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대학 다닐 때 프랑스 영화관에서 보았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영화는 시련에 부딪혔을 때 인간 혹은 생물체가 선택할 수 있는 3가지 방법에 대하여 다루고 있었습니다.
첫째, 도피하는 것
둘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셋째, 맞서 싸우는 것.
영화에서는 도피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싸우기라도 해야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무의식에 쌓여 있다가 위장병이나 고혈압, 심장병, 암, 우울증 등으로 자기 자신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그런 내용을 한가지 실험을 통해서 표현했습니다.
첫번째 그룹의 쥐는 우리에 가두어 놓고 전기 고문을 가하는 데 전기 충격이 없는 옆 방으로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두번째 그룹의 쥐는 피할 곳이 없어서 전기 충격의 고통을 그대로 견딥니다.
세번째 그룹의 쥐는 전기 충격의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주변에 다른 쥐가 있어서 서로 공격하면서 상대를 괴롭힙니다.
실험이 끝난 후,
첫번째 그룹의 쥐는 털이 윤택이 나며 아무런 질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그룹의 쥐는 털도 곤두서고 질병에 걸려 얼마못가 죽었습니다.
세번째 그룹의 쥐는 첫번째 그룹만큼은 못했지만 병에 걸리지 않고 잘 살았습니다.
그 영화의 이름은 지금은 잊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피하지 않고 견디다 죽는 쥐가 바보 같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보니 첫번째 그룹의 쥐처럼 지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두번째 그룹의 쥐처럼 살아야 할 때도 있었고, 가끔은 세번째 그룹의 쥐처럼 행동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첫번째 그룹의 쥐처럼 크게 도피하는 방법을 택했던 적은 지금까지 두번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도피는 그럭저럭 지지를 받았지만 앞으로의 도피는 댓가를 크게 치루게 될 것입니다.
도피나 견디는 것이나 모두 쉽지 않은 것이니 세상살이는 제게 항상 어렵기만 한 숙제와도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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