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이든 소설가이든 세상에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는 모든 존재들은 자신 만의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대상을 창조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신도 사실 자신의 형상을 닮게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할 만큼 창조라는 것은 기본으로 바탕을 둘 수 밖에 없는 무엇인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그릇을 찍어 내기 위한 틀인 주물 같은 것 입니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이런 주물은 자신의 내면에서 부르짖는 소리,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절박한 욕구를 토해내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표현하는 틀입니다.
화가에게는 그림이고 음악가에게는 선율이며 작가에게는 글이 그 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물의 재료가 되는 영혼의 향기와 색깔이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물의 모양이나 색깔에 있어서도 모든 예술가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물의 색이든 모양이든 겉으로 드러난 이런 차이를 흔히 스타일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기만의 스타일이 없는 예술가들은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 차리기 쉬운 보다 분명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차이뿐.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스타일의 차이를 동등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감수성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 사람의 예술적 재능의 차이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미술 작품에 있어서 어느 화가의 스타일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으나 음악가들에 대하여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는 음악에 대하여 따로 공부해 보지 못한 소치일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스타일의 차이를 잘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따라서 자신의 예술적 취향이 어느 쪽에 있는 지 궁금한 사람은 성향이 다른 화가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오는 괴리와 역시 성향이 다른 음악가의 음악을 들어 보면서 느끼는 괴리를 비교하여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클래식과 하드락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고 별 거부감이 없다면 음악적인 부분에서 재능이 적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전방면에 걸쳐 매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밀레의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이 그게 그것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역시 미술적 재능이 적은 사람쪽에 속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스타일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오늘 이야기하려는 모딜리아니가 미술가 중 누구보다 특이한 스타일을 보유한 화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에 대하여 특출난 재능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도 보통은 그림을 보면 어느 화가의 그림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딜리아니 만큼 특이한 그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화가도 드물 것입니다.
먼저 글에도 썼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이 한 것과 같은 색깔의 왜곡 보다는 입체파 화가들이 시도한 형태의 왜곡이 사람으로 하여금 강렬한 인상을 받도록 합니다.
모딜리아니는 형태의 완전한 분해와 재배치라는 입체파 화가들의 방법과는 다르지만 기형적인 타원형의 몸체와 작지만 역시 긴 타원형의 얼굴, 그리고 비례가 맞지 않는 긴 목으로 하여 인물 원래의 고유한 형태를 파괴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의 그림 들은 같은 화가의 그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만듭니다.

모딜리아니는 초기에는 풍경화도 몇 점 그렸으나 대부분의 그림이 여인의 초상이거나 아니면 여인의 누드를 그린 것들입니다.
이는 사랑을 갈망한 그의 내적 성향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가 미술 역사상 가장 잘 생긴 남자 화가라는 칭송을 들은 점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모에서 얻는 득으로 하여 그가 여인을 접하기 쉬었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또한 그가 표현하는 인물들은 단순하게 처리한 배경을 바탕으로 역시 단순한 형태와 입체감이 전혀 없는 평면적인 묘사를 취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그리고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인물화들은 거의 모든 그림이 눈동자가 없거나 간략화 되어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다만 그가 죽을 때까지 사랑한 여인 잔느의 초상 등 몇몇에는 뚜렷한 눈동자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눈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

모딜리아니는 사는 동안 내내 술과 마약에 찌들고 문란한 이성 관계로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조각을 하고 싶었으나 선천적으로 병약한 체력 때문에 그리고 지나치게 비싼 재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4 살에는 청순한 19 살의 잔느 에뷔테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여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를 하며 죽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했습니다.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줘"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드릴께요." 라고 하는 말을 주고 받았을 만큼 사랑했던 그녀와 평탄하기만 한 생활을 꾸려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3 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시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살고 사랑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다음 날 혼자 남은 잔느 에뷔테른은 임신 5 개월의 몸으로 5 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맙니다.
비록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가난 속에 파리의 자선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짧은 일생을 마치게 되지만 그의 인생이 결코 불행했다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다 망가진 몸을 하고서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기 얼마전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그가 그림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가 토해내고 싶었고 그러지 않으면 안되었던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되돌아 봅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앞에 선 사람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 보아 주기를 원해서였던 것이 아닐까요 ?
또렷한 눈으로 한 영혼이 다른 영혼을 바라 보아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요 ?
그것이 유독 초상 그것도 항상 정면을 응시하는 눈을 가진 초상을 주로 그렸던 그의 그림의 의미일지 모릅니다.

아래는 모딜리아니의 자화상들로 바로 아래 있는 자화상은 그가 죽기 얼마전에 그린 자화상이라고 합니다.
왠지 우울한 느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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