로 감정의 시체를 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유화 물감은 붓이나 팔레트 모두 일일이 석유로 씻고 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아내도 항상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요구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또 챙겨야 할 무엇 무엇들로 나를 끊임없이 들볶았다.
매양 그렇지만 내가 잘 할 수 없는 것들로 나를 괴롭히곤 했다.
내가 그림에 빠지게 된 것도 나로써야 예술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열망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런 모든 번잡하고 생각하기 싫은 것들로부터의 도피라는 아내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하얀 캔바스를 대하고 물감의 냄새를 맡으니 다시금 끓어 오르는 열정으로 주체할 수 없었던 그리운 젊은 시절의 열기가 등줄기를 지나 온몸을 훑고 지나는 듯하다.
지금은 거의 시들어 말라가고 있지만 내가 이 병원에 처음 오는 날 수술실장이 선물로 준 백장미를 꽂은 컵을 내려다 본다.
여지껏 개업식을 하거나 새 병원에 부임하면 보통 난 화분이나 스킨답서스나 그외 이름을 잘 모르는 이런 저런 상록수 들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번의 장미꽃은 의외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림의 모델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존경이라는 백장미의 꽃말을 생각한다면 그리 어색한 선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시인들이 노래하는 것의 대부분도 사랑이지만 수도 없이 많은 화가들이 그리는 영원한 주제 역시 사랑이다.
그런 점에서 피에르 르두테라는 화가처럼 꽃 그 중에서도 장미만을 유독 많이 그린 화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열정이나 기쁨, 아름다움이 그 꽃말인 붉은 장미를 그린 화가가 적다는 것은 의외이다.
티타늄 화이트와 번트 엄버, 비리디안, 라이트 그린 등 그리운 이름들의 물감 튜브를 파레트에 짜면서 그리고 그 냄새들을 맡으면서 첫날밤의 기억처럼 가느다란 전율을 느낀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차피 신비한 여인의 모든 것을 알아 가는 첫날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흥분과 그 섬세한 동작과 가슴 벅찬 마무리 혹은 가벼운 실망까지 모두.
짜내는 행위는 나에게 매우 익숙한 행위이다. 매일 아침마다 이를 닦기 위해 치약을 짠다. 그러나 치약을 짜면서 흥분을 느끼지는 않는다. 치료를 위해 항생제 연고를 짠다. 그러면서 희열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사랑이 없는 부부들의 잠자리만큼 무의식적인 일상사 중의 하나일 뿐이다.
결국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나에게 알려준 소중한 비밀은 짜내는 행위보다 짜내는 대상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느끼는 많은 일에서 행위의 내용과 행위의 대상에 대하여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의외로 대상이 가지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서 좋았다고 하면 (반대로 싫은 것도 마찬가지지만) 그게 만나서 좋은 것인지 그 대상이 그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생각해 보면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또는 그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만났던 경우라도 똑같은 정도의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가 ?
그 또는 그녀를 만난 것이 아니고 목소리를 들었거나 그냥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하는 사실에서도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경험이 없었던가 ?
그러니까 그 또는 그녀이니까 좋았던 것이다. 그와 무엇을 하건 간에.
따라서 나는 치약을 짜면서 느끼지 못하는 희열을 그림 물감을 짜면서 느낀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은 6 호의 캔바스를 이젤에 올리고 앞에 놓인 시들어 가는 마른 장미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붓을 들고 물감을 섞고 이제 베이스를 칠해야 할 차례다.
첫 학예회에서 발표를 하는 어린 아이처럼 내게 첫 터치는 항상 너무나도  떨리는 순간이다.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희디 흰 바탕에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떨리고 두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저 그런 첫날밤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옷을 처음 벗기는 것과 같은 흥분과 두려움처럼 이런 시작은 팽팽한 두려움과 떨림을 가져다 준다.
남자에게는 여인의 옷을 벗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신 벗은 몸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어느 것도 그저 아무 것도 없는 흰색 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순수함의 흰색을 감추고 더럽히는 행위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렇게 더럽힐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대신 나에게 주어진 의무는 아무에게도 그런 더러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지껏 아무에게도 내가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거나 어느 전시회에고 내 놓은 적이 없다.
그것이 그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내 욕망으로 하여 순수함을 더럽힌 것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참회이다.
물감을 테레핀유에 개면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사이버 세상에 그림 작업이라는 것이 수백년전부터 해 온 화가들의 방법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신기했다.
바뀐 게 있다면 나무 판 위에 그리던 것이 천으로 된 캔바스에 그리는 것 정도로 바뀐 것 뿐.
베이스를 칠하는 작업부터 해야 하는 데 어떤 색깔로 칠 할지가 고민이지만 흰색의 장미를 살려 줄 색으로 붉은 색을 선택했다.
창 밖의 마당에는 붉지 않은 3 월의 태양이 내려 쪼이고 있다.

그때였다.
휴대폰의 벨소리가 작업을 방해 한 것은.
산모가 온 것인가 싶어 전화를 받으니 서울의 집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다급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선생님, 해나가 많이 아파요. 열이 나서 몸이 불덩이 같아요. 빨리 집으로 오셔야 겠어요.”
“아니 무슨 일이지요 ? 해나 엄마는요 ?”
“해나 엄마는 오늘 병원에서 단체로 가는 산행이 있다고 북한산 가신다고 새벽에 나가시고 연락이 안되요. 어떻게 하죠 ?
아침 먹은 것도 다 토했어요. 어제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해나 엄마가 지어온 약을 먹였는 데 좋아지지를 않네요. 해나가 엄마를 계속 찾아요.“
“예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우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시고 절대 이불 덮어 주지 마세요.”
그림 그리던 것들은 그대로 내 팽개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원래도 몸이 그리 튼튼한 아이가 아니었는데 아내는 그런 아이를 두고 또 어디를 갔단 말인가. 참 무심한 사람이다. 아픈 아이를 두고 등산이라니.
낮 시간이라 서울로 가는 길은 다행히 그리 막히지는 않았다.
내 귀여운 막내 딸 해나가 아프다니.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아이를 두고 바깥으로 나돌아 다니는 아내가 야속했다.
평일에야 병원일로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주말이야 아이들하고 함께 있어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
고등학교 다니는 큰 애놈도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이랍시고 보낸 것도 사실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제대로 해 낼 자신이 없어 애물 단지 떨어 내듯이 보내 버린 것이다.
사실 아내는 큰 아들놈만 낳고 단산할 계획으로 본인이 철저히 피임을 하고 있었는 데 어느 날 실수로 피임을 제대로 못한 날 임신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첫째랑 9 살이나 차이가 나는 해나가 태어났다. 나로써야 바라던 딸이어서 기뻤지만.
아내에게는 원치 않는 아이라는 그런 마음도 어쩌면 해나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성애라는 기본적인 본능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여자다.
그렇게 무관심하게 내 버려둔 막내 딸내미가 아픈 모습까지 보게 되니 다시금 그녀에 대해 진절머리가 났다.
나라도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돌보고 싶지만 이제 마흔 넘어 쇠락해 가는 의사가 서울에 발을 붙이고 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벌어 놓은 재산이 있어 놀고 먹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결혼하고 한 십년 만 해도 아버지가 가진 재산으로 재벌가 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그놈의 IMF 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유화 공장을 잔인하게 허물어 트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서울에서 그럭저럭 운영하던 병원도 닫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공교롭게도 그 무렵 즈음 의료 사고까지 겹치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니 아내가 밖으로 돌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일 것이다.
아마 오늘도 구실은 병원 단체 산행이라지만 그 진료부장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 달려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구역질이 나는 인간들이다.
언제는 자기가 근무하는 그 병원의 진료 부장이 선배라고 하여 나보고 저녁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매개로 할 필요도 없어졌겠지.
진료 부장 뿐 아니라 역시 선배인 병원장의 외국 병원 시찰을 위한 출국장에 나보고 함께 나가자고 하는 것도 불과 얼마 전 일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 지 잘 알고 있는 아내가 그런 부탁을 나한테 한다는 것은 나를 그만큼 무시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타대학 출신인 아내가 지금의 전임 강사로 되어 있는 직함을 조교수로 승진시키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보면 아무리 최선을 다한 노력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추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몸이라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내라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행태에 흥분을 해서인지 속도를 많이 낸 모양이다.
차는 어느새 퇴계원 쯤을 들어서고 있었다.
송파의 집까지는 이제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이삼십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아주머니. 해나는 좀 어때요 ?”
“예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해서 열이 약간 내린 것 같아요.”
“저기 체온계가 어디 있을 거예요. 찾아서 한번 재봐 주세요. 그리고 제가 한 이삼십분이면 도착하니까 짐 좀 챙겨 주시구요. 근처에 있는 O 병원으로 갈거예요.”
전화를 끊고 동기들이 있는 O 병원으로 연락을 해 보았지만 주일이라 당직을 서는 스탭 중 아는 사람이 없어서 연락이 되지를 않았다.
어쨌든 빨리 도착해서 입원이라도 시켜야 할텐데.
전에도 감기 끝에 폐렴이 되어 아이가 얼굴이 반쪽이 되어 거의 죽다 살아난 기억이 떠 올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쌍한 아이였다.
능력이 없는 나 때문에 아빠의 사랑도 충분히 받지를 못하고 중요한 시기에 엄마의 사랑도 충분히 받지를 못하고 그저 마지못해 하는 최소한의 것일 뿐이었으니.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아닌 사랑이라는 단비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비싼 어학원을 보내고 피아노 학원이다 미술 학원이다 보낸다 해서 그런 것이 대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렇다고 교육 여건도 형편 없는 이 지방에서 내가 데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바쁜 엄마와 무능력한 아빠 사이에서 아이만 골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서둘러 아이를 만져 보니 열꽃도 얼굴에 피어 빨리 응급실로 데려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이는 완전히 쳐져서 오랜 만에 온 보고 싶은 아빠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 보지도 못했다.
눈물이 핑 돌려고 했지만 그럴만큼 한가하게 감상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O 병원처럼 큰 병원이 주변에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해나야 눈 떠봐. 아빠가 왔잖아. 많이 아프니 ?해나야.”
“으응, 아빠....야 ? ... 나 아파....콜록, 콜록, 아빠 목이 아파. 아빠.... 엄마는 ?”
“해나야. 그래 아무 말 하지마. 목 더 아파지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아이에게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기 걱정 밖에 없는 엄마 자격도 없는 엄마지만 역시 아이에게는 아빠보다 엄마가 필요한 모양이다.
“해나야 이제 병원에 왔으니까 괜찮아 질거야.”
링겔을 맞히고 체온과 혈압을 재고 아마 수련의 쯤으로 보이는 의사들이 고 가느다란 팔뚝에서 피를 뽑는 등 부산을 떤다.
아이는 까부라져서 그리 아픈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아직도 아내에게는 연락이 없다. 산에 갔다니 휴대전화도 연결이 안되기는 할 것이다.
아마 밤 느지막하게나 들어 올 것이다. 전에도 그랬으니까.
아주머니께 상황은 알려 놓았으니 집에 들어오는 데로 병원으로 달려 오겠지.
그나저나 병원에서 급한 산모라도 오면 난감한 일이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산모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면 책임을 중시하는 내 평소의 신조로 보아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는 의사로서의 신뢰보다는 아이가 더 소중했다.
응급실 큰 침대의 흰 시트에 조그맣게 쌓여 있는 아이가 왜소하고 불쌍해 보여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이 내내 편치를 않았다.
아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도 나를 서글프게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오면서 이 아이를 위해 가슴 벅차게 해 준 일이 하나라도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아 한 가지는 있다.
아이의 출산을 내가 있는 병원에서 내가 직접 받아 주었다는 사실.
그 사실만큼은 뿌듯하고 내가 산부인과 의사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의사로써도 아빠로써도 그리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이 없었다.
아이는 계속 엄마를 찾고 있었다.
아까 찍은 X 선 검사와 혈액 검사가 나온 모양이다.
“급성 폐렴입니다.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균 배양 검사 들어 갔으니까 바로 항생제 투여하면 열은 내려 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병실이 나는 데로  입원 수속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혹시 이전에도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까 ?”
“예, 아이가 몸이 약한 데다가 아이 엄마와 제가 바쁘다 보니 제대로 돌보지를 못해서요.”
“지금은 당장은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나중에 회복되는데로 정밀 검사도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이상이 있습니까 ?”
“아니 아직은 분명한 것이 아니고 일단은 급한 불부터 끄고 보시기로 하지요.”
담당 의사의 입원 지시에 따라 수속을 밟고 병실을 배정 받았다.
모든 것이 일사분란한 순서에 따라 착착 진행 되었다. 편리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기계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지. 여하튼 전에도 그렇지만 나는 큰 병원의 생리에 맞지 않는 체질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전문의 수료 후 남들은 근무하지 못해서 안달인 대학 병원도 내발로 그만 두고 나온 것이다.
병실에 올라오면서 아이의 열은 조금 떨어졌다. 그랬기도 하고 하도 긴장하다가 긴장이 풀려서 인지 침대 머리맡에서 깜빡 졸은 모양이다.
눈을 떴을 때는 간호사의 저녁 회진이 막 시작되고 있는 무렵이었다.
아내가 도착한 것도 그때였다.
아마 중간에 집에 전화를 했다가 아주머니께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당신. 도대체 이런 아이를 두고 어디를 갔다 오는거야. 당신이 이 아이 엄마 맞아 ?”
“당신이나 잘 하세요. 아이가 이런 것이 뭐 한두번이예요 ? 그리고 내가 있는 ㅂ 병원으로 안 가고 왜 이리 데려 왔어요 ?”
“당신이 와서 직접 데려가지 그랬어. 그 병원이라면 나는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 그리고 어제부터 아픈 아이를 주말 동안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할거야? 그렇지 않아도 약한 아이를”
“당신은 그런 말할 자격 없는 사람이라는 것 모르세요 ? 당신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했는데요 ? 아이 옆에서 아이를 지켜주고 내가 필요한 것도 옆에서 도와달라고 그렇게 부탁했지만 콧방귀도 안 뀐 사람이 누군데요 ?”
“됐어. 아이 듣겠어. 그만 둡시다. 그런데 아까 담당 의사가 아이의 상태를 앞으로 좀 두고 검사를 해 보아야 겠다는 것처럼 말하든데 그동안 해나에게 무슨 다른 일은 없었소 ?”
“원래 몸이 약해서 그런 걸, 뭐가 있겠어요 ? 여하튼 이제 제가 왔으니까 당신은 그만 가보세요. 당신이나 나나 서로 안 보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니까.”
아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다. 이 사람이 전에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고 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 싶었다. 과연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했었나 의심이 들었다.
해나 곁에 더 있고 싶었지만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기도 했지만 아내랑 함께 있어야 하는 것처럼 고역인 일도 없어서 그대로 병원으로 내려 가기로 했다.
아이 상태는 내일 월요일에 전화로 아는 소아과 스탭한테 물어 보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짧아서 8 시 인데도 이미 깜깜해 졌다.
관사의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낮에 그대로 두고간 화구들이 버려진 내 인생의 나날들처럼 어둠 속에서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물감들을 하나하나 담으면서 그렇게 어그러진 내 인생도 주어 담고 싶었는데 도데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모르겠다.
문을 열어 두고 갔지만 여전히 테레핀유의 냄새는 코를 찌르는 듯했다.


VII

20 년도 지난 그때 예과 때 미술반 다니던 시절 간호대 3 학년이던 미술반 선배 하나가 내게 유독 잘 대해준 기억이 난다.
뜬끔없이 초콜렛을 건네 주기도 하고 어쩌다 일요일 날 동아리 방에 들르면 집에서 만들어 왔다는 샌드위치도 나누어 주고는 했다.
야외 스케치 등 어디를 갈 때면 꼭 함께 가자고 채근하고 갈 때 마다 옆자리에서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던 해맑은 얼굴의 선배가 생각이 났다.
선배한테 적당한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키도 아담하고 얼굴도 조그만 귀여운 인상의 선배였다. 그림도 그렇게 작고 귀여운 그림만 그렸던 것 같다.
나야 보통 능력도 모자라면서 한번 완성하려면 한달 이상 걸리는 20 호나 30 호 정도의 비교적 큰 캔바스를 욕심냈었지만.
그 선배는 그다지 사근사근 하지도 않고 무뚝뚝한 후배에게 왜 그렇게 잘 해주려고 했을까 ?
여하튼 그런 기억 때문인지 테레핀 냄새만 맡으면 미술반 그 선배 생각이 났다.
그때는 서로 어떤 감정인지 잘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르지만 그런 기억이 그리 싫었던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고 관심을 얻는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올려주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 지난 기억 중에 행복한 몇 순간 중의 하나로 미술반 동아리 시절을 꼽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생의 마지막 시간이 가까워 오니 그래도 슬펐던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갈 수 없는 나라처럼 지금은 다시 갈 수 없는 곳이고 시간이었다.
다시 갈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다행인 지도 몰랐다.
언젠가 앨범에 끼워진 누렇게 낡은 사진의 기억을 더듬어 어린 시절 소풍 갔던 장소를 찾아 갔던 적이 있었다.
코흘리개 1 학년 때 쯤인가 봄 소풍인지 가을 소풍인지 동구릉에 소풍가서 찍은 사진이었다.
동구릉으로 가는 길에는 기차길이 있었는데 능으로 가는 코스모스 핀 철길을 침목을 밟으면서 걸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또 레일 위에 올려두면 지나는 기차 바퀴에 눌려 칼처럼 납작해지는 못을 만들기 위해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면서도 지겨운 줄도 몰랐다.
능으로 가는 길에는 기차굴도 있었는 데 굴로 들어가기 전에 길 옆으로 흐르는 시멘트 도랑에는 물은 많이 흐르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깨진 틈 사이로 가재가 들어가 살고 있기도 했었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막대에 묶어 가재를 유인해 내어 잡아서 구어 먹기도 하고 가지고 놀기도 했었다.
몇 년 전에 갑자기 지난 시절의 그리움을 못견뎌 그런 추억의 길을 따라 계획없이 강변 도로를 달려 동구릉엘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예전에 내가 알던 길도 아니고 능도 아니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개발이 되어 예전 같으면 눈감고도 뛰어 갔을만큼 익숙한 길을 표지판을 보고도 간신히 찾아 갔었다.
능으로 가는 아스팔트 길을 걸으면서 그리고 쇠락한 능을 되돌아 나오면서 어릴 때부터 소중히 간직하던 물건 하나를 누군가에게 빼앗겨 버린 허탈감이 밀려 왔다.
수십년 후에 만난 첫사랑 여인의 주름진 얼굴을 보는 기분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리운 옛 사진을 보고도 아련한 추억보다는 쇠락한 능의 초라함이 먼저 떠오를 것 같아서 후회가 되었다.
과거의 추억은 과거의 추억대로 묻어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지나간 강물에 발을 다시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오늘 발을 담구는 강물은 어제의 강물이 아니다.
미련으로 말미암은 그런 반복은 오히려 강물에 대한 기억만 어지럽힐 뿐이다.
그래서 첫 사랑의 연인은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그래서 배가 묶인 선착장 돌계단에 앉아서 지난 기억을 돌이켜 보는 동안 시간이 상당히 늦었는 지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소록도로 가는 배, 완도로 가는 배 등 하루의 일과를 끝낸 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배들을 보니 불현듯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밤을 밝혀 보아야 과거의 기억으로 자꾸 잠겨 들어가는 자신을 추스르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소록도에는 내일이나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아직 나에게는 긴 며칠이 남아 있었으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잘못 고른 직업 때문에 한번도 누려 보지 못한 방해 받지 않은 죽음 같이 깊은 잠에 죽기 전에 한번 빠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호텔로 발걸음을 향했을 때는 이미 12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 내가 이곳 소록도 앞 바다에 온 지 이틀째 날이 되고 있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하늘과 물로 나누셨다는 이틀째 날이지만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빛이 충분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이 되니 이미 밖이 훤하고 배들의 움직임 소리에 시끄러워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 밖으로는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고 어제의 어두운 밤바다는 더 이상없었다. 어둠이 가고 빛의 시간이 왔다.
빨리 씻고 선착장으로 나가 보아야 겠다.
아침을 어디선가 해결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침을 거르던 습관이 길들여진 데다가 환경이 바뀐 것 때문에 식욕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소록도는 밤에 보았을 때 보다 훨씬 가깝게 보였다.
대충 1 km 정도 쯤 되려나 능력있는 사람은 헤엄쳐서 건널 수도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배는 15 분 간격으로 있었는 데 통통거리는 배에 오르니 관광객처럼 보이는 십여명의 사람과 나 외에는 없었다.
소록도에는 직원과 환자 구역 외에는 마을이 따로 없어서인지 푸근한 모습을 한 시골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은 갑판에는 보이지 않았다.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관광객들의 모습이라니 흔히 알고 있는 소록도라는 섬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 15 분 쯤일까 배가 떴는가 싶게 소록도 선착장에 도착하여 내리라는 방송이 나왔다.
선착장을 걸으면서 내가 이곳까지 둘러 둘러 왜 오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잠시 서글퍼 졌지만 낮이라서 그런지 그다지 깊은 감상으로 가슴이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조경이 잘 된 공원을 걷는 것처럼 깔끔하게 다듬어진 길과 계단을 따라 죽 이어진 길을 걸어 올라가니 소록도 전체 안내판과 길을 안내하는 팻말이 보였다. 중앙 공원과 국립 소록도 병원, 소록도 해수욕장이 표시되어 있었다.
교회도 몇군데 있고 성당도 한군데인가 표시되어 있었는 데 딱히 정해 놓고 온 곳이 없기 때문에 무작정 큰 길이 난 곳으로 걸었다.
언뜻 보아서는 질곡의 역사를 감추고 있는 애환의 장소라기 보다는 그저 한가로운 농촌 마을과 비슷해 보였다. 물론 환자들이 생활하는 병사지대와는 분리된 지역만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제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곳은 여러 조형물이 있는 중앙 공원과 기념물이 전시된 생활 자료관 뿐이었다.
그러나 잘 꾸며진 공원의 곳곳도 손과 발이 문드러진 채 그곳을 꾸몄을 한센병 환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편한 마음으로 감상을 하지는 못했다.
쌀 한톨도 88 번의 손이 간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보고 만지는 모든 사물의 뒤에는 항상 숨은 노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숨은 노력을 의식하지 않고 그네들의 고통을 내 가슴으로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심함도 신의 선물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또 지난 기억의 감정으로 하여 항상 똑같은 정도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도 신이 인간을 배려한 섬세한 흔적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이 세상에 살아 남을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한때나마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다 살도록 된 것을 보면 세상은 참 오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이런 각오로 흘러온 내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도데체 무엇을 어쩌자고 소록도에 온 것인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모르겠다.
죽기전에 알 수 있을까 ?
내가 이곳 소록도에 온 이유를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
내가 그녀를 만나게된 이유를 ?
그리고 이런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 이유를 ?

걷다 보니 중앙 공원도 지나고 어느덧 국립 소록도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병원은 1916 년 일제 시대에 세워졌다고 하니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병원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흰색 건물로 외관에서는 대도시의 번듯한 종합 병원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직업 의식이 있어서인지 혹은 이런 병원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어서 병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과, 외과, 피부과, 치과 등의 낯익은 진료 과목들이 보인다.
산부인과가 혹시 있나 해서 살펴 보았지만 없는 모양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곳이야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하는 곳으로 듣자니 평균 연령이 73 세라고 하여 산부인과 의사가 필요할 이유가 없기는 했다.
문득 의료진 소개를 보니 각 진료 파트의 과장들 이름과 함께 병원장 이름에 피부과 김휘동이라고 써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아닌가 싶었다.
내가 다니던 미션 스쿨인 고등학교 선배로 한 10 년 쯤 선배인 데 피부과를 전공하게 된 이유를 우스개 삼아 말해 주던 선배가 있었다.
자기가 수련을 받을 때는 피부과는 아무도 전공하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피부과 교수님 방문이 열려 있어서 누가 있나 하고 슬쩍 훔쳐 보았다가 붙잡혀서 피부과를 전공하게 되었다는 선배였다.
동명이인인가 ?
아뭏튼 이왕 온 거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다른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
"저 말씀 여쭈어 보겠습니다. 혹시 병원장님 ㄷ고등학교 나오신 분 맞으시는지 확인 좀 하고 싶은데요."
"어디서 찾아 오셨지요 ?"
"아 예. 저 고등 학교 동문 선배 아닌가 싶어서 여쭙는 겁니다. 혹시 지금 계시면 ㄷ 고등학교 나오고 ㅅ 대 의대 후배인 이혁이라고 하는 사람을 아시는 지 여쭈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이혁 씨요 ?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잠시 확인을 하는 시간이 지나고 무언가 지시가 있은 모양이었다.
"원장실로 들어 오시랍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께요."
"예 감사합니다."
아마 그 선배가 맞는 모양이었다.
내가 지금 이곳까지 죽으러 와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인연을 쌓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나가던 그 선배가 이곳 오지까지 오게 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 보고 싶기도 했다.
과연 그는 무슨 이유로 이곳을 오게 되었는지.
나는 원래 길거리를 가다가 다른 이에게 시간을 물어 보는 것 조차도 어려워 하는 데 이제 무에 더 조심하고 거리낄게 있나 하는 생각에 용감해 지는 것도 같았다.
복도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니 원장실과 그외 보건과, 위생과 등의 팻말이 보이고 원장실 앞에 다다르니 면접을 앞둔 수험생처럼 잠시 긴장이 되었다.
동문회에서 마지막 모습을 본지 한 4 년 되었는가 싶다.
그래도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연수까지 갔다 와서 몇 년 전까지 잘 나가는 대학 병원에서 스텝으로 있는 줄 알고 있던 선배였다. 내가 비교적 믿고 따르던 선배이기도 했는 데 몇 년 전부터 동문회에서 일절 모습이 보이지 않고 소식도 끊어졌었는데 이곳에 그 선배가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배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 누군가 했더니 혁이 맞구나. 왠일이냐 ? 여기까지"
"안녕하셨어요. 선배님."
선배는 얼굴이 전에 보다 많이 안되어 보였다.
무슨 사연이 있기는 있나 보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서 귀공자 타입의 선배였는데 세월의 고단함 같은 것이 얼굴에 많이 묻어 있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 소록도까지 흘러 온 것처럼  선배도 나만큼 힘든 일이 있었던 걸까 ?
나는 이 선배를 만나기 위해 소록도에 온 것은 아니였을까 ?
선배의 말로는 현재 소록도에 살고 있는 한센병 환자는 약 870명 정도라고 한다.
나이도 많아서 젊다고 해도 50 대이고 많은 사람은 90 세가 넘은 분들도 있다고 한다.
그 중에 100여명은 양성 환자 또는 치매 환자로 중앙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며 노동력이 전혀 없는 환자들은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각 예배당에서 예배를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며 주민의 96%는 기독교 신자라고 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생활을 기도로 보내는 데 의외인 것은 당신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매일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생활도 주로 예배당에서 하는데 겨울철에는 하루 10시간 씩 머물며 거의 모든 생활을 그곳에서 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소록도에는 7 개의 자치 마을과 3개의 병동이 있다고 하는 데 이 소록도도 머지않아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으로서의 역할은 끝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지역발전이라는 이름하의 관광개발이 이곳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망가뜨리려고 한단다. 그래서 앞으로 5 년 이나 길어봐야 10 년 내로 이곳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 온 김에 선배의 안내로 6 병동을 둘러 보기로 했다.
아마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은 눈치 같았다.
나로써도 그네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기도 했다.
눈썹이 없는 사람은 아주 양호한 상태이고 손과 발이 없는 사람 혹은  무릎 아래부터 아예 없는 환자도 있었다.
코와 얼굴이 짓 뭉개져서 똑바로 보고 있는 내가 무안할 지경인 분들까지 천형이라고 부르는 한센병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았다.
대부분 나이가 많아 치매까지 앓고 있는 지 복도를 지나는 내게 헛소릴 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몸이 스쳐 닿을 것처럼 가까이 지날때 마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자신이 미웠다.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이나 내게 무엇이 무서운 것일까.
어차피 잠복기가 수년 이상이므로 감염되도 그때까지 살아 남아 있지도 않을 것을.
어린 시절 동네에 사는 눈썹 없는 아저씨를 문둥이라 놀리던 기억도 왜 이리 창피스러운 지 모르겠다.
스쳐 지나는 그들의 눈이 흡사 너도 마찬가지지 하면서 째려 보는 것 같았다.
선배에게는 끝내 이곳까지 흘러 온 이유를 묻지 못했다.
그가 내게 이곳까지 여행 온 이유를 묻지 않는 것처럼.
소록도는 그렇다고 한다.
아무도 왜 이곳에 왔는지 묻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힘든 일이 이런 곳으로 인생을 끌고 왔는 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도 당신은 왜 사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다들 그렇게 지낸다고 한다.
선배께는 잠시 병원에 휴가 신청 내고 왔다고 했지만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을에 뜬금없이 휴가라니 그것도 혼자서 하는 여행이라니 누가 믿겠는가 ?
힘든 일은 서로 묻지 않아 주는 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선배도 알고 나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쏘주나 한잔 하자. 바로 올라갈 거 아니지 ?"
"예 며칠 머물게 될 것 같아요. 선배도 잘 지내시구요. 전에 저에게 해 주신 것 고마웠어요."
"전에 뭐 ?"
"몇년 전에 개업 고민 할 때 그리고 의료 사고로 힘들어 할 때 도움 말씀 주신거요."
"그러게 피부과 하라고 했는 데 왜 산부인과는 해가지고 고생이냐 임마 ."
"할 수 없지요 뭐. 다 제 팔자인 걸요."
"그래 또 연락하자. 아참 어디 묵고 있다고 ?"
"예 녹동 현대 호텔에 묵고 있는 데 며칠 안 있을 겁니다. 가기 전에 기회되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랬다 다시 연락하고 싶었다. 손발이 문들어 졌으면서도 그리고 운신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들을 보니 나도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 찰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선배를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서니 앞에 양갈래의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은 감염 환자들이 있는 병사 구역 방향이었고 오른쪽은 소록도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쪽은 고통으로 버무려진 길이었고 다른 한쪽은 즐거운 놀이의 길이었다.
한쪽은 죽은 자들의 길이었고 다른 쪽은 산자들의 길이었다.
갑자기 양쪽 길이 나타나니 잠시 혼란스러웠다.
여지껏 양갈래 길을 수도 없이 지나쳤고 대개의 경우 망설임없이 한쪽 길을 선택했다.
물론 지금까지 선택한 것은 출세의 길이었고 부의 길이었고 평안의 길이었다.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길들은 어떤 길일까 ? 이쪽 길로 가면 나중에 저쪽 길은 다시 가기 어려울 것이다.
산다는 것은 모든 순간이 선택이고 또한 포기이다.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선택에는 많든 적든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여지껏 내 앞에 있었던 어떤 길도 인생의 전부를 걸만큼 위험한 길은 아니었다.
따라서 크게 고민을 하면서 길을 선택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만큼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슴이 떨릴 정도로 두려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무서워졌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두 길은  모두 이 세상의 길 같지 않은 아주 생소한 길이었다.
살아오면서 선택한 길의 종류와는 아주 다른 선택의 길처럼 느껴졌다.
세상을 살면서 잠깐이면 끝나는 짧은 길도 있었고 하루 종일 걸려서 걸어야 했던 길도 있었고 며칠 혹은 몇달 혹은 몇 년을 걸려서 걸은 긴길도 있었다.
아스팔트처럼 평탄한 길도 있었고 소풍가는 길 같은 숲길도 있었지만 진흙과 웅덩이에 빠지면서 걸어야 했던 길도 있었다.
내리막 길이 있었는가 하면 언제 끝나나 싶게 힘든 언덕진 비탈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길은 처음이었다.
한쪽으로 가면 영영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다.
이전의 선택에서는 기회가 되면 저 길도 나중에 다시 갈 수도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한쪽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내 앞에 뜬금없이 나타난 길 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길인지 또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또 언제 끝나는 길인지도 모르겠고 평탄한 길인지 아니면 험난한 길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나 남은 길인지 몰랐다.
나는 왜 이 길들 앞에 서게 되었을까 ?
모르겠다.
점점 더 모르겠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죽는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다. 왜 죽어야 하는지 점점 더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른쪽 길로 들어 섰다. 왜냐하면 병사 지대는 통행을 제한했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아직 정리해야 할 것이 남아 있으니까.
그녀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내 마지막 편지에 그녀가 대답을 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막연한 느낌이 이곳 소록도에 들어오면서 분명하게 들었다.
그녀의 대답이 없더라도 신이 나를 이곳으로 끌고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센병 환자이면서 시인이었다는 한하운 시인의 시비 보리 피리가 있는 앞이었다.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VIII

"과장님 커피 드세요."
얼마전 분만 때 보조로 들어 왔던 신참 간호사였다.
아직 외래 접수가 시작되기 전이라 막내 해나의 일을 생각하면서 잠시 창밖을 내다 보고 있는데 커피를 가져 온 모양이었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하얀 손으로 조심해 받쳐 들고 있었다. 커피잔이 까매서 였는지 손이 유독 하얗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잠시 넋을 놓고 가느다란 하얀 손가락을 쳐다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손이라는 느낌이었다.
까만색도 어느 정도 그렇기는 했지만 하얀색에는 이상하게 내 정신을 빼앗는 마력이 있는 지 하얀색만 보면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관심있게 나를 살펴 본 사람은 옷부터 펜이나 휴대 전화기등 악세사리나 그외 내 주위 모든 것들이 하얀색 아니면 까만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봄이 시작된다는 4 월이었지만 아직 아침은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인지 마침 따스한 커피가 생각나기도 했었다. 서울에서 먹던 스타벅스의 카페라떼가 그리웠지만 그녀가 타준 커피도 맛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요. 그런데 앞으로는 내 커피 심부름은 안 해도 되요. 나는 김간호사든 누구든 과장이나 원장을 위해 그런 심부름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니까 나를 위해서는 하지 말아요."
아닌게 아니라 진즉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동등한 입장에서 전문인으로 같이 일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장이나 과장들이 회사의 상사처럼 여직원들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 무뚝뚝하게 나오고 있었지만 왠지 그녀가 타준 커피가 싫지는 않았다. 아마 따스한 커피의 피어 오르는 하얀 김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내 커피 취향을 숫가락을 꽂으면 설 정도라고 놀리지만  그녀가 타준 커피는 어떻게 알았는지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았다.
그렇게 맛있는 커피였지만 불쑥 떠오른 해나의 걱정 때문에 커피 맛을 충분히 음미하지는 못했다.
해나는 1 주일이 지나면서 다행히 상태가 약간 호전 되었지만 그제 담당 의사에게 들은 바로는 과립구 감소증의 가능성에 대하여 좀 더 검사를 해보아야겠다고 했다.
정확한 것은 경과를 좀더 지켜보고 일단 그제 한 골수 검사 결과가 나오면 좀더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과립구 감소증이라.
학생 때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까마득한 기억이라 잘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이따 외래 진료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소아과 하과장한테 물어 봐야겠다.
그 조그만 것이 겪었을 그리고 앞으로 겪을 지 모르는 고통을 생각하니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진료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밖에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서는 막 물오른 꽃 몽오리들이 맺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 4 월 중순 쯤 가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이쪽만 해도 북쪽이라 벗꽃이 늦게 만개하는 편이었다.
분홍과 흰색의 작은 몽오리들이 잔뜩 매달려 있는 모습이 징그럽기도 했지만 한편 신비스럽고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생명의 탄생은 어느 것이든 신비롭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그런 막연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산부인과 의사를 평생의 직업으로 택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나로써야 평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와 보니 타의에 의해 언제 갑자기 못하게 될지 모르는 서글픈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전공의 시험 면접 때 왜 산부인과를 하려 하느냐는 면접 담당 산부인과 교수님의 질문이 생각났다.
새 생명의 탄생에 조그만 한 역할이 되는 것이 기쁠 것 같습니다라고 그때 이야기 했던 기억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아직 외래 환자가 접수되려면 약간 여유 시간이 있어서 진료실로 연결된 나만의 휴게실로 들어가 스케치 북을 꺼내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스케치든 그림이든 무엇이든 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다.
스케치야 물감을 짜고 팔레트를 준비하고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없어서 아무때나 생각이 나면 쉽게 그릴 수 있고 또한 그림에 대한 갈증도 어느 정도는 풀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도 한가할 때는 종종 펼치기도 했었다.
물론 진료실에서야 그릴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 진료 도구나 바깥에 보이는 나뭇가지 정도로 매우 제한된 풍경 밖에 없었지만 소재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지 않고는 못 견디는 이들에게 무엇이건 그릴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 직원들의 표정과 자세등도 내 스케치의 대상이 되기는 했다.
비록 몰래 몰래 눈치를 봐가며 해야 하고 또 기억을 더듬어 하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는 했지만 사람의 모습이란 특히 얼굴의 표정이란 나뭇가지나 평범한 다른 사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화가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모델이 사람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펼쳐진 스케치 북에 그녀의 옆 모습이 그려진 것을 보니 이즈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신참의 김혜원 간호사를 그렸던 모양이다.
혹시 그녀가 눈치를 채지 않았나 모르겠다.
몰래 그려야 하는 이유는 작품을 떳떳이 내놓을 만큼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순백의 여백을 더럽히는 데 대한 속죄라는 것은 스케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려지는 당사자들이 그런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굳어진 표정으로 하여 더 이상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흡사 잘 놀던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뻣뻣한 표정이 되는 것과 흡사했다.
간간히 벗나무 그림과 병원 정원 한 가운데 있는 은행나무 그림이 있었지만 그녀가 옆방의 소아과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웃는 모습과 그리고 드라이볼이나 베타딘 볼 등을 만들기 위해 골똘히 열중하는 모습 등이 내가 그린 것이 아닌 것처럼 약간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앞 페이지로 스케치 북을 들추어 보니 그녀의 모습이 거의 반 정도나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언제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많이 그렸던가. 그녀의 모습이 담긴 스케치가 많은 것에 내 스스로 놀래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에 홀린 기분이 이런 것일까.
간호과장한테 듣기로는 23 살이라고 했던가 기억이 설핏하다.
간호 전문대 졸업하고 아마 바로 취업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옆 방의 소아과 간호사도 그랬지만 젊은 그네들에게서는 5 월의 싱그러운 상쾌함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으면서 발랄함으로 주변을 온통 적셔주기도 하니까.
내게도 저런 부러운 시절이 있었을 텐데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벌써 인생의 중간을 넘어서 버렸고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한 순간에 그런 것처럼 갑자기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만 것 같았다.
다시 가지 못하는 지나간 것들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가슴 깊은 곳에서 견디기 쉽지 않은 조금씩의 고통을 끌고 나온다.
어쩌면 그런 고통이 나로 하여금 그림에 몰입하게 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 행위들이란 어떤 종류의 것이건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 보다는 고통을 이겨내는 방편의 하나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인 예이츠가 일생을 걸고 운명처럼 사랑한 여인 모드 곤과의 사랑을 이루었다면 아마 그의 아름다운 시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그녀를 빼앗기지 않고 얻을 수 있었다면 아마 가난한 언어 같은 것은 버리고 그저 살아가는 데만 만족했을 지 모른다고 나중에 어느 글에선가 고백했었다.
그렇듯 내가 그림에 빠지는 것도 아내의 말처럼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무엇인가를 가지지 못한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화요일이라 환자가 그리 많지 않아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전에 개원 의사로 있을 때 비하여 지방의 병원에는 이런 자유로움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선배인 원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마음을 다친 이들이 쉬기에는 이런 곳이 딱이라는 생각이었다.
십여명의 환자와 서너장의 스케치는 오전 시간을 충분히 때우고 남았다.
"김 간호사 오늘 점심 메뉴가 무언가요 ?"
"동태 찌개예요 과장님. 과장님 탕 좋아 하시잖아요. 빨리 가세요. 오전 접수 마감되어서 더 오시는 분 없을 거예요."
식당의 메뉴는 사실 매주 것을 한번에 적어 놓으니까 아침에 운동 갔다 와서 보았으면 알았을 텐데 내가 요즘 딴데 정신이 가 있어서 눈여겨 보지 못했었다.
"맛있게 드세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아직 하과장은 오전 진료의 마무리가 덜 된 모양이다.
아무래도 환절기에는 감기 걸린 아이들이 많은 법이니까.
식당에는 아직 점심 시간치고는 조금 일러서인지 직원들이 많지는 않았다.
동태찌개의 냄새가 구수하게 코를 찔렀다.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자니 미상불 처량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참이었는데 윤약사가 식판을 내려 놓으면서 앉았다.
"선생님 함께 앉아도 돼죠 ?"
식당에 오면 꼭 나나 하과장이 있는 자리에 앉는 그녀였다.
하과장이야 평소 친하기도 하고 또 그녀가 내심 흠모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당연히 그래야 했지만 하과장도 없는 내 앞자리에 앉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딴에는 나를 편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로써야 청승 맞게 혼자 먹는 것보다야 당연히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 함께 앉아 준다는 것이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선생님 전에 보니까 관사에 이젤과 그림 도구 있던데 그림 그리시나봐요 ?"
"예, 전에 잠깐 그렸었는 데 손 놓은지가 오래 되어 지금은 잘 못 그립니다."
"그래도 그림이나 음악은 운동과 같아서 잠시 쉬었다고 잊어지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요 ? 제가 그림 그려 달랄까봐 미리 선수 치시는 거죠 ?"
"예 ?"
"저도 그림 하나 그려 주세요. 김혜원 간호사만 그려 주지 마시고. 아 동태찌게 맛있다. 맛있네요 그쵸 ?"
"예 ? 무슨 이야기이신지"
"이 좁은 병원에서 그런 것 모를까봐요 ? 아마 선생님 관사에 숫가락 몇 개인지 갯수까지 이미 다들 알고 있을 걸요?  왜 안드세요? 제가 불편하게 했나봐요?"
"아니예요. 괜찮습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 오르고 숨이 좀 갑갑한 듯했다.
무엇을 들킨 소년같은 기분 때문이었는 지 아니면 앞으로는 좀더 처신에 주의를 해야 겠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두분 먼저 오셨네. 아직 다 안드셨죠 ?"
소아과 하과장이었다.
마침 물어 볼 것도 있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 데 슬쩍 윤약사의 표정을 살폈다.
남의 비밀 관계를 훔쳐 보는 관음증 같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두사람의 관계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 두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사랑하는 사이인가 ?
아직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는 두사람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이 주변에 느껴진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다.
"아 먼저 막내딸은 어디 아프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어떻게 되었나요 ? 이과장"
"그렇지 않아도 여쭈어 보려고 아까 외래로 가려다가 대기 환자가 많아서 미루어 두었는데요, 그제 담당 소아과 의사 말로는 과립구 감소증이 의심된다고 하네요. 어떤 거예요? 제가 워낙 산부인과 분야 외에는 무식해서."
사실 한 분야의 전문의라는 것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무식의라는 말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의사의 가족들은 무의촌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말까지 생겨 난 것일테다.
"과립구감소증이래요 ? 그래눌로사이토페니아는 왜 먼저 많이 문제 되었던 PPA 있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항히스타민제 등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는 약들인데 미국에서는 사용 금지가 된 약들 말이예요.
그런 약들이 간혹 사이드로 그런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대개는 저절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드물게 회복이 안되어 치명적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있어요. 그런 것 같다던가요 ?"
"어머 따님이 많이 아픈가봐요 ? 어쩜 어떻게 해요."
윤약사의 심각하게 걱정하는 표정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하과장 앞이라 동정심 많은 여인처럼 보이기 위해 오버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예 조금 아프다고 하네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하 선생님 말 들으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열도 떨어지고 하여 이제 고비를 넘겼는가 싶었는데."
"아마 골수 검사 결과가 나와 보아야 할 거예요. 말초 혈액만 가지고는 불확실하니까. 아직 골수 검사 하지 않았나요 ?"
"아니 했습니다. 결과가 이삼일 내로 나온다고 하는 데 나오면 선생님께 다시 여쭈어 보겠습니다."
내일이나 모래 쯤 서울로 올라가 봐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제 병원일 외에는 관심도 없는 아내에게만 맡겨두기가 불안했다.
그러나 아무리 선배의 병원이라도 평일 진료를 빼고 가기는 눈치가 보였다. 어째야 좋을 지 모르겠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식사를 다하기도 했지만 해나의 일이 걱정이 되어 서울의 아내에게 전화라도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아이만 어머니께 맡겨두고 하루에 한번 면회만 오는 것 아닐까 싶었다.
그 조그만 것이 엄마를 많이 찾을텐데.....
참 여러가지로 힘든 세상이다.
내가 이곳 철원까지 내려온 지 아직 한달 남짓 밖에 안되어 내 앞가림도 쉽지 않은데 아이까지 아프니 엉망인 내 감정이 얌전히 추스려 지지를 않았다.
전능하신 신이 있다면 가엾은 아이를 좀 낫게 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내일은 교회나 성당에라도 가서 할 줄 모르는 기도지만 기도라도 해 보아야 겠다. 아니 절도 근처에 있으면 가보아야 겠다.

IX

한하운 시비를 지나 어느 정도 올라가니 천주교 성당이 보였고 마당에는 흰색의 성모 마리아 상이 서 있었다.
해나가 과립구 감소증으로 많이 아파하다가 결국 패혈증으로 이 세상을 뜬 것은 벗꽃이 지면서 지천으로 꽃비 되어 날리던 잔인한 4 월 말이었다.
그 무렵 평소 다니지도 않던 성당에 가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었는지 모른다.
매일 가서 하느님에게 그 아이를 구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 기도는 하늘에 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나는 어떤 일로건 더 이상 신이라는 존재에게 기대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그 정도의 간절한 기도라면 무엇이건 간에 들어 주는 것이 마땅했다.
어떤 죄를 지었던 그 정도로 갈망을 하면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지 전능의 권한을 가진 신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했다.
앙상한 얼굴이 열에 들떠 발간 얼굴을 하고 힘없이 내 손을 잡고 있던 아이의 뜨거운 손의 감촉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는 수도 없이 엄마와 아빠를 찾으면서 힘들어 했다. 그 2 ,3 주 간을 힘들어 하던 아이는 앞날을 예감하고 있었는지 갈 무렵에는 그리 보채지도 않았다.
내게서 사랑하는 아이를 그런 식으로 빼앗아 가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딱히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정말 원망이 많아서 날카로운 송곳과 같은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정없이 쏘아 대고 다녔는데 지금은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마음으로 용서를 했다.
신도 용서하기로 했다. 그도 별 수 없었으니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편이 받아 들이기가 쉬웠다.
아내든 나든 신이든 누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때는 내가 가진 눈물은 다 말라서 앞으로 더 이상은 내게는 눈물도 감정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었는데 시간이란 정말 무심한 것인지 지금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또 그대로 살아 가지고 있었다.
운명이라고 하는 것을 담담히 받아 들이는 것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다.
성당의 문을 열고 안을 보니 마침 미사 시간은 아니어서 텅 빈 의자들만 죽 늘어서 있었다.
항상 성당에 가면 그랬던 것처럼 맨 뒷줄의 오른쪽 구석 자리에 앉았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다만 내가 올 곳이 아닌 곳을 온 어색함 때문에 조용히 구석에 손님인 듯이 앉았다 오곤 했었다.
뭐라고 부르는 지 모르겠는데 앞의 연단을 쳐다 보니 수도 없이 들어 이제는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아련히 들리는 듯 했다.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 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그리고 이제 의미가 없게 되었지만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외운 기도문을 입 속으로 다시 한번 읊어 보았다.
"주님, 저를 버리지 마옵소서, 저의 주님, 이 몸을 멀리하지 마옵소서, 주님 저의 구원이시여, 저를 도와 주소서."
매일 가서 무릎이 짓물러 까질 만큼 무릎을 꿇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 본 적이 없는 내가 병원 옆의 성당을 매일 들러 간절한 기도를 했었다.
천주 교회를 돌아 나와 소록도 해수욕장 쪽으로 걸었다.
소록도 해수욕장은 주변의 해송 숲도 좋았지만 반달 모양으로 길게 펼쳐진 해안선과 가는 하얀 모래 사장이 아주  좋았다.
요양지로는 그만인 조건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해변이었다.
서해는 검게 횟빛으로 드러난 울퉁불퉁한 갯벌과 혼탁한 물로 그다지 정이 가지 않았는데 이곳 남해의 소록도 바다는 깨끗한 옥빛 색깔을 띄었다.
그러면서도 동해안처럼 조금만 들어 가도 금방 깊어지는 바다의 거만함 같은 느낌을 주지도 않았다.
철 지난 바닷가라 바다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저쪽 해안의 끝쯤 보니 여자인지 남자인지 한 사람이 바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머리가 길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는 젊은 여자인 것 같은데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어서 아마 혼자서 여행을 온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남도 쪽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이 먼 곳은 혼자 여행을 올 만한 곳은 아니어서 나처럼 괴로움의 덩어리를 어째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일지 몰랐다.
이 세상에 괴로움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 오직 나 뿐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으니까.
나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세상이 살기 팍팍한 것은 똑같을 것이다. 다만 그런 감정을 얼마나 절절히 느끼느냐 그리고 견디어 내느냐 하는 능력에 있어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어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녀에게도 나처럼 평범치 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왜 혼자 이 쓸쓸한 가을 바다를 찾았을까 ?
인생의 새 출발과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라면 정동진이나 아니면 무수히 많은 동해 바닷가를 찾았을 텐데 혼자서 이 바다를 온 것 보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고통 때문이라면 친구든 가족이든 같이 올 사람이 아무도 없이 혼자서 견디기는 너무 힘들텐데......
잠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소록도 해수욕장 모래 사장으로 내려 섰을 때에는 그 사람은 모습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흔히 바다를 찾는 사람은 무엇을 버리기 위해서 오거나 아니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온다.
한때의 휴식을 얻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희망을 얻기 위해서도 오며 아이들은 조개 껍데기라도 주으려고 오기도 한다.
또한 지난 추억을 버리기 위해서 오는 사람도 있고 견디지 못하는 괴로움을 털어 버릴 요량으로 오는 사람도 있으리라.
나처럼 자신의 모두를 던져 버리기 위해 오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간혹 있을 것이다.
아까의 그녀는 이 바다에 무엇을 가지러 또는 무엇을 버리려고 온걸까 ?
그릇을 비워야 다른 물건을 담아 둘 수가 있고 팔레트를 닦아야 새로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지만 이런 깨끗한 바다는 무엇인가를 버리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물이 너무 맑아서 버려진 추한 쓰레기를 감출 수도 없으며 그런 맑은 물을 오염시킨다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서해 바다가 적당히 더러워서 부담도 없고 또 적당히 흐려서 버린 모든 것을 감추는 데 있어서 적격일 것이다.
그 바다에는 버려 놓은 추한 쓰레기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편안함이 있다.
그러나 이곳 소록도 바다는 그런 세상의 쓰레기를 버리기에는 너무 물이 맑았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자들의 마음만큼이나.
모래가 고와서 가만히 딛는 발걸음 마다 발이 모래에 푹푹 잠긴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 와서 기분 나쁜 서걱거림이 느껴진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들고 모래를 밟아 보았다.
첫눈을 밟는 뽀드득 거림과는 조금 다른 보드라운 감촉이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중년의 사내가 신발과 양말을 양손에 들고 해안 모래 사장을 걷는 모습이라니.
마침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우습게 생각해 왔던 유치한 감정에의 휩쓸림인가.
세상의 모든 일은 인간의 자유 의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신도 믿을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산 나였다.
감정이란 의지를 방해하는 사치이며 인간사의 발전에 있어서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쓰잘 데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신념이 어느 날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이 이 바닷가에 신발을 들고 헤매이는 내 모습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일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이우는 것을 보니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날은 짧아진다. 소록도를 한 바퀴 돌아 해수욕장까지 얼마가 걸렸는지 또 얼마쯤의 시간을 거기서 보냈는지 시간 감각이 분명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정신이 들었을 때는 해가 잘 익은 감처럼 주황색으로 물들면서 서편으로 서서히 내려 가고 있을 때였다.
아직 저녁이 오려면 시간이 더 있어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일반인들은 숙박을 할 수 없고 오후 5 시까지 나가야 한다고 선착장에서 알려 준 것이 생각이 났다.
때문에 감상을 털듯 천천히 발의 모래를 털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소록도에서의 이틀째 날도 이제 삼분의 일쯤 밖에 남지 않았다.

X

"과장님 이 서류 다 입력했는데요. 여기에 그냥 둘까요 ?"
그 신참 간호사가 앞에 서 있었다.
"그래요. 수고 했어요. 잠시 교정 볼께 있는 지 확인해 보고 다시 지시해 줄께요."
대답해 주고 인쇄된 업무 메뉴얼을 살펴 보았다.
신참 간호사에게 업무를 빨리 익히도록 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업무 매뉴얼을 읽어 보고 작성해 보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전에 종합병원에서의 경험에서 알고 있었다.
기계의 이름이며 장비의 사용법 등 의료 영역에 있어서 복잡한 일은 그저 읽고 쓰고 외우고 하는 방법외에 왕도가 없다는 것은 의과대학 때부터 뼈에 사무치도록 절절히 깨닫고 있는 사실이었다.
해골 하나에만도 300개의 구멍과 그만한 갯수의 이름을 외워야 한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나도 무슨 의미인지 외우고 또 외웠지만 지금은 다 잊어 버리고 오비탈 캐버티(안와) 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그나마도 산부인과를 전공한 나로써야 써 먹을 데도 없는 말이었지만.
기존의 과장과 간호과에서 만들어 놓은 매뉴얼과 나만의 고유한 내용을 추가해서 컴퓨터 파일로 입력하도록 부탁했었다.
그 초보 간호사가 입력 업무를 맡게 된 데에는 초보 간호사에게 입력을 하도록 부탁하면서 업무를 숙달시킬 목적도 있었지만 그런 파일 정리는 나로써는 언제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반드시 거치는 필요한 작업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나는 정리에서 시작해서 정리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철저히 정리를 강조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리고 그 업무를 김혜원 간호사가 자원했었다.
나는 종합 병원에 근무하는 동안이나 개업하고 있는 동안에도 딱히 누가 해야만 할 것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일을 시킬 때는 우선 자원하는 사람이 있는 지 알아 보고 없으면 누구에게 일을 맡겨야 공평한가 고민하면서 일을 맡겨 오고 있었다.
대체로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김혜원 간호사가 그 업무를 기꺼이 자원해서 고민할 필요없이 일을 맡겼었다.
물론 타자가 서툴러서 오자도 많고 또 아직 산부인과 업무에는 낯설어서 용어도 틀리게 입력한 것이 많았지만 그거야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이고 어떻든 일을 기꺼이 맡아 하는 자세는 귀여운 일이었다.
"이 디스켓에 자료들이 섞여서 들어 있는 데 혹시 괜찮으면 분류 좀 해 줄래요?"
그 자료들은 전에 근무하던 종합 병원에서 업무 분장이나 병명 코드 등 여러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세팅 하면서 입력했던 자료 들인데 파일이 아주 많이 있어서 뒤죽 박죽으로 섞여 있는 데다가 오래 되어 어떤 파일이 무슨 내용인지 나도 잊어 버리고 있는 것이 많아 언제고 한번 정리해야지 했던 자료였다.
"괜찮아요. 과장님. 시간만 너무 촉박하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다 정리해서 가져다 드릴께요. 이리 주세요."
일을 너무 몰아서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워하면 다른 사람에게 시킬 작정이었지만 김혜원 간호사는 오히려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그럼 부탁해요. 그럼 나가서 일해요. 열심히 해요."
간호사를 돌려 보내면서 내가 너무 편중해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꺼이 대답해 주어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일을 맡을 사람이 필요해서 그 간호사를 찾은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필요해서 일을 일부러 만든 것인지 순간적으로 양심 깊은 곳에서 울리는 혼란과 가책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런 마음보다는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과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 등등.
물론 군인들의 관점으로는 모든 사람은 군인 아니면 민간인이라고 하던가 ?
그렇게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싫어 하는 사람 둘로 나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도 좋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다.
이렇게 호불호에 바탕을 둔 분할법은 매우 좋지 않은 종류의 분할법이지만 내게는 이런 분할법이 많은 일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했다.
호감에 바탕을 둔 이런 정서적 분할법이 좋지 않은 이유는 사랑은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지만 호감은 상대가 나를 호감 있어 하지 않으면 나도 호감을 갖기는 좀처럼 어렵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상대의 감정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호감을 갖는다면 더 이상 호감이 아니라 그것은 사랑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하튼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기꺼이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에게 자꾸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때 휴대 전화의 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계속 그런 기분 나쁘지 몽롱한 백일몽 같은 상태에 좀 더 잠겨 있었을 것이다.
급히 서울로 올라 왔으면 좋겠다는 담당 주치의의 전화였다.
보름 동안 염증이 조절이 되는 듯 싶다가도 다시 감염 사인이 보이는 등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의 애를 한참을 끓이더니 이번에는 느낌이 좋지를 않았다.
정신없이 서울의 O 병원으로 올라가니 해나는 소아 중환자실로 옮겨져 있었다.
비닐 장막으로 둘러 쳐진 안에서 해나 엄마와 해나 할머니가 푸른색 환자 가운을 입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해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40 도를 오르 내리던 열이 해열제를 써서 일시적으로 가라 앉기는 했지만 혈액 배양 검사에 메치실린 내성 포도상 구균이 검출되었기 때문에 의료진들은 상당히 난감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이 균에 대하여는 환자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아직까지는 뚜렷한 소멸 효과 반응을 보이는 항생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골수 검사에 과립구 감소증으로 최종 진단이 붙었다고 하는데 저항력이 떨어져서 우려하던 패혈증으로 진행되었단다.
말만 들어도 끔찍한 패혈증으로.
그렇지 않아도 마른 아이가 심전도와 산소 분압 측정기 등 이것 저것 온갖 기구들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든든한 마음이 들기에 앞서 인간의 나약함에 처연해 지는 기분이다.
의사인 아빠와 엄마를 둔 아이도 결국은 병마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빠른 맥박과 불안정한 혈압 등 첨단의 장비들이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은 아이가 지금 굉장히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평소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공부도 운동이던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를 보면 그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여 친구는 무슨 책을 보고 공부하는 지 물어 볼 정도였다.
기특하기 보다는 어떨 때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여 무섭기도 했다.
피아노 학원에 태권도 학원에 영어 학원에 초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했다.
주말에 가끔 올라가 아빠가 좋아하는 서점에 데리고 가면 동화책이나 문제 풀이책등을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책값으로만도 솔찮이 들고는 했다.
그러나 또한 놀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이기도 했다.
바쁜 엄마와 무심한 아빠 때문에 그 좋아하는 놀이 공원에 제대로 마음 편히 데려가 본 적이 없는 것이 마음에 집혔다.
작년엔가 한번 야간 개장 때 에버랜드엔가 잠깐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러나 아직 키가 작아 탈 수 없는 놀이 기구가 많았다. 기껏해야 그 아이가 탈 수 있는 것들이 붐붐카나 풍선 여행 혹은 회전 목마 같은 것들 뿐이었는데 아이의 성에 차지 않는 것 들뿐이었다.
청룡열차나 그외 신나는 놀이기구들은 모두 120 cm 의 키 제한에 걸려 탈 수가 없었다.
내년에 키가 크면 꼭 다시 데려와 달라고 새끼 손가락 걸면서 약속을 했었는데 다시 가 볼 수 있을 지 기약을 할 수가 없다.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일기장에 적어 놓고 잊어 버리지 않으려고 그 날의 페이지를 접어 놓기까지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 겨울에 가고 싶다는 눈썰매장이라도 한번 같이 가 볼 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쉽게 갈 수 있는 곳들을 온갖 핑계로 가지 않았었다.
해나 엄마는 해나 엄마대로 바쁘고 나는 개원한 입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놀러 가는 것이 왠지 담당하는 산모들께 무책임한 것 같아서 차일 피일 미루었었다.
이제 아이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순간에 다다르고 보니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평생 회한으로 부터 벗어나 편히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해나는 반드시 회복이 될 것이다.
얼마의 비용이 들고 어떤 치료가 필요하더라도 반드시 완쾌시킬 것이다.
엄마 아빠가 의사인데.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다시 가보고 싶다던 놀이공원에 가서 자유 이용권이라도 끊어서 하루 종일 발이 짓무르도록 다녀야 겠다.
그러니까 제발 해나야 일어나 다오.  
나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모아져 기도를 하고 있었나 보다.
눈을 떠 보니 아내와 어머니는 잠시 집에 다니러 갔는지 주위에는 역시 아픈 아이들의 모습만이 눈에 띄였다.
그런데 출입구 쪽을 보니 어떻게 알고 왔는지 커다란 곰 인형을 든 윤약사가 입구 스테이션에서 간호사와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나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점심 식사 시간에 소아과 하과장님과 이야기하면서 이야기 한 것 같기는 한데 여기까지 문병을 와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심각한 중환자실에 태디 베어 곰 인형을 가슴에 잔뜩 끌어 안고 미안한 건지 슬픈 건지 애매한 표정을 짓는 윤약사의 모습을 보니 중환자실에 어울릴만한 물건이 딱히 무엇이라고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태디 베어 인형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태디 베어 인형은 인형 같은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해나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인형 중 하나였다.
윤약사가 어떻게 알았을까 싶지만 아마 병원에서 아무 생각없이 지나는 듯이 한 말 중에 해나 이야기를 하다 섞여 들어갔을지 모르겠다.
해나가 깨어 있었다면 아주 기뻐 했을 텐데 지금 해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선생님, 해나가 이렇게 많이 아파서 어떻게 해요 ?"
"윤약사님,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
"담당 선생님께서는 뭐라셔요 ?"
"두고 보아야 하는 데 오늘 내일이 고비라는군요. 이쪽으로 잠시 앉으세요."
자리를 비켜 일어서면서 그녀의 몸과 살짝 스쳤다.
또 그녀에게서 어디선가 맡았던 기억이 나는 자몽 향기가 풍겼다.
중환자실의 알콜 소독약 냄새에 섞여 먼 딴 나라의 느낌을 언뜻 불러 일으켰지만 순간이었다.
"좋아질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해나 다 나으면 꼭 철원에 한번 데리고 내려 오세요. 제가 한탄강이랑 멋진 곳으로 안내해 드릴께요. 그 쪽에 래프팅이 아주 일품이거든요. 해나야 빨리 일어나서 이모랑 놀러가자."
마음 놓고 놀아 주지 못한 괴로움을 아는 지 그녀는 해나에게 진짜 이모처럼 그렇게 놀이를 약속하고 있었다.
그녀의 옆모습을 보니 아닌게 아니라 해나와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오뚝 선 콧날과 쌍꺼풀이 없는 눈 하며.
그녀가 이쪽을 돌아 보면서 눈을 마주칠때까지 아마 멍하니 꽤 그러고 있었나 보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
"아니요 그게 아니고.....일부러 오셨는데.... 식사 안하셨으면 조금 이따 아내가 오는 대로 식사라도 함께 하러 가실래요 ?"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식사라니 아파서 혼수 상태에 빠진 아이를 앞에 두고 식사라니 내가 제 정신인가 싶었다.
아마 무안한 마음에 생각지도 않는 식사 이야기를 꺼내었을 것이다. 나로써도 본심인지 무안한 상황을 넘기려는 얄팍한 수작인지 구분이 안되었다.
"저는 여기서 해나랑 좀더 있고 싶은데 "
마침 그때 아내가 다시 들어 오고 있어서 윤약사와 인사를 시키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의례적인 인사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눈빛은 비둘기를 쏘아 보는 매의 눈빛과 비슷했다.
내 느낌으로는 분명 좋은 눈빛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아마 아내의 판단이 맞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약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으니까.
물론 본인 말로야 이 병원에 자기 친구 약사들도 많아서 친구들도 볼겸 왔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모든 역사의 시작은 이렇듯 무엇이던 간에 얼마간의 파격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소설가 베르나르의 말처럼 대양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넘치는 것이던 돌맹이 하나 던져져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던 모든 역사의 시작은 그런 모습을 띈다는 것을 역사가들은 알 것이다.
윤약사와 밖으로 나오니 날이 이슥해져서 저녁 시간을 다투는 차량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마땅히 아는 집이 없기도 하고 또 윤약사의 취향을 몰라서 병원 정문 앞에서 숙맥인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나는 이럴때 자신감 있게 이렇게 합시다 또는 저것은 어때요 하는 터프한 모습을 도저히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항상 소심했고 마지못해 끌려 갔으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부터 걱정했다.
"우리 감자탕 먹으러 가요. 제가 잘 하는 집 아는 데 한군데 있거든요."
우리라는 말이나 감자탕이라는 말이 잊고 있던 먼 기억처럼 아주 생소한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어슴푸레한 저녁이라는 느낌이 주는 포근함 때문이거나 아니면 종일 아이 옆에서 있으면서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데서 오는 이완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자탕 집은 그리 멀지는 않았다.
주차장에 세워 놓았던 차를 타고 한 10 분 정도 가니 그러 그러한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는 곳이 나타났다.
꽤 유명한 집인지 감자탕 집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감자탕에 감자는 비싸서인지 거의 없고 얼마나 고았는지 흐물흐물해진 돼지 등뼈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국물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건더기는 모조리 내 앞으로 건져다 놓았다.
"왜 감자탕 좋아하지 않으세요 ? 국물만 드세요 ?"
의아함에 그녀의 눈을 쳐다 보았지만 그녀는 별 대답을 하지 않고 작은 입을 오물 거리고 있었다.
뭐 건더기를 먹지 않아 씹을 것도 없을 것 같았지만.
"해나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좋아질 거예요. 저도 기도 많이 했거든요."
해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병원을 나오면서 감자탕을 시켜서 끓이고 음식을 먹는 동안 전혀 아이의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 자신 해나의 일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의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해나랑 닯은 점이 하나 또 있었다.
해나도 입이 조그만 했었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올라 오셨어요 ? 안 오셔도 되는데. 댁에 가시려면 한참 또 내려가야 할텐데."
"오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입에 달고 다니는 해나가 얼마나 귀여운 아이일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와서 선생님도 위로해 드리고 싶었구요."
거기서 왜 저를 위로하고 싶으세요 라고 묻지는 않았다.
흡사 길거리에서 돈을 주웠는 데 누구 주인 없어요 하고 물어 보지 못하고 내것인양 슬쩍 집어 넣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할까. 과분하고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여하튼 내 사랑하는 아이와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가슴에 와서 닿았다.

"해나 보았으니까 됐어요. 저 그만 내려갈께요. 선생님도 들어가세요."
그녀는 사실 감자탕을 거의 먹지는 않았다. 정말 감자탕을 좋아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마 힘든 중환자실에서 잠시 나를 꺼내주려고 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의 내 얼굴을 본다면 넋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해 보였을 것이다.
오전부터 정신없이 올라와 점심도 먹지 않고 해나의 옆을 지켰던 나도 반 환자는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내 모습 때문에 별 생각도 없는 저녁을 먹으러 따라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추측을 해 보았다.
그런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이라서 그랬을까 사양하는 그녀를 굳이 터미날까지 바래다 주었다.
철원가는 시외 버스를 오르는 그녀의 돌아 선 모습을 보는 것에 왠지 서글픈 마음이 약간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던 아니던 언제나 이별은 조금씩의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스산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아스팔트 위에 나를 그리고 해나를 위해 올라왔던 그녀를 혼자서 내려 보내는 마음이 담담하지만은 않았다.
그녀를 바래다 주고 돌아 서는 길에 검은 물체가 차 앞으로 뛰어들어 급정거를 했다.
이쪽을 빤히 쳐다 보면서 가는 반짝이는 눈을 보니 도둑 고양이었다.
발만 하얀 색이고 몸통 전체는 다 까만색이라 흔히 턱시도 고양이라고 부르는 고양이었다.
요즘은 고양이가 부쩍 거리에 많아진 느낌이다.
개만 해도 자생력이 없어 굶어 죽기도 하고 키우다 내 버리는 경우가 없어서인지 버려진 개들은 많이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과거부터 내려오던 불길한 동물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점점 마릿수가 늘어서 관사 주변에도 보면 항상 쓰레기통 주위를 얼씬 거리는 고양이를 꼭 한두마리는 보곤했다.
다시 차를 달려 병원으로 들어가면서 그녀를 처음 만난날을 생각했다. 회식 자리에서 마취과장과 소아과 하과장 사이에 앉아 있었던가 ?
유난히 스킨쉽을 좋아하는 여자 같았다.
쾌할하게 웃으면서 옆에 앉은 소아과 하과장이나 마취 과장의 어깨나 팔을 자주 잡으면서 친밀한 듯이 보였던 기억이다.
정말 친한 사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워낙이 적극적인 성격의 여자가 틀림없었다.
만난지 한달 남짓 밖에 되지 않는 잘 알지도 못하는 병원 과장의 딸의 문병까지 올 만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것도 일부러 혼자 시간을 내서 말이다. 흔히 그런 경우에는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껴서 같이 다니는 법이다.
그렇다면 산부인과의 김혜원 간호사랑 올 법한데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얼지 궁금했다.
어쨋거나 내가 깊이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것 같고 병원에도 도착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은 거기서 그만 두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사람들이 웅성 웅성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열이 많이 나던 귀여운 꼬맹이 있잖아 ? 조금전에 심장 마비가 왔다나봐. 지금 인공 호흡 중이라 보호자들은 다 내보내든데 않됐어."
"그러게 애가 바짝 말라서 아마 가망이 없을거야. 아이는 참 귀엽던데. 우리 아이는 그래도 한 고비는 넘겼다니 다행이지 뭐야."
예감이 좋지 않아서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해나가 있는 침대 옆에 사람들이 웅성 거리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해나의 엄마는 눈물 범벅에 해나의 머리 맡에서 해나를 계속 불러 대고 있었다.
아니 심장 마비라니. 불과 한 두시간 전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심장 마비라니.
"여보 당신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인간이예요 ? 해나가 해나가 ....."
정신이 아득했다.
술이 취하지도 않았는데 심하게 취한 것 같은 느낌으로 땅바닥이 빙도는 느낌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는가 ?
어차피 과립구 감소증이라고 할 때부터 예감이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의사로 살아 오면서 죽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하여 놀라울 것은 없었다. 내 아이 그리고 심지어 나도 어느 순간에 하찮은 일로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내 사랑하는 귀여운 막내딸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내가 함께 있어 주지 못했다.
출산때 함께 한 기쁨보다 몇배는 더 큰 고통이 거대한 해일처럼 내 가슴과 영혼을 헤집고 쓸고 가버린다.
휴대폰의 밧데리가 얼마 안남아 깜빡깜빡하던 것은 구실이 될 수 없었다. 항상 그아이 곁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아이의 영혼이 아빠가 곁에 없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 순간에 그곳을 떠나야 했을까.
신이란 참으로 잔인한 자이다.
그만큼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소중한 보물을 뺏어가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뺏어 가는 방식도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겠다.
그냥 길바닥에 구르는 돌맹이를 믿고 기도를 할망정, 뒷산에 핀 이름모르는 잡초 앞에 엎드려 기도할 망정 나는 신을 향해 기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있어 신은 죽은 존재이거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가련한 존재일 뿐이다.
며칠씩 굶어 흙이라도 주워 먹는 배고픈 아이를 위해 빵 한 쪼가리 구해 오지 못하는 무능력한 아버지보다 더 무능력했다.
그녀를 만나고 있는 동안 아이가 죽었다.
감자탕의 달콤한 향미를 씹는 동안 내 아이가 죽었다.
그녀를 바래다 주면서 자몽 냄새를 몰래 훔쳐 맡는 동안 내 사랑하는 해나가 죽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자 즐거움도 죽었다.
의사들은 내가 그동안도 많이 보아와 잘 아는 무의미한 소생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아이는 가망이 없었다. 그저 약의 힘으로 굴러 가는 몸뚱아리에 불과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이면 분명히 전달되어 오는 영혼의 따스함을 더 이상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이미 떠난 상태였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 정말 미안하다는 말 외에 아무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신이 무책임한 만큼 똑같이 무책임한 아빠가 나였다.
언제쯤 끝내야 좋을 지 눈치를 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젊은 담당 의사에게 중지하라고 말을 했다.
보호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한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생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한시간 가까이 무의미한 반복 작업을 한다고 해서 돌아올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가 물건처럼 거친 손에 맡겨지는 것이 더 이상은 싫었다.
"됐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이미 끝난 일입니다. 그만 중지해 주십시요."
배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말했지만 바보 같이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강인한 남자처럼 태연하고 멋있게 말해야 하는데.

XI

"그만 하시겠어요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래방 주인 아주머니가 시간을 연장하겠는지 물어 본다.
"예 제가 있고 싶을때까지 있다가 나갈 때 계산할께요. 계속 연장으로 해 놓아 주세요."
소록도에서 녹동항으로 나온 것은 기억이 나는 데 내가 언제 이 노래방에 들어 왔는지 모르겠다.
먼 옛일인 것 같은 어제 밤에 PC방을 갈 때처럼 무의식이 또 나를 이리 끌어 온 것인가 ?
나를 이리 데려온 어떤 힘이 있다면 그녀가 불렀던 노래들을 모두 다시 들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귀에 가득 가득 담아 가야 한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 들었던 그녀의 노래 '너를 기다려'를 입력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나요
정말 정말 미안해요
내눈에 비친 그대 모습도
더는 거짓일순 없겠죠
Say good-bye
나 하나도 해준게 없는데
내 사랑이 날 떠나가네요
또 이렇게 멀어져 가네요
수 많았던 그 추억까지도
모두 버려두고 가네요

Say good-bye
나 하나도 해준게 없는데
내 마지막 사랑일거라고
나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나 이제는 너 그리워하며
너의 뒷모습만 보네요
워우워~ 워우워~ 사랑했어요
Say good-bye
내 사랑이 날 떠나가네요
또 이렇게 멀어져 가네요
수 많았던 그 추억까지도
모두 버려두고 가네요
언제까지 너를 기다려

아마 수도 없이 들어서 이제는 귀에 못이 박혔을 것 같은데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들은 그녀의 노래는 들을 때 마다 가슴 밑바닥의 감정을 일렁이게 했다. 그리움인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움 같기도 하고 괴로움 같기도 한데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저 커피잔에 부은 프림액의 문양처럼 매양 알 수 없고 복잡한 감정들을 불러 오고는 했다.
그래서 항상 첫 경험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들을 하는데 정말 여자들은 첫 사랑이 되기 보다는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 보기에는 틀린 것이지만.
노래방에서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어지러운 추억들보다는 그저 차분한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그녀에게 한번도 불러주지 못했던 노래도 불러 주고 싶다.
생각해 보면 볼수록 노래를 못한다고 빼면서 그녀의 노래만 들었던 것처럼 바보스러운 일이 없었다.
그녀가 내게 바랐던 것은 잘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는 것을 너무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녀는 자기를 위해 내가 해 주는 노래가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를 위해 나는 고작 노래 같지도 않는 노래를 반주도 없이 해준 기억 밖에는 없다.
노래를 잘 못 부르니까 그렇게 웃음으로라도 때울려는 얕은 수작이었다. 물론 그녀는 고맙게도 아주 우스워해 주었지만 그게 나를 배려한 거짓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아니 어쩌면 진짜로 우스웠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이든 중년의 아저씨가 동요를 부르는 모습이라니.
지금도 그 노래가 생각이 난다.
"아동우 아동우 모반 아동우.
모친우 모반우 모방 모친우."
아마 무슨 노래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어릴때 얼룩 송아지라는 노래를 아이들이 한자어로 우습게 바꾸어 불렀던 노래다.
유치원 꼬마가 천둥산 박달재를 부르는 것 만큼이나 우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때 그녀가 웃어 주었을 때는 굉장히 우스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나도 우습지를 않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말에 있어서든 표정에 있어서든 거짓말을 잘 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우스웠던 게 맞을 것도 같다.
자기 자신은 연기를 잘 한다고 착각하고는 했지만 그녀의 마음이 힘들때는 어김없이 나는 쉽게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예민해서라기 보다 감정을 숨기고 사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법이고 그녀나 나나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유부녀인 것을 속이고 노처녀 행세를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연기를 잘 해서라기 보다 그녀가 굳이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 보일 필요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은 내가 바라마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그래 주지는 못했다. 때때로 무엇인가 때문에 힘들어 했고 그런 그녀의 감정의 조그만 흔들거림도 나에게는 증폭되어 감당하기 어려운 파도로 휘몰아쳐 오곤 했다.
그리고 반대로 나의 그런 흔들림이 또 그녀로써는 힘들어 했던 것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런 것 때문이라면 피차 일반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나 나나 감정의 휘둘림에 쉽게 지고 마는 아주 약한 감성의 소유자들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내게 묻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무어냐고. 그리고 어떤 것을 제일 싫어하느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 난다. 그래야 싫은 것은 피하고 좋은 것 많이 많이 해줄 것 아니냐고.
아마도 5 월 말쯤인가 6 월 초인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그녀와 내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일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해 준 대답은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로써는 아주 놀란 표정이었다.
그것은 보통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죽음이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삶이라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모든 고통의 완전한 종결이며 삶은 모든 고통의 시작이기 때문이라고 제법 엄숙한 얼굴로 폼을 잡았던 기억이다.
그러나 당신을 만나고 나서 삶도 좋아졌다고 살짝 뒷마무리를 지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또 삐져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 그녀의 감정을 풀어 대느라고 한동안 고생을 할 게 뻔 했으니까.
여전히 노래들이 흘러 나오지만 그녀가 불렀던 노래들이 아니다.
그녀가 좋아했고 불렀던 모든 노래들을 다 듣고 싶은 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정말 생각해서 다시 들어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어릴 때 헤어진 엄마의 얼굴이 흐릿해서 생각이 나지 않는 아이처럼 도통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입에서 뱅뱅 도는 데 나오지 않는 말처럼, 눈앞에 어른 거리는 데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 얼굴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녀의 얼굴조차 생각이 나게 되지 않는 때가 올까 ?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내 망막을 들여다 본다면 그녀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짙게 얼룩이 져 있을테니까.
어느 결엔가 깜빡 졸았는지 아주머니가 깨울 때는 아침 나절이었다.
날짜도 거의 잊어 버렸지만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어 보니 10 월 7 일이라고 써 있었다.
소록도에서의 3 일째 날은 그렇게 밝아 오고 있었다.

XII

나는 이제 신을 완전히 믿지 않지만--전에도 안 믿었는데 해나 일로 완전히 안 믿기로 했으니까--창세기를 보면 창조주는 3 일째 날에 풀과 나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중에 3 일째처럼 12 개월 중에 5 월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눈이 즐거운 계절이었다.
벗꽃은 다 지고 말았지만 은행 나무는 왕성한 가지로 손바닥 같은 이파리들을 화려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관사를 나와 진료실 쪽으로 갈 때면 항상 오래된 그 은행나무 앞을 지나야 했다.
은행나무는 가을이 제철이기는 했지만 우람하게 서있으면서 울창한 잎을 달고 있는 모습은 든든한 후원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해나도 가고 없는 요즘에는 이 은행나무를 자주 쳐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스케치의 소재가 될 기회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이건 간에 고통은 항상 흔적을 남겨 놓게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얼굴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세월의 더깨를 잔뜩 바르고 나타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잔잔한 체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나타나는 누님 같은 그런 모습처럼.
어린 시절 큰 바위 얼굴을 본 받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찌들기 보다는 비우고 편안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꼬챙이 같았던 감정이 요즘은 많이 누그러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에는 이제 아내와 더 이상 아웅다웅 할 일이 없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해나가 둘을 연결해주는 끈이자 족쇄였다면 이제는 족쇄가 풀어진 데서 오는 편안함으로 서로를 간섭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은행나무던 다른 것이던 그림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녀 때문일 것이다.
모든 웅덩이들은 항상 채워주기를 갈망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빈 채로 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생긴 쉽게 채우기 어려운 큰 웅덩이가 있었다. 삶의 허전함이라고 해도 좋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그 웅덩이 주변을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저도 그림 하나 그려 주세요. 제 초상이요."
윤약사가 약 조제를 핑계 대고 진료실로 들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약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산부인과 외래에서 쓰는 약이라고  해봐야 뻔 한 것이라서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것은 서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병원에서 잘못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얼마나 뒷감당이 힘든지는 하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항상 약봉지를 가지고 와서는 물어 볼 것이 있는 것처럼 찾아 오고는 했다. 물론 이야기의 내용이야 하루의 일상에 관한 그다지 중요할 것 없는 이야기인 수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어느날부터인가 요구 비슷한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거나 사랑하게 되거나 집착하게 될 때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적 현상이 있다.
그것은 서술형의 문장이 어느날 부탁이거나 명령형의 문장으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즉 있는 사실만을 감정의 색채 없이 그저 표현하는 것에서 감정이 실린 문장으로 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당신이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어." 라든가 혹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라든가.
앞의 문장은 아내가 나랑 사귈 때 귀 따갑도록 내게 했던 말이고 뒤에 것은 누군가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했을지 모르는 말이다.
어쨋든 서로가 서로에게 모종의 명령과 구속을 요구한다는 것은 호감이던 증오던 또는 감정의 백미라 할만한 사랑의 감정이던 그런 경우에 한결같이 통용되는 법칙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게 명령에 가까운 그런 부탁을 했다.
"저도 그림 하나 그려 주세요."
그 말을 명령처럼 느낀 것은 그녀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눈빛 때문이었다. 말에서 느껴지는 부탁이 아니라 눈빛에 감추어진 그 이상의 무언가 강렬한 호소가 숨어 있었다. 어쩌면 짙고 깊은 그녀의 눈빛 때문에 나 혼자  착각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람 간의 의사 소통 방법으로 언어는 매우 수준 낮은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평소의 내 신조로 보아 그녀가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아직 그것이 무언지는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부탁은 눈빛 때문이던 아니던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의 몸부림이 의미없는 것과 같이 발버둥칠수록 그저 중심으로 끌려 들어갈 뿐이다. 점점 헤어나올 수 없게.
"예.....그러세요. 사진 한장 갖다 주세요. 그려드릴께요."
"아니요. 사진 말구요. 직접 실물 보고 그려 주세요. 그래 주기를 바래요."
그래 주기를 바래요 ? 완전한 명령이다가 부탁이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당돌하게 변한 동기가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저번 달에 해나의 일로 문병 와주고 한 것 밖에는 따로 기억나는 둘 만의 일은 있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그때의 일이라면 그녀는 두고 두고 내 평생의 회한으로 쌓일 일을 만든데 있어서 빌미를 준 사람이기도 했지 않은가.
물론 그녀에게는 상처를 주기 싫어 그 사실을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실물을 보고 그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하실 텐데요. 저야 상관없지만.
먼저도 이야기 하셨지만 제 집에 숫가락 갯수까지도 훤할 만큼 감추기 어려운 곳이 이곳이라면서요?"
"누가 여기서 그려 주시랬나요  ? 제가 다른 사람들 잘 모르는 좋은 장소 안내 해 드릴 테니까 선생님은 대신 제 초상 하나 그려 주세요. 초상 하나 꼭 갖고 싶어서 그래요. 대신 이쁘지 않더라도 이쁘게 그려주세요."
그녀로써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쁘지 않은 얼굴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언제 시간 되실때 말씀해 주세요."
응낙을 하고 말았지만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림이라는 것이 자판기에 돈만 넣으면 뽑아 낼 수 있는 커피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작든 크든 또는 어떤 재료를 가지고 하던 한 인간의 열정이 들어가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것이 예술 작품이라는 것이고 그림도 예외가 아니었다.
단 한줄짜리 시라고 백장의 소설보다 적은 고민으로 나온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그런 착각들을 하고는 했다.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리거나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들을 했다.
그런 사람은 예술이라는 것의 근처를 슬쩍도 훔쳐 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예술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것은 살을 떼어내고 피를 나누어 주는  창조자의 고통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은 피로 버무린 화가의 고통에 다름이 아니며 시는 시인이 남긴 혈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요구하는 것에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장님 접수된 환자 있는 데 부를까요 ?"
아마 내가 윤약사와 이야기하는 동안 한참이 흘러 기다리던 김혜원 간호사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일깨워 주었다.
요즘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적이 많아서 김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인지 그러면 안된다는 호소인지 애매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다가 황황히 눈을 돌렸다.
"윤약사님 그 약 문제는 제가 좀더 알아 보고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선생님. 저 갈께요. 이따 꼭 알려주세요. 수고하세요. 혜원씨."
그녀는 김간호사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갔지만 김간호사는 가벼운 목례만 하고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게 물었다.
"과장님 약 문제 있으면 제게 말씀하세요. 약사님이 자꾸 번거롭게 하셔서 불편하실 것 같은데 제가 약국 가서 알아 올께요.....커피 한잔 타드릴까요 ?"
"아니 괜찮아요."
그러나 사실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내게 그림을 부탁하는 그녀가 나를 혼란케 했다. 처음에 비밀 수첩으로 나를 혼란케 하던 그녀가 이제 그녀의 존재 자체로 나를 혼란케 하려 한다.
이즈음 나는 하과장을 따라 골프 연습을 다니기 시작했다. 해나일과 아내의 일로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는 운동만한 게 없기도 했지만 이곳 관사에 같이 있는 과장들이 아침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실내 골프장을 다니는 모양이라 합류하기로 했다.
사실 관사에 같이 산다고 해도 각자의 생활들이 있기 때문에 함께 얼굴을 볼 기회는 아침 운동 때나 점심 시간이 아니면 보기 어려웠으므로 이렇게 해서라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새벽 공기를 가르면서 날아가는 작은 공을 보는 것도 상쾌한 기분일 듯 싶었다.
물론 나야 벌써 며칠째 스윙 연습만 하고 있어서 갑갑증으로 몸이 근질거리는 상태였지만.
"이 과장. 간호과장 이야기 알죠 ? 이미 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니까."
그날 회식 때 선배 병원장 옆에 앉았던 그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던 간호과장을 말하는 모양이다.
"아니오. 잘 모르는 데요 ?"
"왜 정원장의 세컨드라고 소문이 나있는 그 사람말이야."
"예 그런 이야기는 저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사실인가 보죠 ? 저도 사실 선배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물어 보는 것이 도리가 아닐 것 같아 그냥 모르는 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 다른 것이 있나요 ?"
"이번에 아마 부인하고 완전히 갈라설 모양이예요. 이미 법적 수속을 밟고 있다지 아마."
"아 예 그렇군요."
뭐 나로써야 별 할말이 없었다. 나이에 비해 젊고 상당한 미모라는 외에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까. 사람이던 사물이던 관심이 없는 대상은 내게 있어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 간호과장도 특별히 나와 부딪힐 일도 없고 하여 오다가다 가볍게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그냥 병원 현관에 국화 화분이 놓여 있는 것처럼 거기 그렇게 있는 어떤 사람일 뿐이었다.
보이는 표정으로야 간호과장이나 선배나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아마 그녀에게도 선배에게도 아마 쉽지 않은 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기존의 각자의 가족들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 제도라는 이름으로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것들이 그들을 죄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삶의 뒤엉킴이란 참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선배에게도 묻지는 않았지만 산다는 것 그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 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즐거움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나 그 정도 나이의 남자가 쌓아온 사회라는 틀이 주는 보이지 않는 구속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따스하기 보다는 따가운 시선이고 반가운 관심이기 보다 가만히 놓아두었으면 싶은 구속이었겠지만.
여하간 그런 종류의 늪은 한번 빠지면 그렇게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늪은 그렇게 한 인간의 모든 것들을 그 안으로 끌어 담아서 침몰시키고 마는 특성이 있다.
왕좌를 버리고 사랑은 택한 외국의 왕족의 이야기가 아름다움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세상을 많이 살아 보지 않은 어린 사람일 것이다.
그가 겪었을 번민과 고통의 나날을 완전히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그는 사랑을 얻었으니 반은 얻은 셈이다. 왜냐하면 이런 늪은 잘못 빠지면 모두 잃고 삶의 의욕조차 잃어 버리게 되는 수도 많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가다 문득 다른 이들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가 아무런 느낌없이 공허한 텅빈 눈을 한 사람들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들은 사랑에 크게 가슴을 다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정원장처럼 사랑이라도 얻은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설사 연인이 곁을 지키고 남는 행운을 안았건 아니면 연인을 잃는 비극을 당했던 건 간에.
연인의 존재 여부가 사랑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연인의 부재를 겪으면서도 사랑을 끌어 안고 사는 것처럼 괴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느낌을 잘 모르지만 누군가를 심하게 사랑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런 고통을 지나본 자들만이 아는 공감이 순간순간의 대화나 표정에서 얼굴을 내밀 때가 가끔 있다.
"병원장님이 간호과장과 그런 관계라는 것을 알면 주위 사람들이 일하는 데 불편하지 않은가요 ? 호칭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하는 지도 혼란스럽고......"
내 질문에 하과장은 글쎄라는 짤막한 대답 외에 별 다른 답은 없었다. 내 질문을 무시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저 모르는 듯이 행동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일게다.
딱 소리를 내며 공이 멀리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간다. 하과장이 한쪽 다리가 불편한 대신 팔의 힘은 굉장히 강한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친 타구의 비거리보다 1.5 배는 더 나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거리는 꼭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오해였던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항상 사람은 자기가 아는 수준까지만 보이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게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말들을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과장은 윤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하루살이를 생각하고 있는 데 갑자기 윤약사 이야기를 꺼내서 당황했지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아 태연을 가장하고 대답했다.
"윤약사에 대해서 왜요 ?"
"아니 요즘 윤약사랑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길래 궁금해서요."
"그렇게 보이셨나요 ? 윤약사야 하과장님께서 잘 아시고 친하시지 않은가요 ?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아니예요. 저는 잘 몰라요. 그녀가 비교적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 것이지 따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거나 하는 것은 없어요.그런데 요즘 이과장님 방에 부쩍 자주 들락 거리는 듯 싶어서 여쭈어 보는 거예요."
"간혹 약 문제로 오기는 하는데 별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혹시 그녀에 대해서 뭐 아시는 점이라도 있으신 건지요?"
"조심하시라구요. 그 윤약사가 요즘 소문이 썩 좋지를 않아요. 파견나온 공중 보건의 선생들과 밤 늦도록 술자리를 함께 한다고도 하고 또 어느날은 술을 빌려 달라고 오기도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요....."
어두운 그늘이 잠깐씩 그녀의 얼굴을 스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대체로 밝은 표정이어서 그런 행동을 할 여자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그 젊은 선생들과 썸씽도 만든다고 하는 소문도 있어요. 사실 윤약사의 눈이나 행동을 보면 좀 섹시한 부분도 없지는 않잖아요 ?"
"네 ?"
당혹 자체였다. 그럴 리는 없었다. 내가 들여다 본 그녀의 눈에는 그런 모습은 전혀 없었다.
"헛 소문이겠지요 ? 그럴리가 없습니다. 절대 그럴리가요 ?"
"어 이과장이 윤약사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이예요 ? 강력히 부인하는 것을 보니"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쓸데 없는 것에 흥분을 했다. 그냥 운동이나 하다 가면 되는 데 아침부터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갑시다. 공도 잘 안맞고 시간도 거의 되었으니. 김과장님 신과장님 그만 들어 가십시다."
저쪽 코너 쪽 타석에서 치고 있던 다른 과장들을 불러 들어 갈 준비를 했다.
하과장의 차를 타고 병원에 들어 오니 8 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김과장과 신과장은 씻는다고 먼저 들어가 버리고 나와 하과장이 간단히 요기를 하러 식당에 들르니 이미 당직 간호사 등 몇몇 직원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맛있는 토스트 냄새가 코 속으로 스치면서 후각과 위장을 자극했다. 냄새 때문이겠지만 갑자기 허기가 들어 후라이팬이 달구어져 막 소시지와 계란 후라이가 익고 있는 테이블에 끼어 앉았다.
"어서 오세요. 이과장님. 하과장님 앉으세요"
수술실 간호팀들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그네들과는 종종 수술 때문에 부딪혀서 인지 낯을 많이 가리는 내게 비교적 낯이 덜 설은 직원들이었다.
운동 후 아침에 구워 먹는 토스트가 맛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알았다.
마음을 좀 다잡을 생각도 있었지만 운동을 시작한 게 목표 체중 65 kg에 허리 둘레 32 인치로 만들려고 하는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조찬을 매일 먹다보면 살이 도리어 찔 것 같았다. 한입 한입 먹는 음식이 그대로 몽땅 흡수되어 살로 가는 기분이었다.

XIII

잠을 좋은 침대에서 자지 못하고 노래방의 비좁은 소파에 웅크리고 잤기 때문인지 몸이 찌뿌드드한 게 컨디션이 영 좋지를 않았다.
대신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이집 저집 방황하는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식도락 여행이라도 온 사람으로 오해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를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이별 여행이거나 아니면 나를 떠나 보내는 죽음의 여행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늦은 가을은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계절이니까.
녹동항도 바닷가니까 생선이 제격일 거고 마침 선착장을 둘러 보니 왕새우 구이집이 눈에 띄었다.
아닌게 아니라 가을은 새우가 한창인 계절이다.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새우를 좌판에 펼쳐 놓은 집들이 많았다.
해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새우만은 원없이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은 아니지만 그렇다해도 끝내기 전의 성찬으로 살이 오른 튼실한 새우는 손색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갑갑할 것 같아서 밖에 앉아서 먹기로 했다. 바닷가 내음을 맡으면서 구워 먹는 새우의 맛도 일품이리라.
마침 어중간한 시간이라 손님이 없고 심심하던 차라 생선을 다듬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몇마디 이야기를 여쭈어 보았다.
"아주머니 이곳 소록도에는 주로 어떤 사람이 오나요 ?"
"소록도 말이지라. 대중 없당께. 주로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지라."
"관광객 말고는 다른 사람은 거의 안 오나 보죠 ?"
"거의 안 오지요. 근디 뭐 땀시 그건 물어 본다요 ?"
"아니 혹시 저 안에 있는 환자들 가족들은 많이 안 찾아 오는가 싶어서요."
"거의 안 찾아 와요. 문둥이 가족이라카믄 누가 좋아하겄어요 ? 멀쩡이 살던 부부도 부모가 나병이라 카믄 갈라슨다카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러 찾아 오기야 하겄소. 그라고 전에 와 단종이다 뭔가해서 씨를 말려 뿌렸기 때문에 자손들도 거의 없으라. 그라고 이즈막에는 나이들도 많아가 거의 손이 끊긴 집이 많지라. "
"단종이요 ?"
"와 전에 왜놈들이 문둥병 환자 없앤다고 남자놈아 들은 다 고자를 만들어 불지 않았다 카요. 그것 말고도 무슨 실험도 하고 그랬다 카는데 이제는 오래된 일이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카지 않소. 아마 일본놈들한테 소송도 한다카기는 하는데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능가요. 어따요 ? 새우는 맛이 괜찮지라 ?"
"예 맛있네요. 여기서도 새우가 많이 잡히나요 ?"
"잡히기는 요즘이 물이 나빠가 씨알들이 굵은 놈들은 잡히지도 않는다 안카요. 그라서 요즘은 수입 새우들이 많지라. 그런데 손님은 어데서 오셨당가요 ?"
"저 아주 멀리서 왔습니다. 철원이라고 휴전선 가까운 곳이니까 아마 이곳 끝에서 반대쪽 끝일 겁니다."
"아 철원이라믄야 잘 알지라. 맨날 일기예보에 나오는 곳 아니당가요. 우리 바닷가에서 빌붙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사 일기예보가 밥줄 아닝게라. 그래 그 먼데서 여기 까장은 뭔일로 오셨는게라 ?"
"아예 뭐 좀 알아 볼려고요."
물어 보니 둘러 댈 말이 마땅치 않았다. 중년 남자가 혼자 이런 곳을 얼씬 거리는 이유로 적당할 만한게 무어가 있겠는가.
그리고 얼추 시장기도 가시고 하여 슬슬 오후를 때울 궁리를 하고 식당을 빠져 거리로 나섰다.
나서고 보니 눈 앞에 PC 방이 보였다.
알고 보니 그때 감자탕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곳에 있던 그 PC 방 같았다. 낮에 보니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의 2 층에 있었다.
갑자기 그제 보낸 메일이 궁금해졌다.
세월이 지나 초라해진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기라도 할 듯 가슴에 퍼지는 싸한 통증을 느끼며 한계단 한계단 올라갔다.
익숙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나만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마우스로 클릭하는 손이 떨려 왔다.
내가 그제 보낸 메일의 수신을 확인해 보았다. 미확인으로 남아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고 어차피 그녀가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약간의 서운함이 밀려 왔다.
그때 새편지의 도착을 알리는 메일의 알람이 울렸다. 스팸 메일이 온 모양이다. 요즘은 너무 많은 스팸 때문에 정작 중요한 메일을 고르는  것이 하루 일과 중 주요 행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방은 우리 둘만을 위한 방으로 남겨 두고 있어서 스팸 메일이 거의 오지는 않는 장소였다. 그런데 새 편지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새 편지의 발송인은......그녀였다.
너무도 익숙한 그녀의 아이디 하얀목련이였다.
내가 하얀색을 미칠듯이 좋아한다고 하니 그것으로 아이디를 정한 그녀였다. 물론 내 아이디도 역시 그녀가 좋아하는 푸른색을 따서 불루로즈라고 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
메일이 오다니. 그녀가 회복되어 일어난 것일까.

"선생님 오늘 남편에게 이야기했어요.
남편이 많이 흥분한 것 같아요. 꼭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요. 그이의 눈이 이상해요.
여하튼 굳이 남편 때문이 아니더라도 저는 내가 좋아하는 일 하자고 다른 사람들이 다치는 것 싫어요.  특히 선생님이 다치는 것이 싫어요.
저는 저나 선생님이나 주변 누구든 다치는 것 싫어요. 그냥 지금은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당분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다 정리되면 그때 다시 연락 드릴께요.
저 지금 무섭고 모든 게 겁나요."

그랬다. 어떻게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녀의 아이디로 온 편지였고 내가 그렇게도 바라지 않던 급작스런 결별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이 그녀가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어차피 지금은 다 끝난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영혼이 이 편지를 보낸 것일까 ?
보낸 날짜를 보니 사건이 생기기 바로 전날 보낸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한달 이상을 떠돌다 온 모양이다.
수십년이 지난 우편물이 어느날 갑자기 배달되는 일이 있다더니 온라인 상에도 그런 배달 사고가 생긴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아마 혼자서 많이 고민하다 보낸 편지인 모양인데 운명의 장난인지 편지는 내게 배달되지는 않았다.
배달 되었더라도 내가 그일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음지의 남자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이라도 배달 되었으니 답장을 써야 겠다.
너무 늦어서 이제 아무도 보지는 못하겠지만 내 마음을 이야기 해야 겠다.
이후에 다시 그녀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른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의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뜻 잘 알았어요.
조절의 의미와 내 아내를 생각하라는 의미. 그리고 당신께도 남편과 가족이 있다는 의미 모두 잘 알았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 마음에 편하다면 그렇게 하세요. 저는 당신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으로 됐어요.
물론 그 방법이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예요. 나는 이런 급작스러운 끝내기에는 익숙하지가 않거든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심한 고통을 불러 오기 때문에 정말 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와야 한다면 독한 약을 Tapering 하듯 서서히 감정을 거두어 가주기를 부탁도 했었던거예요.
여하튼 원하시면 지울께요. 내 기억에서 당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울께요.
그러나 어떤 식으로 지울 수 있는 지 지금은 저도 잘 모르겠군요.
이렇게 갑자기만 아니었다면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 처음의 불안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어요.
우리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내야 되는 거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마쯤 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잠시 여행이나 다녀 와야 겠습니다.
당신을 지우는 여행을. 그리고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야 겠습니다.
당신을 지우고 나를 찾아 올 수 있을지 당신을 지우지 못하고 나를 잃어버릴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저도 아무 것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에게 천지 창조의 1 주일 아니 6 일 인가요 그쯤의 시간을 줄 작정입니다.
천지를 만드는 데도 6 일 밖에 안 걸렸는데 한 인간의 생의 의미를 다시 찾는 데도 1 주일이면 충분한 시간일 거예요.
6 일이 제대로 차면 7 일째 안식이 올거고 그렇지 못하면 7 일째는 아무도 가서 보고 다시 오지 못한 어둠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병원이나 아내나 모두 나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잃어버린 나를 찾고 난 다음 그때도 가능하다면 당신의 말대로 아내도 생각하고 가족도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멘토도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써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은 별로 없습니다.
내 좋아하는 죽음의 신이 나에게 보내는 미소의 유혹을 과연 떨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내로 출발할 겁니다. 아마 10 월 5 일 쯤이 될 것 같습니다.
저 남쪽 소록도나 그런 곳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살아 온다면 아무에게도 피해 끼치지 않고 살거니까요.
다만 훗날이 없을 경우 변변한 선물 하나 주지도 못하고 나 때문에 괴로움과 걱정만 끼친 것 같아서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무 것도 해준 것 없이 그저 무책임한 한 인간의 모습만 추하게 남기게 되어서 아내와 남은 아들놈 한테도 미안 하네요.
그리고 당신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안녕. LU"
내 편지라는 표식인 love you 의 약자 LU로 메일의 끝을 장식했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은 3 일째 날이었으니까.

XIV

계절의 여왕이라는 5 월은 정말 여왕다웠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으며 겨우내 앙상 했던 나뭇가지들은 싱그러운 풀잎들로 성장을 했다.
가지 각색의 잎사귀들은 모양만큼이나 다양하게 저마다의 메세지를 담은 자기만의 언어로 계절을 찬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담 계곡으로 이어지는 고석정은 나무와 풀보다는 바위와 돌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선생님 어떠세요? 좋지않으세요 ? "
비록 레프팅하는 카약은 아니었고  조그만 배를 타고 계곡을 지나는 거였지만 주위를 둘러 보니 기암 절벽이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배를 타고 미끄러지듯 계곡을 내려가면서 하는 스케치 여행이란 처음 겪어 보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앞에 앉은 사공은 내가 계곡을 스케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을 거였다. 내가 보고 그리는 것은 그녀의 모습이었지만.
결국 그녀의 손에 아니 눈에 이끌려 이곳으로 오고 말았다. 여지껏 아내와 함께 한 것을 빼고 다른 여자와 이런 단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사공이 있기는 했지만 그야 노나 또는 깃발과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는 의미 없는 사물에 불과했다.
그녀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먼저 스케치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은 야외에서 화구들을 펼쳐 놓는다는 데 따르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들은 불가피하게 풍경을 그릴 때를 제외하고는 야외에서 인물 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녀의 모습을 스케치하면서 새삼스럽게 안 사실은  역시 그녀의 까만 동공 속에 숨은 무언가 메세지가 있는 데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배가 조금씩 흔들려서 스케치 하기에 적당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단 둘이 있기에 이곳 강 위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일요일이라 타지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덕분에 아무도 우리를 알아 볼 만한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스케치를 하면서 그녀의 모습을 마음 놓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편한 것인지 모르겠다.
보통의 경우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만큼 가까이 장시간 본다는 것은 아주 친밀한 연인이나 친구 사이인 경우가 아니면 매우 불편한 것이다. 이런 것을 방어적 거리라고 하던가 ?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회적 공간을 대상과의 사회적 관계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한다고 하는 학자가 생각났다.  45 cm 이하의 친밀한 공간과 120 cm 까지의 개인 구역 공간은 대화나 신체적 접촉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한 정도의 친밀도나 호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 활동은 360cm의 범위 까지의 사회적 공간이나 360cm 이상의 공적인 구역에서 이루어 진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현재 이런 방어적 거리 내에 들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불편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둘 사이의 친밀도가 높아졌다는 의미일까 ?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 중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녀의 비밀 수첩을 통해 그녀의 내면을 흘깃 훔쳐 보았다는 사실도 한 몫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가까이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보는 것에 대하여 그녀도 별로 불편해 하는 기색은 없었다.
"선생님 김혜원 간호사 좋아하세요 ?"
갑자기 그녀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보면서 질문을 해서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연필을 떨어드릴 뻔 했다.
"예 ? 왜요 ?"
"그림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종이에 남기기 위한 오래전부터 내려온 본능적 작업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무엇을 그림으로 남긴다는 것은 최소한 그 대상이 그렇게 남아 있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흔히 부부 싸움 후에 함께 찍은 사진들을 가위로 싹뚝 싹뚝 잘라 버리는 심리를 보면 반대의 경우지만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요. 김 간호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자주 보니까요.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의 발랄한 표정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있구요."
"그래요. 젊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예요. 저도 한 5 년 전인가 나이 30 넘어가면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보기에는 혜원씨를 보는 선생님 시선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던데 사실 대로 말해 보세요. 선생님."
약간의 강짜를  섞어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나이에 걸맞지는 않지만 귀엽다고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제가 약간의 롤리타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어린 소녀를 좋아하는 정신적 성향 말입니다."
"그런 컴플렉스도 있나요 ?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에렉트라 컴플렉스는 들어 보았는데."
"전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많이 알려진 컴플렉스인데 나이에 비하여 지나치게 어린 소녀에 탐닉하는 약간 병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그런 성향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구요. 그런 점에서 혹시 좋아하는 것처럼 오해하셨다면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성으로써 성적 대상으로의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점은 선생님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러세요? 제가 성적으로 매력이 없나보죠 ?"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이야기가 너무 노골적으로 나가 저 앞에 앉아 노를 젖는 사공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대충의 스케치도 끝나가고 해서 그만 배를 돌려 가고 싶었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그럼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세요 ?"
"저요. 저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주 이기적이시네요. 사랑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시다는 말씀처럼 들리시는데요 ? 사랑이란 나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는 그런 상대적인  것이 통하지 않는 몇 안되는 감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윤약사님은 사랑을 진하게 해 보셨나보죠 ?"
그렇게 말하고 보니 그녀를 약간 놀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
그녀가 잠깐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 그러면서 얼굴에 예의 그 슬프고 어두운 그늘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저 사실 결혼했었요. 남편은 서울에 있는데 지금 별거 상태예요. 제가 여기 온 것도 그이를 피해서 온 것이구요. "
의외로 그녀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아서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럼 그런 사실을 왜 굳이 감추려고 하셨는지 물어 봐도 되나요 ?"
"다른 분들을 속일 생각은 없었는 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물론 원장님은 알고 계세요. 원장님이 제 먼 친척 오빠 뻘이니까요. 그이와는 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고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다들 부러워하는. 정말 사랑이라는 것을 했었어요."
그녀가 잠시 말을 끊은 사이에 배가 한번 출렁하고 움직이면서 물이 튀어 스케치 북이 물에 약간 젖어 버렸다.
"안되겠어요. 스케치도 거의 다 했으니 그만 배에서 내리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요. 참 선생님 배고프지 않으세요. 어디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저번에 감자탕은 선생님이 사주셨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한턱 낼께요. 드시고 싶은 것 말씀해 보세요."
그러고 보니 점심 시간도 상당히 지나 오후가 이슥해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에 취해서 시장기를 잊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그녀와 마음대로 이렇게 가까와져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팔을 잡고 배에서 내리면서 그녀가 또 나를 빤히 쳐다 보면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사람의 눈을 빤히 쳐다 보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의 팔이나 어깨를 살갑게 붙들면서 이야기하는 습관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의 눈을 빤히 쳐다 보는 것도 상대를 굉장히 당황스럽게 할 수 있는 행동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느낌과는 달랐다.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안과 의사시라고 들었는데"
집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기억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빼는 것이 더 긴 시간 이 주제를 붙들고 있게 할 것 같아서 대충 얼버무리고 싶었다.
"집사람이 다니던 ㅅ 여고에서 공부와 싸움으로 짱이라는 호칭을 들었다더군요. 그리고 나는 바로 옆의 ㄷ 고등학교의 탑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나로써는 우연히 마주치고 사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 데 처음부터 집사람이 나를 찍었다고  하더군요. 우리 집은 그 지역에서는 알아 주는 유지였거든요. 아마 그녀의 출세에 내가 필요했나 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모님이 콕 찍었을 정도면 많이 사랑하셨나 보네요 ?"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했는지. 여하튼 그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소아과 하과장님과는 어떤 사이세요 ?"
"어떤 사이기는요 ? 친한 사이죠. 그리고 내가 흠모하는 분이고. 멋있잖아요. 젠틀하시고. 비록 다리는 조금 불편하지만 열정적으로 사시는 모습이"
"그런가요 ? 아닌게 아니라 골프는 잘 치시더군요."
"골프는 잘 모르겠는데 환자들을 굉장히 열정적으로 보세요. 그래서 그분이 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소아과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은데 지금은 잘 본다고 소문이 나서 주변에서들 많이 오시잖아요. 그 분이 오시고 나서 그런 거예요."
"그럼 의사로서 가지고 있는 그냥 그런 존경 뿐이라는 건가요 ?"
"그럼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
수첩에 기록해 놓은 비밀을 확 말해 버리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나 나나 오히려 더 당황스러울 것 같았으니까.
점심까지 먹고 그녀를 간호원들과 함께 쓰는 아파트 겸 기숙사에 내려 주었다.
"오늘 데이트 즐거웠어요. 선생님."
데이트 ?
그래 데이트였다. 기분 나쁘지 않은 데이트.
"그럼 쉬세요. 윤약사님. 저도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부탁드려요. 그때는 제 질문 피하지 마세요."
그녀의 손마중을 뒤로 하고 관사로 돌아오니 거의 저녁이 가까와지고 있었다.
어디만 가려하면 꼭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병원에서는 콜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모처럼 만에 가져보는 즐거운 데이트였다. 어서 그림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관사로 들어 왔다. 정원의 은행나무는 자신의 소담스런 새끼들인 마냥 여전히 무성한 이파리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5 월도 거의 다 가고 있었다.

XV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달 때는 느끼지 못했고 정말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막상 답장을 보내고 나니 새삼스레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상처가 좀 아무는가 싶어 어쩌면 내게 주어진 1 주일이라는 시간이 내 생의 후반부를 맞기 위한 중간 휴식 시간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가졌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 때문이건 그녀가 나를 떠나려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모래톱에 스미는 바닷물처럼 어떤 원망 같은 것이 스멀스멀 비집고 올라왔다.
비록 늦게 알기는 했지만 결별을 선언하는 그녀의 마지막 편지는 처음의 막연하던 내 결심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 편지를 받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마지막 생각을 모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어느 것이 나은 것인지는 알 수는 없다.
타의에 의한 이별과 사랑하는 상대의 의지에 의한 이별 중 어느 것이 더 슬픈 것인지 비교해 볼 수는 없으니까.
소록도 나환자들의 사는 모습 때문에 약간 흔들리려고 한 내 마음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현실을 바라보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바보야 너는 차인거야. 차인거라구. 다른 무엇이 아니고 그녀가 너를 거부한 거야.'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네게서 떠나게 한게 아니라 그녀가 너를 떠나고 싶어 했다구.'
'너희들이 사랑한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있어 ? 그녀는 그저 새로운 대상에 대한 한때의 호기심이 있었던 것 뿐이야.'
'너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허전함 때문에 그녀에게 끌렸던 것 뿐이고.'
'뭐하고 있어 ? 네가 하려던 것을 해야지.'
악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손이 벌벌 떨리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술 취한 사람처럼 걸음을 제대로 걷기가 어려웠다.
호텔로 향하는 길이 너무 멀었다. 지나는 사람들과 몸이 부딪히는 것도 몰랐다.
그래 어차피 먹고 싶은 것도 먹었고 노래도 불렀으니 이 세상에서 즐기고 싶은 만큼은 즐긴 셈이다.
가을의 솔밭도 보았고 흰 모래사장도 보았다. 넘실대는 검푸른 바다도 보았으며 열심히 사는 인간들의 모습도 보았다.
비록 일곱 색깔 무지개는 없었고 맑은 새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세상에 한번 왔다가 담아 가기에 그런대로 궁색하지 않은 기억들이 있었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사랑 비슷한 것도 해 보았다.
이제 더 경험 해 볼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에 더 미련을 가져 보려 하는 건가.
1 주일은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생의 가치는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질에 있는 것이지.
호텔방으로 들어 오니 시계는 막 10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떠나온 저쪽 세상에서는 한창 분주하게 바쁠 시간이었다.
병원에서는 보통 예정된 수술은 오전 일찍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외래 환자들도 아침을 먹고 아이들 보내고 슬슬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오전의 그 시간은 직장에서처럼 병원에서도 바빠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에 나는 죽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앞으로 몇 분 후면 이 세상과는 하직이다.
방문에 'do not disturb' 라는 패말을 걸어 놓고 침대에 앉았다.
그녀의 빛바랜 사진을 다시 한번 바라 보았다. 웃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웃는 모습이 예뻤다.
사진을 옆에 놓아 두고 고무줄로 팔뚝을 감았다. 수산화 칼륨 용액이 담긴 앰플을 까서 20 cc 주사기에 가득 쟀다.
숭고한 고대 의식을 치르는 사람처럼 천천히 작업을 했다.
불거진 팔뚝 혈관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날카로운 바늘이 피부를 뚫으면서 따끔거리는 통증이 왔다. 동시에 아주 예리한 칼이 순식간에 가슴을 스치는 것처럼 싸늘한 통증이 돌개 바람처럼 휙하고 지나갔다.
마음 속에 여러번 다짐했던 일이라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 주사기를 잡았다. 손이 조금 떨린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서 최민수가 마지막 교수형 순간에 '나 떨고 있니'라고 물어 본 것처럼 이런 순간에는 조금씩 떨리는 모양이다.
한번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제발 누가 나를 말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구할 사람은 없었다.
깊은 가을의 한낮이었다.

그때 딩동하고 휴대전화에서 새로운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이곳에 온 동안 거의 잊고 있어서 내가 휴대 전화를 가져 왔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 휴대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이 마당에 문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인류의 과학 발달을 이끈 힘이 사람의 호기심이지 않은가.
할 수 없이 주사 바늘을 빼고 주사기는 다시 옆에 놓았다. 폴더를 열어 보니 '과장님. 어디 계세요 ? 연락 주세요.--김혜원"하는 메모가 와 있었다.
그만 둔 김간호사가 병원에서 메세지를 보냈다. 다시 돌아 온 걸까 ?
무슨 일로 문자를 보냈을까 ?
병원에서는 1 주일 간의 제주도 산부인과 학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따로 연락할 일이 없을텐데.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스러웠다.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문자 메세지 답장을 쓸 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라니.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그런 하찮은 것들이 인생의 큰 길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바꾸어 놓고는 한다.
할 수 없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병원의 교환이 전화를 받았다.
"산부인과 연결 부탁합니다."
"예. 산부인과 2 진료실입니다."
"김간호사. 다시 돌아 왔어요 ?"
"네, 과장님."
반가워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려 왔다. 끝과 끝을 이어주고 있다는 거리감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그런 느낌이라니 참 오래 살고 싶은 좋은 세상이다.
"한달 쯤 전인가 ㅎ 대학 병원으로 보냈던 아기요. 왜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이 의심된다고 해서 의식없이 소아과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던 아기 있잖아요. 조금 회복되어 오늘 처음으로 몸을 움직이고 기적적으로 뇌파 검사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고 연락이 왔어요. 어쩌면 회복될 지도 모르겠다고 그 병원의 담당 선생님이 조금 전에 전화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과장님이 기뻐 하실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알려 드릴려고 연락했어요. 참 학회 회의 가셨다면서요. 회의 중이실텐데 전화 하면 안되는 거 아니예요 ?"
아 그 아기.
생각이 난다. 양수가 조기 파수되어 촉진제를 사용한 유도 분만을 했으나 난산이 되어 흡입 분만으로 가까스로 출산 한 아기였다.
그러나 아기는 나올 때부터 신생아 활력 점수가 3 점 밖에 되지를 않아 그러지 않아도 내내 걱정하던 아이였다.
보호자들은 아이의 상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여차하면 고소라도 할 태세였고 수시로 병원을 찾아와서 걱정이 많이 되던 아이였다.
이제 죽음 앞에 서니 신께서 마음의 짐하나 덜어 주시는 것인가.
"과장님. 잘 해결 될 것 같아서 다행이예요. 저도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제주도에서 푹 쉬셨다가 올라 오세요. 힘내세요."
그랬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있었다.
윤약사 때문에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타났다. 이 죽음의 순간에.
김혜원 간호사와 윤승혜 약사 그리고 나 우리의 관계는 도데체 무엇일까 ?
그리고 그녀의 힘내세요라는 단 한마디 말.
그 말이 갑자기 큰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다.
그렇게 의미 없는 듯한 한마디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도 있었다. 한방울의 물이 대양을 넘치게 할 수 있다는 소설가의 말처럼.
그 말은 '힘내세요'라는 말일 수도 있고 '전화 끊지 마세요'라는 말처럼 흔히 할 수 있는 하찮은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마디가 이쪽으로 향한 방향타를 저쪽으로 돌려 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쪽 길로 갈 기차가 저쪽 길로 달리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다른 길로 말이다.
여하튼 그녀의 그 한마디가 내게 하루를 벌어 주었다.
내려다 보니 희고 넓은 시트에 펼쳐져 있는 주사기와 고무줄과 앰플은 자신들이 해야할 중요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여 아쉬움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나 여기 있어요라고 호소하는 듯 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간호사가 보낸 메세지를 무시하기는 싫었다. 힘을 내야지. 어쩌면 누가 말려 주었으면 하고 그런 이유를 찾기 위해 세상의 끝 이 소록도를 찾은 것일지 모른다.
죽기 위해 멀리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먼 이곳까지 찾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지금 잠시 위기를 넘겼지만 내게 남은 4 일은 어떤 식으로든 흘러 갈 것이고 그 4 일 안에 의미를 찾지 못하면 내게 그 다음은 없었다.
나의 하루를 벌어준 김간호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내 의식을 방해한 것이 감사할 일인지 후회할 일인지는 지금은 알 수는 없었다.

XVI

"과장님, 혹시 그리신 그림 중에 저 그린 것도 있어요 ?"
김간호사가 진료가 한가한 틈을 타 내게 물었다.
"왜요 ? 궁금해요 ? 그린 것 있으면 어떻게 할건데요 ? 달라고 ?"
"아니요. 주시기는요. 어렵게 그리신 작품인데요. 그냥 그랬으면 어쩐지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린 게 있기는 하지만 아마 마음에 안 들거 같은데....그래도 괜찮다면 한 장 주고."
"정말요 ?"
그녀가 소녀처럼 반가워하면서 하얀 이가 다 드러나게 좋아했다. 모르고 있었는 데 이가 가지런하고 참 하얗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보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표정이나 옷차림 등에 대하여 아주 무심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지금은 서로 별 관심도 없는 상태지만 결혼 초만 하더라도 아내는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는 지 옷을 새로 사 입었는 지 알아 차리고 한마디 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하여 아주 불만스러워 했었다. 그러나 생겨 먹은 천성이 그런 것을 난들 어찌 하겠는가.
그래서 언제가는 '그 옷 괜찮네 새로 산 모양이네'하고 물으니 아내는 3 년 전에 내가 사준 옷이며 그동안 잘 입다가 이제 다 떨어져 버릴 때 되었는데 이제서야 보이냐고 말하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도끼눈을 하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얀이나 깨끗한 피부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아름다운 꽃만이 감상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꽃과는 다르게 사람은 감정을 가진 대상이기 때문에 감상하는 내 행위 자체가 다른 오해를 불러 올 수가 있다.
따라서 꽃이나 풍경을 보는 그런 마음 편한 감상을 사람을 대상으로는 하기가 어렵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방 통행의 방송 매체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아무 부담 없이 내 맘대로 즐기면 되니까.
안으로 들어가 스케치 북에서 여러 장 중에 무엇엔가 일하면서 열중하는 모습을 그렸던 스케치를 한 장 뜯어 주었다.
"원래 고정액 뿌리고 제대로 액자에 넣어서 주어야 하는 데 미안해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
"그럼요. 고마워요, 과장님. 대신 저도 선물 하나 드릴께요."
그녀가 그리 크지 않은 몸을 잽싸게 돌려 나가더니 작은 유리병에 담긴 한줄기의 벤자민 고무나무를 가져왔다.
아마 벤자민 고무나무를 꺾어서 뿌리를 내린 모양이었다.
"과장님 드릴려고 원장님 방에 있는 키 큰 벤자민 가지 하나 몰래 꺾어서 뿌리 내린 거예요. 아직 1 달 밖에 안되서 별로 뿌리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정말 나무가지에서 하얀 뿌리가 내시의 수염 마냥 듬성듬성 하게 한 1 cm 나 2 cm 나 될까 말까 한 정도로 자랐다.
이파리들은 매일 닦았는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고마워요."
진료실 창틀에 올려 놓으면서 그녀의 옆얼굴을 슬쩍 쳐다 보았다.
그녀가 내 그림을 받으면서 즐거워하는 이유는 무언지 그리고 또 내게 주는 이 선물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하여 잠시 생각을 했다.
물론 다른 것은 없었다. 그저 선물을 받아서 좋아 하는 것 같았고 그리고 무언가를 주고 싶어 했다는 것밖에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란 오래 전에 겪어 봐서 낯이 설기는 했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는 평범한 인간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느낌으로 알았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과장님, 윤약사님이 어제도 11 시 다 넘어 저희 방에 와서 혹시 술 있냐고 물어 보고 갔어요. 이미 취기가 올라 보이던데. 주량이 소주 두병이라고 응급실 당직 선생님들이 말하는 게 사실인가 봐요."
갑자기 김간호사가 윤약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전 소아과 하과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내게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모르면서 함부로 하면 안되요. 사회 생활하면서 조그만 말 실수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어요. 말 한마디로 잘못된 오해를 낳을 수 있으니까 김간호사도 괜히 다른 사람들처럼 휩쓸리지 말아요."
윤약사에 대하여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분명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매일 한번 정도는 무슨 구실로건 진료실로 찾아 오던 그녀가 한 삼사일 동안 내내 잠잠하게 있었다.
내일이 주말이니까 그녀에게 그림의 마무리를 위한 데이트를 핑계 삼아 한번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초상을 그린다는 명분으로 몇번 만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의 사적 이야기는 부담없이 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싶었다.
약국으로 한번 가볼까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선뜻 가보기가 망설여졌다.
저녁까지 기다려 보고 오지 않으면 직접 한번 가보든지 전화를 해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진료실이 서향이어선지 늦은 오후의 햇살이 길게 진료실 안으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되려는 지 햇살이 조금 따갑게 목뒤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진료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전화를 해 보기로 했다.
직접 가는 것보다는 전화가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전화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을 마음대로 하기가 많이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다른 소통 수단을 마련해 두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산부인과 2 진료실인데요 윤약사님 좀 바꿔 주세요."
"네, 저예요. 말씀하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많이 잠겨 있어서 평소의 적극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약간 들뜬 듯한 그런 목소리가 아니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내 마음도 같이 까부라지고 있었다.
"저기.....혹시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 제 진료실에도 전혀 안 오시고."
"아니 별 일 없어요. 그냥 조금 바빠서 그랬어요."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서 사실 바쁜 일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요즘은 환절기가 지나 제일 바쁜 소아과 외래 진료 환자도 뜸하고 내가 보는 산부인과 2 진료실이나 선배 원장이 보는 산부인과 1 진료실 모두 진료 환자가 뜸해서 약국이 바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바쁜게 있다면 마음이 바쁜 거겠지.
"내일이 주말인데 혹시 내일 오후나 아니면 일요일이라도 시간이 되시는가 해서요. 그리던 초상을 마무리하려면 한번쯤 더 정리 작업을 하고 또 수정 해야 할 부분도 있어서요."
그녀가 하던 거짓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 사실 정리야 스케치를 보고서만도 할 수 있어서 굳이 그녀를 보아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저..... 이번 주는 일이 있어서 곤란해요. 다음 주에 제가 연락드릴께요."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 왔다. 별 일도 아니고 일이 있어서 다음 주에 만나자는 말일 뿐인데 하수도에 단단한 종이가 틀어 박힌 것 같이 가슴이 먹먹해 졌다. 그리고 틀어 막힌 하수구에 물이 고이는 것처럼 불분명한 종류의 고통이 가슴 저 안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약사가 약속이 있어서 이번 주는 만나기 어렵다는 이야기 일 뿐이지 않은가.
모델이 화가에게 시간 약속을 다음으로 하고 있는 것 뿐인데 왜 내 가슴에 감정의 일렁거림이 생겨나는 건가 ?
알 수가 없었다.
여하튼 그녀에게 무언가 일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알아 볼 수 있는 지 생각을 가다듬느라고 김간호사가 말하는 것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과장님.!"
"예 ? 왜요 ?"
"과장님 저희는 따로 회식 안 하냐구요. 다른 과는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은 과 회식도 하고 그러는데."
약간 샐쭉한 표정으로 물품을 정리하는 시늉으로 딴 곳을 쳐다보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김간호사가 대답을 재촉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지 석달이 지나도록 산부인과 직원을 위한 회식을 따로 가져 본 기억이 없다.
"원장님은 과별 회식을 따로 가지실 생각이 없으니까 그냥 과장님하고 우리 외래 직원들이나 분만실 직원들끼리 만이라도 해요. 제가 괜찮은 집 알고 있거든요."
윤약사 문제에 관하여 골몰하다가 생각이 끊어져 약간 짜증이 나려 했지만 오히려 그런 회식 자리에서라면 윤약사의 신변에 생긴 일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데서는 같은 직원들이 오히려 빠꿈하게 정보를 꿰고 있는 수가 많을 테니까.
"그래요, 그럼 말 나온 김에 아예 오늘 하지 뭐. 다른 사람들 스케쥴 한번 확인해 봐요. 되는 사람들끼리라도 가면 되니까."
"오늘이요 ?"
"그래요. 오늘."
김간호사는 자신이 말을 꺼내자마자 흔쾌히 응낙을 해 준 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과도할 정도로 놀래는 표정을 지으면서 반가워 했다.
동상이몽이었다.
내가 꾸는 꿈은 윤약사에 대한 것인데 김간호사가 꾸는 꿈은 무엇일까 ?

XVII

김간호사가 말해준 아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직 아기는 희미한 몸짓 하나 보인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완전한 회복으로 건강하게 웃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꿈을 꾸어 보았다.
정말 그럴 수 있었으면 바랄 것이 없었다.
그 조그만 손가락하며 보드레한 뺨과 젖을 빠는 입술의 꼼지락 거림. 이 얼마나 귀여운 생명인가!
어느 생명인들 귀엽지 않으랴만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것들이 주는 신비로움이란  비록 삶의 찬미자가 아닌 나 같은 염세주의자들이라 하더라도 입을 다물게 하고 만다.
아기는 제발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어떤 참혹한 댓가를 받게 될까봐 겁나서가 아니라 그 생명 자체가 너무 아깝기 때문에 꼭 회복되어 일어 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다.
여하튼 그렇게 한 생명의 살아 보려는 치열한 몸부림 덕분에 내게는 하루 또는 며칠이 더 생겼다.
어떤 과정을 거쳤건 결국 한 인간의 그런 가열찬 노력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버티어 주는 힘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그 아기가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었다. 한번 상처받고 실망한 신이지만 속는 셈치고 해나를 데려간 신께 다시 한번 빌어 보고 싶었다.
속는다 하더라도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는 마당이었으니까.
이따 오후에는 소록도의 천주교 성당의 미사에 참석해 보아야 겠다. 미사 일정이 어떻게 되는 지 모르겠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 하여 휴대폰을 꺼내 보니 10 월 7 일 수요일이었다. 다행이다. 아마 수요 미사가 있을 것이다.
대도시의 큰 성당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아마 오후 미사나 저녁 미사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소록도는 5 시 전에는 나와야 했으므로 저녁 미사에 참여를 할 수는  없으므로 오후 미사 시간을 알아 보아야 했다. 호텔 프런트에 문의하여 전화 번호를 물어 알아 보니 마침 오후 2 시 미사가 있다고 한다.
내게 주어진 여분의 하루를 미사로 시작하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다.
휴대전화 문자만 없었더라면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지금쯤 딴 세상에 가 있을 시간이었다.
휴대전화 벨은 사실 환청이고 어쩌면 죽었는 데 안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영혼이 떠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에 본 영화 식스센스든가 하는 영화의 주인공 부르스 윌리스처럼 말이다.
거기서는 천당이나 지옥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세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죽음 이후의 천국에서의 영생을 바라고 기도를 한다.
그러나 언젠가 어느 글에서 보니 천국과 지옥은 이승에서의 행실이나 기도에 대한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보다는 천당의 평온하고 잔잔한 분위기에 맞는 사람이 있고 지옥의 불같고 격렬하고 들끓는 분위기에 맞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름도 천국이나 지옥이 아니며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하는 것도 없다.
누군가 죽어 저승에 가니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이름 모르는 맛있는 과일이 지천으로 넘치고 있었다고 한다. 하늘은 푸르렀고 새들은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고 시냇물은 맑았다. 죽어서 천당에 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고 근심도 없었으며 또한 고민과 고통도 없었다. 그저 평온한 휴식만이 있었다.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한달쯤 지나니 조금 지겨운 생각이 들어 저승을 지키는 사자에게 무언가 다른 할 일이 없는 지 물었다. 그러자 그 사자는 이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면 안된다고 하며 그저 가만히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죽어 저승에 간 사람은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가만히만 있으라고 하면 지겨움을 어떻게 견디냐고 지옥보다 나을 게 무어냐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저승 사자는 그럼 당신은 이곳이 지옥인 줄 몰랐느냐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결국 하루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 하루 죽는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며 천국이라는 것은 지옥의 뒷편이다. 물론 이승도 저승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저승일테니까.
이 세상은 이승이자 저승이고 천국이자 지옥이었다. 결국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었다.
잠시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아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조금의 여유가 생겼지만 점심은 이미 조금전에 먹었고 소일을 위하여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할 만한 것이 없었다.만일 이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나에게 죽기 전에 단 두시간의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면 아마 너무 할 것이 많아서 도저히 두시간으로는 성이 차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그런 상황에 닥치고 보니 그다지 할 것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의과 대학 본과 1 학년 다닐때 급성 백혈병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중간 고사 시험을 친다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이해를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도서관에서 중간 고사를 준비하지 않은 들 다른 무엇이 얼마나 더 소중한 것이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친구는 미래를 미리 알았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오늘 무의미하게 혹은 평범하게 보내는 하루가 내 인생이 마지막 날이지 않으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전혀 아까와 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내고 있다. 나와 그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만 9월의 어느 날을 그렇게 보냈던 것처럼.
한참 고민하다 프런트에 전화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다 보기로 했다.
시간을 때우는 데는 비디오 만한 게 없다는 것이 왜 진즉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죽기로 작정하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비디오를 보다니 참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 지 인생의 무상함이라고 해야 할 지.
그러나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내게 보라고 추천해 주었던 영화를 보아야 겠다. 그렇지 않아도 약속만 하고 지키지 못해서 미안했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장쯔이 주연이던가 애틋한 기다림과 넓은 초원의 영상이 좋았던 영화라고 했다.
영화를 보니 별 내용은 없었는 데 나는 원래 그런 드라마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슴을 저미는 안타까움과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동안 내 가슴의 두꺼운 껍질 말하자면 체면이라든가 책임이라든가 혹은 도덕이라든가 하는 껍질이 다 벗겨져 나가고 그저 솔직한 감정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든 책을 읽으면서 좀체로 눈물이라는 것을 흘려 본 기억이 없지만 그리고 눈물을 흘릴 만큼 그다지 슬픈 내용의 영화도 아니었지만 괜히 눈물 비슷한 것이 주르륵 흘렀다. 영화 때문이라기 보다는 살아온 인생의 아쉬었던 기억과 남은 시간의 허망함 때문일 것이다. 닦을 휴지도 없었지만 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 감정을 추스리고 나와야 했지만 미사 시간 때문에 대충 얼굴만 씻고 밖으로 나왔다.
익숙한 행동인 것처럼 다시 배를 타고 소록도를 향했다. 이전에 밟았던 길을 걸어 곧장 천주교회로 갔다. 가을이 깊어 주위의 은행나무에서는 노란 이파리들이 바람부는 대로 흩날리고 있었고 아스팔트 바닥을 덮은 낙옆은 수북히 쌓여 흡사 눈을 밟는 느낌처럼 뽀드득 거리는 느낌을 주었다. 여지껏 살아 오면서 낙옆을 제대로 밟아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옆을 제대로 밟아본 기억도, 눈을 제대로 밟아본 기억도, 조그맣게 웅덩이를 만든 빗물을 제대로 밟아본 기억도, 풋풋한 봄흙을 제대로 밟아본 기억도 없었다.
그저 무엇엔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살아오면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지나쳐 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야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 숨기고 있던 내밀한 감각들을 깨닫고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이미 미사가 한참 시작된 모양이었다. 역시 들은 대로 대부분 주민이 기독교라서 성도는 몇명 되지 않았다.
선채로 신부님의 말씀을 들었다.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저녁을 잡수시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다시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곳에 온 목적 그대로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그 아이를 위해 기도를 했다. 비록 아직은 조그마한 희망 뿐이지만 인간의 생명이란 얼마나 끈질긴 것이고 강인한 것인지 보여 줄 수 있기를 바랬다. 모은 두손에 간절한 소원을 담아 기도를 했다. 해나의 죽음 이후 다시 하지 않기로 했던 기도를 그 아이를 위해 다시 했다.
그리고......그리고 나의 삶의 희망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던 그녀를 위해 기도 했다.
비록 그녀가 나를 떠나려 했다 하더라도 아직 내 마음 속에는 그녀의 모습은 전혀 다를 것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하늘에서 들리는 것처럼 다시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실천합시다.
가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눕시다.
마시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일어나서 가야 했다. 이제 영혼을 바쳐 소원을 빌었으니 그 아이를 위해 그리고 그녀를 위해 조금은 속죄가 된 것 같았다. 이제 영혼을 위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살았으니 몸을 위한 시간도 얼마쯤 배려해 주고 싶었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느낄 수 있도록 속속들이 감각의 하나하나를 일깨워 보고 싶었다.
우선 녹동항으로 다시 나가야 했다. 육체의 구석구석에 찌든 때를 벗기기 위해 목욕탕에 들리는 것이 급선무였다.어차피 죽기전에 한번쯤 치루어야할 의식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 삼일 동안 전혀 샤워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뜨거운 물의 감촉과 시원한 찬물의 교대 의식-나는 냉온탕을 넘나드는 것을 그렇게 불렀다- 그런 교대 의식이 몸에 가져다 주는 상쾌함 혹은 쾌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즐거움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XVIII

급하게 날짜를 잡아서 인지 회식에는 김간호사를 포함하여 분만실 식구 중 오프인 직원 등 총 5 명 정도 밖에는 참여치 못하였다. 단촐한 숫자였지만 나로써야 회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런 숲이 있는 야외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은 도시의 답답한 실내에 비하여 분위기가 한결 괜찮았다.
"과장님, 어떠세요 ? 맛 있으세요 ?"
김간호사가 바로 옆에 바짝 붙어서 고기를 뒤집고 집어 주고 하여 곰살스럽게 대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신경이 쓰였지만 다들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도 했고 이야기에 빠져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과장님 사모님은 자주 안 오시나봐요 ? 저는 한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과장님들은 관사에 같이 사시기도 하는데."
김간호사가 아내에 대하여 물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 대답이 궁금했는 지 하던 이야기들을 중단하고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고 연예 뉴스에서도 가십이 제일 인기라더니 역시 다른 사람의 사적 이야기는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음, 뭐 별거 없어요, 아내가 서울의 큰 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주말 부부 하는 데 나도 당직 등으로 바빠 자주 못 가고 아내도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부부가 한 10 몇년 같이 살대고 살다 보면 조금 무덤덤해지고 하는 거지 어떻게 연애할 때처럼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
다들 실망하는 눈치다. 아니 뭐 다른 것이라도 있을 줄 알았나 ?
나랑 아내랑은 심각한 성격 갈등이 있어서 이혼 직전이고 아내에게는 아마 마음을 주는 것인지 몸을 주는 것인지 모르는 다른 남자가 있다. 뭐 그런 이야기라도 할 줄 알았던건가 ?
이야기의 대상이 내 쪽으로 옮겨오면 안된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내 이야기는 놔두고 김간호사는 어때요 ? 남자 친구 없어요 ? 다른 사람들도 요즘은 남자 친구 하나쯤은 있죠 ?"
분만실 직원들과 1 과의 한간호사도 어깨를 으쓱 올렸다.
"요즘 남자 친구 하나 없는 여자 어디 있어요. 애인이 없어서 문제지. 안 그래 언니."
김간호사가 분만실 담당인 임 간호사에게 눈길을 돌린다.
"왜 이래 너는 애인 있잖아 ? 내숭 떨기는. 과장님 앞이라 그러니?"
"언니 무슨 소리야. 개는 친구야 친구. 애인은 무슨 쥐뿔 애인."
"아니 친구랑 키스도 하고 그러냐 너는?"
"언니 !! 그만해."
"아니 김간호사 정도면 얼마든지 애인 있어도 되지. 있는 게 당연하지. 얼굴 이쁘지 마음씨 착하지 내가 젊었어도 반할 것 같은데 ?"
"정말 애인 아니예요. 그냥 친구예요. 친구. 그런데 정말 과장님 보시기에 제가 이뻐요 ?"
뾰루퉁해 있던 김간호사가 얼굴이 환해 지면서 다시 이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이쁜 것 아닌가 ? 어때요. 김간호사 정도면 이쁜 거 아니예요 ? 뭐 다른 분들도 다들 미인이시지만."
"됐어요. 입에 침도 안 바른 예의상 발언은 사양하겠어요."
평소 옥니에 주근깨 때문에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은 임간호사가 삐진 듯이 말을 내 뱉었다.
다들 적극적이고 어떤 점에서는 당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만큼 내가 스스럼 없다는 것처럼 보여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참 과장님은 어떤 스타일 여자 좋아하세요 ?"
전에 윤약사도 고석정 갔을 때 그런 질문 비슷한 것을 한 것 같은데 여자들은 상대방이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 지 하는 것이 왜 그렇게 궁금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나는 어때요 ? 좋아할 만하지 않은가요'라고 하는 말을 돌려서 물어보는 것인지.
스타일 문제라면 대답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피차 잘 아는 것 아닌가.
어떤 때는 화려하고 다소 유치한 옷이 마음에 들었다가도 또 다른 때는 클래식한 정장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하나로 취향을 고정해서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는가 ?
'저 좋아하세요 ?' 하고 물어 보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것 아닐까 ?
물론 그렇게 물어 본다 해도 같이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자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김간호사를 혹은 윤약사를 좋아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워하는 것인지 아직은 내 감정을 나도 알 수가 없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사랑스럽기도 했다가 또 어떤 때는 다소 서운하고 그런가하면 그저 조금 좋은 느낌이 들때가 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미워지기도 한다.
산다는 게 그런 모습인 것처럼 그대로 어느 날은 해가 떴다가 어느 날은 비가 온다. 어느 날은 맑은가 하면 어느 날은 흐리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은 흐리다 혹은 맑다하고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물어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 혹은 이 순간 나를 좋아합니까 ?' 그렇게 물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살고 느끼는 것은 지금 이 짧은 한 순간 밖에는 없는 것이니까 . 그런 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한달이 되고 한 평생이 되는 것 뿐이다. 거대한 바다도 결국은 물방울 하나 하나일 뿐인 것이다.
만일 김간호사가 '지금 이순간 저라는 여자를 좋아하세요 ?' 하고 물어 보았다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이 순간 당신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순간일 뿐이며 내 마음에 다른 이가 떠오르는 순간 당신은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사람입니다.'
냉면들을 시키는 것을 보니 고기는 얼추 먹고 어지간히 시간도 지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윤약사 이야기를 좀 알아 보고 싶었던 것인데 주변만 기웃거리다가 정작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낸 꼴이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오해 받지 않고 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해 보았다.
"김간호사랑 다른 사람들은 다 기숙사에서 지내나요 ?"
"아니요, 저랑 임 간호사 언니랑 또 저쪽 최 간호사 언니는 집이 멀어 기숙사에 있는 데 다른 사람들은 집이 가까워서 집에서 다녀요. 기숙사에 있는 사람이 한 10 명 쯤 되나 ? 아파트 세 채를 저희 여직원들이 나누어서 쓰구요, 응급실 당직 선생님들이 쓰는 게 한 채고 그래요. 맞지 언니 ? 무지 좁고 불편해 죽겠어요."
"윤약사도 기숙사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
"아참 윤약사님도 기숙사에 있는 데 혼자서 다른 방을 쓰고 있어요. 원래는 과장님 쓰시던 관사에 있었는 데 관사가 모자라서 이쪽으로 나오게 된 것은 과장님도 아시지요?"
"그런데 윤약사랑은 자주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 봐요 ?"
누구에게랄 것 없이 별 관심있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면서 궁금한 것을 물었다.
"방을 따로 쓰기도 하고 저희랑은 그다지 어울릴만한 기회가 없어서 잘은 몰라요."
김간호사가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은 아마 거의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요즘엔 가끔 술 얻으러 오기는 해요. 아마 너무 늦은 시간이라 사러 나가기 귀찮아서겠지요. 뭐"
"원래 그렇게 술을 좋아한데요?"
"글쎄, 저도 온 지가 얼마 안되어 잘 모르는데 언니들이 오히려 잘 알겠지요. 언니 ?"
자기들끼리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임간호사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윤약사님에 대해서 과장님이 궁금해 하시잖아."
"아니 뭐 꼭 궁금해서가 아니라 같이 지내면서 잘 알 거 같아서 물어 본 건데 서로 이야기들을 잘 안하나보네요 ?"
"아 윤약사님이요 ? 뭐 복잡하죠."
"복잡해요 ?"
"네 소아과 하과장님을 좋아하는 것으로 저희들은 알고 있는 데, 가끔 보면 응급실 당직 선생님들하고도 어울려서 자주 술자리에 끼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요 ? 요즘도 그런가요 ? 내가 봐서는 잘 모르겠던데."
"글쎄요. 과장님이 윤약사에 대해 어떻게 아세요? 저희들이 보면 자주 늦게 들어 오고 그래요. 그렇지 않니 ? 간혹 복도에서 마주칠 때 보면 술 냄새 확 풍기면서 들어 오는 적 많았거든요."
"그래요. 언니. 한동안 잠잠하더니 요즘은 더 그런 것 같애요."
옆에서 최간호사가 거든다.
"그런데 과장님, 윤약사한테 관심 있으세요 ?"
김간호사가 내 눈을 빤히 쳐다 보면서 묻는다.
"관심은 무슨."
눈을 피하면서 대답은 했지만 사람의 마음과 감정의 흐름은 아무리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나보다. 특히 나를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는 이에게는 감춘다는 것이 불가능한 듯 했다.
"과장님 저 술 한잔 주세요."
김간호사가 소주잔을 내게 내밀었다.
"김간호사 술 잘 먹나보지 ?"
"아니예요. 걔 술 잘 못 먹어요. 과장님."
임간호사가 거든다.
"너 갑자기 왜 그래 ? 오늘 술 받냐 ?"
"그냥 술 먹고 싶어서. 왜 나는 먹으면 안되. 언니 ?"
"과장님 2 차 가요. 저 술 좀 사주세요. 아니면 노래방 갈까요 ? 과장님 환영 회식때 윤약사님이랑 소아과 하과장님이랑 노래방 가셨다면서요 ?"
"얘, 얘, 왜 그래, 얘가 요즘 남자 친구하고 좀 안좋은가 봐요. 아까 소주 한잔 밖에 안 먹은 것 같은데 벌써 술주정이네. 그만 일어나요. 과장님."
"그래요. 오늘은 그냥 이만하고 다음에 이차 가요."
나도 윤약사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 편히 술을 먹을 기분도 노래를 할 기분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일은 직접 약국으로 한번 찾아가 보아야 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웬일이세요 ? 약국에는 한번도 오신 적이 없으신 분이"
얼굴은 일단 밝아 보여서 안심이다.
"그냥 와 봤어요. 다른 사람은 없어요 ? 전산 담당은 어디 갔나봐요 ?"
"예 잠깐 원무과 갔어요."
"혹시 요즘 무슨 일 있으신가 해서요 ? 제 진료실에도 일절 안 오시고. 그러고 보니 안색도 안 좋으시네요."
"아니 뭐 별일 없어요. 약간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림도 마무리 지어야 하고 해서 언제 시간 한번 내달라고 왔어요."
"글쎄요. 요즘 집안 일로 좀 바쁜 일이 있는데......."
그녀의 얼굴에 또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면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때 원무과 갔다던 직원이 들어 오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제가 조금 이따 메일 보낼께요. 메일 주소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녀가 종이에 주소를 적어서 건네 주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서둘러 인사를 하고 진료실로 돌아 왔다.
돌아 오면서 바로 컴퓨터로 메일창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왜 이러는 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괜히 걱정되는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군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만나서 말씀하시기 곤란한 것이면 답장 메일 주십시요.
얼굴 마주 보고 말하는 것보다 편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이혁 올림.>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인터넷 메일을 보낸다는 것이 우습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편리한 수단이었다.
메일을 보내놓고 읽었을까 답장을 보내올까 기대를 하면서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뭐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힘들어 하는 어떤 여자-남자였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가 있어서 혹시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마음일 것이다. 호감이라고 하면 호감이고 관심이라고 하면 관심이다. 그런 것이야 사람들 간에 얼마든지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아무 문제될 것이 없지 않겠는가 ?
"딩동"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선생님이 저한테 관심 가지고 계신 것 알고 있어요.
저도 선생님 한테 관심있어요. 아니 호감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림도 그려 달라고 했던 거구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순수하신 선생님을 어쩌면 제가 마음 아프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좀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이따 저녁에 진료 끝나는 시간에 제가 진료실로 가겠어요. 그러나 잘 생각해서 답장 해 주세요.
선생님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일 생길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김혜원씨 퇴근하고 난 후에 갈께요.>
그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어떤 고민과 번민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어찌 내가 그 손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아주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 젊고 예뻐서 아이들한테 인기를 독차지 하던 여선생님이 나를 보아 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그녀가 내게 손 내밀어 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 같다.
기다리겠다는 답장을 보내놓고 하루 종일 저녁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기울어 진료실 안으로 그림자가 길게 깔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 진료가 마감되었다.
진료가 끝났는데도 가지 않고 있으니 김간호사가 이상하게 보는 눈치였다.
"과장님 퇴근 안 하세요 ?"
"갈 거예요. 아직 마무리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김간호사 먼저 퇴근해요."
김간호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제는.....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죠.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요. 뭐 별 이야기 한 것도 없는 데 뭘."
"제가 술이 약한데 어제 소주를 두 잔이나 먹었더니 겁이 없어 졌나봐요.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먹나봐요. 말하고 싶은게 있는 데 말하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려고."
"그래요, 그런 점도 있어요."
윤약사 생각 때문에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는 데 계속 질문이다.
"과장님은 하시고 싶은 말 있지만 하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하세요 ?"
"나 ? 나는..... 그냥 해요. 나는 하고 싶은데로 그냥 말해요. 하고 싶은 데로 그대로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요."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으시겠어요. 가슴에 쌓아 두지는 않아도 되니까."
"김간호사도 그렇게 해봐요. 그렇게 사는 게 훨씬 속편해요. 물론 그게 대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예 그럴께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면 그렇게 해 보도록 저도 노력 해야 겠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그래서 탈인데 김간호사는 나이에 비해서 너무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쉽게 살아요, 쉽게 생각하고.
자 나는 조금 이따 갈 거니까 그만 퇴근해요."
"예."
진료실에서 시간을 때우자니 눈치가 보여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 내 좋아하는 정문 근처의 은행나무에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초록 이파리들이 무성하여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은 푸르른 이 은행나무도 가을이 되면 낙엽이 져서 다 떨어 지겠지. 그렇게 내 인생의 하루하루도 이파리들처럼 어느 날엔가는 전부 떨어져 없어지겠지. 아니면 무성하게 달린 채로 그냥 말라 죽거나.
아직 내 마음으로는 푸르른 잎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내 인생의 이파리들도 얼마만큼은 노래졌을 것이다.
머리를 들어 보니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이 군데군데 보인다.
참 오랫 만에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 같았다.
매일 땅만 보고 살다가 오랫 만에 하늘을 보니 사람이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둡고 딱딱한 땅보다야 밝고 부드러운 하늘에 머리를 두어야 조금이라도 복잡한 머리가 맑아지지 않을까 싶다.
머리에 담긴 복잡한 생각과 번민들이 마음의 창이라는 눈을 통해 다 빠져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눈물을 매개로 하지 않고 그런 세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도가 쌓이면 그런 매개 수단 없이도 머리를 비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문득 윤약사가 생각났다. 빨리 진료실로 가보아야 겠다. 어쩌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발걸음이 급했다.
"선생님 어디 다녀 오시나봐요?"
"예 잠깐 바깥 바람을 쏘이느라구요. 들어 오세요. 잠긴 진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갔다."
"제가 이렇게 오는 것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 후회하지 않으실 자신 있으세요 ?"
"예, 저는 후회는 하지 않으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결정이고 삶이라면 후회하는 것보다는 후회하지 않도록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살려고 합니다. 결과는 어차피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만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회 하지 않으신다면 됐어요. 저 사실 선생님께 진찰 받으려고 왔어요."
"무슨 진찰이요 ?"
갑자기 진찰이라니 의외였다.
"초음파 검사 좀 해주세요."
"초음파요 ? 그야 어려울 것 없지만. 그럼 이리 들어 오세요.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신가보죠 ?"
"예. 여기 누우면 되나요 ?"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이니까 의자에 앉아서 익숙한 솜씨로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혹시 난소의 물혹과 같은 이상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런 것이야 젊은 여성들에서도 흔히 있는 이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자궁 안에 무언가가 보였다.
임신 6 주 크기의 태낭이었다. 분명히 임신 태낭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이제 아셨어요 ? 왜 제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지 물어 본 이유를. 임신 맞지요 ?"

XIX

읍내를 둘러 보니 마침 해수 불가마 찜질방이라고 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병원에서 수술로 심신이 지쳐 있을 때 일동 쪽에 있는 찜질방에서 피로를 풀었던 기억도 있었는데 목욕만큼 몸을 상쾌하게 해주는 것도 흔치 않았다는 기억이다.
그러나 대낮부터 찜질방이라니 사실 좀 생경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비단 찜질방 뿐 아니라 이곳에 내려 와서 하는 다른 모든 것들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돌아 다니는 것부터가 익숙한 행동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근무하면서 여지껏 이런 시간의 휴식을 가져 본 것은 손꼽을 정도 밖에 되지를 않았다. 그나마도 결혼 후 이렇게 혼자서 보내는 휴식이란 내 기억에는 있지를 않았다.
이를테면 이것은 첫경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첫경험이 그렇듯 그런 경험은 뇌리에 강인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런 강인한 인상은 다음의 행동과 방향에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번의 경험은 내게 영향을 끼칠 시간을 별로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사람의 행동과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팩터는 크게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흔히 욕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치고 나가려는 파워이며 엔진과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의식이라고 하는 데 억제하고 통제하는 힘이며 브레이크와 같은 것이다.
이 둘은 모두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강력한 파워를 가진 것들이다.  그러나 욕망이 독립적인 데 비하여 자의식은 다소 종속적이다. 즉 브레이크란 앞으로 나가려는 엔진의 힘이 작용하고 있을 때만 그 존재의 이유가 부여되는 것이며 엔진이 꺼져 있는 상태에서는 그 힘이 작용하지 않거나 작용하더라도 영향이 없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힘은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본능적 욕망이든 명예욕이나 자아 실현과 같은 비교적 높은 차원의 욕망이든 무엇을 얻고 싶은 욕망이거나 아니면 무엇을 버리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모든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욕망을 통제하는 자의식의 작용에 의해 방향이 바뀌거나 속도가 바뀌거나 아니면 아예 추진력을 상실할 수 도 있다. 모든 욕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욕망은 천부적으로 물려 받는 것인데 반하여 자의식은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생겨난다.
그리고 그런 자의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인은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식이며 그런 경험 중에는 첫경험이 가장 큰 인상을 남긴다.
처음의 성관계를 폭력적 성관계로 시작한 사람은 이후의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하여도 상처를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수가 많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성행위라고 하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어서 크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차가 위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의식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욕망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은 대개의 경우 문제를 초래하게 되지만 반대로 자의식은 어떤 경우에는 그 강도로 인하여 반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자의식은 기본적으로 억제력이고 비활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활성화 될 경우 인생을 끌어나가는 힘을 상실케 만든다.
그것이 너무 강할 경우 삶은 그저 그렇고 재미가 없으며 아무런 희망도 없다. 그래서 심각한 고독감과 허탈감을 초래하게 만든다.
사실 희망이라는 것도 겉 껍데기를 벗겨 놓고 보면 그 고갱이는 욕망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의식이라는 억제력이 지나치게 강하게 작용할 경우 욕망을 숨기고 있는 희망의 싹이 트지를 못하며 자라서 꽃을 피우지도 못한다.
결국 영원히 달리지 못하는 철마와 같다. 이미 살아 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의미는 어떤 점에서는 욕망으로 펄떡이는 감정과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것일까 ?

뜨거운 물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모든 피부의 세포가 잠에서 깨어 나기 시작한다.
피부는 뜨거움에 전율하며 근육은 긴장으로 파드득 거리고 심장은 흥분하여 피를 보내기 위해 들리지 않는 거대한 소리로 쿵쾅거리고 있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는 살아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내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고 있으며 따스한 물줄기가 지나면서 주는 쾌감을 즐기기 위해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창녀처럼 피부들은 모공을 활짝 벌리고 있다.
내 몸이 그런 욕망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나는 빗속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온몸에 빗줄기가 내려 퍼붓는 느낌이 그렇게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없었다.
머리에 내린 빗줄기가 그대로 몸을 뚫고 내장을 지나 발끝을 통해 흘러가는 것처럼 내 한몸이 그냥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무엇인가가 내 몸 안을 훑고 지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비가 와도 더 이상 그때처럼 길거리로 뛰어나가지 않으며 그때처럼 합일을 느끼지도 못한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서 너무 두꺼워진 피부 때문에 비가 몸을 뚫고 들어 오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피부가 너무 두꺼워 졌다.
그런 피부를 다 벗겨낼 듯이 때수건으로 피부를 박박 문질러 보았다.
그동안 가벼운 샤워에 익숙해져서 인지 피부는 너무 오랜 만의 애무를 견디지 못하였다. 여기저기 벌겋게 일어나서 따끔거리고 쓰라린 통증을 일으킨다.
가볍게 비눗칠을 하고 물기를 닦고 황토방이라고 써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당황스러운 뜨거운 열기가 얼굴로 확 밀어 닥쳤다.
그녀의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닥쳐왔던 그런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굳이 시작을 말하라면 그때가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최초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 이 뜨거움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열기가 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었다.
머리를 벽에 기대고 깊이 숨을 들이 마셔 뜨거운 공기를 가슴 한가득 담아 보았다.
쓴 위스키가 입을 지나 목구멍을 지날 때 주는 자극처럼 열기의 덩어리는 코를 지나 기관지를 지나 폐속으로 그 뜨거운 기운을 옮겼다.
대지에 싹트는 생명의 움처럼 몸에서 이마에서 송글송글 땀방울이 솟아난다. 솟아 났다가 다시 피부를 타고 주르륵 흘러 내린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붕 뜨는 것 같다.
모든 자의식을 버리고 몸이 바라는 욕망에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또한 황홀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살면서 그렇게만 할 수 없었던 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미래가 두려웠으며 변화가 무서웠다.
조금만 일찍 앞으로 나아갔다면 아마 내가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고 인생을 허비하면서 40 년을 보냈다.
내가 그녀라는 늪에 빠지게 된 것은 어쩌면 허비하면서 제대로 살아 보지 못한 40 년이 너무 억울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꽉끼는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추어 보지 못한 춤을 제대로 추어 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너무 늦게 그 옷을 벗었으며 너무 늦게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댓가를 치루고 있다.
이제 찜질방을 나가면 돈을 주고 여자를 살 것이다.
나는 여지껏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안아 보지 안았다. 다른 여자의 안으로 들어 가는 것이 두려웠으며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것도 무서웠다.
다른 사람의 등 뒤에서 칼을 꽂은 적이 없으며 다른 사람이 던진 돌에 맞고도 그냥 피를 흘리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입었던 두껍고 견고한 옷들을 하나씩 벗어 버릴 것이다.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만든 자의식의 껍데기들을 하나씩 벗어 던져 버릴 것이다.
어릴때 옷이 젖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감기가 걸릴까 겁내하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 속을 달리면서 느꼈던 희열 속으로 달려나가 볼 것이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할 이 없는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거나 혹은 마지막 날 전날 쯤일테니까.
밖으로 나오니 아직은 날이 너무 밝았다.
아무리 색시집이라도 초저녁도 되기 전부터 손님을 받는 곳은 없을 것이다.
적당히 소일 거리를 찾다가 마침 거문도로 출항하는 배가 있다고 하는데 왕복 두시간이라니까 적당할 듯 싶었다. 왕복표를 끊었다.
오후 시간이어선지 350 명 정원의 배에는 사람이 많이 타고 있지는 않았다.
배는 소록도를 돌아 검푸르게 보이는 바다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꼬불꼬불한 해안선과 점점이 뜬 많은 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고는 했다. 아름다운 지는 모르겠으나 다도해인 것만은 확실했다.
배가 육지에서 멀어지면서 파도가 점점 거세어 졌다. 물결은 잔잔하고 흐린 날씨도 아니었지만 먼 바다의 파도는 만만히 볼게 아니었다.
2 ~ 3 m 씩 올라오면서 선창을 힐끔거리는 파도는 흰 포말로 흡사 거대한 동물이 아가미를 벌렸다 닫는 것 같았다.
동시에 배가 위아래로 상당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비행기를 탈 때도 그렇더니 배를 탈때도 마음이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배를 타면서 후회하기 시작한 것은 채 20 분도 지나지 않아서 였다. 이제 중간에서 내릴 수도 없는 채로 40 분 정도를 후회하면서 가야했다. 가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
결국 돌아 와야 하는 길을 떠나면서 가는 동안 후회해야 했다.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도 나를 모르며 나도 이름을 모르는 어떤 여자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참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녀에 대해서도 나는 과연 하나라도 알고 있는 것이 있었을까 ?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이라는 것.
영화를 좋아하고 키스를 좋아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아는 것이 과연 내가 그녀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
그녀가 입고 있는 블라우스에 대하여 무슨 색이며 어떤 브랜드인지 아는 것이 내가 그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의 전제이고 사랑하는 것의 필요 조건은 아니었지만.   
가는 동안의 지루함과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이름 모르는 그녀를 안는 생각이라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야한 생각은 시간을 많이 까먹어 주었다.
상상으로부터 내려와 현실로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배가 돌아와 녹동항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밖이 많이 어두워져 이름 모르는 나의 그녀를 만나기에 손색이 없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XX

"임신 6 주입니다. 정상적으로 착상되었군요. 흔히 말하는 대로 축하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군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 축하해 주시고 싶으세요 ?"
"왜요 제 생각이 중요한가요 ? 바깥분과 화해하신 모양이네요. 그런거라면 축하드리겠습니다."
"아니예요. 남편은 모르는 사실이예요."
"예 ? 그럼......"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얼마전 소아과 하과장의 말이 떠올랐다.
응급실 당직 선생님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그가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나은 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는 말해야 할 것 같네요. 소아과 하선생님이세요. 아이 아빠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긴 종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 속이 하애지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눈을 몇번 깜빡여 보았다. 긴장 했을 때 해 오던 내 오랜 습관처럼.
나는 그녀가 누구의 아이를 임신했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다.
친구도 아니며 그저 직장 동료일 뿐이다. 굳이 특별한 관계가 있다면 그림을 하나 그려 주기로 약속한 아마추어 화가와 아마추어 모델의 사이라는 것 뿐이다.
내가 머리 속이 하애질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가 내 가슴을 손아귀에 넣고 꽉 쥐어 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꽉 쥐었던 손을 풀었을 때 막혔던 피가 통하는 것처럼 한꺼번에 막연한 슬픔이 해일처럼 거대하게 밀려 왔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어떻게 돌아 갔는 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아마 무슨 말인가를 했고 나도 대답을 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내가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한참이 흐른 뒤였다. 경비 아저씨가 외래 진료실에 계속 불이 켜져 있어서 이상한 생각에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아마 밤새도록 그러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이 과장님 아직 퇴근 안하셨어요 ? 무슨 일 있으신가요 ?"
"아 예 일이 조금 남아서요. 지금 나가겠습니다."
황망히 병원 문을 나서니 밤 공기가 아직은 쌀쌀한 지 응급실 쪽에서 서성이는 보호자들이 옷깃을 세우고 몸을 오그리고 있는 모양들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하과장의 아이를 임신했다. 지금 6 주라면 아마 그녀를 모델로 데생을 하던 한달 쯤 그 무렵에 임신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명목 하에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혼자 흐뭇해하던 그때 쯤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 그녀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왜 내게 알려 주었을까 ?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산부인과를 들러 얼마든지 검사를 할 수 있었을텐데.
그녀는 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리 슬픈 기분이 드는 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관사로 돌아왔다. 돌아 오는 길이 이렇게 먼 거리였던가 싶게 한참을 하염없이 걸었던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 오자 마자 거실의 불도 켜지 않고 물부터 끓였다. 아주 뜨겁게 펄펄 끓도록 끓였다. 칙칙 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은 뜨거운 물로 커피를 탔다.
뜨거운 커피의 향이 온 방에 퍼진다. 잠시 심호흡을 했다. 현관의 출입등도 꺼지고 가스렌지의 불이 꺼지니 거실안이 깜깜해 졌다.
저 뒷 배란다 창으로 병원의 가로등 누런 불빛이 조금 스며들고 있을 뿐이었다.
커피를 두 모금인가 세모금쯤 마시고 나서 컴퓨터를 켰다.
물어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시간에 그녀가 메일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침이나 되어 출근을 해야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도저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말을 하지 않고는 글을 쓰지 않고는 답답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메일 창을 열어 그녀의 주소를 입력했다.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이 아빠가 소아과 하과장님이든 아니든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관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굳이 제게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진찰을 받을 곳이 저 밖에 없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많은 점에서 불편하셨을 텐데 일부러 저를 찾아 오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윤약사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제가 어떤 기분일지 전혀 짐작을 하시지 못하시고 그런 행동을 하신 것인지 하는 것도 알고 싶습니다.
저는 윤약사님이 어떤 마음으로 저한테 초상을 부탁했는지 혹은 왜 저한테 관심을 표현했는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혹시 그런 관심조차 가지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에게 말이나 글이 생겨나기 오래 전부터 인간은 서로서로 아무런 문제없이 의사 소통을 해 왔습니다. 다만 좀더 복잡한 사물이나 행동을 표현하기 위한 필요 때문에 말과 글이 생겨난 것 뿐일 겁니다.
사랑이든 호감이든 혹은 증오든 반감이든 태어나면서 부터 존재해 왔던 그런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는 굳이 언어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꿀벌이나 개미 등 집단적 사회를 이루는 곤충들은 언어없이도 아무런 문제 없이 거대한 집단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말에 우선하는 그런 소통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엄마도 젖을 빠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윤약사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알고 계셨겠지만 말이지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서 쉽게 눈치를 챌 수 있게 하는 감정은 그 사람을 걱정하는 감정입니다.
저는 아프신지 어떠신지 요즘 걱정이 많이 되었었습니다. 아마 윤약사님도 제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걱정을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걱정을 한다는 것은 사랑의 감정처럼 자신의 모두를 바쳐 도와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상대를 아프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마음이 조금 아픕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많이 아픕니다. 내가 그러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아픕니다. 저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예요.
오늘 하신 행동을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최소한의 호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저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윤약사님의 임신 사실이 저를 조금쯤은 힘들게 할 지 모른다는 것을 아마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그렇게 하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걱정을 끼치게 한다는 것은 호감을 가진 상대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니까요.
메일 보시는 대로 답장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이혁 올림.>
저녁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밤 늦게 마신 진한 커피의 카페인 때문에 흥분을 해서인지 글이 두서없이 나가고 오자가 숱하게 생겨서 문장 하나 하나를 꾸미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눌러야 할 지 아니면 편지를 삭제해야 할 지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 데 "딩동"하고 현관의 벨이 울렸다.
옆집의 벨 소리인가 싶어 가만히 두었더니 한번 더 벨이 울린다. 내집이 확실했다.
"누구세요."
이 시간에 올만한 사람이 없었고 온 적도 없었다. 분만실에서야 전화나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관사로 올 일이 없었다.
만약에 분만실에서 온 것이라면 굉장한 응급 상황일 것이다.
"저...예요."
윤약사의 목소리였다.
불을 켜고 문을 여니 술냄새가 확 풍기면서 약간 흐트러진 자세로 윤약사가 서있었다.
"저......기숙사 들어가다가 선생님.....방에서 희미한 불빛 새어나오는 것 보고 차 한잔.. 얻어 먹으려고 왔는데....안되나요 ?"
이미 술이 취했는지 말이 중간 중간 끊어지고 있었다.
"밤도 늦었고 이미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그만 들어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기숙사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왜 차 한잔도... 주시기 싫으세요 ? 제가...부담스러우세요 ?"
"......"
큰 일이었다. 시간이 늦어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관사의 다른 과장들 가족들이 간혹 밤늦은 시간에 편의점을 다녀오기 위해 나오는 적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당직 간호원들이 지나다가 복도 쪽을 들여다 보면 보이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럼 잠깐만 들어오세요. 다만 차만 한잔 드시고 곧 가셔야 합니다."
약간 휘청거리는 그녀의 몸을 부축해서 거실로 안내했다.
"짐이.....거의 없으시네요. 제가 있을 때도 그랬었는데......, 커피 드시고 계셨나...봐요 ? 저도 커피...한잔... 주세요. 진한 카페 라테로요. 아참 여기는 그런 것 없지."
"앉으세요. 잠시 기다리세요."
커피 물을 올리면서 이 순간이 지금 내 인생에 어떤 굴곡으로 기록될 것인지 생각을 해 보았다. 저 뒤에 무방비로 앉아 있는 저 여자가 내 인생의 무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다만 조연일지 주연일지 엑스트라인지 또는 비극적 스토리일지 해피엔딩일지 그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무대위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쨍그랑"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고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에 싱크대에 놓았던 잔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커피 잔이 딱 두개 밖에 없었는데 하나가 깨져 버려서 깨진 유리를 쓰레기 통에 담고 내가 마시던 잔을 씻어서 비우고 진한 갈색 커피를 따랐다.
카페 라테는 없었으나 우유를 함께 가져다 주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고마...워요. 선생님. 제가 너무 밉죠 ?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선생님...괴롭게 하려는 것은...아니었어요.... 참 누구한테 메일... 보내실 참이었나봐요 ? 혹시 제게 보내시는 거예요 ?"
그녀가 거실에 놓인 컴퓨터에서 시선을 돌려 오면서 물었다.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고."
흡사 나쁜 일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서둘러 메일 창을 닫아버렸다.
"제가 다른....산부인과를 가도 되는 데 왜.....선생님 한테 갔는지 모르세요 ?"
"......"
나로써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 이유를 모르고 있어서 물어 보고 싶었던 참이었으니까.
"선생님이....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알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 지.... 궁금했어요... 어떠셨어요 ?"
"너무 늦었습니다. 빨리 가셔야 될 것 같아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그녀가 네 하면서 일어나서 가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저라는 여자....여떻게 생각하세요 ? 남편 놔두고 다른 남자랑 바람이나 피고.....밤마다 아무... 남자들하고나 어울려서....술이나 마시고 다니고 하는.....행실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시죠 ?"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거짓말.... 안하셔도 되요. 소문 들어서....다 아시잖아요. 저 사실 소아과 하선생님 좋아했어요. 그리고 오늘도 응급실 당직 선생님들 하고 만나서....술 먹고...노래하고....그러고....들어 오는 길이었어요."
그녀가 말하면서 무척 힘들어 했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한마디 한마디 그녀의 말에 슬픔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깊고 어두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혹시 그 안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봐 겁나서 똑바로 들여다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그렇지만......외로워서..외로워서 그랬어요. 누군가 저를 으스러지도록 잡아...주기를 바래서...그래서..그랬어요."
가슴에 왠지 모를 뻐근한 고통이 밀려 왔다.
그대로 여기에 계속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겨우내 얼은 단단한 얼음이 해빙기에 쩍쩍 금이 가는 것처럼 견고한 내 의식의 바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안되겠어요. 너무 취하셨어요. 일어 나세요. 제가 바래다 드릴께요."
"아니요. 저 괜찮아요...... 조금만 더 있다 가게 해 주세요. 선생님도.....저한테 호감 있으시잖아요. 그럼....제 손....좀 잡아 주세요."
"알았어요. 잡아 드릴께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예요. 일어 나세요 가면서 말씀하세요.제가 부축해 드릴께요."
"소아과 하선생님이......아이.....지우래요. 물론....저도 낳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그냥.....외로웠을 뿐이예요."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 주었다.
"오늘 응급실 인턴 선생님 따라서..... 못 이기는 척 하고 여관에라도...그렇게...따라가 버리고 싶었어요. 어차피....그런 여자로 소문 났다면서요 ?"
"......."
"그런데 그렇게.....못했어요. 선생님....생각..나서 그렇게....못했어요. 저를 지켜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제가 조금 기대도 될 것 같아서....저의 멘토가...되어 주실 수 있을 것 같았어요.....그래서 이리로 왔어요."
내눈에만 보인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별똥별이 무리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아 주었다.
내 힘으로는 쉽게 빠져 나오기 어려운 깊은 늪으로 내가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XXI

왜 색시집들은 다 빨간 등을 켜놓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보면 그런 음화나 음서들을 빨간 책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빨간색이 흔히 정열과 관련된 색이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빨간 색이 주는 그런 선입견 때문에 빨간 등으로 희미하게 밝혀 놓던 그 안에서 얼핏 얼핏 비치던 여자들의 허연 허벅다리를 보면서 조금 설레이고 흥분되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나는 사람인 것처럼 흘깃 좁은문 안을 들여다 보니 그리 젊지 않은 여인네가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다.
익숙한 척 들어 가보려 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좁은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쉽게 들어가지지를 않는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문'에서 알리사가 들어가고자 했던 좁은문도 그랬을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제롬으로부터 지상의 사랑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녀가 구하고자 한 것은 남녀간의 사랑을 통한 지상의 행복이 아니라 순례자적 삶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천상의 신성함이었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혼자 걸어 갈 수 밖에 없었던 알리사의 그런 좁은 길로 난 문이 지금 내 앞의 좁은문과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좁은문인 것은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지금까지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해 오던 가치관을 부수고 행복이던 사랑이던 내 소중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는 좁은문.
그런 문이 내 앞에 있었다.
알리사가 앞에 섰던 문과 내 앞의 문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나를 끌어 주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저씨 놀다 가세요."
팔을 잡아 끌어 주어서 마음이 편했다.
못 이기는 척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향내가 나는 홀을 지나 좁디 좁은 방들이 늘어선 복도 아니 복도라고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복도에 대한 모독이니까 그냥 틈이라고 하자. 그런 틈을 지나 어떤 방 앞에 섰다.
두사람이 간신히 누을 수 있는 방에 이불과 배개가 놓여 있다.
백열등이 달려 있는 좁은 방에는 머리를 들면 천장이 닿을 정도로 낮았다.
실제로 닿지는 않겠지만 너무 낮은 천장으로 지래 머리를 숙이고 몸을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서 머리를 수그리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자신에 대하여 당당한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 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처 받고 괴로와 하고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그런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수그려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은 가장 오랜 역사의 직업답게 철저하게 준비된 느낌을 주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몽상이겠지만.
그러나 바닥에 깔린 지저분한 이불과 냄새는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아테네에 있었다는 창녀의 등급에 대한 글이 생각났다.
가장 싼 창녀는 주인들에 속한 노예들이고 그 다음은 거리를 다니며 호객하는 창녀라고 했다. 그리고 소위 고급 콜걸이라고 하는 창녀들이 있는 데 그 시대에는 '여자 동행'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를테면 술을 같이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현지처처럼 손님과 여러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지금 나를 재촉하는 이 여자는 그저 일을 빨리 끝내고 다음 손님을 받을 생각 밖에 없을 것이다. 노예는 아니지만 동행도 아니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은 아마 그런 동행이었던 것 같다. 역시 예상은 또 빗나갔지만.
내가 홀에 넣으려고 한 볼은 너무 세게 쳐서 홀컵을 지나쳐 버리거나 아니면 소심해서 마음껏 치지 못하고 홀컵 보다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섰다.
이리 왔다가 저리 가는 것. 꼭 잘치지 못하는 골프처럼 나는 세상을 그렇게 살았다.
아내를 충분할 만큼 많이 사랑하지 못했고 그녀를 괴롭지 않을만큼 적당히 사랑하지도 못했다.
"아저씨 안 하실 거예요 ?"
그녀가 자꾸 재촉이다.
하고 싶다. 나도 하고 싶지만 욕망이 일지를 않는다. 나는 공이고 그녀는 홀이다.
그런데 홀은 그 자리에 있지만 공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내를 뜨겁게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여지껏 여자로서의 아내를 안으면서 한번도 불능으로 고생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돈을 주고 사서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이 여자에게서는 아무런 욕망이 일지를 않는다.
옆방의 여자는 절정쯤 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방음이 되지 않아 옆방에서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 사이로 여자의 억제하지 못하는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흥분을 일으키지 못했다.
내 앞의 그녀는 발기하지 않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해서인지 아니면 재수없는 놈한테 걸렸다는 생각 때문인지 마뜩치 않은 애무를 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내 허리와 가슴과 허벅지를 더듬는 그녀의 손은 전혀 세포의 감각을 일깨우지 못했다.
오히려 저녁의 뜨거운 물만큼도 나를 흥분 시키지 못했다.
여자는 이제 빨리 끝내고 손님을 더 받아야 겠다는 생각에서 보다는 자신의 여자로서의 자존심에 대한 상처 때문에 더 절박해 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흔히 키스나 오랄 섹스는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입으로 정성껏 애무를 해 주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주인과 노예 또는 손님과 종업원이 아니었다.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성실하고 부드러운 애무 때문에 잠시 흥분이 되려 하였으나 옆방에서 계속 들려오는 질퍽거리는 소리와 몸을 꼬이게 할 것 같은 신음이 오히려 흥분을 가라 앉혔다.
더 이상 시도해 보아야 소용 없을 것 같았다.
"됐어요. 몸이 피곤해서 말을 듣지 않네요. 화대는 놓고 가겠습니다."
이런 경우 남자가 더 비참한 건지 여자가 더 비참한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들은 서로 주파수가 맞지를 않았다.
잠시 여자가 하던 동작을 멈추고 무언가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약간 거친 숨소리가 들렸지만 디른 종류의 흥분으로 인한 것이었다.
"썅, 아저씨 하려고 온 것 아니었어요 ? 불능이면 집안에 처밖혀 있던가. 왜 와서 사람 힘 빼고 지랄이야. 에이 재수없어."
여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팔짱을 낀 채 막말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대로 있으면 얼마나 더 험악한 말을 들을지 알 수 없었다.
서둘러 좁은문을 나왔다. 역시 좁은문은 함부로 들어갈 곳이 못되었다.
나는 이미 좁은문 보다는 큰 문으로 들어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큰 문이 있는 호텔로 돌아 가기로 했다. 여하튼 그 문도 그리 큰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내가 들어 갈 수 있는 가장 큰 문이고 내가 들어 가려고 했던 문들에 가장 가까운 문이었다.
오늘은 그만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혀야 겠다.
내 인생의 지난 40 년처럼 이제 3 일째 날도 의미없이 지나간다. 아직 내가 소록도를 찾아 온 이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의미를 발견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일상을 마음껏 즐기지도 못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묘비명에다 썼다는 버나드 쇼처럼 항상 머뭇 머뭇하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XXII

그녀의 가슴은 따뜻했다. 상처를 받도록 그냥 두기에는 너무 여리고 조그마했다.
가슴이 들썩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울음이 진동이 되어 내 가슴에도 공명을 일으켰다. 으스러지게 안아 주었지만 좀체 그녀의 울음은 그치지를 않았다.
"힘 내세요. 제가 도와드릴께요."
얼마쯤인지 모르겠지만 한참동안 그녀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차라리 영원히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녀를 내 가슴에서 놓아주는 순간 틈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많은 번민들과 고통들이 스며 들어 올 것 같았다.
그런 예감 때문에 조그만 틈도 주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술냄새와 남자들의 담배 냄새 사이로 아련한 그리움처럼 그녀의 향기인 자몽 냄새가 풍겨 온다.
이 여자를 지켜 주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지켜주어야 할 단 하나의 이유가 생기고 있었다.
직장 동료로써, 또는 화가와 모델로써, 또는 서로 잘 모르는 한 남자와 여자로써든 어떤 이유로도 할 필요가 없지만 단 하나의 이유로 내가 그녀를 지켜 주어야 했다.
그녀가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서야 내 마음 속에 있던 감정의 실체를 알았다.
그녀의 어둡고 깊은 눈동자에 서린 그늘을 보면서 막연히 슬프기만 했던 정체 불명의 감정이 향하던 종착지를 이제 알았다.
아직 그렇게 큰 것도 뚜렷한 모습과 색깔을 띄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것은 분명 그녀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 사랑하던 해나를 잃은 상실감을 보상하기 위한 대체 감정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제 시들어 가는 인생을 그대로 다시 흘려 버리기 싫어하는 아쉬움이라고 해도 좋았다.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 일탈하고 싶은 유혹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름은 어떻게 붙이던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곁에 있는 게 좋았다.
호감이라고 하기에는 진한 고통의 얼룩이 묻어 있었으며 동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선생님, 저....수술 받고 싶어요. 아기......지우고 다시 시작하고......싶어요. 선생님과....다시 시작하고...싶어요. 이번만큼은.....아프지 않게 그렇게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그래 줄 수..... 있으세요 ?"
얼마든지 지켜 줄 것이다. 그녀로써는 다시 하는 것이고 나로써는 처음 시작하는 것이지만 얼마든지 그래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나 ?
내가 사랑하기 시작한 그녀의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
그녀가 바라고 있다. 나는 그녀가 바라는 것을 다 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 일 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가 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지금은 아무 말 하지 마세요."
"그렇게....해 주세요. 제발.....저를 도와 주세요."
"윤약사님은 지금 정상이 아니예요. 몸이고 마음이고 너무 힘든 상태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쉬고 내일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이야기 해요. 제가 메일 보낼께요. 아니면 약국으로 가든지 할께요."
"알았어요....꼭 메일.....보내 주세요."
"그럼 이만 가야죠? 다른 사람들이 보면 둘다 힘들어져요. 제가 모셔다 드릴께요."
간신히 그녀를 달래서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워서 그녀가 몸을 가볍게 떨었다. 어깨를 꼭 안아 주었다.
기숙사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아서 한 10 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거리였다.
밤 하늘에서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 보았던 카시오페아 자리를 찾아 보았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별이 빛나고 있었지만 그때의 그 별과는 많이 다른 별이었다. 그때처럼 허전한 별이 아니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스테파네트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친 나머지 목동의 어깨에 고이 잠든 것처럼 그녀가 지친 마음을 내 어깨에 고이 기대고 있었다.
인적이 끊어진 한적한 길을 천천히 걸었다. 이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것처럼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고 한 아버지의 딸이고 그리고 이제 뱃속에 있는 한 아이의 엄마였다.
또한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으며 한 아이의 아빠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 사람들일까 ?
아직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될지 잘은 모르지만 그녀는 아마도 나의 Merabiliogio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게 너무 소중하고 거대한 것.
그러나 지금 그녀가 내게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자몽 향에 마비가 되어 그녀의 향기를 더 이상 느끼기 어려울 즈음 어느덧 기숙사에 도착했다.
그녀가 머무는 2 층 복도를 지나면서 그녀의 방이라고 알려준 205 호 쪽을 향했다. 정적이 감도는 어두운 긴 복도에 두사람의 발소리가 끌리고 있었을 때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 김혜원 간호사와 마주쳤다.
윤약사는 정신이 없어 눈을 뜨고 있지 못해서 못 보았겠지만 내 눈 앞에는 원래도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김간호사의 놀란 표정이 있었다.
복도가 어둡기는 했지만 나와 윤약사의 모습을 알아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과...과장님....."
놀라서 소리가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 지 그녀는 가까스로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온 아파트 사람을 깨우고도 남을 만한 커다란 소리처럼 들렸다.
"김간호사. 어디...가나 봐요 ? 밤이 늦었는데."
이 상황에 별로 적절한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할 말이 없었다. 무언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에서 정상적인 문장이 만들어져 나오지를 않았다.
그녀는 잠시 서있는 듯 하더니 편의점에 살 것이 있어 나왔다는 말을 황급히 던지고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평소의 그녀 모습과는 다르게 굉장히 서두르는 모습이고 잘 가시라는 인사도 없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일단 다른 사람에게 또 들키기 전에 빨리 윤약사를 집안으로 들여 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문을 열고 휘청거려 걷는 것도 힘들어 하는 그녀를 침대에 대충 눕히고 이것 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바로 방을 빠져 나왔다.
이불도 제대로 덥어주고 자는 얼굴이라도 한번 더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그럴 경황이 없었다. 방바닥이 펄펄 끓는 뜨거운 돌인 것처럼 종종 걸음으로 서둘러 방을 나왔다.
김간호사는 아직 들어 오지 않았는지 그녀가 나온 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
계단을 내려 아파트 정문을 서둘러 빠져 나오려는 데 김간호사가 불쑥 나를 불렀다.
"과장님."
"어 김간호사. 아직 안들어.....갔어요 ?"
"지금 잠깐 말씀하실 시간 있으세요 ?"
"그래요. 괜찮아요. 말해요. "
죄진 사람처럼 쭈삣거리면서 그녀에게 붙들릴 수 밖에 없었다.
"윤약사님이랑 그런 관계셨어요 ? 아닌게 아니라 윤약사님이 요즘 고민이 있는지 상당히 힘들어 하는 눈치던데 과장님 때문이었군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정말 오늘은 그녀가 평소의 그녀 답지를 않았다. 항상 수줍어 해서 나를 정면으로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문장들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 마냥 엉켜서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답답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기도 전에 빼앗긴 어린아이와 같은 그런 난감한 기분도 들었다. 이제 병원에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 문제일테고 그러면 나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불이익이 갈 것이 뻔했다.
"김간호사 그런게 아니고 혹시 오해할까봐 이야기 하는데 윤약사가 요즘 힘든 일이 있어서 술을 좀 먹었나 봐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바래다 주게 된 것 뿐이예요. 그런 것 뿐이니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어서 불안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레 쳐다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아주 슬퍼 보였다.
나는 이 여자에게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저 조금 호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아프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조금전까지 내가 열을 내면서 주장하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이 여자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오해든 아니든.
그렇다고 그녀의 가슴을 안고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미안해요. 그냥 별 거 아니예요. 이제 다 되었으니까 나도 들어 갈테니까 김간호사도 들어가요. 들어 가서 쉬어요."
뭐가 별 거 아니라는 말인가.
윤약사가 소아과 하과장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것이 ?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 ?
혹은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윤약사를 질투하는 것이 ?
여하튼 어떤 것도 별 거 아닌 것이 아니었지만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했지만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밤새라도 그러고 있을 사람처럼 보였다.
"과장님, 윤약사님 사랑하세요 ?"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니까. 김간호사 오늘 약간 흥분한 것 같은데 오늘은 들어가고 내일 이야기해요."
김간호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 조금쯤의 호감과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과장으로서의 열정에 대한 존경과 평온치 않은 가정 생활로 인한 외로움에 대한 동정으로 인하여 조금쯤 생기게 된 호감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 가까이서 지내게 되다 보면 감성이 여린 젊은 여자가 흔히 빠지기 쉬운 몽상일 뿐이었다.
그녀의 그런 감정이 윤약사 때문에 생긴 약간의 질투로 하여 이성을 흐리게 했을 것이다.
"가세요. 과장님. 제가 관여할 문제가 아닌데. 제가 또 실수한 것 같네요. 내일 진료실에서 뵙겠습니다."
그녀가 인사를 하고 기숙사 쪽으로 돌아 갔다. 그녀의 돌아선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아 이 무엇이란 말인가 ?
이런 감정의 흐름들은 도데체 무엇이란 말인가 ?
머리가 복잡했다. 돌아오는 길은 아까 온 길이 아니었다. 길은 분명히 같은 길인데 내가 좀 전에 지나온 길이 아닌 것처럼 아주 생소한 다른 길이었다.
추운 길이었으며 메마른 벌판이었다. 어두운 터널이었고 가파른 언덕이었다.
아까 갈 때는 잠깐이더니 지금 가는 이 길은 얼마나 긴 지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이 될 지 하는 생각으로 인해 무거운 마음을 안고 관사로 돌아오니 그래도 충직한 신하처럼 몸을 눕힐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이런 밤에는 산모라도 와서 정신없이 바빴으면 좋으련만 요즘은 분만도 뜸해서 밤에 불려 나갈 일이 거의 없었다.
무엇엔가 몰입이라도 하지 않으면 쉽게 밤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지를 않은데 큰일이었다.
어두운 방에 눈을 감고 누어 있으니 정신은 말똥말똥해지면서 아까 안았던 그녀의 따스한 피부의 감촉과 보드라운 가슴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팔을 움직이니 그녀의 향기도 다시 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소아과 하과장의 생각이 났다.
응급실 선생들과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녀의 행실에 대해 이야기 하던 것은 그러니까 그들의 일을 감추려는 연막 전술이거나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얕은 술책이었나 보다.
내일 아침이면 운동을 위해 또 얼굴을 보아야 할텐데 이전처럼 태연하게 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여하튼 나의 그녀를 괴롭게 한 사람이고 내게 거짓말을 한 사람이 아닌가. 그저 좋기만 하고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것으로 보여 존경스러웠던 사람인데 하루 아침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다.
김간호사에게도 아마 내가 그렇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내일이 되면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밤이 주는 답답한 기억들과 유치한 감상들은 어둠처럼 옅어지겠지만 그러기까지 오늘은 밤이 너무 너무 길 것 같아서 걱정이다.

XXIII

창으로 새어 들어 오는 빛이 적어 긴 밤을 보내고 눈을 떴을 때는 시계를 보니 아침 나절이 다 지난 뒤였다.
창조주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다는 4 일째 날이었지만 바깥에는 해나 달 또는 별을 볼 수는 없었다.
비가 내려 흐린 하늘과 어두컴컴한 바다만 보였을 뿐이다.
내 인생의 궤적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빗물이 유리창에 난해한 자욱들을 남기며 흘러 내렸다.
어제 들렀던 색시집처럼 방음이 안되는 것은 아니라서 바깥의 빗소리가 안으로 헤집고 들어 오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아마 그 빗소리가 주는 감상 때문에 순간적인 충동으로 내 계획을 앞당기게 될 지도 몰랐다.
언젠가 그녀와 함께 보다만 소리없는 영화처럼 소리가 없는 빗물은 오히려 마음을 착 가라앉게 하는 작용이 있다.
서라운드로 들리는 소리가 사람의 감정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마는 것처럼 소리가 사람의 감성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보다 작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무성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유리창을 스크린이라고 생각하고 영화 한편을 감상해 보았다.
장면의 사이 사이로 지나온 시절의 기억이 회상 장면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겨울이면 물이 어는 방에서 다섯 식구가 웅크리고 자던 하꼬방(저자주:일본 말로 하꼬는 상자라는 뜻임. 비좁은 단칸방을 뜻함)에 살던 기억과  구호품으로 받은 밀가루로 날마다 수제비를 끓여 먹던 기억, 루핑 (저자주: 지붕을 덮다라는 뜻인데 일종의 비닐 같은 것으로 지붕을 덮는 재료)으로 덮은 지붕이 새서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방안에 바가지를 받쳐 놓아야 했던 기억, 소풍을 가면서 한번도  도시락을 챙겨 가보지 못한 초등학교의 기억 들 그런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때는 싫고 괴로웠던 생각 뿐이었는 데 지나고 보니 괴로운 느낌은 없고 오히려 영화 박하사탕처럼 돌아 가고 싶은 아름다운 시절처럼 느껴지려고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도 세월이 많이 지나면 고통의 껍데기가 녹아서 그 안에 숨어 있던 달콤한 추억들이 끄집어 내어 졌다.
달콤한 당의정 안에 쓴 약이 들어 있는 것과는 반대로 지난 시절의 추억은 그렇게 쓴 고통의 껍질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블랙 초컬릿처럼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는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 고통을 오래 오래 씹은 나이든 이들의 주름진 얼굴에서는 마음 아픈 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편안한 위안이 풍기는 것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바깥의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도 멀리서 보니 나이든 이의 주름진 얼굴과 비슷하다.
수십억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파인 주름진 바다의 얼굴.
그래서 바다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위무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보던 바다에 비하여 비내리는 항구의 바다는 일견 청승 맞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얻기 힘든 잔잔한 침잠을 맛보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비오는 바다가 좋다.
십년 전쯤이든가 친구 부부와 모처럼 간 휴가 여행으로 떠난 동해안에서 내내 비를 맞으며 차속을 달렸던 기억이 있다. 바닷가 포장 도로를 비를 맞으며 속초에서 포항까지 내내 달렸던 기억이다. 차 안에 습기가 차서 불편 했던 점하고 비좁은 공간에 여러명이 끼어 앉아서 답답했던 것 말고는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그때처럼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호텔에서 하루를 떼워야 할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이 걸리는 아주 긴 영화를 한편 본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녀와 함께 보고 싶었지만 끝까지 보지 못했던 영화를 상상하면서 내 옆에 그녀가 서 있다고 상상해 볼 것이다.
6 월의 어느 밤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어깨를 내 팔로 감싸 안는다.
마음 속에서 그녀에게 말을 건낸다.
<당신도 지금 이곳에 와 있지 ?>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마음에는 당신의 모습이 보여.>
<당신의 하얀 얼굴과 검고 깊은 눈이 그리고 보드라운 입술이 나를 얼마나 황홀하게 했는 지 당신은 모르지 ?>
<나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주었다는 것을 모르지 ?>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것 같은데 내게는 사랑하는 해나가 가고 당신이 온 것이 그랬어.>
<언젠가는 연애 편지도 써서 주었는데 혹시 기억나 ?>
<당신은 한번도 그런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었지.>
<이제는 더 이상 연애 편지를 쓰지 않고 인터넷으로 메일을 보내지만 그런 것도 괜찮지 않았어 ? 클래식이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 손예진이 했던 말 그대로 클래식한 것도 나름대로 좋지 않겠어 ?>
<나는 사실 클래식한 것이 좋아. 클래식한 정장, 클래식 음악, 그리고 클래식한 그림들이 좋아.>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은 당신께 매일 편지를 보내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약속을 했었어.>
<그런데 이곳에 와서 그만 약속을 못지키고 말았네. 미안해 다시 시작할께. 당신이 아프니까 보기 힘들거라고 생각해서 그랬어.>
<그렇지만 생각해 보니까 말이나 편지라는 것이 꼭 누가 들어 주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나는 앞으로도 살아 있는 동안 당신께 계속 편지를 쓸거야. 비록 당신이 받아 보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이렇게 상상 속에서지만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흡사 천국의 어느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드네.>
<이따가 메일 보낼께. 그동안 못 보낸 내 마음까지 한번에 듬뿍 담아 보낼께.>
<당신이 나를 떠나려 했었다는 것은 믿지 않을래. 말이나 글이 꼭 속 마음에 든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사실 당신의 그 말은 나중에 다시 만나기 위한 이별 같은 거 아니겠어 ?>
<떠나지 않으면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겠어 ?>
<From Earth to Heaven 이라는 영화였던가 ?  내용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상을 떠나야 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거지. 안그래 ?>
<그래서 당신이 나를 떠나고 싶다고 보낸 메일은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그러니까 나도 이 세상이 힘들어서 떠나려는 게 아닌거야. 당신을 다시 만나려 떠나는 거지.>  
<당신. 나의 살로메, 나의 베아트리체. 그리고 나의 자히르. 당신을 사랑해.>
<이렇게 당신이라고 불러보니까 기분이 참 이상하다.>
<나는 한번도 당신이라고 말하면서 지금처럼 존대가 아닌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사실 다정한 연인들처럼 그렇게 말해 보고 싶었었어. 그러나 나이가 주는 소심함 때문일까 한번도 그러지 못했어.>
<이따 비가 좀 그치면 점심도 먹을 겸 바깥에 나가자.>
<그리고 그동안 몰래 가꾸어 온 우리의 사이버 방도 한번 둘러 보아야 겠어.>
<넉달 동안 우리 방을 꾸민 편지들이 이벽 저벽 온 사방에 걸려 있겠지. 힘들었던 이야기도 있었고 짜증 섞인 투정도 있었고 당신을 만나고 온 날의 황홀한 편지도 있었지만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설레이던 마음을 담은 것들이 제일 많을거야.>
<결국 긴 기다림을 위한 짧은 만남이 되겠지만 그 설레임과 그리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당신은 모르겠지만 내가 붙인 그 방의 이름은 당신을 위한 내 마음의 쓰레기통이야.>  
<당신의 힘든 마음의 고통을 버리는 쓰레기통.  어때 ? 괜찮지 ?>
<이제 나 점심 먹으러 나갈거야. 당신은 뭐 먹고 싶어? 당신 먹고 싶은 곳으로 가. 근데 감자탕은 말고. 나 사실 감자탕 아주 싫어하는 음식이야. 그런데 당신이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 말 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었어. 이제 우리에게 얼마 기회가 없으니까 둘이 같이 먹고 싶은 것 먹자.>
<비도 오니까 손칼국수 어때 ? 어릴 때 하도 수제비를 많이 먹어서 한동안 밀가루 음식이 싫었는 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오히려 옛날 생각이 나서 더 그리운 것 같애.>
<삼청동에 가면 유명한 항아리 수제비집 있는 데 전에 병원 수련의 시절에 종종 갔었어. 당신과 한번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틀렸네.>
<여기 바닷가니까 사골 칼국수보다는 바지락 칼국수가 낫겠다. 그치 ? 그럼 같이 나가자.>
혼자말로 속삭이고 보니 정말 그녀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빗발이 가느다래져서 이슬비 같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슬비다. 우산을 쓰지 않고 그대로 맞아도 부담스럽지 않고 촉촉하게 대지를 적셔 주는 이슬비.
그렇게 내리고 내려 메마른 내 마음의 갈라진 틈 들을 없애 주었으면 좋겠다.
이럴때는 바바리 코트가 어울리는 데 아무 생각없이 입고 내려온 단벌 양복이 그동안 세탁을 맡기지 못해서 꼬질꼬질해 졌다.
거기다 비까지 맞으니 비루 맞은 새앙쥐 꼴이 따로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어떤가 ? 내 그녀가 옆에 같이 걷고 있는데.
미친 놈 소리를 들을까봐 아까 방에서처럼 소리를 내서 그녀와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곁에 그녀의 온기가 느껴졌다.

XXIV

밤에 잠을 잤건 못 잤건 진료를 위해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야간에 온 산모로 인한 분만 때문이던 다른 일로건 밤을 설치고 새벽에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몸과 마음 모두에 괴로운 일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 갈수록 밤을 지새고 아침을 맞는 것이 훨씬 힘들어 졌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거르지 않던 아침 운동도 가지를 못했다. 사실 어제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소아과 하과장의 얼굴을 보아야 하는 것도 편한 일은 아니었다.
천근만근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진료실로 나오니 책상 위에 잎이 큰 하얀 꽃 몇송이가 유리병에 꽃혀 놓여 있었다.
강한 꽃향기가 진료실에 진동하고 있었다. 지치고 고단했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혹시 윤약사가 가져다 놓은 꽃이 아닐까 싶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김간호사의 표정을 살펴 보았지만 특별한 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김간호사 이 꽃 누가 가져다 놓은 건가요 ?"
"제가 가게에서 사다가 꽃아 놓았어요. 꽃 좋아하실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아도 되는 데, 고마워요. 근데 무슨 꽃이예요 많이 보던 꽃인데 향기가 좋네요."
"백합꽃이예요."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어제 밤의 일 때문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서 눈치가 보이는 판인데 오히려 그녀가 나를 위해 꽃을 사다 놓았단다.
도데체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하는지, 여자란 참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화낼 일이 아닌 것 같은데 화를 내는 경우도 많고 당연히 화가 날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사소한 것인데 큰 의미를 두고 매달리는 경우가 아내랑 살면서도 흔히 있었다.
결혼 초에는 무슨 무슨 기념일을 가지고 싸운 날도 많았다. 그 기념일이라는 것도 별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장모님 생일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이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과 다를 바 없는 나날들에서 유독 어떤 하루를 정해서 그리 기뻐하고 슬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여하튼 김간호사가 아무런 마음의 동요가 없이 평온한 상태처럼 보인다는 것은 그녀나 나를 위해서 다행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평온일 뿐이고 마음 속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백합꽃은 꽃말이 뭔가요 ?"
약간 기분을 풀어주고 어색한 어제의 일도 잊을겸 가볍게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백합의 꽃말은 순결이예요."
그랬구나. 그녀는 지금 나에게 무언의 아니 꽃을 이용한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결치 못하다고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꽃에서 나는 향기가 너무 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설명 때문인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지러운 머리 때문인지 설친 잠 때문인지 오전 진료를 어떻게 때웠는 지 모르겠다.
윤약사의 상태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선뜻 약국으로 찾아가 볼 용기는 없었다.
어차피 점심 시간에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조금 참기로 했다. 둘만의 시간을 따로 만들수는 없었지만 표정으로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하는 정도는 충분히 알 수가 있을테니까.
그런데 아무리 식당에서 기다려도 그녀가 오지를 않는다. 일부러 점심 시간 시작하자 마자 가서 그녀가 올때까지 느릿느릿 먹는 데도 불구하고 거의 점심 시간이 끝날 무렵이 되도록 나타나지를 않았다.
속이 안좋아 점심을 거르는 모양이었다. 답답했다. 어제 일 때문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혹시 오후에 진료실로 들릴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밥도 먹으러 오지 않는 사람이 내 진료실에 들릴 것 같지는 않았다.
찾아갈 용기는 없고 할 수 없이 바로 들어가 컴퓨터로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어제는 몸이 많이 힘드셨죠 ? 점심때 식사도 오시지 않고. 그래도 몸을 생각해서 식사는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
어제는 약사님께서 저를 기댈 만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셔서 기분이 많이 좋았습니다.
제가 큰 힘이 되어 드리지는 못했지만 힘든 마음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내 고통을 들어 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적지 않은 위로가 될 겁니다.
오후에 좀 쉬시고 괜찮아지시면 잠깐 시간 내어 주실 수 있으세요 ?
진료 끝나고 병원 뒤의 테니스 코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답장 부탁드립니다.

이혁 올림.>

그러나 오후가 늦도록 답장이 오지는 않았다. 어찌된 영문일까 ?
진통 산모는 없었지만 분만실로 가 보기로 했다. 약국이 분만실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있었다. 지나는 눈으로라도 그녀의 상태를 한번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나는 길에 훔쳐본 약국에서 윤약사는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궁금한 마음에 견딜 수 없어서 전산 담당하는 직원에게 물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스 김. 윤약사님은 어디 가셨나봐요 ?"
"예 과장님. 약사님 몸이 불편하시다고 오늘 일찍 들어 가셨어요. 한 이삼일 쉬었다 나오신다고 원장님께 말씀드리고 오전에 들어 가셨어요."
"네. 그래요."
몸이 많이 힘든 모양이었다. 하기야 임신 초기에 몸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더군다나 입덧이 심하지는 않다고 해도 주위 사람에게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녀가 쉬었다가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어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윤약사가 없어서인지 약국도 한산해 보였다.
윤약사의 일만 물어 보고 가면 혹시 이상하게 생각할까 싶어 한마디 더 건넸다.
"오늘은 바쁘지 않은가 봐요 ? 한산하네요."
"네. 소아과 진료를 안하니까 환자들이 많이 없네요."
"소아과 진료를 안해요 ? 무슨 일 있나요 ?"
"하과장님은 집안에 일이 생겨서 오늘부터 며칠 휴가 내셨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아침에 하과장이 나를 부르러 오지를 않았나 보다.
하과장이 휴가를 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의 병가에 대하여 조금전까지 들었던 안쓰러운 마음은 없어지고 어디 숨어 있었는지 마음 속 악마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혹시 일부러 둘이 시간을 맞춘 것은 아니었을까 ?
어쨋든 하과장은 그녀가 임신한 아이의 아빠고 그녀로써도 나에게는 잊고 싶다고 했지만 임신할 만큼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나.
그녀에 대하여 걱정하던 마음만 있던 잔잔하던 가슴에 이제는 폭풍우가 치기 시작했다.
그럼 어제 그녀가 나한테 한 말은 무어란 말인가. 술김에 그저 의미도 없이 토해낸 말이었나 ?
그런 의미 없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하던 나는 또 무언가. 도데체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 ?
생각을 그대로 놓아두면 어디까지 흘러갈 지 모르겠다.
얼마나 비참한 모습까지 상상이 흘러갈지 모르겠어서 통제를 해야 했다.
안되겠다. 방법을 찾아 보아야 겠다. 그대로는 답답해서 미쳐 버리고 말 것 같았다.
사랑은 그 부재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했던가 ?
그녀가 곁에 있고 평범하게 아무일 없는 것처럼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작은 호감이고 옅은 관심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보면 즐겁고 유쾌했다. 그러나 그녀가 내 곁을 떠나 어쩌면 다른 사람의 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로하여금 극심한 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에 대한 목마름으로 견딜수가 없게 했다.
메일을 쓰고 답을 기다리고 할 정도조차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휴대전화가 생각이 났지만 그동안 근 두세달 그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녀의 휴대 전화 번호도 알아 두지 못한 것이 바보스러웠다.
그녀의 휴대 전화 번호를 직접 전산 담당이나 원무과에 물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김간호사에게 물어서 알아 보면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그녀를 너무 괴롭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겪는 괴로움은 다른 이가 겪을 괴로움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결국 사람은 치사할 만큼 이기적인 동물이다. 내 자신에게 스스로 화가 났지만 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그녀가 누구와 있고 어디 있는 지는 알고 싶었다.
"김간호사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부탁 하나 하고 싶어요."
"무슨 일이신데요. 말씀하세요."
언제나 내 부탁을 기꺼이 들어 주던 그녀였다.
"오해하지는 말고..... 윤약사 휴대전화 번호 좀 알아 봐 줄 수 있어요 ?"
그녀가 내 얼굴을 한번 쳐다 보았다. 슬픔과 원망이 눈에 스친 듯 했지만 어제처럼 당돌하게 내게 묻지는 않았다.
"네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알아 보고 올께요."
내가 무슨 짓을 하는 지 모르겠다.
내 고통을 덜자고 남에게 훨씬 큰 고통을 주었다. 잠시 뒤 그녀가 번호를 적은 쪽지를 내게 내밀었다.
"과장님, 윤약사님은 아파서 어머님 댁에 며칠 갔다 온다고 했데요."
내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김간호사가 과장으로써의 존경 보다는 조금 더 깊은 감정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듯 했다. 내게 윤약사가 없었다면 어쩌면 못이기는 척하고 염치없이 그녀의 호감을 덥석 받아 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내 온 정신은 한 사람이 다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 올 여유가 없었다.
휴대 전화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컬러링 소리가 나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그리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
"저 이혁인데요. 지금 전화 통화 하시기 괜찮으세요 ?"
"이 선생님이세요 ? 저 지금 누구 만나고 있어서 통화하기 어려워요. 다음에 제가 전화드릴께요."
그녀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목소리가 많이 가라 앉아 있었고 서둘러 끊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하과장이든 누구든 평범하지 않은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전화를 했을 때 보다 더 큰 폭풍이 마음 바다에 불었다.
내가 윤약사의 마음에  들어갈 공간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고통이 밀려 왔다.
내가 김간호사에게 주는 고통만큼 딱 그만큼의 고통으로 그대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참 신이란 존재는 잔인한 존재였다. 그런 엇갈림이 없었다면 삶이 얼마나 더 행복하고 평온했을 것인가.
앞으로 윤약사가 돌아 오기까지 나는 극심한 지옥의 고통 속을 헤메고 다녀야 할 것이다. 어제 한 순간 그녀의 가슴을 안아 본 포근함의 댓가로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실과 질투의 고통을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그대로 받아내야 했다.
내 앞에 유황 불보다도 뜨거운 지옥의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이것을 사랑의 시작이라고 해야 하나 ?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반작용인 집착이나 혹은 박탈 당할 지 모른다는 불안은 아닐까 ?
마음 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당장 그녀의 집으로 달려 가 보고 싶었다.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아무 계획도 그럴 용기도 전혀 없었지만.
마음이 힘들어 오후 진료를 계속 하지 못했다.
조퇴를 하고 관사로 돌아와 이젤을 펼쳤다. 팔레트에 아무 물감이나 되는 데로 죽 죽 짰다.
무엇이라도 내 마음을 송두리째 잊을 수 있는게 있었으면 좋겠다.

XXV

마침 얼마 걷지 않아 순이네 손칼국수라는 집이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 칼국수 두 그릇 주세요."
"두 분이신게라 ? 한 분은 나중에 오신다요 ?"
"아니 저 혼자지만 그냥 두 그릇 주세요. 그리고 숫갈과 젓가락도 두개 주세요."
아주머니가 의아스럽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이상했을 것이다. 왠 중년 남자가 비를 맞아 초췌한 몰골에 혼자 와서 칼국수를 두그릇을 시키다니.
그러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건 상관없었다. 여지껏 나는 너무 많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았다.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 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었다. 그녀를 생각하고 싶을 때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하고 싶은데로 했다.
다만 그녀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때 생각을 끊지는 못했다. 이곳에 와서도 유일하게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끊기 위해서 더 이상 애쓰려고 하지는 않았다. 온 종일 맘껏 생각을 해도 무어라 말할 사람이 없었으니까.
언젠가 하루만이라는 시를 써서 그녀에게 바쳤던 기억이 난다.

하루만 그래 보고 싶습니다.
은행 나무 낙엽이 이슬비에 젖어 퍼머넌트 엘로우 보다 더 노랗게 보이는 날
조그만 통나무 찻집에서
그 사람과 함께
따뜻한 헤즐넛 커피 한잔 마셔 보고 싶습니다.

하루만 그래 보고 싶습니다.
밤새 내린 눈으로 키 큰 전나무가 코트처럼 흰 눈을 덮고 있는 날
아무도 밟지 않은 한적한 눈덮인 산길에서
그 사람과 함께
이름 모르는 산사에서 울리는 풍경 소리 들어 보고 싶습니다.

하루만 그래 보고 싶습니다.
햇살 맑은 봄날 아침
라일락 향 짙은 마로니에 공원 파란색 벤치에 앉아
그 사람과 함께
보드라운 손 마주 잡아 보고 싶습니다.

하루만 그래 보고 싶습니다.
8월 가장 더운 여름날
열대의 스콜처럼 퍼붓는 소나기 내리는 원두막에 앉아
그 사람과 함께
빨갛게 잘 익은 수박이라도 먹어 보고 싶습니다.

그래 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단 하루만이라도
그 사람을 마음껏 사랑해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그럴 수 있었다. 이곳 소록도에서는 내 마음껏 그녀를 사랑해도 좋았다. 아내의 경멸 섞인 시선도 없었고 김간호사의 부담스러운 시선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칼국수가 나와서 뽀얀 국물부터 한입 떠먹어 보았다. 들쩍지근한 바지락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생각만큼 칼국수가 맛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도 블럭을 후두둑 훑는 빗소리가 있어서 좋았다. 앞에 놓인 그릇에서는 하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저 앞에서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면발을 천천히 빨아 올렸다. 그녀는 음식을 빨리 먹지를 못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자주 쳐다 보느라고 항상 나보다 훨씬 늦게 음식을 먹고는 했다. 그렇게 칼국수의 따스한 온기와 비오는 날의 포근함과 상상 속의 그녀지만 그녀의 존재감으로 인해 오랜만에 행복한 점심을 맛보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지만 내가 그것을 보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6 월의 그 괴로웠던 날의 기억도 돌이켜 보면 그렇게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그녀의 편지와 말을 통해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 며칠 동안 내가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면 행복을 느끼는 것도 사랑에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내게 임신 사실을 말하고 사라졌던 삼사일 동안의 그 불지옥같았던 기억은 지금도 너무 생생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돌덩이에 손을 덴 것처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 사정을 알고 보면 내게는 너무 행복했어야 할 일이지만 그녀와 나는 그런 소통의 문제로 인하여 그후에도 종종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는 했다.
그녀는 그때 별거 중인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러 갔었다고 하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녀가 내게 와서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난 그날에 그녀는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남편과의 관계와 소아과 하과장과의 관계를 모두 정리하려고 했었다고 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하과장에 대한 질투로 내 온 몸을 질투의 불구덩이로 밀어 넣었었다.
그녀가 나에게로 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그저 속좁은 사내의 추한 모습으로 온갖 더러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면 정말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었을 순간을 나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괴로와 하면서 보냈었다.
그런 소통의 부재와 그녀에 대한 믿음의 허약함 때문에 나는 필요 이상으로 불행했고 필요 이상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나의 잘못이었다.
물론 그때도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원만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아직도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너무 사랑했지만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며칠 후 그녀가 병가를 끝내고 눈두덩이에 희미한 멍이 든 채로 나타났을 때 나는 처음에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었다.
나중에 그녀의 남편으로 인한 상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녀의 남편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남편은 같은 대학 국문과를 다녔다고 했다. 그녀가 주로 수업을 듣던 의약관과 문과대 건물은 그리 떨어져 있지를 않았다.
그와 그녀는 같은 학년으로 2 학년때 처음 만났다고 했다. 어느날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 그가 그 뒤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 다녔고 처음에는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그녀를 많이 힘들게 하였다고 했다.
어느날은 데이트 신청을 안 받아 주었다고 의약관 앞에서 정문까지 난 항아리로 된 쓰레기통을 모조리 발로 차면서 깨어 버리고 간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었다. 연애 편지랍시고 혈서를 써서 보내온 적까지 있다고 한다.
그때의 끔찍한 기분은 굳이 그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이란 묘한 것인지 근 1 년 동안의 그런 도가 넘치는 구애에 그녀의 마음이 언제부턴가 조금씩 흔들렸다고 했다.
저 정도로 나를 좋아하면 아마 평생 그 마음 변치 않고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때부터 그녀도 그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그의 광기 넘치는 집착과 그녀의 포기였을 뿐이었다.
그때는 둘 다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지만 사랑은 자신 스스로 괴로울 지언정 나로 인하여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그의 광기를 알아 채었어야 하는 데 그녀는 불행하게도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래도 결혼 후 몇년간은 행복했었다고 했다.
이미 잉태되었던 불행이 그녀에게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가 폐결핵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틀어 박히게 된 시기부터 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녀의 행동을 통제하고 확인할 수 없을 때마다 괴로움으로 자신을 주체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의처증은 상태가 점점 심해져서 도저히 같은 집안에서 살 수가 없게 될 정도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녀로써도 한때나마 사랑했다고 착각한 남편을 위해서 그녀가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의처증이든 다른 것이든 모든 병은 당사자가 치료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외향적인 성격과 남자이던 여자에게든 벽을 두지 않는 스스럼없는 그녀의 행동이 그의 증세를 점점 악화시키기만 했고 그녀는 그럴수록 남편에게 구속받는 것이 싫어 밖으로 돌려고만 했다.
수도 없이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가 그녀를 놓아 주지 않았다. 손찌검까지 하게 된 것은 그의 인격이 얼마만큼 황폐해 졌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그녀의 행동과 말투로 보아 남편의 마음도 많이 괴로웠을 것 같았다. 그로써는 손안에 가두어 둘 수 없이 끊임없이 창공으로 날아 오르려는 새처럼 잡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리라.
그래서 그를 피해 철원까지 피해 온 것이었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것도 오히려 그의 의심과 고통을 훨씬 크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가 다시 한번 이혼을 요구하기 위해 그때 남편을 찾아 갔었다 해도 이미 결말은 예정이 되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걸었던 그 순간에도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 위해 자신을 놓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했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더 심한 의혹과 모멸감 그리고 상처 뿐이었지만.
며칠 후 그녀가 돌아 왔을 때 내 앞에서 그렇게 어둡고 슬픈 표정을 짓던 것도 나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내 감정에 휩쌓여 힘들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따스하게 보듬어 주지를 못했다. 그러기 보다는 오히려 나는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시험하고 확인하려고 했고 내 괴로웠던 며칠에 대한 고통으로 오히려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말만을 했었던 것 같다.
만일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알았다면 내 마음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믿음이란 아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다면 많은 것들이 쉬웠을 것이다.
여하튼 그때 그 며칠 간 그렸던 내 그림들은 질퍽한 절망과 고통에 너무 많이 버무려져서 오랜 기간 잘 마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 묻어 있는 절망에 가슴을 다칠까봐 그 뒤로 한번도 다시 들여다 보지를 못했다.
얼마후 그녀의 메일로 오해를 풀었지만 한동안 그녀는 나를 찾아 오지 않았다. 아마 여러가지의 정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믿어 주지 않은 나에 대해 조금의 실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다시 찾아 온 것은 그 일이 있고 난 후 10 일쯤인가 지났을 즈음이었다.

XXVI

"안녕하세요 ?"
윤약사가 대기 환자가 없는 틈을 타 진료실로 찾아왔다. 얼굴은 많이 밝아져 있었다. 메일로 주고 받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그녀가 내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나에게 많은 힘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녀가 왔다.
메일을 주고 받을 때는 글이 주는 절제보다는 오히려 상대의 표정이나 말 등 반응을 보지 않는데서 생기는 일방 통행으로 마주 보고 하는 대화보다 오히려 마뜩찮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 글을 통해 오해가 풀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오해가 쌓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며칠 동안 내가 겪은 고통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했다면 아무래도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 긴 편지에 그녀는 항상 짧은 문장으로 답장을 하고는 했다. 그저께 내가 밤을 지새면서 보낸 긴 편지에 그녀는 단 세줄의 답장을 보냈을 뿐이었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기 위해서 갔었어요. 나중에 병원 가서 자세히 말씀드릴께요.
안녕히 계세요.>
그러나 불과 세줄이었지만 그 답장은 지옥 같던 나의 마음을 가라 앉히는 데 충분했다. 글의 양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했다.
말도 그렇지만 글도 양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종종 잊고는 했다.
여하튼 그 편지를 받고 내 마음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랬다. 어느날은 지옥이다가 어느날은 천국이다. 그녀를 만나고 벌써 두번의 천국과 두번의 지옥을 경험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나는 이런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게 될 지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꼭 그녀 때문이 아니었더라도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매일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머물면서 어떤 때는 이쪽으로 기울었다가 또 어떤 때는 저쪽으로 넘나드는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결국 매일 매일의 순간이라는 것은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중간의 간이역 같은 곳이다.
분명한 것은 그녀를 만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천국에 있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좋아 보이시네요."
"네 좋아요, 많이 회복되었거든요. 이따 저녁 때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 사달라고 부탁드리려고 왔어요. 말하자면 데이트 신청이예요."
"데이트요 ? 저야 불감청 고소원이지요. 이따 진료 끝나고 뒷 편 테니스 코트 쪽으로 오세요. 아무래도 그쪽이 사람들 눈에 잘 안띄는 곳이니까"
"그리고 선생님 저는 타자를 빨리 못쳐요. 아시죠 독수리 타법 ? 그래서 메일 보내셔도 바로 바로 답장을 못해요. 답장을 해도 선생님처럼 그렇게 길게는 못써요. 그렇게 쓰려면 아마 하루 종일 걸릴거예요. 그리고 저는 글보다는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하거든요."
"과장님 기다리시는 환자 있어요."
김간호사가 들어와서 대화가 끊어졌다. 윤약사는 김간호사가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약간의 눈치를 챈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따 뵐께요."
윤약사가 총총히 나가고 김간호사가 들어 왔다.
요즘 김간호사의 얼굴이 많이 안되어 보였다. 전의 밝았던 미소는 많이 줄었고 하얗고 보조개 잡히던 고운 뺨도 수척해졌다. 나를 도와 주기 위해 애썼고 아무런 댓가 없이 그저 조그만 관심을 받기 위해 옆을 지켰던 사람인데 미안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미안함은 즐거운 저녁에 대한 기대로 오래 가지 않았다.

"선생님, 우리 삼지연 폭포 가요."
"삼지연 폭포요 ?"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말은 많이 들었다.
"여기서 멀지 않아요. 차 타고 가면 한 20 분 정도면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쪽 테니스 코트 쪽은 병원 후문 쪽이라 그다지 사람의 눈에 띄지를 않았지만 차가 있는 관사 쪽으로 가면 사람들 눈에 쉽게 띌 것이다.
그녀와 나의 관계를 김간호사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알릴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소문에 대하여는 좋지 않게 나있는 터였는데 그렇게 된다면 아마 온 병원이 발칵 뒤집어 질 것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녀도 그녀지만 내가 더 의외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병원 밖의 다른 장소를 정해서 만나야 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서 신경써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전부터 항상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설레임에 비하면 그런 불편함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전에 스케치를 위해 고석정 갈 때처럼 그녀를 옆좌석에 태우고 논밭 사이로 난 이차선 도로를 따라 차를 달렸다. 들판에 파릇파릇한 벼들이 키가 많이 자라서 물결치는 초록의 넓은 바다와 같았다. 예전에 지리 시간엔가 철원 평야에 대한 내용을 들었던 것 같은데 정말 철원은 들판이 아주 넓어서 내 마음처럼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내 인생의 앞날에는 지겨워도 좋으니까 그냥 이런 길만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가시밭길이나 자갈길 혹은 진흙길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가능한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처지가 그럴 수 없었고 내가 놓인 처지도 그런 소망을 들어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닐 것이다.
그저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처럼 소박하고 순수하게만 보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이 길을 달려 나나 혹은 우리가 도착하게 되는 것은 어디일까 ? 어디를 목적지로 하고 달려 가는 것일까 ?
지금이야 폭포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 다음에는 어디를 보고 갈 것인가 ?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내게 소풍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능이던 놀이 공원이던 유적지이든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도착할 곳의 고민으로 가는 동안의 설레임과 기대를 망치기에는 길이 너무 짧고 시간이 부족했다.
삼지연 폭포에는 7 시쯤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인지 날이 밝았다.
폭포의 물줄기가 저 아래 깊은 소로 떨어지고 있었다. 차 속에 있었기 때문에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지만 떨어지는 물줄기의 진동이 내 가슴에 전해졌다. 아마 그녀의 가슴에도 전해질 것이다. 최소한 이 순간 만큼은 서로의 마음이 교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처럼 우리의 주파수가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윤약사님이 병가 내던 날 정말 힘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어 하셨어요 ? 제가 소아과 하과장님과는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는 데 저를 믿지 못하시나봐요 ?"
"제가 약사님의 마음에 대하여 들은 것은 술이 많이 취한 어느 밤의 일이었기 때문에 저로써는 실감이 나지를 않았고 그저 꿈 속의 착각이었거니 생각했었습니다."
"메일 보내드린 데로 저 남편과의 관계도 정리할 거고 하과장님과의 관계도 정리할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괴로워 하시지 말고 제가 말한 그대로 저를 보아 주시면 되요. 저 선생님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 있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플 때 누구보다 선생님께 위로 받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은 저도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감정이든 상관없습니다. 같이 있으면 좋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어떨 때는 괴롭다가 어떨 때는 너무 좋은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을 무어라 부르는 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니까요."
"저 때문에 너무 괴로워 하지 마세요. 제가 그날 술먹고 선생님 관사 찾아 간 것 많이 후회 했어요. 임신 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는 건데 너무 잔인한 일이었어요."
"참 몸은 괜찮으신가요 ? 이제 입덧도 생기고 할 시기일텐데. 힘들지 않으세요 ?"
"괜찮아요. 다행인지 입덧도 별로 없네요."
그녀의 얼굴에 다시 수심이 비쳤다. 괜한 이야기를 꺼내었나 보다. 즐거운 이야기로만 보내기에도 길지 않는 저녁이고 인생인데.
"제가 그날 선생님 찾아 간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기는 했지만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저는 이 아이는 낳지 않을 거예요. 사실 엄마 집으로 간 것은 남편과의 일을 깨끗이 정리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중절 수술을 받으려고 간 것도 있었어요. 선생님께 수술을 부탁했던 이유가 있었지만 그날 선생님 충격 받고 괴로와 하는 모습 보고 저 많이 후회했어요."
그날 초음파 실에서 아무 말도 못한 것처럼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 보고 선생님도 저를 많이 좋아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어요. 선생님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너무 잔인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날 도저히 술이라도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께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물어 볼게 아니라 제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하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마음이 편해 졌으니까 너무 미안해 하실 것 없습니다."
"엄마 집에 가서 쉬면서 수술을 받으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불쌍하고 서글퍼서 하지 못하고 그냥 왔어요. 해야 한다면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선생님 사모님이 막내 따님 해나 낳을 때 선생님께서 직접 받아 주셨다면서요 ? "
"네 그랬었습니다. 그러고 싶었으니까요. 내 손으로 내가 받아서 이쁘게 키우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해나의 생각은 항상 가슴 속 고통을 헤집어 놓는다.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오랜 기간 아이의 기억 때문에 그 고통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의 상실로 인한 고통은 오직 사랑으로만 고칠 수가 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잊어지는 것은 고통의 치유가 아니라 외면일 뿐이다.
해나를 잃은 고통은 내게 너무도 컸지만 그 아이를 많이 닮은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웃는 모습도 해나를 많이 닮았다.
해나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병원 직원 중 누구도 병문안을 온 적은 없었다. 오직 그녀만이 해나를 그리고 내 외로운 마음을 찾아 왔었다. 와서 눈물 흘리는 내 아픈 마음에 손수건을 덮어 주고 갔다. 해나가 가버리고 없다는 상실감이라는 웅덩이가 너무 커서 누구라도 그 웅덩이 근처를 얼씬거리면 빠지게 되고 말만큼 내 허전함이 컸었다. 아마 돌맹이였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에 정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그것도 해나를 닮은 그녀가 내게로 와 주었다. 흡사 신이 다친 내 영혼에게 보내 주는 선물처럼.
힘든 시절을 그렇게 보내 줄 수 있게 한 그녀가 고마웠다. 이제는 그 손수건으로 내가 그녀의 아픈 마음을 덮어 주고 싶었다.
"저 선생님께서 수술해 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안심도 되고 마음이 덜 괴로울 것 같아요. 선생님께는 어쩌면 조금 힘드시겠지만 저를 아끼시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 주세요."
그녀의 뱃속에 있는 다른 남자의 아기.
사자들은 권력 쟁탈전에서 이겨 새로 왕좌에 오르면 기존에 있는 다른 수컷의 새끼들은 다 죽여 버린다고 한다.
새끼를 죽여야 암사자가 수유를 중지하고 다시 임신을 하게 되어 자신의 새끼를 잉태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것이 자신의 씨앗을 많이 퍼트리기 위한 당연한 자연 현상의 하나라고 생물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아기를 수술해서 지워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지 모르겠다. 앞으로 점점 아기에게 쏠릴 그녀의 마음을 내게 돌리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로 때때로 괴로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그녀의 요구를 들어 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닌 다른 의사에게서 수술을 받는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아기를 낳기를 바랬다.
비록 나의 아기는 아니지만 그 아이는 그녀의 아기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남자의 아기를 임신했건 간에 뱃속의 아기는 그녀의 아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것처럼 그녀의 아기도 지켜주고 싶었다.
수컷이 가진 암컷에 대한 정복의 본능과 보호의 본능에서 나는 보호의 본능이 조금 앞서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모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수술을 받는 것이 싫었다.
물론 아기를 임신한 그녀를 보면서 앞으로 괴로운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지만 비바람이 불지 모른다고 빛나는 태양이 내려 쪼이는 들판으로 나가지 않는 바보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바깥분과 정리할 생각이시라면 아기는 꼭 낳으세요. 본인이 직접 키우던 아니면 누구든 지켜주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지켜 드릴께요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정말 그러고 싶었지만 그런 말로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오지 않은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말에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했다.
사랑이 떠난-나로서는 떠났다고 믿고 싶었다.-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여자의 심정을 아주 모르지는 않았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진료 현장에서 그런 여자들을 많이 만났었다. 사람마다 반응은 다 달랐지만 대체로 생각도 하기 싫은 징그러운 벌레가 자신의 몸 속에 자리 잡은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아기를 그렇게 증오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아기이고 자신의 아기이기도 한 아기를 그들은 벌레처럼 생각했고 나는 그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남자로서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아마 죽어도 나는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든 최소한 반은 내 아기이기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사랑은 왔을 때 보다 떠났을 때 더 심한 상처와 고통을 남겨주고 간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사랑은 떠났을 때 보다 왔을 때 훨씬 큰 고통을 던져 준다. 다만 사랑이 왔을 때는 그 사랑의 힘이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바깥에 나가 보지 않겠습니까 ?"
"왜요 나가시고 싶으세요 ? 저는 이렇게 차 속에 둘만이 앉아 있는 것도 좋은데."
그녀는 둘만이 있는 좁은 공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그녀를 만났던 곳은 차속이거나 아니면 노래방이거나 혹은 좁은 진찰실이거나, 항상 무엇인가로 둘러 쌓인 밀폐된 공간이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좁은 곳 보다는 넓은 곳을, 앉아 있기 보다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고 보면 그녀와 나는 다른 것이 많았었다. 그녀는 파란 색을 좋아했고 나는 하얀색을 좋아했다. 그녀는 음악을 좋아했고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언젠가 우스게 소리로 우리는 2 % 에서만이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2 %를 확인하고 있었다.
함께 같이 있는 것. 그것만큼은 그녀나 나나 부인할 수 없이 분명히 좋아하는 것이 확실했다.
"이 길로 넘어가면 일동 가는 길이예요. 저 이제 배 고파요. 나가지 말고 이대로 가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그러시겠어요 ? 저도 배가 좀 고프기는 하네요."
"그때 해나 문병 갔을 때 보니 감자탕 잘 드시던데 감자탕 먹으러 가실래요 ?"
감자탕이라,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는 것을 말할까 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나도 좋아 해 볼 참이었다. 그녀가 좋아한다면 나도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요. 가세요. 감자탕."
이러다가 앞으로 감자탕만 먹게 되는 것은 아닐까 슬슬 불안해지기는 했지만 어떻겠는가 ?
그녀와 함께 먹는 것이 감자탕이 아니라 쓴 소태라 하더라도 내게는 이 세상에 무엇보다 달콤한 음식일 것이다.
서쪽 하늘에 해가 걸려 있어 차창 밖으로 노을진 붉은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6 월이 가면 그 붉은 노을처럼 곧 뜨거운 여름이 올 것이다.

XXVII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아 우산을 쓰지는 않았다. 상상 속의 그녀도 이제는 그녀가 있어야 할 곳으로 떠났다.  내가 이곳에 머무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그녀도 그녀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비를 맞으며 천천히 해변을 걸었다. 비가 와서인지 청승 맞게 길에 나와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걷는 발걸음이 많이 무거웠다. 몸이 젖어서 인지 아니면 마음이 젖어서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와 만난 기억의 편린들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방을 살펴 보면 내가 이 세상에 온 의미와 그녀와 내가 헤어지게 된 의미, 그리고 나를 떠나 보내야 하는 의미를 알아 낼 수 있을까.
헤집고 쑤시고 아무리 분석해도 삶의 의미란 것을 삶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알아 낼 수 있을까 ?
내가 어렸을 때 땅강아지를 여러 마리 잡아서 작은 흙을 담은 작은 플라스틱 통속에 가두어 둔 적이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속에 갇혔지만 땅강아지들은 흙을 파고 굴을 만들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통 속으로 불이 붙은 휴지 조각을 넣어 볼 생각을 했다. 불이 꺼지면서 통속은 연기로 꽉 차 올랐다.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땅강아지들은 이리 저리 방황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에게 내린 재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런 일이 벌어 졌는지 그들은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이었다.
한 꼬마의 아무 생각 없는 호기심이 그들의 재앙의 이유이고 죽음의 윈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인간'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삶도 어쩌면 그들 땅강아지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의미도 모르면서 살아야 하거나 또는 의미도 모르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바다는 넘실거리면서 검고 흰 포말을 일으키면서 나를 삼킬 듯 넘어 왔다가 물러가고는 했다.
어쨋건 이제 많은 날들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선착장 쪽을 지나 서둘러 먼저의 PC 방으로 향했다. 바둑을 복기하는 기사처럼 그녀와 내 몇 달간의 기록을 더듬어 볼 것이다.
행간에 숨은 의미를 알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굳이 의미를 알아 내지 못하더라도 지난 기억이 주는 설레임과 환희를 되새겨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사이사이의 쓰디쓴 기억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미하듯이 그녀의 그리고 나의 글들을 읽어 보아야 겠다.
씹고 또 씹어서 고통을 견딘다면 쓴 기억들에서도 약간의 달큼한 미각이 느껴 질 수 있으리라.
땅강아지들에게 그랬던 것 같은 질식할 만한 연기가 밀려 들어오면 연기를 마시고 죽으리라. 연기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의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서 일 테니까 조용히 받아들이자.
의미를 떠나 이렇게 비 오는 오후는 글을 쓰거나 읽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PC 방에는 여전히 게임을 하는 아이들로 붐볐다. 비가 와서인지 바깥으로 나돌 곳이 없는 방랑자들처럼 조그만 칸을 하나씩 차지하고 이곳 저곳에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 받기 싫어서 가장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익숙한 주소를 치고 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아무 것도 온 것은 없었다.
그 동안 보내고 받았던 메일들을 훑어 보았다.
주로 7 월부터 8 월까지 두달간에 걸쳐 보내고 받은 것이 많았다. 주로 내가 보냈고 그녀는 짤막한 답글을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제목을 보니 맑았던 날과 흐린 날들이 그녀와 나의 감정의 일렁임을 따라 수시로 교차하고 있었다.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면서 불안해 하던 날이 있는가 하면 걱정으로 혹은 만나지 못하는 갈증으로 괴로워한 날도 있었다.
의료 사고가 나던 8 월말부터 9 월까지는 메일이 거의 없었는 데 휴대 전화를 이용했거나 만나서 이야기한 시간이 많아서 였을 것이다.
7 월의 어느 날의 편지는 제목이 "LU" 로 되어 있길래 열어 보았다.

오늘은 날씨가 참 화창하네요.
승혜씨가 좋아하는 날이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따 오후에  좀 한가하면 제 생각하면서  커피 한잔 드세요.
나는 승혜씨 생각하면서 연애 편지 쓸께요.
어제는 제가 직접 사랑 고백하니까 어땠나요 ?
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금 쑥스럽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직접 고백을 듣는 기분은 어떨까요 ?
당신의 보드라운 뺨의 감촉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어요.
눈을 감고 그 감촉과 당신의 머리에서 나는 자몽 향기를 떠올려 보고 있어요.
저는 지금 기분이 정말 좋아요. 승혜씨도 그런가요 ?
그랬으면 좋겠군요.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당신께 보내는 편지에는 앞으로 love you 의 의미로 끝에 내 서명을 붙입니다.

P.S
내일은 승혜씨를 위해 서점에 나가 볼 까 해요. 꼭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 있어요.
그 책이 무언지는 지금 말하지 않을 거예요. 맞추어 보세요. 무슨 책일지.
LU.

그리고 보니 그때 선물해 주었던 책이 생각났다.
예언자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시인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이 쓴 "아주 깊이 사랑하다."라는 책이었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책의 첫 번째 글에 있는 책을 골라서 보내 주었는데 그녀가 그 책을 읽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아마 책을 잘 읽지 않는 그녀의 행태로 보아서는 어느 구석엔가 꽂혀서 먼지를 폴폴 맞고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잊고 있던 휴대 전화에서 삑삑 거리는 소리가 났다.
보니 밧데리가 얼마 남지 않아 경고음을 울리는 모양이다. 그렇지, 3 일도 더 지났으니 갈 때도 되었지. 보내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몇 년 동안 나와 고락을 함께 한 것이라 애착이 들었다. 운동을 갈 때나 목욕탕을 갈 때든 어디를 가든 항상 가지고 다녀서 애착이 많이 생겼다.
별로 쓸 일은 없었지만 충전을 해 두기로 했다. 딱히 연락 올 때는 없었지만 연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는 날 까지는 그도 곁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나라는 인간이 원래도 마음이 단단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오면서 마음이 많이 여려져서 이런 사소한 것조차에도 연민이 드는가 보다.
카운터 옆에 있는 급속 충전기에 휴대 전화를 꽂았다. 그렇게 내 인생도 다시 충전해서 새 힘으로 살 수 있었으면 어떨까 하고 순간적으로 미련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휴대전화야 전기를 연결해 주면 되었지만 사람에게는 삶을 이끌어 가는 힘으로는 무엇을 연결해 줄것인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책에는 써있었던 것처럼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일까?
그러면 나처럼 사랑을 잃은 사람 아니 사랑할 대상을 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사랑을 잃고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 생각에도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에 대하여서이든 또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든 사랑은 사람으로 하여금 삶을 이어가게 하는 유일한 힘일 것이다.
어느 깊은 밤 혼자 깨어 있는 자신의 삶이 허전하고 어느 비 오는 아침이 괜히 슬퍼진다면 가슴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랑의 존재가 자신을 보아 주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다른 아무도 사랑할 대상이 없을 때는 자기 자신이라도 사랑해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독약이 놓여 있던 호텔로 향하는 이 순간까지 나도 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었다.

XXVIII

"우리 서로 이렇게 막 좋아해도 괜찮은 거예요 ?"
그녀가 나를 가만히 쳐다 보면서 물었다.
"나는 미래를 걱정해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앞에 아니 내 앞에 지옥의 불구덩이가 놓여 있다 하더라도 나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가 그런 말을 했더군요. 가장 큰 행복은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저는 그런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승혜씨도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내 눈을 바로 보고 있었다. 예의 그 깊고 까만 눈에는 내게 대한 애정의 기운이 분명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순간에 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손을 내게 내밀었다.
따스하고 보드라운 작은 손을 내게 내밀어 주었다. 그 손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내 눈 앞으로 다가 왔다.
그녀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내 손이 그녀의 손과 포개졌다. 따스한 온기와 가느다란 떨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니 떨림은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는 행위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 준다는 것은 마음을 내밀어 준다는 의미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의미이고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나는 여지껏 수줍어서 누구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 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내와 연애하면서도 나는 먼저 손을 내밀어 보지 못했다.
먼저 키스를 하지도 못했고 먼저 그녀를 안지도 못했다. 그런 내게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아프지 않을만큼 세게,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오래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밖은 어두워져서 별이 뜨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도 그녀의 별이 뜨고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온 날에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느꼈던 포근함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도 좋기는 했지만 그때의 그녀는 안식처를 찾아 든 아픈 동물의 모습이었고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했을 뿐이었다.
그때의 감정이 연민이라면 지금의 감정은 무어라고 해야 하나. 무엇이지 모르겠지만 연민이나 동정은 아니었다.
오직 나만을 위해서 그녀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그녀의 작고 보드랍고 따스한 손을 내밀어 주었다.
잡은 손을 끌어 당겨 그녀의 몸을 가만히 안아 보았다. 그녀의 머리칼에 내 얼굴을 묻었다. 이 여자를 지켜주고 싶었다.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었다.
"나.....아무래도 승혜씨 없으면 안될 것 같아요.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사랑...해요."
"......."
그녀의 대답은 없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내가 사랑할 수 있도록 가만히 있어주기만 해도 관계없었다. 내 사랑을 내가 느낄 수 있을만큼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있어 주기만 해도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안이 너무 더워 차의 창문을 열었다.
7 월이지만 계절은 이미 여름의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었다.
밖에서는 내 가슴의 쿵쾅거림처럼 폭포가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제게도 이제 선생님은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예요. 저는 아직 이것이 사랑인지 무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이 제게 주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겠지만 그런 같은 것을 저도 드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주는 것도 내가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저 아기 낳기로 했어요. 선생님을 믿기로 했고 저를 믿기로 했어요. 하 선생님은 이제 제게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낳기로 했어요. 더 이상 그 사람을 증오하지 않아요. 증오하지 않기 때문에 아기도 증오할 이유가 없어졌어요. 누구의 안에 있건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알려 주었어요. 감사드려요. 그래서 선생님이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 저도 내 아기를 사랑하기로 했어요. 언제까지나 저를 지켜 주세요."
그녀의 어깨를 좀더 세게 안아 주었다."
“잘 생각 했어요. 내가 지켜 줄께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녀의 말을 듣고 너무 행복했지만 삶의 한 가운데 섰을 때 그런 것처럼 행복의 한 가운데 있을 때 오히려 나는 조금씩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런 불안함은 그 이후 그녀를 만나는 동안 조금의 허전함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약간의 서운함이라는 모습으로 혹은 질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건 한번 시작하면 주체를 못하고 지나치게 몰입하는 단점이 있었고 그런 몰입은 쏫은 만큼 얻지 못할 때 허전함이라는 이름의 부작용을 불러 왔다.
나는 일이건 사람이건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시작한 것은 그녀였지만 간절한 것은 나였다.
여름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감정이 나의 가슴을 지배했고 눈을 멀게 했다.
너무 뜨거운 열기는 풀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런 너무 뜨거운 열기가 그녀와 우리의 감정을 다치게 할까봐 겁이 났다.
그리고 내 앞길에 놓인 세상의 시선과 미래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두렵지만 황홀했다.
그녀는 도저히 똑바로 쳐다 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주었지만 그것보다 훨씬 큰 황홀함을 내게 주었다.
시편 23 편에 있는 구절이 떠올랐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녀는 나를 뛰어 놀게 하고 쉬게 하고 생기가 넘치게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의 목자였다.
이제 이곳 폭포는 우리의 아지트가 될 것이다. 그녀나 나나 마음이 힘들때면 또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싶고 향기를 맡고 싶은 갈증에 못 이길 때면 이곳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의 감정은 메일로 나누고 오해를 푸는 것도 얼마든지 메일로 할 수 있었지만 메일을 주고 받는 것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녀의 모습과 향기에 대한 갈증은 메일로는 도저히 풀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갈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XXIX

독약이 기다리는 호텔이라. 혹시 방청소 하는 사람이 물건들을 버려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상한 약과 주사가 있으니 약물 중독자라고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발걸음이 서둘러 졌다. 빗발도 점점 굵어지고 있어서 완전히 옷이 젖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더 있어야 했지만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바람이 거세어 지고 파도가 높이 치고 있었다.
항구의 배들은 전부 방파제 안으로 들어와 밧줄로 묶여 있었지만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야생 동물들처럼 뱃전을 서로 맞부딪히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금방 끈을 끊고 달려 나갈 기세였지만 아직은 밧줄의 힘이 그들을 억제하고 있었다.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린다. 아니 어쩌면 내 가슴 속에서 나는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호텔의 로비를 들어 설 때는 옷이 거의 젖어서 난감했다. 이런 몰골로 들어서니 프론트에 있는 종업원들이 다소 놀란 눈으로 쳐다 본다.
"손님 옷이 다 젖으셨네요 ? 세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옷 가지고 온 것 없으신가요 ?"
"아니 됐습니다. 뭐 잠시 널어 놓으면 마르겠지요."
눈치를 보니 아직 별일은 없는 듯 했다. 방에 있는 것들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실 테이블에 올려 놓았으니까 알았다 해도 함부로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참 좀 전에 소록도 병원장님이라고 하는 분 한테서 전화 왔었습니다. 혹시 이 호텔에 묵으시는 지 여쭈어 보면서 계시면 바꿔달라고요. 연락처는 여기 적어 놓았습니다. 들어 오시면 연락달라고 하셨습니다."
"네. 제게 아는 분입니다."
프런트에서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건네 받았다. 전화를 해 보아야 할 지 어떨지 망설여졌다. 내게는 할일이 있었는데 아직도 때가 아닌 것인가.
질긴 운명의 끈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구나 싶었다. 내가 세상에 미련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나한테 미련이 많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를 않는다.
"저 이혁이라는 사람입니다. 원장님 부탁드립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
"여보세요 ? 혁이냐 ?"
"네 선배님 전화하셨다구요 ?"
"그래 임마, 날도 궂고 해서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시고."
"임마 네가 녹동 현대 호텔에 묵는다고 하지 않았냐 ?  몰랐다고 해도 녹동에 호텔이라고 해봐야 몇개 되지도 않아서 찾는거야 식은 죽 먹기다만은."
"예. 그런데 무슨 일로 ?"
"올라가기 전에 소주나 한 잔 하고 싶어서 전화했다. 이따 저녁 때 시간되나 ?"
"예 별일 없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
별일이 있을게 무에 있겠나. 그리고 이런 날에는 소주라도 한번 실컷 먹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따 그리 가면서 연락하마. 휴대 전화 번호나 알려다오. 출발하면서 전화 할테니까."
"예."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주고 방으로 올라왔다. 물건들은 다행히 처음 올려놓은 테이블에 고이 올려져 있었다. 아직도 자기가 마무리 짓지 못한 역할을 끝내기 위해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밖에서는 본격적으로 천둥과 번개가 작은 항구를 내리 뒤덮고 있었다.
장대 같은 빗줄기는 도저히 가을에 오는 비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었다.
이런 계절에 왠 비가 이리 오는지.
그녀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던 여름도 비가 그렇게 많이 왔었던 기억이다.
어느날 인가는 약속 장소도 정하지 않고 길에서 만났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로 꼼짝도 못하고 어느 집 처마에 갇힌 적이 있었다.
간신히 두사람의 몸만을 가릴 수 있는 좁은 공간에 한참을 둘이 서 있었다. 바로 앞에서 쏫아 붓는 비는 금방이라도 우리를 끌어 낼 듯이 사정없이 위협하고 있었다. 급하게 달리는 열차 가까이 갔을 때 빨려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처럼 빗속으로 끌려 들어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우리 둘은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 여름이지만 비오는 날이라 춥기도 했고 함께 포옹하고 있으니 비와 천둥이 주는 공포를 조금은 덜어 줄 수 있었다.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아무 것으로도 가려진 벽은 없었지만 비로 만든 장막은 위협과 함께 또한 오롯한 둘만의 공간을 내어 주기도 했다.
우리가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 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학창시절 그렇게 재미있게 친구들과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지나고 보면 하나도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과 같이 그때의 느낌은 굉장히 포근한 느낌이었지만 내용은 잘 떠오르지를 않는다.
아마도 내 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내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어떤 여자인지 하는 것들에 대하여 잠깐 스쳐 지나는 이야기처럼 했었던 기억이다. 사랑도 없으면서 우리 집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던 그녀의 집념과 무서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아내가 내게 품었던 감정을 나는 사랑이라고 착각했지만 알고 보면 소유욕이고 아내의 자존심을 다치기 싫어 한데서 오는 고집일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내가 내게 주는 것이 그리고 내가 아내에게 갖고 있는 것이 나는 사랑이라고 착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윤약사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누가 누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주는 만큼 받지 못한다고 해서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내는 나에게 준만큼 받으려고 했고 받은 만큼만 나에게 주었다.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만나서 너무 오래 같이 살았다. 오래 같이 살다보면 삶이라는 것이 그대로 흘러가지고 삶이 살아 지는 줄 알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지금도 그때의 처마 밑이 생각이 난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었고 특별히 멋진 처마도 아니었다. 아무런 특별할 게 없는 순간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특별했다.
"띠리리리"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선배가 도착한 모양이다.
"지금 가고 있는데 너 우산 없지 ? 차 가지고 갈테니까 로비로 나와 있어라."
젖은 옷을 말릴 틈도 없이 그대로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
"안녕하셨어요. 선배님."
"너 옷이 다 젖었구나. 밖에 나갔다 왔니 ?"
"예 아까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다 젖었습니다."
"감기 걸릴라. 근처에 가서 옷부터 바꾸어 입고 가자."
"아니 됐습니다. 어차피 또 젖을 텐데요. 뭐."
마음 속으로는 어차피 하루나 이틀 밖에 안 입을 옷인데요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그건 두고, 뭐 먹고 싶니 ? 있으면 이야기 해봐."
"아무거나요. 저는 잘 모르니까 선배님이 정하세요."
"너 먹고 싶은 것을 말해야지. 바닷가지만 날이 이러니까 따뜻한 것이 낫겠지 ? 그래, 삼겹살 먹으러 가자. 소주에는 그만한 것이 없지 않니 ?"
"예. 그러세요."
선배의 차를 타고 고흥읍 쪽 방향으로 가다 보니 제법 큰 고깃집이 나타났다. 야외에서 먹을 수 있도록 된 집 같은데 비가 오니 실내로 들어가야 했다.
선배는 삼겹살과 소주를 시켜 한잔씩 잔에 따라 놓고는 별 이야기 없이 고기만 굽고 있었다. 젖은 옷은 척척해서 몸이 근질거렸다. 선배의 말대로 옷이라도 바꾸어 입고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앞에 따스한 불이 있고 방바닥도 따스해서 조금씩 마르지 않을까 싶었다.
"너.....이곳에는 왜 왔니 ?"
"......."
"혼자 휴가로 올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와 보았으니 알 거고. 병원이나 아니면 집에 무슨 일 생긴거냐 ?"
선배는 역시 힘든 시절을 겪어 봐서인지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예 사실은 얼마전에 의료 사고가 있었는데 보호자들한테 너무 시달려서 일할 의욕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었지만 일견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쑥 이런 곳으로 내려오면 해결이 나냐 ? 변호사를 사서 법적으로 대응을 하던지 아니면 그냥 뚝심으로 버티든지. 한번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 충분히 배우지를 못 한거냐 ?"
"글쎄요. 제가 아무래도 의사로 적당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예전에 하고 싶던 그림이나 하면서 사는 건데 잘못한 거 같아요."
"바보 같은 소리. 뭐를 하던 하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너처럼 도피하면서 살면 어떤 일을 해도 견뎌낼 수가 없어. 방법이 틀렸어. 여튼 자 우선 한잔하자."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이지만 단숨에 들이켰다. 옷이 젖은 것처럼 흠뻑 취해 버리고 싶었다. 취해서 다 잊어 질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선배님은 왜 이곳에 오시게 되었어요 ? 원래 대학병원에 계셨잖아요 ?"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가정적으로 좀 문제가 있어서 멀리 도망치는 기분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정도만 말해두마. 그러고 보니 내가 너를 훈계할 처지도 아니구나. 허허."
웃는 선배의 웃음이 공허해 보였다.
"그런데 이곳에 오고 보니 이곳은 도망쳐서 올 만한 곳이 아니더구나. 너도 보아서 알겠지만 산다는 것은 만만하게 할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누리는 것들도 치열한 노력을 통하지 않으면 얻어 보지 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간증 시간에 덴마크 유학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상으로 온 얼굴과 손발이 타서 뭉그러진 어느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손가락마저 타서 엄지 발가락을 떼다 이식을 했지만 아무리 해도 변을 보고 뒤를 닦는 것은 팔이 자라지 않아서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한다는 선배였다. 그리고 그런 일에서조차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라도 살아 남아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 조차도 신의 뜻이 있기 때문이며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였다.
지금 선배도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술자리도 아마 그날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고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낸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만 늦었다면 아마 나는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 무언가 모든 것이 어떤 예정된 시나리오에 맞추어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하며 결국 이곳에 온 것까지 모두. 숨어 있는 큰 의미를 내가 모르고 있는 것 뿐인 건 아닐까 ?
점점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의식이 혼미해지는 것과 동시에 내가 알고 싶은 의미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XXX

"과장님 진행이 잘 안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 그대로 좀 더 두고 볼까요 ?"
분만실에서 연락이 왔다. 양수가 파수되어 아침부터 유도분만을 하던 산모가 40 % 정도만 자궁 문이 벌어진 채로 진행이 잘 안되고 있었다.
"나 저녁 먹고 들어 갈 거니까 일단 그대로 좀 두고 보고 한 두시간 후에 결정할 거니까 금식 시키고 있어요. 태아 심박동 잘 체크하고."
"빨리 들어가 보셔야 하는 것 아니예요 ?"
"아니 괜찮습니다. 나오기 전에 보았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진행이 좀 안되기는 하는데 좀 더 두고 보다가 안되면 수술해야지요. 뭐."
"괜히 저 때문에, 여기 이러고 있으면 안될 거 같은데."
윤약사가 불안 해 하고 있었다. 사실 저녁 안으로 산모가 해결이 안 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빨리 출산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출산하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대로 아무때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까 저녁에 소아과 하과장님과 무슨 말씀하시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니죠 ?"
점심 시간에 소아과 하과장이 그녀에게 저녁 시간을 잠시 내달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뭐 별일 아니예요. 하선생님은 제가 임신한 아기 지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사실대로 이야기를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하선생님은 선생님과의 관계를 묻더군요. 요즘 자기를 피하는 이유가 무언지도 자꾸 캐묻고."
"그래서 무어라고 그랬나요 ?"
"제가 뭐라고 그랬을 것 같아요 ?"
"잘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아이 아빠니까 그냥 평범한 마음은 아닐 것 같은데."
"......"
"아무래도 마음 속에 번민 같은 것이 있는 게 인지상정일 거라는  그런 생각은 들어요."
"선생님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 아직도 저를 못 믿으시나요 ?"
"아니예요. 믿어요. 승혜씨는 믿지만 하과장님을 못 믿어요. 하과장님을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같은 병원에서 어떻게 말도 안하고 지낼 수가 있겠어요 ?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예요 ?"
"구실을 대서 피할 수도 있을텐데, 그리고 하과장이 만나서 이야기 한 것이 분명 공적인 일이 아니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그런 사적 자리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시는 군요. 선생님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는 자꾸 불안해요. 승혜씨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니면 마음 속에서 별 생각이 다 들어요. 더군다나 아기의 아빠인 하과장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가 있겠어요. 제가 아기를 낳으라고 하는 게 아니었나 봐요. 저부터 감당도 못할 일을 승혜씨에게 강요했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 지금이라도 지울까요 ?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할께요."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실망과 원망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도 조금 어리는 듯 했다.
이게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게 아닌데, 왜 또 어긋나가는 걸까.
"띠리리리"
"과장님, 산모 보호자가 과장님 뵙고 싶데요. 지금 어디 계세요 ?"
"알았어요. 금방 갈께요."
"그만 들어가세요. 저는 아무데서나 내려 주세요."
"아니예요. 답답해서 이데로는 못 들어 가겠어요. 제 뜻은 그게 아닌데 왜 자꾸 엇나갈까요. 미안해요. 힘들게 해서. 내 말은 그러니까"
말이 잘 만들어 지지를 않았다.
무언가 내가 말하고 싶은 의미가 있는 데 분명한 문장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저는 승혜씨가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요."
"저 힘들지 않아요.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지금 선생님이예요. 병원으로 가세요. 저도 기숙사로 들어가야 겠어요."
"아니예요. 이대로는 답답해서 도저히 그냥 못가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가세요. 저 다시 보시고 싶으시면 지금 병원으로 가세요."
차를 어떻게 달려 병원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어디서 내렸는지도 잘 모르겠다. 모두 그만두고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는 기다리는 산모가 있었다.
"과장님, 산모 보호자가 계속 찾았어요."
"알았어요. 산모 상태는 어떤가요 ?"
"아까 과장님이 두시간 전에 보았을 때하고 똑 같아요."
산모는 심한 진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아까의 상태에서 조금 밖에 진전이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수술을 해야 할 상황으로 보입니다."
보호자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주 들여다 보아 주지 않은 것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원래도 좀 까탈스러운 보호자 였다.
"이제껏 아무 말씀없이 안 나타나시다가 갑자기 오셔서 수술해야 한다구요 ? 그럼 빨리 해주시지 여지껏 왜 기다렸습니까 ?"
"출산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라 잘 되다가도 안 될 수가 있고 그렇습니다. 여하튼 제가 지금 보기로는 자연 분만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야, 조금 더 힘 좀 써 보자. 다 잘 낳는데 병원에서는 괜히 수술해야 한다고 그런다더라."
옆에서 시어머니 되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가 산모에게 하는 소리인지 나에게 하는 소리인지 분명하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정 원하시면 조금 더 기다려 볼 수는 있지만 진행이 잘 안 되는 상태라 크게 기대는 안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수도 파수 된지도 오래 되었기 때문에 아기 상태도 그리 안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상태를 잘 알았으니까 좀더 두고 보는 것으로 해 주십시요."
아무래도 가족들의 설득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힘든 분만이 될 것 같았다. 이미 10 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언제쯤이나 해결이 되려는지.
두 시간도 더 지나서까지도 수술을 못하고 있었다. 진행은 더 되어 태아의 머리가 골반 강으로 살짝 들어 오기는 했지만 산모의 자발적 힘으로 나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또한 흡입 분만도 너무 무리라 도저히 시도할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수술을 동의해 주시지 않으면 아기가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뭐 기계로 꺼내는 방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방법은 시도할 수 없는 겁니까 ?"
"그래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아깝지 않냐. 그자 에미야. 조금만 더 힘 내보자."
"흡입 분만을 하기에는 너무 골반이 좁고 산모가 탈진이 되었습니다. 제 아내 같으면 이미 수술했을 것입니다. 제발 제 의견에 따라 그렇게 해 주십시요. 부탁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흡입분만 한번 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하는 것으로 해 주십시요."
"지금 흡입분만을 시도하는 것은 아기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위험을 무릅 써가면서까지 자연 분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습니까 ?"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아기 상태는 가족인 저희가 책임질 테니까 그렇게 해 주십시요."
아무리 해도 설득이 되지를 않았다. 빨리 수술을 하려면 시늉으로라도 흡입분만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흡입분만은 성공하지 못했다.
"임간호사, 빨리 마취과 연락하고 수술 준비해요."
마음이 급했다. 태아의 심박이 불안정 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수술을 끝냈는지 모르게 수술을 끝냈을 때는 밤 2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야 어때도 좋았지만 우려하던 대로 아기의 상태가 좋지를 않았다. 아기는 울지를 못했다. 간신히 맥박이 잡혔을 뿐이고 근육의 긴장도도 매우 떨어졌다. 급히 기도 삽관을 하고 대학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기들은 생명력이 강하여 대체로 예상보다는 빨리 회복이 되기는 했지만 이마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렀다.
마취 과장의 표정이 밝지를 않았다. 태변 흡입도 많이 되고 호흡도 너무 약해서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이과장님 아기기 별로 좋지를 않습니다. 좀 빨리 수술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잘 이야기가 안되었나 보죠 ?"
"예. 제가 설득을 잘 했어야 하는데 능력이 모자라는 모양입니다. 좋아지기를 바라는 수 밖에요."
"나는 산모를 봐야 하니까 임간호사가 앰불런스 타고 인공 호흡하면서 따라가요. 서울에 연락해 놓을 테니까 가서 전화하고."
보호자들이 아무리 책임을 자신들이 진다고 했지만 그런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법적으로도 효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윤리적인 점에서도 내 마음 속의 후회스러움을 덜어 줄 수 없었다.
좀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좀더 적극적으로 설득을 했어야 하는데 내가 잘못이었다.
제발 아기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해나 때 한번 속았지만 신에게 다시 한번 부탁을 하고 싶었다.

XXXI

머리가 깨지는 것 같다.
먹지도 못하는 술을 어제 언제까지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새벽녘까지 먹지 않았나 모르겠다. 삼겹살 집을 나와 단란 주점 같은 곳을 간 듯 싶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오늘이 며칠인지 몇 시쯤 되었는지도 도통 감을 못잡겠다.
아마 선배가 태워서 호텔까지 데려다 준 모양이다.
쓰러지기 전에 무언가 횡설 수술한 것 같은데 생각이 잘 떠오르지를 않았다. 요즘의 내 심정으로 보아서는 사람이 살아 나가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의 고단함이나 이해 불가능한 그런 점에 대하여 말했을 것이다. 내 정서가 불안정하고 Flight of idea 나 그외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로 인하여 선배도 아마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하여는 눈치를 채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테이블에 올려진 주사약과 주사기를 보았다면 한눈에 그것이 무엇을 위해 쓰이는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테이블에 있는 물건들은 그대로 있었다. 다만 거울에 쪽지가 하나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취해서 데려다 놓고 그냥 간다.
무슨 고민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소중히 생각해라.
지금 죽고 싶을 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도 시간이 지나가면 다 그런대로 살아가지더구나.
지갑에 돈도 얼마 없는 것 같아서 돈도 조금 넣어 놓고 간다. 힘들면 연락해라."
쪽지의 아랫 부분에는 선배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진다.
시간이 지나가면 살아가 진다.
그런데 잊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지요. 선배 ?
잊으면서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배 ?
미안해서 도저히 잊어서는 안될 때는 어떻게 하면 좋나요. 선배 ?
거울 저 안쪽에서 낯 설은 사내의 얼굴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당신은 알고 있나 ? 내 질문에 대한 답을 ?
침대에 몸을 던져 다시 누웠다. 머리가 계속 지끈 거렸다.
눈을 감고 지나온 날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좋은 기억만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처음으로 그녀와 키스를 하던 날을 생각했다.
어디였지 ? 언제였던가 ?
그래 그 폭포, 우리의 아지트.
7 월 말쯤이었을 거야. 내가 그녀라는 갈증으로 괴로와 하던 시절.
산부인과 회식이 있은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김간호사일로 내가 힘들었을 때 그녀가 나를 위로 해주기 위해 만났었다.
김간호사는 회식 때 술을 이기지 못하고 나한테 결국 묻고 말았었다. 내가 윤약사랑 어떤 관계인지를.
다른 사람들은 김간호사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술이 취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나만이 그녀가 말하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술김에도 그녀가 윤약사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던 것은 그래도 나를 걱정해서였을 것이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 대하여 집요하게 물었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한마디 뿐이었다. 뭐가 미안한 지는 나도 잘 몰랐다. 다만 그녀에게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은 것 때문이었을까.
다음날 김간호사는 출근하지 않았다. 다음날 뿐 아니라 그 이후로 한동안 그녀는 출근하지 못했다. 얼굴이 하얗고 보조개가 이쁘고 긴 말총 머리가 귀여웠던 김간호사는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내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 갔다. 벤자민 고무 나무와 몇장의 스케치만을 남긴 채 내 인생의 무대에서 조연의 역할만 하다가 내려갔다.
얼마든지 주연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여자였다. 오히려 그녀의 인생에서 나는 엑스트라일 뿐이었다.
엇갈려 만나지 않았다면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윤약사보다 오히려 내가 좋아할만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아가씨였다. 그럼에도 내 감정의 물줄기가 그리로 흐르지를 못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것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윤약사와 나는 2%가 같았고 98%가 달랐지만 김간호사와는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98%가 같고 단지 2%만 다른 여자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윤약사를 사랑했고 김간호사를 사랑하지는 못했다. 사랑도 편하게 마음대로 골라서 해도 되는 거라면  나는 김간호사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녀를 떠나 보내고 나서 내게는 조금의 미안함과 보다 큰 아쉬움과 그리고 약간의 그리움이 남았다.
김간호사를 그렇게 보낸 다음날 윤약사를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전한 마음이 그녀를 만나고 싶은 갈증을 훨씬 증폭시켰다.
그녀를 떠나 보내고 나니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부쩍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 내 모습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날 우리가 시간을 보내던 차 속에서 그녀가 내 머리를 가슴에 끌어 안아 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때 보드라운 눈이 대지에 내리듯 살포시 보드랍고 따스하고 촉촉한 것이 내 입술에 닿았다.
오래 전에 잊었던 감각이 그녀로 하여 살아나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고 내 삶의 의미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이었다. 그냥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생명의 움을 틔우는 이슬과 같았고 한 인간의 희망의 싹을 심는 토양이었다.
7 월의 그날 저녁 폭포수 옆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숲은 눈을 뜨면서 긴 가지를 늘어 트려 우리를 훔쳐보았고 새들은 우리의 머리 위를 시샘하듯 맴돌았다. 내게 돌아가고 싶은 행복한 순간을 세개만 고르라면 그때를 하나 집어 넣을 것이다. 나머지 두개는 글쎄 언젠가 지나갔거나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겠지.
그로부터 의료 사고가 나기 한달 전까지 정확히 한달 동안이 내 평생에 가장 행복하고 고민이 없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행복한 시기는 오로지 그녀의 존재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다. 보고 싶을 때는 만났고 만나지 못했을 때는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낼 수 없을 때는 그리워했고 그리워할 수 없었을 때는 잠을 잤다.
그리고 잠을 잘 때는 꿈 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 온 하루는 그녀로 시작해서 그녀로 끝났다.  
그녀에 대한 즐거운 추억으로 머리가 많이 가벼워 졌다. 밖은 비온 뒤의 화창함으로 손을 뻗으면 땡그랑 소리가 날 정도로 투명한 유리알처럼 맑았다. 커텐을 젖혔다.
바닷 갈매기들이 꾸룩거리면서 선회하고 있었다. 배가 지나는 뒤마다 따라 다니면서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 창세기의 다섯번째 날, 새들과 물고기들도 그렇게 생명을 즐거워 했을 것이다.
소록도로 가는 배는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을 나르고 있었다. 고기잡이 배들은 공친 하루를 보상하기 위해 일찌감치 일터로 나갔을 것이다. 어제 으르렁거리던 배들은 야생의 들로 나간 동물들처럼 마음껏 바다를 휘젓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길거리를 부지런히 뛰어 다니고 있었다. 선창에 펼쳐 놓은 좌대에는 펄떡이는 물고기들이 함지박 가득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젖었던 내 옷은 밤새 다 말라서 옷걸이에 잘 걸려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내 마음은 옷처럼 그렇게 쉽게 마르지 못했다. 약들은 여전히 내 옆에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들은 아직 내게 마치지 못한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대로 죽음 같은 깊은 잠에 빠져 들고 싶었다. 아직 몸이 회복이 되지를 못했다.
다시 한참을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한 채로 시간이 지나갔다.
갈증도 나고 몸이 얻어 맞은 것처럼 쑤시고 가위에 눌리는 기분 때문에 눈이 다시 떠졌을 때는 바깥이 깜깜해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 월 10 일  금요일이었다. 시간은 새벽 5 시였다. 만 하루를 잠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허락된 마지막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XXXII

상태가 나빠 서울로 보내 놓은 아기 때문에 외래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보호자들은 수시로 찾아와서 괴롭히고는 했다. 아기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고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으로 정상적인 회생이 어렵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소아과 담당 선생님한테 들었었다.
그날 윤약사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
별로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충분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채 분만에 임했고 내내 산모 옆을 지켰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일말의 가책이 없지는 않았다. 결과야 다르지 않았을 지 모르지만 최소한 내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 죄책감 때문인지 그러고 보니 요즘은 윤약사와도 자주 만나지를 못했다.
오늘이나 내일 쯤 시간이 괜찮은 지 한번 물어 보아야 겠다. 배도 많이 불러져서 몸도 많이 무겁고 힘들텐데. 이제 임신 5 개월이나 되어 부른 배를 감추기도 쉽지 않을 때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병원 일을 그만 둬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해서 나도 모르게 때때로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는 적이 잦았다.
이제 가을이 오려는 지 은행나무도 약간씩 노란 물이 들어가는 기미였다.
이렇게 마음이 힘들 때면 김간호사가 진한 커피를 타다 주고는 했었는데.
어디 가서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로 바뀐 간호사는 벌써 한달이나 지났건만 그녀가 하던 일의 반도 못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는 스케치를 하는 일도 시들해 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윤약사를 만나야 겠다.
점심 전이라면 식당에서 말해도 되었겠지만 오후라 할 수 없이 메일을 보내야 했다. 퇴근하기 전에 메일을 볼 수 있도록 서둘러 편지를 보냈다.
<저예요.
뭐 먹고 싶은 것 없으세요 ? 감자탕 사드릴까요 ?
오늘 시간 되시면 우리 항상 만나는 그 골목으로 오세요.
제가 차 가지고 그리 지나가겠습니다.

LU.

이혁 올림>

편지를 보내놓고 서랍에서 그녀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 보았다. 언젠가 고석정 가서 찍은 사진인데 빛이 바래어 오래된 사진처럼 보였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역시 웃는 모습이 예뻤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아픈 아기 때문에 어두웠던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과장님, 윤약사님 좋아하세요 ?>
깜짝 놀라 쳐다 보았다. 김간호사가 나를 혼 내키는 말인줄 알았다. 환청이 들렸나 보다. 새로 온 간호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과장님, 대기 환자 불러도 되는 지 여쭈어 봤는데요 ?"
"네, 부르세요."
서둘러 사진을 서랍에 다시 집어 넣었다.
오후 시간은 더디게 갔다.
메일 도착 알람이 울렸을 때는 진료가 거의 끝나갈 때 쯤이었다.
<윤승혜예요. 이따 그곳으로 가 있을께요. 참 아기는 괜찮아졌나요 ?
선생님은 어떠세요 ?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따 뵐께요. >
그녀의 메일을 받고 그녀와 나의 미래에 대하여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할 수 있을까 ?
아기를 낳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 ?
나는 아내와 어떻게 해야 하나 ?
나도 이혼하고 그녀와 같이 아기를 키우면서 살면 되는 건가 ?
그게 행복일까 ? 나야 아내랑 그렇게 헤어진다해도 그리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쉽게 놓아 줄 것 같지를 않은데, 어떻게 되어 갈지 모르겠다.

항상 기다리는 그 곳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살펴 보고 그녀를 차에 태웠다.
"어서 타세요."
"저 선생님 아무래도 몸이 무거워져서 병원 그만 두어야 할까봐요.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챌 것 같아요."
"많이 힘드세요 ? 이제 5 개월째죠 ?"
"이번 주말에는 집에 다녀와야 겠어요. 몸도 풀어야 하니까 가서 엄마에게도 말하고 제 남편에게도 말해야 겠어요.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그러면 자기도 이혼해 주지 않겠어요 ? 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받아 줄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래도 될까요 ? 남편이 순순히 이혼해 줄까요 ?"
"이제는 임신 한 것을 숨기기도 어렵고 아기를 낳으면 호적에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더 숨길 수도 없어요."
"......"
"이제 이렇게 되면 그이도 포기하겠지요.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
"저야 안 괜찮을게 뭐 있겠어요 ?"
"아기 보호자들이 말썽을 부린다면서요 ?"
"아직은 괜찮아요. 아기가 아직 살아있으니까. 그러나 상태가 계속 좋아지지 않고 있으면 무언가 댓가를 요구하겠지요. 대부분 돈이겠지만."
"그나저나 뭐 드실래요,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말씀해 보세요. 맛있는 것 사 드릴께요. 또 감자탕인가요 ? 말씀만 하세요."
"저기 선생님 처음 만나던 날 먹던 그 중국집 가고 싶어요. 백리향 말이예요."
"좋아요. 이 바닥에서는 눈치가 보여서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한두번이야 모르겠지만 매번 둘만 나타나면 이상하게들 생각할 거예요."
일동의 그 중국집에는 그러고 보니 그때 가고 처음인 것 같았다.
"그날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승혜씨를 참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했었는 데 저는 어땠었나요 ?"
"왜요 왜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셨아요 ?"
"그냥 느낌에 좀 특이한 사람 같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수첩에 대하여는 말하지 못했다.
"저는 선생님을 좋게 생각했어요. 뭐 특별한 이유 같은 것은 없어요.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고맙네요. 참 서울 어머님 댁에 가신다면 주말에 가셨다가 월요일에 오시겠네요 ?"
"그럴려구요. 이제 남편이나 병원일 모두 정리하면 엄마 옆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기 키우는데만 신경쓰려구요."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우리의 아지트를 들렀다.
밤이 늦어 컴컴했지만 무서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곳은 절벽 끝이고 지옥 속이라도 무서울 게 없었다. 차 속에서 긴 키스를 했다. 그녀의 입술은 언제나 달콤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키스보다 그녀를 포옹하고 그녀의 향기를 맡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푹신한 깊은 솜 속으로 푹 가라 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고 싶었다. 시간이 여기서 멈추었으면 하고 바랬다.
"나는 어느날 승혜씨가 갑자기 나를 떠나 버릴까봐 겁나요. 그래서 그것이 꿈이었나 싶게 잊혀질까봐 겁나요."
"걱정마세요. 저 항상 선생님 옆에 있어요. 떠나지 않아요. 저를 이렇게 아껴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데  제가 왜 떠나겠어요 ? 그리고 저도 선생님 없으면 견디기 힘들어서 안되요. 선생님이나 저를 떠나지 마세요."
"그래요. 걱정하지 말아요. 영원히 사랑할께요. 죽을 때까지 영원히. 그리고 죽어서도 영원히."
그녀를 양팔로 꽉 끌어 안았다. 아무도 내게서 그녀를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려는 듯이.
삼지연의 가을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토요일은 비가 올 것처럼 날이 흐려 있었다.
복도에서 잠깐 마주쳤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따로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그냥 잘 갔다 오라는 눈 인사만 나누었다.
그리고 나도 그날은 서울에 다녀 올 계획이었다. 아무래도 아기가 입원한 병원에 들러 자세한 상태도 물어 보고 보호자들에게도 그런 성의 표시라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서울에 가서 그동안 못 만난 친구도 만나고 아내와도 이제는 무언가 정리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았다.
서로가 사회적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사랑도 없는 무의미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끝내야 할 모든 것을 끝내고 새로 시작할 것들을 시작해야 했다.
어떤 그릇도 비우지 않으면 새로 담을 수가 없다. 아내와 나의 관계도 피차 비워야 할 그릇이었다.
이대로의 채움으로 만족하면서 살기에는 서로의 가는 방향이 너무 달랐다. 몰락한 우리 집안 때문에 아마 아내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고집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월요일 철원으로 내려 갈 때는 이제 모든 것이 완전히 정리된 채로 새로운 내 인생을 위하여 다시 출발할 것이다.

그러나 월요일 출근했을 때 모든 것은 새로 시작되지를 못했다. 아니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출근할 때부터 병원 식구들이 여기저기서 수근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원무과 직원들이 모여서 조간신문을 보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슬쩍 들여다 보았다.
사회면 3 단 기사로 한 가족의 몰살 소식이 크게 실려 있었다.
<지방 모 병원 약사의 남편, 일가족 총기 살해>라는 타이틀 밑에는 일요일 저녁에 사위가 장모와 아내와 처제를 엽총으로 살해 하고 자신도 자살하였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세 사람은 즉사했고 임신 5 개월인 여자는 복부 등 몇 군데에 총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혼수 상태라고 했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사물이 초점이 맞지를 않고 흐릿해 보인다.
그녀가 총에 맞았다고 한다. 생명이 위독하단다.
그제 올라가면서 남편한테 이야기한다고 하더니......
당신 괜찮은거야 ? 곧 일어날 거지 ? 일어나야 해, 나 당신 없으면 못 살아.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용서하고 일어나 어서 일어나. 제발.
간절히 기도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
그녀는 어떻게 되는건가 ? 살아 날 수는 있는건가 ?
빨리 가 보아야 할 텐데.  가서 무어라고 하지 ? 왜 왔냐고 어떤 관계시냐고 물어 보면 무어라고 이야기하지 ?
그래 같은 병원의 직원이라고 하면 되겠구나. 다른 직원들도 아마 문병 가는 사람 있을테니까 함께 가면 오해 받을 일 없겠지.
진료실까지가 이렇게 멀었나 ?
다리에 힘이 없어서 주저 앉아 버릴 것 같다. 술 취한 것처럼 자꾸 땅이 흔들렸다.
간신히 외래 진료실로 와서 천천히 숨을 고르고 심호흡을 했다.
내가 잘 못 안건지도 모르겠다. 확인을 해 봐야 한다.
아직 진료 전이지만 외래 담당 간호사를 호출했다. 태연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떨려서 나오고 있었다.
"박간호사. 병원에 무슨 일 있어요 ? 직원들이 웅성거리고 있던데 ?"
"과장님, 오늘 신문 못 보셨어요 ? 아침 뉴스에도 나왔다는 데. 약국에 있는 윤약사님이 서울 댁에 가셨다가 사고 당하셨데요."
"왜 무슨 일이 있었길래요 ?"
"저도 잘은 몰라요. 그냥 신문에 써 있는 것 보니 약사님이 임신 중이었다는 데 아마 남편의 아기가 아니었나 봐요."
"그래 윤약사는 어떤 상태라고 하던가요 ?"
"글쎄요. 병원장님이 O 병원 외과 중환자실로 전화해 보셨는데 복부 출혈이 많아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하는 데 아마 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다들 말하던데요."
"혹시 병원에서 문병을 가기로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하던가요 ?"
"문병은요. 좋은 일도 아닌데요. 누가 가겠어요 ?"
"그래 알았어요. 가서 일봐요."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 나는 어쩌면 좋은가 ? 내 사랑하는 그녀를 왜 가만히 두지 않는건가 ?
왜 내게서 그녀를 빼앗아 가는건가 ?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잘못이라고 해 봐야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것 밖에 없다. 그녀도 나를 사랑한 죄 밖에 없었다.
가정이 있다는 것, 사회에 필요한 윤리나 도덕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르겠다.
그런 이성이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하는 그런 감정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어 내 사랑하는 그녀를 고통의 심연으로 떠밀어 넣은 것일까 ?
이건 아닌데. 내가 바랬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고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항상 즐거운 일만 만들어 주고 싶었고 웃는 모습만 남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녀가 죽어 가고 있다. 뱃속의 한 생명과 함께 그녀가 죽어 가고 있다.
아! 그녀를 구할 수 있다면.
악마여 어서 내 앞으로 오라. 와서 내 영혼을 가져가라.
가져가서 그녀를 웃는 모습이 아름답던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다오.
신이여 나를 지옥으로 내 던져라.
내 던지고 그녀의 생명을 다시 돌려다오.
아 이게 아니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 것이다.
"과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 어디 편찮으세요 ?"
"몸이 조금 안 좋아서 그러니까 오늘 외래 진료는 휴진해야 겠어요. 나 여기 그대로 잠시 있다 갈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서 일 봐요."
"예 알겠습니다."
죽고 싶다. 그녀 곁에 가고 싶다. 가서 손 잡아 주고 싶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외로울까.
지금 정말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할 텐데.
회복될 거야. 내가 모든 신들께 모든 악마에게 구르는 돌에게까지 간절히 빌테니까 회복이 될거야. 당신 회복되어 돌아올거지 ?
답답해서 병원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관사로 들어 갈 수도 없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두려워서 가지도 못했다.
내가 갈 곳이 아무데도 없다.
아니 그곳, 우리의 아지트,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곳이 생각났다. 미친듯이 차를 달려 폭포수 옆으로 달렸다. 그녀가 혹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폭포는 며칠 전과 다름없이 떨어지고 있고 나무와 풀도 그대로였다.
나도 그 모습 그대로지만 그녀는 없었다.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지난 날의 내 행동을 꾸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시작한 일이고 네가 이렇게 만든거야. 사랑 ? 좋아하네. 너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나 ?
네가 사랑했다는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어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 혼자 누어있어. 그게 네 사랑의 결실이냐 ?
귀를 막았다. 폭포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귀를 막았다. 귀를 막을수록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네가 그렇게 만들었어. 네가.
안되겠다. 이곳에서 도망쳐야 겠다.
어디로 가지 ?. 그래 고석정 순담 계곡 그곳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릴 지도 모른다.
다시 정신 없이 차를 몰았다. 주변에 아무 것도 보지 않고 그저 전속력으로 내 달렸다. 긴 거리를 그렇게 빨리 오는 방법도 있었구나. 계곡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그때 탓 던 배를 찾았다. 그 배에 그녀가 타고 있을지 모른다. 아침에 들은 소리는 눈뜨면 없어지는 꿈 일거야.
배에서 그녀가 웃으면서 이쪽을 쳐다 보아 줄거야. 아직 그림도 다 못 그렸으니까 빨리 배를 타고 그녀를 만나 봐야지.
그러나 어떤 배에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배의 사공이 나를 보고 꾸짖는 것 같다. 당신이 저지른 일이야. 당신이 잘못한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아니, 나는 그녀를 사랑한 잘못 밖에 없어. 이제 더 갈 곳이 없다. 어디로 가면 괴로운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어디로 가면.....
아무 곳도 도망칠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 왔다.
다음 날부터  2 주일 동안 나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연기를 했다.
용기가 없어서 그녀에게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녀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지금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그녀가 회복될 수도 있다는 가느다란 희망 한줄기였다.
매일 그녀의 상태를 묻는 전화를 하는 것이 내가 하는 하루 일 중에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전화는 10 월 4 일이 마지막 전화가 되었다.
"저 보호자인데요 윤승혜씨 상태가 궁금해서 전화 했습니다. 오늘은 좀 어떤가요 ?"
물어 볼 때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를 했다.
"보호자세요 ? 그 환자분은 말씀 드린 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심장에 무리가 와서 맥박이 약하고 부정맥도 심해져서 가족 되시는 분들이 있으면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담당 선생님께서 그러시네요. 삼사일을 못 넘길 것 같다고 하니까 마음 준비하시는 게 좋겠어요."
삼사일 ? 이대로 끝나버리는 건가 ?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버리는 건가 ?
신이 우리에게 준 인연은 딱 여기까지 뿐이었나 ? 운명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면 다른 방법이 없겠지.
내게 삶을 이어나갈 유일한 희망인 그녀가 없는 세상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무섭고 외로운 길을 그녀 혼자 가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하기로 약속 하지 않았던가 ?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제 내가 그 약속을 지킬 때가 된 모양이다.
"박 간호사, 나 내일 제주도 학회 다녀 올 거니까 이 휴가원 원장님 갔다 드려요."
"아니 갑자기 학회 가세요 ?"
"그래요. 가을 학회를 내가 깜빡 잊고 있었네요. 휴진 안내문도 붙이고. 오늘 수고했어요."

XXXIII

이곳 소록도로 내려 오기 전날 그녀가 있는 병원을 꼭 가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게 조금 아쉽고 미안했다.
그러나 이제 얼마 후면 그녀를 만날 테니까 그때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창조주께서는 이날에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시고 복을 내려 말씀하시길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를 돌아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라고 말씀하셨다지.
이날에 최초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데 나는 신에게 받은 것을 그에게 다시 돌려 주려 하고 있었다.
한 세상 산다는 것은 참 덧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그녀의 이야기 한 줄 적을 수 있어서 그리 의미 없이 허전한 삶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비록 즐겁고 편안하기 만한 소풍길은 아니었지만 함께 걸어 간 그녀가 있어서 행복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시간의 길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한 순간이라도 의미가 있고 살만한 인생이라고 느꼈다면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저 하늘 나라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할까 ?
안녕 ? 반가워라고 하면서 가볍게 손 흔들어 줄까 ?
아니면 그냥 미소만 지어줄까 ? 내 웃는 모습도 보고 싶다고 한 그녀였는데......
이제 그만 가야지.
내가 이 세상에 온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 그녀를 만나려고 온 것 이었을까 ?
마지막으로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웃는 그녀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 힘내서 살아. 나 만나려고 서둘러 오지마. 천천히 와야 해. 아주 천천히 와야 해. 나 여기서 당신 기다릴께. 영원히. 사랑해.'
어른이 되고 나서 여지껏 한번도 흘려 본적이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녀의 사고 소식을 듣고도 흘려보지 않은 눈물이 주책없이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흘러 내렸다.
내 뒤에 남기고 온 것들이 슬펐고 그녀를 곁에서 오래오래 지켜주지 못한 것이 슬펐다.
안녕. 세상아.
안녕. 나의 인생아.
그리고 안녕. 윤..승..혜.
사진에 내 눈물이 흘러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 뿌옇게 흐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슴푸레 하게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상념에 잠겨 휴대폰 벨 소리가 한참을 울리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또 휴대폰이다. 내가 가는 내내 따라 다녔던 휴대폰이 끝까지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
흡사 나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내가 삶의 끈을 놓으려 할 때마다 나를 붙들었다.
무시하고 나의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일지 모른다는 기대로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
"혁이냐 ? 왜 이렇게 늦게 받는 거냐 ? 지금 빨리 이리 좀 와 주어야 겠다."
"무슨 일이신데요 ?"
"배를 그리 보낼 테니까 빨리 서둘러서 와 주었으면 좋겠다.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만 끊는다."
선배가 저렇게 서두르는 일이 무얼까 싶었다.
내 계획을 조금 미룰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많이 의지하고 따랐던 선배의 부탁 쯤 세상 하직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었다.
선착장으로 나가니 소록도에서 배가 한 척 급하게 오고 있었다.
"빨리 타세요. 선생님."
"무슨 일인가요 ?"
"글쎄 저도 잘 모르는데 아주 급한 일인가 봐요."
배는 쏜살 같이 방향을 돌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소록도를 향해 달려 나갔다. 배에서 내리니 앰뷸런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병원에 무슨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필요한 일이 뭐가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자 빨리 빨리 처치실로."
"선배님 무슨 일이 있나요 ?"
"아 글쎄 산모 한 명이 가지 않고 어제 밤 몰래 섬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직 9 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데 갑자기 양수가 터지면서 진통이 왔다지 뭐냐. 경산모라 육지로 갈 여유도 없고 해서 급한 대로 이리 옮겼는 데 마침 네 생각이 나서.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산모는 처치 침대에 누어 심한 진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내진을 해 보니 머리가 아니고 엉덩이가 이미 산도에 꽉 끼여 있었다. 여유가 되고 여건이 되면 수술로 분만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미 수술할 수 있는 상태는 지나 있었다. 둔위 분만을 시도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 산모가 경산모라니까 어쩌면 별 무리 없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소독 물품과 가위와 포셉 등 처치 기구를 챙기도록 지시했다. 엉덩이가 빠져 나오고 어깨 부분이 걸려 있었다. 교과서에서 본 기억과 전에 한번쯤인가 둔위 분만을 해 본 경험을 토대로 한쪽 어깨부터 천천히 돌려서 빼내었다.
이제 머리 부분이 걸려 있었다. 둔위 분만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고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질식 분만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 순간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면 아기는 심각한 뇌손상을 입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아기의 턱 부분을 잡고 조심스럽게 앞쪽으로 끌어 당겼다. 꽉 낀 채로 잘 빠져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약간 지체되고 있었다.
얼마전의 아기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윽고 아기 머리 부분이 빠져 나왔다. 우렁찬 아기의 울음 소리가 병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새벽 6 시 20 분 이었다.
태반까지 꺼내고 나니 온몸에서 긴장이 풀려 막혔던 것 같은 긴 숨이 쉬어져 나왔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선배와 간호사들이 박수를 쳤다.
아기가 탄생한 소식은 아침에 소록도 온 마을에 퍼졌다. 50 년 만에 소록도에서 아기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죽어 가는 섬에서 새 생명이 탄생했다고 병동에 있는 다른 환자들도 다들 눈물을 글썽거렸다.
알고 보니 산모는 거의 만삭이 된 배를 하고 자신의 엄마를 찾아 왔다고 했다.
산모는 입양아로 자라면서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고 했다. 어렵게 살아온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서라도 꼭 엄마를 찾아 자기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어렵게 찾아낸 그녀의 엄마는 한센병 환자로 이곳 소록도에 있었다. 알고 보니 아이를 위해 입양을 보내고 엄마만 이곳으로 왔었다고 했다. 그 엄마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는  마지막으로 엄마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담당의가 말리는 긴 여행을 왔다가 어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산모는 이곳에 와서야 지나온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알았고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도 모두 씻어 내버렸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의 소중한 아기와 늦게 만났지만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준 모든 사람들께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감사할 사람은 나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그리고 이곳 소록도까지 오게 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았다.
밖으로는 붉고 환한 해가 막 바다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도 여기 더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다.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서울로 가야 했다.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
마음이 급했다.
배를 타고 차를 달리고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12 시가 지났을 때였다. 이제 나도 알았다. 아기를 낳은 산모가 안 것처럼 살아 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손을 잡고 내가 안 것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녀도 힘들어 하지 않도록 알려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녀가 입원하고 있다는 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내가 누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좀더 일찍 왔어야 하는 데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나는 아무도 만들지 않은 두려움과 원망의 감옥을 스스로 만들고 그 안에 내 영혼을 가두고 괴로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중환자실에 있지 않았다. 그녀가 있었다는 침대는 흰 시트가 새로 깔려 있어서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새벽에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6 시 20 분 경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오기 전에 떠나고 말았지만 나는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다.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갔다.
내가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의미를 알려 주고 갔다. 꽃에 의미를 준 시인처럼 그녀는 갔지만 내 삶의 의미를 알려 주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일에서는 숨겨진 숭고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당장은 알기 어렵더라도 그녀의 고통과 나의 괴로움에도 반드시 그럴만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지금은 모르지만 믿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라고 해도 좋고 삶에 대한 의욕이라도 해도 좋고 그런 것을 주고 갔다.
그녀가 나에게 준 선물을 그런 믿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믿는 것처럼 내가 나를 믿고 그들을 믿고 삶을 믿는 것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면서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었인지를 분명하게 알았다. 내일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태양이 뜰 것이다. 내게 힘든 가을이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이 소설은 작가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는 격자 구조의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이해하기에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큰 구조는 정해져 있었지만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에서는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그때 그때 이야기를 구성하다 보니 서로 충돌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여기 나오는 윤약사와 주인공의 이야기는 감정적인 부분과 세밀한 사실 그리고 설정은 픽션이지만 그런 비슷한 내용의 사건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 당시 괴로워하던 그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제가 그분께 드렸던 위로는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집니다 하는 그런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지금 다시 말하라 해도 더 좋은 말을 찾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당시 많이 괴로와하던 그 분의 모습을 좀더 실감 있게 그려 보고 싶었는 데 제가 충분히 그 느낌을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소설의 테마는 원래는 사랑 혹은 삶이라는 것의 고단함과 복잡함 그리고 그 이해 불가능한 속성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계획은 주인공 이혁이 자살하는 것으로 끝맺을 예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죽었고 의사로서의 자긍심이 죽었고 사랑하는 연인이 죽었습니다. 이 정도 이유면 죽기에 충분한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글을 써나가면서 걱정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고 또 그렇게 끝내 버리면 인생이 너무 서글퍼 질 것 같아서 작가의 권한으로 조그만 희망을 넣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지만 마지막 글에서 생명 탄생의 스토리를 넣고 주인공도 살리는 방향으로 바꾸었습니다.

글을 처음 쓸 때는 잘 몰랐는 데 쓰고 보니 저에게 이 소설이 주는 의미는 적지 않았습니다.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신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녀의 선물로 제시한 믿음을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얻었습니다. 그녀의 죽음과 아기의 탄생과 연관지어 보니 아직 내 삶과 고통의 의미를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모른다고 해서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여하튼 지금까지 전혀 재미도 없고 엉성하고 서로 충돌되기까지 하는, 정말 소설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을 열심히 읽어 주신 모든 분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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